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모두의 손을 모아 깨진 그릇을 붙이려는 시도. 우리는 파편화된 시도의 조각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영화는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생한 학내 성폭력 사건의 현장을 다룬다. ‘나’는 권력형 성폭력에 대항하며 함께 연대하고 농성하던 동료들의 이야기를 마주한다. 과거의 기억으로 묻어두었던 그날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떻게 현재와 접목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노트
2019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폭력을 두고 투쟁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훼손된 대자보와 지친 동료들. 말뿐인 사과로 외면하는 H교수. 그럼에도 총장실 앞을 점거해 농성하던 연대의 물결. 피해에 피해로 연대하며 각자의 조각으로 상황을 이겨내고자 했다. ‘나’와 동료들은 안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공간, 학교라는 그릇의 파손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2010년 중후반에 걸쳐 ‘미투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의 반성폭력 투쟁이 줄지어 등장했다. 이는 “대학 내 부조리에 대한 저항 행동을 촉발”1했고, “거리의 페미니스트들이 외친 구호를 차용하고 가해 교수들의 행동이 성범죄임을 지적하며 교수직에 부여된 지적 권위주의를 비판했다.”2 공통의 감각이 된 권력형 성폭력으로부터의 피해가 교수와 남성 중심 대학 사회를 고발하는 아주 큰 목소리로 연대체를 구성한 것이다.
‘나’가 당도한 오늘의 대학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불법촬영’, ‘딥페이크’ 등의 형태로 학내 성폭력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투쟁을 ‘헛된 시도’라고만 읽게 할 순 없다. ‘나’가 동료들과 농성하던 날의 이야기를 다시금 조명한 용기로, 우리는 매일 새롭게 현실에 접속한다. 또다시 대자보를 붙이고 포스트잇을 건네면서. “감정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벽의 기록들, 노트북에 붙은 투쟁의 언어는 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대학의 분위기를 소란스럽게 할 것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지은
감독
다큐멘터리로 활동하는 사람. <파기상접: 깨진 그릇 붙이기>는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인권해설
이 영화는 격동의 투쟁을 겪은 후, 그 과정을 함께 헤쳐온 주역들의 이야기이다. 일종의 후일담이자,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투쟁을 정리하고 의미를 다독여 닫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지수‘는 투쟁의 강렬한 경험을 녹이는 방법으로 깨진 그릇을 이어 붙이는 영화를 만든다. 영화에 등장하는 ‘킨츠키(金継ぎ)’는 부서진 도자기를 금과 옻으로 수리하는 일본의 전통 기법이라고 한다. 불완전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철학이 담겨 있어, 깨져서 접합한 부분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지수’는 영화 말미에 그릇을 붙이며 자신의 흔적을 긍정한다.
그런데, 깨진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지수’가 자긍심을 갖고 다니던 예술학교에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며 그릇이 깨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예술활동을 위해 자유로운 학교, 안전한 학교를 기대했던 지수는 친구들과 사건 대응에 나선다.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던 시기, 학교 안팎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이어 나가던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학내 운동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거센 기대와 열망 속에서 시작된 학내 투쟁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 맞닥뜨린다.
H 교수의 학교 내 성희롱, 성폭력이 드러나고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으면서 투쟁에는 불이 붙었다. 그러나 끝내 이 처분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치열하게 활동했던 이들은 충분히 흔들린다. 이 투쟁이 ‘실패한 투쟁’이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책임이 운동을 집중적으로 이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모이는 데에 대한 어려움, 투쟁을 이어 나가는 버거움에 대한 고충이 가득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깨진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하기도 한다.
영화가 이어질 수록 어둠 속에서 깨지는 그릇, 학교를 배회하는 ‘지수’,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컷(CUT) 사이에서 투쟁의 시기는 아름답게 그려진다. H 교수에 대한 적절한 징계를 요구하는 집회나, 학교 본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점거 농성을 하던 장면은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밝은 음악으로 즐거움이 가득하다. 깊고 찐득했던 연대의 시간은 가장 반짝이는 시간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만큼 바뀌지 않는 현실이 실패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목청 터져라 외쳐도, 침낭에서 쪽잠을 자며 총장실을 점거해도 가해 교수의 정직 3개월이라는 처분을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들이 깨뜨린 것은 관행으로 포장된 폭력이나 공기처럼 내려앉은 차별적 환경을 부수는 일이었다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지수와 같은 사람들이 영화계의 차별적 분위기를 바꿔낸 바로 그 흔적이 될 것이다. 금으로 붙인 도자기 사이 반짝이는 균열처럼.
거셌던 2018년의 미투운동, 이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2019년에서 7년이 흘렀다. 이제 영화 제작에 공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성희롱, 성폭력 방지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종이 한 장은 아주 복잡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행정 처리가 되었다. 수많은 투쟁으로 ‘성희롱 성폭력이 발생하는 영화 제작 현장에는 지원할 수 없’다는 제도적 발판이 생겼다는 뜻이다. 빛나던 시간이 만든 작은 발판은 거센 백래시 속에서 버틸 수 있는 근육 중 하나가 된다. 지수의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또 함께 여는 다음 장(場)에서 이 시간을 치열하게 지나온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 넝쿨(연분홍치마)

프로그램 협력 연분홍치마
2004년 ‘성적소수자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발족한 연분홍치마는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일상의 경험과 성적 감수성을 바꾸는 정치를 만들어가는 단체입니다. 저항의 현장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고, 여성주의적 삶을 실천하며 연대합니다. 용산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세월호 참사,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1029 이태원 참사, 공권력 감시 대응,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 연대단체 무지개행동 등의 현장에서 미디어 활동으로 연대하고 기록해왔습니다. 연분홍치마의 활동가는 창작 활동이 곧 인권 운동이라 믿으며, 사회적 고통과 저항의 현장을 기록하고, 소통가능한 서사로 전환하는 영상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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