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떠나다 Journey Into The Dream

작품 줄거리

방글라데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공부하고 높은 경쟁률의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에 온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들의 이름은 단지 ‘이주노동자’다. 그들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개개인의 인격은 무시된 채 기계처럼 일하고 임금을 받지 못할 때도 있다. “꿈의 나라”와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 곳, 그 사이에 한국이 있다.

프로그램 노트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다양하다. 돈을 벌기 위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서 머나먼 타지까지 왔다. 한국에 오기 위해 3~4년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웠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의 꿈은 깨진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무시된 채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만 인식된다. 피부색이 어둡고 한국어가 서툴다는 것, 한국보다 ‘못 사는’ 국가에서 왔다는 것은 비이주노동자와 다른 ‘2등 시민’으로 취급을 받는 이유가 된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 각자의 나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시험을 보고, 추첨이라는 불합리한 절차를 거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은 지원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비자를 받아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한국시민’과 ‘이주노동자’ 사이에는 큰 벽이 세워져 있다.

이들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고용허가제(EPS)는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고용주의 말 한마디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구제를 위한 안전망은 전무하다. 고용주에게 시민성 박탈권을 주는 제도의 허점 때문에 온갖 횡포에 시달리게 된다. 열한 시간의 야간 노동, 임금 체불, 인격 모독, 주말 무급 노동 등 온갖 차별과 부조리에 시달린다. 사장한테 “나 힘들어요. 어떻게 일해?”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야 새끼야. 난 몰라”다.
한국 사회가 원하는 시민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시민의 조건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는가? 일리야스, 라나, 슈몬, 그리고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고, 고용허가제의 부당함을 폭로한다. 그들의 목소리로 일으키는 소란이, 한국 사회가 허락한 시민성으로 짜인 적막에 균열을 내고 있다.

감독

섹알마문 SHEKH ALMAMUN

섹알마문

1974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다니다가 1998년에 이주노동을 하러 한국에 왔다. 2001년부터 이주노 동자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아시아미디어컬쳐팩토리 기획국 상근 활동가로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인권해설

1990년대 말 한국사회의 부족한 노동력을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면서 산업연수생이라는 신분으로 일을 할 기회가 생기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제공했던 산업연수제도라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적게 주기 위한 인종 차별적인 제도임이 드러났다. 산업연수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급여를 주지 않기 위한 제도였으며, 저임금으로 강도 높은 일을 시키기 위한 제도였다. 그렇게 이주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그 제도 위에서 사업주들의 임금체불과 폭언, 폭행과 같은 인권침해가 노동현장에 난무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러한 상황은 이주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몰았다. 자신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몰랐던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살기 위해 사업장을 탈출하여, 소위 출입국에 의해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세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탈출은 목숨을 부지해주고,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와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중도장애와 독성물질에 중독되거나, 우울증에 걸렸고, 끝내 자기 목숨을 끊어 버리기도 하였다.
이런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2003년 11월에서 2004년 12월까지 명동성당 시위는 이어졌고, 그 저항의 결과로 제도적 변화를 이루어 냈다. 그것이 고용허가제로 바뀌게 된 계기였다. 이 과정을 겪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지키기 위해 2005년 4월 설립한 것이 이주노동자조합(MTU)이다. 하지만 법외조직으로 2015년까지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유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노동조합설립은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승소하고 나서도 고용노동부는 신고접수를 거부하다가, 연일 이어지는 집회와 기자회견 등 이주노조와 연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압박이 이어지자 노조 설립 10년 만에 합법화를 인정하게 된다.
10년간의 싸움을 통해 합법화를 이뤄낸 이주노조는 이후 이주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더 가열하게 하고 있다. 공항으로 처음 입국하는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리는 홍보캠페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5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주노동자 투쟁투어 버스’를 운행하며,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들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제도를 개선하고, 사업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지역을 다니며 이어왔다.
바로 이 영화 ‘꿈 떠나다’의 감독은 이주노동조합MTU의 부위원장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나 사업장 내 폭력 문제 또는 최저임금위반과 같은 사건을 직접 상담해주고 당사자와 함께 직접 해결에 나서고 있는 인권활동가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영화로 알려내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출신의 당사자로서 명동성당 시위 현장부터 오늘까지 이주노동자 권리 투쟁을 위한 현장을 지켜 온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속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의 대사 속에 녹아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주노동조합은 투쟁 중이다. 고용허가제로 인한 문제가 누적되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함께 싸우면서, 사업주의 입장에서 제도적 차별을 강화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해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노동 허가제’로의 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적은 최저임금에서조차 숙식비를 공제하는 지침을 내린 법무부를 비판하며, 부당한 최저임금 삭감 효과를 불러오는 숙식비 공제를 철회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29일 국회는 한국사회 전체 노동자의 최저임금에 숙식비 및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을 산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최저임금이 겨우 올랐을 뿐인데, 그것을 빌미로 기업들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가격 인상을 담합해 왔다. 그런데 노동자나 국민의 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별적인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회에 대해 침묵하고 공모할 때, 결국 그 무시와 차별이 어떻게 주류사회로 확산되는 지를 말이다. 이제 모든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저항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 모두가 ‘꿈을 꿀 권리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노동할 권리가 있고, 그 노동의 대가로 자신의 미래를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바꿀 희망이 있어야 하고, 그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코리안 드림’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으로의 이주를 우월한 위치에서 바라보았던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에 사는 코리안으로서 당신의 드림(Dream)은 이루어졌습니까?

정혜실(이주민방송MWTV)

423회 서울인권영화제시민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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