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달리기 Relay Race

작품 줄거리

동이 트지도 않은 이른 새벽, 땅을 박차고 달리는 남자가 있다. 바로,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던 김동수 씨.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동수 씨의 일상은 세월호 참사 이후 무너졌다. 국가는 책임을 외면했고, 트라우마를 짊어지는 것은 오롯이 동수 씨의 몫이었다. 통증은 여전히 끈질기게 따라다니지만, 곁에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함께 손을 잡고 버텨내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달리는 동안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은, 끝나지 않는 회복의 이어달리기이다.

프로그램 노트

이 영화는 당신의 마음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국가의 부재로 일어난 사회적 참사를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세월호와 함께, 희생자들과 함께 가라앉은 화물을 물어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장면에서는 너무도 참혹했다. 모든 게 오롯이 다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지고 김동수의 일상은 무너졌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어쩌면 그가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는 모습을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의 곁에는 다행히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 아픔의 크기는 가족이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닌 것만 같다. 그는 말한다. 이 기억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동수 씨는 지독한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간다. 악몽을 꾸고, 병원을 드나들며,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주거나 치료해 줄 수 없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숨이 차도록 오래오래 달린다.

그날 이후 12년.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은 어느새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기억’의 무게를 우린 온전히 알고 있는가. 기억하겠다는 약속에는 그 기억을 평생 이고 살아가야 하는 삶의 짐을 함께 나눠지겠다는 다짐의 무게가 실려 있다.영화 <이어달리기>는 김동수와 가족의 일상을 충분히 기다리듯 포착하면서, 우리가 이들의 구체적 삶과 만날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영화를 보며 무력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 아픔이 너무 커서 막막하고, 눈물이 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또한 삶이다. 이 눈물을 함께 나누고 싶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안나

감독

고효주

방송 PD 로 근무했다. <이어달리기>는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인권해설

참사를 겪은 모든 삶의 완주를 빌며

작년,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다양한 피해 경험을 수집하고 가시화하고자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응답을 제출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피해 경험을 돌아보거나 밝히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 목소리들이 모였다. 예상치를 웃도는 응답률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참사 피해자들의 삶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옮겨 갈 필요가 있었다. ‘피해자들이 왜 드러나지 않는가’에서 ‘우리 사회는 참사 피해자들의 경험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미비하고 보수적인 제도 앞에서 참사 피해를 마주 보는 일은 너무나도 쉽게 개인의 몫이 되어 버린다. 분명 참사의 경험은 수많은 사람의 몸 안에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존재한다. 그래서 모든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이어달리기>에서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이자 구조 활동을 했던 김동수 씨의 삶을 다룬다. 화물차 노동으로 본인과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2014년 4월 16일, 화물차와 함께 세월호에 탑승했고 참사 당시 몇 분간의 기억을 잃었다. 김동수 씨는 그 비어 있는 기억에 대해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라고 이야기한다. 참사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도, 김동수 씨의 참사 경험은 그와 몇몇 가족 구성원들의 몸에 남은 채 이어지고 있다. 언론은 김동수 씨를 ‘세월호 의인’으로 호명하지만, 김동수 씨의 참사 경험은 자주 ‘폭탄’처럼 여겨진다. 종종 김동수 씨는 그 고통의 감각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고통의 무게는 시간이 만드는 거리만으로는 결코 멀어지지도, 덜어지지도 않는다. 사회가 참사를 책임지기를 외면했기에, 그래서 그 고통의 책임이 개인에게 내면화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은 이들이 망각에 대항하는 반동적인 힘을 만드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참사의 경험을 마주한 김동수 씨의 투쟁은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둘째 딸의 꿈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김동수 씨와 그의 가족들은 끝없이 길고 긴 거리를 함께 ‘달린다.’ 이 모든 이야기는 결코 ‘의인’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대부분 고통스럽고 끔찍하지만, 그만큼 치열하고 선명한, 바래지고 있는 시간 속에서도 잔잔히, 그러나 꾸준히 흐르고 있는, 한 사람의 복합적인 삶이다.

김동수 씨를 비롯한, 여전히 참사를 겪고 있는 모든 삶들의 완주를 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그 지난한 달리기에 기꺼이 함께하기를. 우리가 거대한 사회적 망각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참사의 경험을 혼자만의 기억으로 두지 않는 것, 그 삶의 달리기를 끊임없이 잇고 또 이어 나가는 것뿐이다.

[1]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 자료집」, 2026.1.20., 14쪽.

– 박정원 (미술 작가,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활동가)

프로그램 협력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랜턴’은 10·29이태원참사 1주기를 전후로 청년 활동가, 연구자, 지역 주민, 피해생존자 등이 모여 결성되었으며, ‘안전하게 애도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활동합니다. 매년 핼러윈에 이태원에서 애도와 안전의 축제를 연행하며, 참사 이후에도 서로를 보듬고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애도의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1627회 서울인권영화제그래도 너의 곁에서 함께 싸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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