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Why Not

작품 줄거리

‘비랑가나’.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서 파키스탄군에게 강간과 고문, 학대를 당했던 생존여성들이다. 이들의 기억들이 교차하며 하나의 힘을 만든다. ‘비랑가나’는 ‘용감한 여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그램 노트

교차하는 삶을 본다. 그 기억은 각기 다르지만 엮이고 뭉쳐 하나의 힘을 만든다. 기억을 이루는 말들은 힘을 가진다. 기억을 만드는 힘은 듣고, 보고, 읽는 것이다. 연대하는 이들이 기억의 문을 여는 힘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듣고, 보고, 읽어야 한다. 계속해서 기억해야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기억의 문을 함께 열고, 그 문턱이 닳을 때까지 드나들고, 문고리가 느슨해질 때까지 열고 또 여는 것이다.

<기다림>의 생존자들은 용기를 말한다. 힘을 말한다. 기억을 말한다. 우리가 기대어 살아온 삶을 말한다. 방글라데시와 한국은 전쟁이 있었고, 전쟁으로 파괴된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그들을 위안부라고 이야기하고,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렁거나라고 이야기한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름을 말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비렁거나 할머니들은 서로 마주한 적 없겠지만 그 얼굴에 담긴 진실함은 같다. (너무 비약적인지) 일본과 파키스탄이 역사를 인정하고 사죄하기를 바라는 것. 역사를 똑바로 마주하고 세월로 덮지 않는 것.

그들의 기억은 선명하다. 그때의 걸음, 무게, 소리, 시선까지 여전히 생생하다. 생생한 기억은 더 이상 과거로 남겨져 있지 않다. 기억은 영원히 ‘있었던 것’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필연적인 일이다. ‘없었던 것’이 될 수 없다. ‘없었던 것’으로 덮어버리려는 국가는 피의자를 재판하지도, 처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영화에서 말했던 것처럼, 진실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국가주의적으로 귀결될 때 생은 피해자의 입을 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을 듣고 보고 읽으려 노력해야 한다. 기억이 떠내려가지 않게. 더 많은 기억 속에 이들의 이야기가 남겨지길 바라며 기억의 문고리를 잡자.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섹 알 마문

1974년 방글라데시 다카 출생. 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8년한국에 입국, 2001년부터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에 투신하였다. 2012년 보터 문화예술 활동을 하면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이주민 문화예술지원단체인 아시아미디어컬처팩토리의 기획국 상근활동가로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인권해설

방글라데시를 떠나온 섹 알 마문 감독의 영화 <기다림 Why not>(2020)은 50여 년 전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시기 전시강간 피해여성들의 증언으로 시작된다. ‘시작된다’고 했지만, 그 시작은 카메라가 포착한 주저함, 망설임, 불안한 몸짓을 통해 가까스로 열린 말문이었다.  감독은 한국에 이주한 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기간 동안 자국의 여성들이 겪었던 강간피해와 그 이후의 삶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비랑고나(Birangona)와 일본군 ‘위안부’의 중첩된 증언을 통해서 강간 피해 이후 고향이나 고국으로 돌아와도 온전히 돌아올 수 없었던 시간들을 비춘다. 이들의 증언은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는 외교문제의 틀을 벗어나, ‘사회의 무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1971년 12월 22일자 <뉴욕 포스트>에는 ‘영웅으로 불리는 강간당한 뱅골여성들(Raped Bengalis Called Heroes)’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971년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여성이 파키스탄 군대에 의해 강간을 당했고, 이러한 대규모 강간사태에 대해 방글라데시 정부는 피해여성에게 ‘비랑고나’라는 칭호를 부여했는데, 이는 벵골어로 ‘용감한 여성’을 뜻한다. 그러나 이 칭호는 점차 방글라데시에서 ‘불명예스러운’ 또는 ‘침해당한 여성’을 의미하거나, 강간, 임신중지, 자살을 상기하는 표현이 되어 갔다.

여성이 외부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가는 전통적인 벵골 촌락 사회에서 강간 피해생존자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이에 당국은 ‘영웅 선언’을 통하여 그녀들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재통합’을 꾀했지만, 무슬림 아버지들과 남편들은 자신의 딸을, 아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귀환한 일본군 ‘위안부’들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들은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떠나온 마을로 돌아와 살 수 없었고, 가족에게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혹은 말하지 않았다). 피해 생존자들의 삶은 귀환 후에도 ‘미귀환’의 시간 속에 놓이게 된다.   

9개월의 분쟁 기간 동안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이 당시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임신중지’였다. 경제력 있는 집안의 여성들은 캘커타의 병원으로 보내져 수술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출산을 위해 인도로 이주하거나, 자살하거나, 영아살해를 시도했다.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출산을 했고, 포화처럼 쏟아지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 아이를 길러야 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벵골 출신 여성 전문가들은 ‘사회 복귀’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임신중지 시술과 직업훈련에 조력하며 연대했고, 런던, 뉴욕, 로스엔젤레스, 스톡홀롬 등지에서 페미니스트 단체가 이 문제에 대응할 기구를 만들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시성폭력에 초점을 맞춘 국제원조가 조직된 것이다. 

대규모 전시성폭력은 1971년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방글라데시의 사례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시성폭력과 대규모 강간이 그 복합적인 후유증까지 포함해 진지하게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971년, 미국에서는 강간위기센터가 문을 열었고, 토론의 장(場)에서도 강간은 ‘성행위’가 아니라 ‘성범죄’로 새롭게 정의되는 등 성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가까스로 생겨났다. 무엇보다 당시의 페미니즘 운동이 강간을 정치적인 문제로 보는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고, 원치 않는 임신의 해결책으로서 임신중지를 실용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덕분에 대규모 강간 사태에 주목하는 국제 공조라는 결정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아정(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s31)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 InternationalWaters31은 회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이른바 ‘새우꺾기’ 고문을 당한 M과 연대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보호소는 체류기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비(非)국민들이 ‘보호’라는 명분하에 철창 속에 ‘구금’되어 그 삶을 유예당하는 곳입니다. International Waters는 ‘공해(公海)’, 즉 국경이 없는 모두의 바다라는 뜻이고, ‘31’은 한 달을 채우는 하루‘들’의 합산을 의미합니다. 31명이 모여서 M의 하루들을 번갈아 채워나가며 구금 트라우마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려는 바람을 담았어요. 지금은 탈시설운동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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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5회 서울인권영화제기억의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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