‘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정말 어렵다. 누구나 깨끗하고 안전한 동네, 전망 좋은 집을 원한다. 비싸게 팔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집은 투기의 대상이 된다. 어떤 집은 ‘한강뷰’라는 이유로 몇 배나 비싸게 팔리고, 어떤 집은 시세차익의 수단이 된 채 비어 있다.
<한강가에 모여>의 감독 역시 ‘잘 살기’를 꿈꾸며 한강 부근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경관이 어쩐지 꺼림칙하다. 용산역 부근 재개발로 인해 바퀴벌레들은 이촌동까지 밀려났고, 지렁이, 달팽이들은 한강 변 산책로에서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고 있다.
한강 변은 본래 빈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 더러운 것, 징그러운 것, 쉽게 치워버릴 수 있는 것은 ‘도시 미감’이라는 명목하에 치워졌다. 깨끗한 산책로, 경계 삼엄한 아파트, 화려한 한강뷰 동네가 만들어지는 동안 약자들은 계속해서 밀려난다. 감독은 공감을 연대의 실마리로 삼아 노점상 투쟁 현장을 찾아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연대자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우리는 아마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함께 가져가야 하는 고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함께 살 수 있을까’가 아닐까? 영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화려한 폭죽놀이 뒤의 매캐한 연기. 누군가는 창을 닫은 채 그 화려함만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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