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를 돌보고 있으며, 누구에게 돌봄을 받고 있는가? 흔히 돌봄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시혜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특히 ‘장애인’이라는 이름은 늘 돌봄의 수혜자, 혹은 보호와 허락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존재로 규정되어 왔다.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은 비혼, 직장인, 활동가, 배우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가졌으나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지워졌던 ‘민아’와, 집을 잃은 치와와 ‘마루’의 만남을 통해 돌봄에 대한 이 견고한 이분법을 뒤흔든다.
민아의 삶은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과 편의로 재단됐다. 긴 치마가 불편해도, 지퍼가 뒤에 달린 옷을 입기 힘들어도 그의 의견은 돌봄의 대상이라는 명분 아래 삭제되기 일쑤다. 결혼과 임신, 출산조차 허락을 구해야 하거나 금기시되는 영역으로 치부된다. ‘정상성’의 범주에서 민아는 언제나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런 민아 앞에 나타난 마루는 거울 같은 존재다. 작고 연약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마루. 민아는 마루를 불쌍한 존재로 대하는 대신 마루 스스로의 용기를 기다리고, 느린 걸음에 보조를 맞춘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민아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허락을 구해야만 했던 민아가 마루의 보호자이자 세계가 되어주는 순간, 돌봄의 권력관계는 무너진다.
영화는 마루가 민아의 보살핌 덕에 세상으로 첫발을 떼는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 누군가를 돌보는 동시에 돌봄을 받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돌봄은 구속이 아니라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해방의 과정이다. 씩씩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이 묻는다. 당신이 규정해 온 ‘정상성’의 경계는 어디냐고.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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