聯; 잇닿을 연 And it goes on

작품 줄거리

<聯; 잇닿을 연>은 새벽부터 분주한 듯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은 신중하고 유쾌하게 음식 간을 맞춘다. 누군가의 입을 생각하며 한 보따리를 싸는 아침. 누구에게 건네는 것일까? 그리고 건네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밖으로 행하는 발걸음은 무엇과 잇닿고 있을지, 그 연결을 보여주고자 한다.

프로그램 노트

누군가의 입으로, 귀로 무언가를 보내는 것은 때로는 살리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세종호텔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고진수 동지를 위해 도시락을 싸고 mp3에 음악을 담는 것은 그가 하루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그렇게 30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할 수 있도록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깃발을 흔들고 싸우고 연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있던 것 같다고. 광장을 타자화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벽화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광장에 나가기 전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일상을 살아가는 시간이 있다. 연대자로서 정체성은 어떤 단일한, 고정된 장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사소하고 은밀한 개인이 광장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부터의 연결성을 포함한다.

이 영화를 보면 『철학책 독서모임』(박동수, 2022)의 구절이 생각난다. “때때로 우리는 어색함이 없는 통일되고 전일적인 관계를 소망한다. 그런 소망은 대체로 자의식의 착각이거나 투사에 그칠 뿐임을 거듭 확인하면서 끝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연결됨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 연결됨과 반복됨의 패턴들은 우리가 서로를 서서히 더 잘 알아가게 해 준다. ‘알 수 있다’와 ‘알 수 없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한 채 알아가기’가 있는 셈이다.”

이 영화 속 농성자와 연대자는 서로를 완전히 알지도, 모르지도 않는다. 그저 이 둘은 도시락과 음악을 건네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알지 못한 채 알아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다 이렇게 연결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잇닿을 연’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혜원

감독

조유나

조유나는 감독이자 기획자로 개인의 경험이 사회적 구조 속에서 발화되는 지점을 탐구한다.
2023년 다큐멘터리 「엎어지면 손 닿는」을 통해 여성의 돌봄과 나이듦을 조명했다.
당사자성에 기대어 말하기를 시작하지만, 결국 동시대의 문제 앞에서 스스로를 한 명의
당사자로 위치시키는 태도로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권해설

남태령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서로는 대부분 낯선 사람들이었다. 트랙터를 타고 올라온 농민들이 있었고, 응원봉을 들고 온 여성과 청년들이 있었고, 성소수자들이 있었고, 온갖 폭력의 생존자들,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있었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조건도, 사용하는 언어도, 중요하게 여겨온 문제도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는 트랙터를 몰고 왔고, 누군가는 응원봉을 들고 왔으며, 누군가는 그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감각 하나만을 붙잡고 남태령으로 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남태령의 시간은 단지 하나의 집회나 사건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곳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연결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경험한 장소였다. 누군가는 밤새 현장을 지켰고, 누군가는 멀리서 음식을 보내왔으며, 누군가는 난방버스를 마련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민 자유발언으로 자신의 삶을 꺼내놓았다. 광장은 원래부터 존재하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낯선 사람들이 반복해서 서로에게 가닿으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곳에서 배웠다.

그래서 남태령의 경험을 떠올리면, 연대는 거대한 선언 이전에 아주 작고 구체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칼바람 속에 서로의 몸 상태를 살피는 일, 늦은 밤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안전한지 연락을 남기는 일, 농민의 트랙터 옆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면 사회를 바꾸는 힘은 거창한 구호만이 아니라 이런 사소하고 반복적인 연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연대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단단한 결속’처럼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오히려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다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곁을 내어주는 것에 더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남태령에서는 바로 그런 순간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누군가는 농민의 삶을 처음 가까이에서 보았고, 누군가는 철야농성에 처음 참여했으며, 누군가는 서로 다른 세대,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처음 드러냈을 것이다. 그렇게 긴 밤을 건널 수 있었던 저력은 이런 순간들의 누적이 만들어낸 온기였을 것이다. 그 경험은 우리에게 공동체란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만남과 돌봄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역시 그런 경험 위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어떤 완전한 동일성 때문에 연결된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도 함께 살아남기 위해 연결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연결은 단 한 번의 뜨거운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다시 만나고, 또 다른 싸움의 현장으로 함께 향하는 과정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서로를 너무 쉽게 단절하고 배제하려는 언어가 넘쳐난다. 하지만 남태령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것은 반대의 감각이었다. 완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이 누군가를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 우리는 아마 그런 순간들을 통해 다시 사람과 사회를 믿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고진수 지부장 역시 그런 연대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다.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구조물에 올라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였던 그는 2026년 1월 14일 농성 336일째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지금도 복직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또 다른 연대의 현장에서 국가폭력의 대상이 되어 구속된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구속이 단지 개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려는 움직임 자체를 위축시키려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를 잊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함께 싸웠던 사람의 이름을 계속 부르고, 그의 부재를 각자의 일상에서 기억하고,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이어가는 것. 연대는 함께 웃고 노래하던 순간뿐 아니라,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 그 빈자리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 향연(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프로그램 협력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

남태령 아스팔트 동지회는 2024년 12월 ‘남태령 대첩’에서 우발적으로 교차한 연대와 돌봄의 경험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그 정신을 일상 속에서 이어가는 느슨하면서도 굳건한 연대 공동체입니다. 동학농민혁명에서 동지를 일컫던 ‘접주’라는 표현을 빌려, 남태령 정신에 동의하는 누구나 가입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남태령이 되어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227회 서울인권영화제우리의 거리를 마주하라

리뷰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도 좋습니다.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