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나는 세상을 느낀다

인권해설

흐릿한 영상으로 시작하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없는 불편함과 답답함이 생긴다. 기존의 익숙한 장면과 시선이 아니다. 뒤틀려있고 다른 것은 꼭꼭 숨기려 해도, 숨기면 숨길수록 어디에서나 분명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 일상 속의 티 나는 몸과 마음의 다름은 사람들의 다른 시선으로 이어진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노들장애인야학의 중증장애인 학생들과 같이 이동을 하면 시민 몇 명이 꼬깃꼬깃한 몇천 원을 쥐어주곤 했다. 이 돈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어눌한 어투와 귓가에 꽂히는 다른 음색, 뒤틀려있거나 ‘정상적’이라고 규정되는 신체와는 다른 몸. 이러한 다름을 보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왜 집구석에 있지 않고 밖에 나와 돌아다니느냐”, “밥은 혼자 먹을 수 있냐”고 손가락질 한다. 이것들이 바로, ‘시민들이 쥐어준 몇천 원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으로 돌아오는 것들이다.

최근에 계양구 보건소에서 ‘장애예방 5계명’이라는 자(문구용품)가 배포되었다. 그 안의 내용은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위험한 장난을 하지 않는다”,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 등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약속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사업은 계양구 보건소의 독자적인 사업이 아닌,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가 추진한 사업이었다. 장애예방교육 강사가 학교 내로 파견되어 교육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 사업의 목적은 “장애를 예방하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에 막대한 복지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장애’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노들장애인야학의 학생들 가운데 중도장애인 대부분이 “혼자서 살 수 없는 몸이 된 후 가족의 지원이 불가한 환경 속에서 시설을 택하게 됐다”라고 이야기 한다. 왜 그들은 시설에 갔어야 했고 지역사회 내에서 ‘거리의 턱’으로, 차가운 시선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고 있을까.

우린 대체 어떻게 “함께 살자”라고 외칠까. “이 사회의 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라는 물음이 그 시작이다. 다름을 유난히 특별한 것이 아닌 보통의 삶 속 개인으로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정상적인’ 신체의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두가 이동할 수 있도록 거리의 턱을 낮추는 등의 일상 속의 변화를 만들자.

휠체어를 탄 친구와 내가 거리의 턱 앞에서, 나만이 이동하고 그이는 갈 수 없을 때 그 공간에서 나와 친구는 다른 몸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건널 수 있을 때, 너와 내가 평등할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며 너와 나의 다름은 달라진다.

 

명희 (노들장애인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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