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시장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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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근사한 현대식 재래시장 건물 ‘마켓홀’이 개장했다. 마켓홀은 지역 랜드마크로 떠올랐으며, 전통시장 우수개혁사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 자리에 700년 된 시장이 있었다. 관광객은 발견할 수 없는 일상이 있었다.

삶의 공간이 변화하면 그 안의 일상도 변화한다. 수레를 끌고 나와 커피를 권하던 이가 있던 새벽, 열심히 한 주를 보내고 교회에 가던 일요일, 함께 일하던 여섯 명의 동료가 있던 일상은 마켓홀에 담기지 못했다. 원래 있던 일상이 변화된 공간에 담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긴 논의와 합의의 시간이 필요한가. 그럼에도 그것은 소중한 일이기에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보내야만 한다. 그러나 정책결정자들은 마켓홀의 관광효과에 들떠있었고, 상인들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건립을 추진했다.

마켓홀이 완공되면 상인들은 생존이 걸린 결정을 해야 한다. 시시각각 그 시간은 가까워져 온다. 초조함을 안고서는 논의도, 연대도, 투쟁도 쉽지 않다. 마켓홀이 개장하고 상인들은 떠밀리듯 완전히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커피 수레만이, 이곳에 결국 어울리지 못한 일상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유령처럼 떠돈다. 마켓홀은 그렇게 ‘관광명소’가 되었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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