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의 방 Queer Room

작품 줄거리

첫 번째 방.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없는 곳을 찾다가 오게 된 “거부하우스”. 이곳에서 마침내 ‘나’를 봐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두 번째 방. 벽 한가득 붙어 있는 동물 사진과 포스터, 그리고 직접 쓴 글귀들. 붉은 생고기가 놓인 냉장고 한 칸에 자리 잡은 ‘비건푸드’. 가족 안에서 나의 ‘비정상성’을 지켜주는 것들이다. 세 번째 방은 이태원에 있다.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가 ‘나’를 위협하지만, 삶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 안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낀다. 마지막 방. 애인을 따라 그녀가 사는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동거인들은 우리가 레즈비언인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 집을 둘러싼 퀴어 아우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준다. 내가 ‘나’로 온전해지는 곳, 사회의 ‘정상성’에 맞서는 여기는, “퀴어의 방”이다.

프로그램 노트

당연하게도, “집에 있으라”는 권고는 적어도 세 가지를 전제한다. ‘집이 있다’는 것과 ‘집은 안전하다’는 것. 그리고 ‘집에서 머물러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 이와 같은 권고는 국가가 ‘안전한 공간’을 무엇으로 상정하는지, 또 어떤 사회적 정상성을 방역의 기준으로 세웠는지를 드러낸다. 영화 <퀴어의 방>에는 다름 아닌 ‘집’에서, ‘정상적인’ 가족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위협 받았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언젠가 누구도 함부로 문을 걷어차 열 수 없는 방, 비건인 나로, 동성애자인 나로, 트렌스젠더인 나로서 어떠한 변명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방을 꿈꿨다.

그러한 공간을 “퀴어의 방”으로 명명한 이는 자신의 방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넓어지기를,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버젓이 드러내는 포스터와 메모, 냉장고 칸이 존재하는 장소들로 주변이 가득 채워지길 바랐다. 그러나 소위 “이태원 발 집단감염”이 발생한 날, 혐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방문 앞에서 그는 되물었을지도 모른다. 자신과 동료들이 차지했던 공간이 왜 ‘집’이 아닌 ‘방’이었는지, 이 방 안에서 자신은 안전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서성거렸을지 모른다. 드러내지 말 것을 강요 받았던 정체성은 집단감염의 원인을 묻는 질문 앞에 소환되었고, 질병의 공포 앞에서 “문란해서 참을 수 없었냐”는 조롱과 멸시가 이어졌다. ‘정상’의 범주에 포함된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함께 싸워 이겨내야 할 대상이었지만, 애초에 방역의 대전제에서 벗어났던 사람들은 집의 안팎에서, 거리에서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가족과 사회, 질병과 싸워야 했다. 그렇게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퀴어의 방에 머무를 수도, 퀴어의 방을 나설 수도 없게 되었다.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안전한’ 공간은 모두에게 존재하진 않는다. 사회에는 집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공간이 완전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때로 안전한 공간이란 사회적 정상성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상정하는 ‘안전한’ 공간 밖에는 자가 격리가 불가능한 홈리스가 있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의 증가로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있으며 요리를 하다가 숨어야만 하는 비건들이 있다. 세상에는 안전하고 완전하게 자가 격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자가 격리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자가 격리가 정말로 모두에게 완전한 안전을 담보하는가? 영화 속 퀴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찾아 나선다.

바이러스는 사회 깊숙이에 내재해있던 혐오와 낙인을 바깥으로 드러낸다. 또한 그러한 혐오는 퀴어들로 하여금 더욱 더 그들의 방에 숨게 한다. 아직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마스크 구입을 포기하기도 했고 이태원의 클럽에 출입한 사람들은 모두 퀴어로 간주되어 신상 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을 안게 되었다. 국가는 코로나19에 대하여 익명검사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성소수자들을 강제적인 아웃팅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한다.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폭력이 없어지지 않는 한, 익명 검사는 답이 될 수 없다. 퀴어들은 바이러스가 아닌 혐오와 낙인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퀴어의 ‘방’이 아닌 ‘집’이 되도록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퀴어의 방>에서 서울시 보광동에 거주하는 한 사람은 집 앞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못했다. 기존의 가족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퀴어의 방을 꾸렸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했던 예전 가족이 찾아올까봐, 자신이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집주인이 알게될까봐 자신의 명의를 사용해 집을 구할 수 없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얻었다는 기쁨의 그림자에는 언제 이 공간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어져있다. 이들이 마련한 장소는 물리적으로 집이지만, 사회적으로 퀴어의 ‘집’이 되지 못한 채 퀴어의 ‘방’으로 남는다.

이들의 집이 방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커뮤니티에 속한 모든 사람의 신상이 노출될 위협에 놓이는 상황과 근본적으로 맞닿아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차별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감출 것을 강요하는 동시에 ‘혐오하기 위해’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질병의 위협 속에서 노숙인과 장애인의 ‘비정상성’은 삭제되어 “확진자”라는 공포만 떠올랐고, 이들은 격리와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 퀴어의 ‘비정상성’은 부각되어 감염의 이유가 되었고, 질타와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

안전한 공간의 의미가 모두에게 같지 않은 것처럼, 질병의 위협은 누구에게나 똑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퀴어의 방>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집이 “편하니까, 안정적이니까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안전한 공간에 도달하기까지 지나온 차별과 폭력을 짐작할 수 있다면, “집에 있으라”는 권고의 소극성과 책임의 부재 또한 알 수 있어야 한다. 퀴어의 방을 꿈꾸지만 퀴어의 방으로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운 세상에서, 퀴어의 ‘집’은 생길 수 없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명, 은비

프로그램 노트: 퀴어의 방

프로그램 노트: 퀴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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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권아람

권아람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 과정을 수료하고, 대학 내 여성주의자들의 활동을 다룬 <F word>를 연출했다. MTF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과정을 기록한 <2의 증명>(2013)을 공동연출했고, 기지촌 이태원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공간을 담은 <이태원>(2016)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태국의 일본군 위안소 공간들을 기록한 <463 – Poem of the lost>(2018)를 연출했다.

인권해설

영화는 네 개의 방을 소개하며 그 방에 사는 주인공 5명의 목소리로 공간을 채운다.

카메라는 퀴어의 방이라고 명명하고 담담하게 사는 이의 옷가지, 신발, 책들이 빼곡한 책장, 수저들 그리고 방밖에서는 내보일 수 없는 모습들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스티커 같은 물건들을 비춘다. 주인공들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을 탈주하여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카메라를 향해 나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퀴어들이 사는 방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곳은 나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다. 비록 그곳이 좁아 보이는 집의 한켠, 텐트의 한켠, 냉장고의 한켠일지라도 그 곳은 온전하게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며 나를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영화는 퀴어의 방을 나가면 만나는, 퀴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퀴어의 방 밖의 또 다른 이야기는 혈연 중심의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고 비정상성을 확장하고 정상성의 규범을 무너뜨리는 각자가 퀴어로서 살아가는 삶의 서사를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나는 안전한 사람인가, 이곳은 안전한 공간인가의 키워드는 더는 퀴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나답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가장 안전한 곳이 되는 것이며 어쩌면 안전한 퀴어들의 삶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상성의 규범을 깨부수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양선우/홀릭(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인권해설: 퀴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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