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벽장을 두드리며

인권해설

“#I’m gay and won’t marry a straight person.”(나는 성소수자이고, 이성애자와 결혼하지 않겠다.) 최근 중국의 성소수자들은,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사진을 웨이보에 올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부 성소수자 부모들도 “성소수자 자녀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겠다”며 선언에 나섰다. 이 움직임은 최근 중국 언론이 동성애자의 위장결혼을 다룬 것에서 비롯됐다. 동성애자 남성과 결혼한, 이성애자 여성의 ‘고통’으로 보도되었던 것이다.

이 캠페인을 기획한 PFLAG(Parents and Friends of Lesbians and Gays) 중국 지부는 캠페인의 취지에 대해 “위장결혼의 폐해를 거부하겠다는 의미만 지니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위장결혼에는 분명 젠더 위계적인 측면이 있다. 성소수자로 태어나더라도 이성애 결혼을 피해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만 가계 혈통을 이을 수 있는 중국에서, ‘아들’은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동성애자 남성과 한 쌍을 이룬 이성애자 여성은 그렇게 위장결혼의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이 상황을 ‘남성 동성애자 가해자-여성 이성애자 피해자’로 구도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성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중국의 많은 성소수자들이 서로의 정체성을 아는 상태로 ‘협력결혼’을 택하고 있다. 2005년 개설된 중국 최대협력결혼 사이트 ‘Chinagayles.com’에서는 여태까지 총 23,000쌍이 협력결혼을 올렸다. 또한 ‘퀴어’, ‘iHomo’처럼 게이-레즈비언 파트너를 찾는 앱도 등장했다. 결혼 압력을 견디지 못한 성소수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이 정체성을 속여서라도 이성애 결혼을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결혼해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는 것만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여남이 혼인을 올려 아이를 낳는 것만이 길러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며, 낳은 자식은 먼 훗날 ‘나’의 노후를 책임져줄 혈육이 된다. 지극히 보수적이며 이성애 중심적,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단면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결혼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이지만,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을 땐 상황이 뒤바뀌기도 한다. 미혼이나 비혼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이성애 결혼을 하지 않는 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비정상’이라는 낙인이 붙는다.

그런데 이러한 낙인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보수적인 젠더 규범, 젠더 위계, 이성애중심주의가 촘촘하게 얽혀 이성애 결혼을 강제하고 있다. 이 복잡한 구조는 이성애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킨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혐오에 근거해, 그들의 자녀 입양 및 출산을 제약받는다. 또 여성들은 남성우월적인 젠더 규범으로 그들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통제받게 된다.

그러므로 이성애 결합이 아닌, 다른 결합이 법적으로 보장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다양한 결합이 합법화되더라도 동성애자 커플이나 아이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성애 결혼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렇듯 우리를 둘러싼 벽장은 한 겹이 아니다. 이 벽장은 아주 두텁고 견고하다.

최근 PFLAG의 캠페인에 참여한 중국 성소수자들이 SNS 상에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한 외침이었다. 또 이성애중심적인 결혼, 보수적인 가족시스템 등 그들을 둘러싼 ‘벽장’을 허물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한 벽장문을 열고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분명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크고 두꺼운 벽장에 새로운 문을 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열고 보니 또 다른 문이 있더라도, 더 자유롭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나기 (언니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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