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잇다, 팔레스타인>
프로그램 노트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면서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야 했다. 대대적인 학살과 억압의 시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를 대재앙을 뜻하는 단어 ‘나크바’라고 부른다.
긴 시간이 흘러 세계 각지로 흩어진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덧 난민 4세대가 자라고 있다. 지역과 세대가 분화됨에 따라 언어, 억양, 문화 등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다.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투쟁이다. 특히나 팔레스타인의 민족성은 그 자체로 생존의 위협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된다.
<잇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민족 정체성을 여성들의 이야기로 엮었다. 남성의 언어와 남성의 상징물로 서술된 기존의 역사와 달리, 영화는 여성의 상징물인 자수와 이와 관련된 여성의 경험으로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역사를 이어나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팔레스타인 자수를 보며 고국에서의 기억, 또는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선대의 증언으로부터 상상을 통해 빌려온 기억을 마음에 새긴다. 그렇게 이들은 자수를 꿰는 동시에 시공간을 넘어 떨어져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하나로 꿰어진다. 이들에게 자수는 단순한 행동 또는 여성성의 상징이 아니다. 억압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지키는,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다.
나크바가 일어난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팔레스타인에는 여전히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점 더 물리적으로 흩어져가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언제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이들만의 방식으로 조국을 기억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이다. 자수 실을 엮어 견고한 작품을 만들 듯, 서로의 기억을 엮어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남아 저항의 삶을 지속할 것이다.
인권해설: <잇다, 팔레스타인>
인권해설
“우리가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우리의 지구 위에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꿰어낼 수 있어.”
<잇다, 팔레스타인>에 나오는 인터뷰이는 1948년 ‘대재앙’을 직접 겪은 사람부터, 팔레스타인을 조/부모 세대에게 얘기로 전해 듣기만 한 사람, 군사 점령지에 나고 자라 살아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팔레스타인 각 지역을 담은 거대한” 자수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은, 자수를 통해 점령지와 국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잇는다.
그런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이들보다 밖에서 사는 이들이 더 많을까?
우리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 세 곳을 묶은 것으로,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22%에 불과하다. 78%의 지역은 70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차지했다. 당시 유럽에서 이주해 들어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국가’를 만들겠다던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끝내고 철수한 틈을 타 이스라엘 건국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한 일 년간 주변의 신생 아랍 국가들과 전쟁하며 팔레스타인 원주민 마을 530개를 파괴하고 원주민 15,000명을 학살했으며, 인구 절반이 넘는 80만 명을 강제추방해 난민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때를 나크바, 즉 대재앙의 날들로 기억한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위임통치기에 실행했던 ‘비상강제령’을 이스라엘 법제로 편입하고 군사정부를 만들어, 78%의 땅에서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을 18년간 통치했다(같은 기간 유대인들은 민간정부가 통치했음은 물론이다). 비상강제령은 상소할 권리를 주지 않은 채 민간인을 관할하는 군사법원, 신문과 서적 발행 금지, 가옥 등 건조물 파괴, 재판 없는 무기한 행정구금, 출입봉쇄, 통행금지, 강제 이주 및 추방 등을 규정했다. 자국 내 군정을 폐지한 이듬해인 1967년에 이스라엘은 나머지 22%의 팔레스타인을 점령했고, 비상강제령을 적용하며 지금껏 군사점령 통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78%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즉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당한 난민과 후손은 무려 70년 동안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이스라엘에 철저히 금지당했다.
이처럼 군사 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이란 구분은 팔레스타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건국, 온갖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을 무력화시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들은 강제로 격리된 것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이스라엘의 왕래 허용과 여러 식민제국을 본받은 분열통치 전략의 일정한 성공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회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저항을 통해 서로에게 연결돼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고 전통을 지켜내는 것,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새로운 세대에게 지워진 과거가 되지 않게 하는 것. 존재 자체가 저항이라고 얘기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수는 그 존재와 저항의 한 방식이다.
영화에는 가자지구의 인터뷰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만 매우 제한적으로 열고 있으며 이마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자지구로의 출입과 촬영이 여의치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가 이집트에서 상영됐을 때 가자지구 출신의 한 관객은 이스라엘이 허가를 내주지 않기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서안지구를 영화를 통해 방문했다며, 언젠가 전 세계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모여 함께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 저항하는 한 그녀의 말은 현실이 될 것이다.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함께나눠요] 토부의 말
소식
지난 10월 이스라엘이 다시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규모 폭격을 진행했다. 가자 지구 남부에 하마스의 본거지가 있다는 핑계였다. 어린이 수 천 명이 살해당하고 의료진과 기자, 죄 없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10월부터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희생자 수는 2만 명에 육박한다. 병원은 무너졌고 전기는 끊겼다. 생존자 인터뷰에 나왔던 앳된 얼굴이 며칠이 지나 고인의 얼굴로 보도된다.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포클레인이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무너뜨리고 파파존스, 맥도날드, 에어비앤비 등의 회사가 이스라엘 군을 지원한다. 전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은밀하게 국제 자본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반인륜 범죄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를 인종학살의 터로 오염시킨다.

영화 <잇다, 팔레스타인>을 보자. 팔레스타인 여성 열두 명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간중간 자수를 놓는 손이 등장한다. 도트 모양으로 수 놓인 아기자기한 그림과 기하학적인 문양은 팔레스타인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인이 추억을 떠올릴 때면 오래전 팔레스타인의 거리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들의 증언에 따라 각자 거쳐온 나라가 표시된다. 화면은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러다 요르단과 프레이디스, 더 나아가 캐나다와 영국, 미국까지 빠르게 이동하며 등장인물의 종적을 훑는다.
이들은 추억을 빼앗기고 가족과 떨어지고 일상을 통제 당하며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결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레일라는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에 참여했고 말락은 팔레스타인 자수를 복구하기 위한 “12개의 창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메리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으며 아말은 팔레스타인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시마는 팔레스타인 문화를 향유하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있다. 삶의 위치도, 과정도, 방식도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씨실과 날실 삼아 생에 회복과 평화라는 그림을 그려나간다.
열두 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각기 다른 열두 개의 이야기로 누구의 이야기도 함부로 뭉뚱그려 말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침략과 인종차별 정책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 한 사건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삶을 침략하는 연속적인 폭력 사건인 까닭이다. 그런 이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물건이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가 수놓인 의복 ‘토부’다. 토부 안에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삶이 담겨 있다. 자수로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수하고 어머니가 딸에게 가르친다. 딸은 직접 치마에 낙타와 지팡이를 든 유목민을 새기며 땅의 역사를 기억한다. 손에 손을 거쳐 민족의 전통과 개인의 삶이 천 위에 촘촘히 수 놓인다. 팔레스타인이 머나먼 고국의 별이 되어 버린 뒤에도 여성은 토부를 간직하고 물려받으며 되돌아갈 날을 향해 걷는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을 침공해 인종청소를 자행했고 1967년부터 팔레스타인 전역을 군사 지배했다. 현재는 하마스를 핑계로 75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며 팔레스타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려고 한다. 영화는 살아남은 이들의 생을 읊어 실을 엮는다.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피력하고 일상을 지켜나갈수록 생존은 투쟁이 되고 삶은 혁명이 된다. 서로 다른 실이 엮이고 엮여 단단한 미래를 만든다. 토부는 정치적 맥락이자 저항의 상징이며, 고향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동료와 연결되는 매개이다.
지구에 있는 누구도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항하고 연대하자.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토부의 한 자락에 우리의 시간을 함께 꿰어내자. 영화에 등장한 사람들의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이 사태에 분노하고 토부를 입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야 했던 얼굴을 기억하자. 팔레스타인에게 자유와 평화를. 전쟁 없는 평온한 삶을.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소식
서울인권영화제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음 긴급행동 일정과 한국 무기 수출 반대 서명 및 가자지구 긴급 모금 캠페인을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해방을!”
🇵🇸 시민사회 긴급행동 6차 집회 및 행진 🇵🇸
일시: 2024년 1월 7일(일) 오후2시
장소: 청계천 무교동사거리 (서울 중구 무교로 32)
⛔️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하라!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3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만 1천명이 사망했고, 가자 지구는 참혹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스라엘의 무장을 돕고 있습니다. 2014~2022년, 한국은 이스라엘에 약 4,390만 달러(약 570억 원)의 무기(탄약, 포탄 등)를 수출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수출한 무기들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구체적인 무기 거래 내역 공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멈춰야 합니다. 무기 거래 중단을 촉구하는 5천 명의 서명을 모아, 1/19(금) 대전 방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달하려고 합니다. 많은 참여와 널리 공유 부탁드립니다.
✍️ 지금 서명하기 https://bit.ly/stoparmingisrael_kr
✊ 1/19(금) 방사청 앞 집회 참여 신청하기 (서울에서 버스가 출발합니다)
🔴 가자지구 긴급 지원 모금 🔴
https://box.donus.org/box/adians/Gaza_Fund
모금기간 : 2023. 11. 17 ~ 2024. 1. 10
이스라엘 점령군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살해, 실종, 부상당한 가구들에 생계지원용 현금 지급을 위한 모금을 시작합니다.
가구당 기본 $100 씩 지급하며, 현지 사정에 따라 지원금액은 변동 가능합니다.
⭕️현지 수행단체: 팔레스타인 여성위원회 연합(UPWC) 가자지구 지부
⭕️직접 송금 : 우리은행 1005-203-821-515 / 사단법인 아디
– 기부금영수증 발급 희망 시 반드시 아래 링크에서 ‘가자모금 참여하기’ 버튼을 통해 후원해 주세요.
⭕️자세한 안내 및 후원하기: https://box.donus.org/box/adians/Gaza_Fund
⭕️문의: 사단법인 아디 이동화 활동가 02-568-7723 / dh.lee@adians.net
※ 모금 실무를 맡은 ‘사단법인 아디’는 지난 몇 년간 팔레스타인 지원 모금 캠페인을 여러 차례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는 129개 한국 시민사회 단체가 함께 합니다. ※ 모금액은 하루 두 번 수동으로 업데이트&반영됩니다. 후원자 성함은 추후 공개됩니다.
[활동펼치기] 2023년 안녕~
소식
이번에도 한 해가 휘리릭~ 하고 지나가버렸습니다. 연도에 2023이라는 숫자를 적는 것이 익숙해질때쯤 이렇게 끝나다니요. 빠르게 흐르기만 하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가 저무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밝은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짓기 위해서 말입니다.
연말을 맞이하여 서인영 활동가들과 간단한 송년회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가지는 술자리여서 만반에 준비를 해왔던 것이었을까요? 서로 다양한 술을 꺼내면서 송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한 날이라 가져온 술, 추천해주기 위해 가져온 술, 한 번 먹어보고 싶어서 가져온 술 등등등. 다양한 맛의 술과 배달 음식으로 갈증과 허기를 풀어냈습니다. 생활나눔을 통해 서로 근황을 공유했고, 영화 <괴물>이야기를 ‘속닥속닥’ 했습니다. 보지않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서 <괴물>을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송년회의 클라이막스. 선물나눔이 있었습니다. 각자 가져온 선물을 교환하는 자리였는데요. 깜찍한 소품도 있었고, 감동의 편지를 준비해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인영 활동가 여러분 덕분에 추운 겨울 날씨에도 훈훈한 자리였습니다. 술기운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따스했어요. 덕분에 연말에 좋은 추억을 하나 더 쌓고 2023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6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릴 2024년에도 다 같이 함께하자는 다짐을 다지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봅니다.
2023년 안녕~ 2024년에 다시 만나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소하
[활동펼치기] 영화제의 문턱을 깎아내는 법
소식
12월 21일 송년회를 하기 전,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선 장애인접근권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특정한 장소에 모여 시청각 매체인 영화를 함께 보는 형식을 취하는 영화제, 그리고 영화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이날 워크숍에선 장애인접근권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영화제에 장애인접근권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과거 관객으로 서인영에 갔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스크린 위 자막해설과 수어통역, 관객과의 대화(TA) 내내 진행되던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었는데요. 워크숍을 들으며 상영과 TA뿐 아니라 영화제 준비 과정에서부터 온라인 콘텐츠, 프로그램 노트, 화장실 등등 사람이 닿는 모든 곳엔 접근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접근권 보장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해오고 있을까요?
먼저, 서인영의 모든 상영작에는 한국어 자막해설과 한국수어통역이 삽입됩니다. 자막해설과
수어통역은 언어를 통해 작품 내용을 전달하는 영역이다 보니 표현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한국수어와 한국어는 별개의 언어이기에 모든 표현이 1:1로 통역되지 않습니다. 인권 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신조어의 경우 수어로 새롭게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성소수자 관련 수어 어휘의 경우,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도 있어 새로운 어휘를 개발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자막해설을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로 혐오적, 차별적 표현은 없는지 확인하며 작성해야 합니다.
또한 관객과의 대화, 개폐막식 등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함께 진행되는데요. 여기서 잠깐! 왜 상영엔 자막해설과 수어가, 대화엔 문자통역과 수어가 둘 다 필요한 것일까요?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는 저도 워크숍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요, 앞에도 언급했듯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다른 언어이기에 한국어가 수어를, 수어가 한국어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마다 익숙한 언어가 다르기에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할 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온라인 이미지엔 대체텍스트를 삽입하고, 영화제 현장에 점자 리플릿을 배치하며, 단체 소개나 영화제 안내 등의 글은 최대한 ‘읽기 쉬운 자료(이지리딩)’로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접근권과 관련된 사항을 줄줄 적어보았는데요. 이 뉴스레터에 적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고, 적어놓은 것들 또한 막상 실현하기 위해선 여러 고민과 논의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워크숍 마지막엔 장애인접근권과 관련해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문제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을 고민에 빠뜨린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관한 극장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수어통역사 섭외가 보통 한 시간에 20만원이라고 하던데, 예산이 부족해요. 발화자가 많은 행사라서 통역사가 최소 2인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 시간과 예산이 한정적인데 모든 영화에 화면해설을 제작할 수가 없어요. 어떤 기준으로 화면해설을 제작할 영화를 선택하면 좋을까요?
정말 어렵죠… 특히 예산과 관련해서는 뾰족한 답을 찾기 어려웠는데요. 당장 완벽한 정답을 찾을 순 없더라도 접근권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경험을 쌓고 빈틈을 메우다 보면 좀 더 촘촘하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접근권을 실현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모두의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영화를 보러 올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면 영화제의 현장은 공허한 모순과 한계를 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더 많은 분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길 기대하며 2024년에도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서울인권영화제 울림 310호] 차별은 끊고 별빛을 잇는 우리들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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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퀴어시네마 QCP, 12월 9일에 만나요
소식

Queer Cinema for Palestine(이하 QCP)가 12월 2일부터 9일까지 개최됩니다. QCP는 팔레스타인 퀴어 민중과 연대하는 세계 퀴어 영화인들의 영화제입니다. 올해는 12월 2일부터 9일까지 QCP 웹사이트 (https://queercinemaforpalestine.org/)에서 진행됩니다. 온라인 상영은 토론토 퀴어 영화제 웹사이트(https://torontoqueerfilmfest.com/qcp-2023/)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12월 9일 토요일 저녁 7시에는 오픈북,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서울인권영화제가 공동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 (UNHEARD: Defend Masafer Yatta)〉 상영이 있습니다. 남 헤브론 언덕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그리고 ‘HD현대’는 그 폭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BDS Korea 활동가들이 직접 가서 그 질문에 답합니다.
〈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 (UNHEARD: Defend Masafer Yatta)〉

1부 , 권순목, 18분, 한국(2023) / 영어, 아랍어, 한국어(영어, 한국어 자막)
2부 , 권순목, 28분, 한국(2023) / 영어, 아랍어, 한국어(영어, 한국어 자막)
[사진3. 영화 언허드 2부의 스틸컷. 폐허가 된 가옥의 터에 한 어린이가 앉아있다.]
시놉시스
전례 없는 인종 청소가 마사페르 야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 이야기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오픈북과 BDS 코리아가 현장을 방문해 현재 진행 중인 점령과 폭력, 인종청소를 포착했다.
감독 소개
권순목은 대한민국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다큐멘터리 작가이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왔으며 사회 정의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2019년에는 2019년 홍콩 시위를 기록해 화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2023년에 그는 팔레스타인, 특히 마사페르 야타를 여행하여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QCP 공동 성명 (한국어)
“우리는 LGBTQIA+ 해방에 전념하는 영화 제작자, 영화 예술가 및 제작 회사로서, 우리의 해방이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의 해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유, 정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연대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해방 투쟁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고 팔레스타인 인권을 존중할 때까지 이스라엘 정부가 후원하는 LGBT 영화제 TLVFest를 보이콧하고 해당 영화제에 영화를 제출 또는 참석하거나 이 외의 기타 이스라엘 정부가 부분적 또는 전면 후원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소식
※ 12월 6일 수요일 아침 8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민사회 행동 “우리는 함께 평등열차를 타겠다”의 일환으로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연대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원래 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관계자들과 경찰들의 극렬한 방해로 역사 바깥에서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이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함께한 연대의 발언을 공유합니다.

평등열차를 타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함께하는 세 번째 아침입니다. 아니, 세 번째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년 전 12월 3일부터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날을 함께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롭게 이동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함께 싸우고 서로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사랑하는 동료를, 친구를, 가족을 잃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하철을 타겠다는 것, 버스를 타겠다는 것입니다. 시설 바깥에서, 집밖으로 나가서, 교통카드를 찍고 대중교통을 타서 밥을 먹고 은행에 가고 극장에 가고 병원에, 공원에, 마트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일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너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그렇다면 예산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증액하지 않는,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애인의 일상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시설에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왜 굳이 나오려고 하느냐. 왜 굳이 뭘 하려고 하느냐. 가만히 있어라. 우리는 이를 차별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선명한 차별입니다. 외면하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는 차별입니다.
차별에 저항하면 혐오의 낙인이 찍히곤 합니다. 무엇보다 대책 마련을 위해 힘써야 할 서울시장은 출근길 행동을 두고 ‘사회적 테러’라고 합니다. 지하철에, 버스에 오르려는 장애인을 경찰이 가로막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다고, 갈라칠 것이 없는 문제를 갈라치기 합니다. 보이지 말아라. 눈에 띄지 말아라. 우리는 이를 혐오라고 부릅니다. 아주 명백한 혐오입니다. 국가가, 지자체가 나서서 혐오를 일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역시 일상 속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는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수리되지 않습니다. HIV/AIDS 감염인의 섹스는 전파매개죄라고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수술 없이 성별을 인정 받고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동성 군인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해도 추행이라고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폐지의 압박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바로 차별이라고, 혐오라고 싸우는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존중은 하지만 눈에 띄지는 말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숨어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는 불평등한 세상을, 혐오와 차별이 당연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무섭습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성소수자가 광장에 나와 행진을 하고, HIV/AIDS 감염인이 섹스를 하고, 게이 군인이 군 복무를 하고, 동성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고, 퀴어 청소년이 숨지 않고 학교에 다녀도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평등은 해롭지 않습니다. 평등한 세상은, 소수자가 행복한 세상은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즐겁고 이롭습니다.
평등을 향한,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향한 역사는 우리의 평등열차를 타고 전진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남겨두지 않고, 모든 이의 해방을 꿈꾸며 끝까지 전진할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십시오. 차별은 나쁜 것, 평등은 좋은 것이라고 외우십시오. 정치는 하루 빨리 이 평등열차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투쟁!
※12월 8일 금요일 기자회견에서 서울도로교통공사와 경찰은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입을 막았습니다. 결국 8명이 연행되고 혜화역 바깥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시 : 2023년 12월 9일(토) 오후 2시
장소 : 서울 종각역 보신각
기억과 애도의 시간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평등사회를 향한 권리를 다시 새기는 시간
9와숫자들의 9(재경) 음악공연,
퀴어댄스팀 QcanD 춤공연까지-














정기 상영회, 특별 상영회 등의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어요!
정부와 기업의 후원 없이, 올해도 상영활동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서인영이 될 수 있게 함께해주세요!

내가 마시는 과즙 음료의 원재료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와 수자원을 약탈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내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역시 토지를 빼앗아 지어진 불법 정착촌의 공장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면, 또는 그 기술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하고 감금하는 데 사용된다면, 나의 연구·창작물·행사참여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리게 하는 수단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거부하는 것이 바로 ‘BDS 운동’의 본령이다.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전략인 BDS 운동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를 뜻함) 체제를 철폐시키는 데 기여한 20세기 말 BDS 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2005년 ‘팔레스타인 BDS 민족 위원회(Palestinian BDS National Committee)’가 발족되면서 그 시작을 알렸다.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점령국이자 또 다른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인 이스라엘에 전 세계가 Boycott(불매 운동), Divestment(투자 철회), Sanctions(제재)로 대응함으로써 자신들이 겪는 점령, 학살, 인종차별을 끝장내기 위한 저항운동에 힘을 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응답이 각국의 운동단체, 교육기관, 종교기관, 정부기관 사이에서 꾸준히 확산되고 있으며 또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국제 행동을 저지하는 데 이스라엘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점령 국가라는 이미지를 세탁하는 데 이미 대규모 재정을 쏟아붓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는, ‘브랜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국가 홍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각국의 입법자들에게 직접 접근하는 로비 활동에서부터 문화·예술·학술계에서 ‘지원’과 ‘교류’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민관 사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나아가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은 다양하다. 이 영화에 나타난 것처럼 텔아비브를 ’중동’의 유일한 ‘퀴어 천국’으로 포장하려는 ‘핑크워싱’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는 윤리적 생산과 소비가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구매 선택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인 나를 위한 것인 동시에 상품의 생산·유통 종사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선택이 모이면 시공간을 넘어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기도 하다. 기업 윤리를 망각한 기업에 대한 외면이 당연하듯, 점령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가 홍보 상품’에도 우리의 불매 운동이 절실하다. 날로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서 전해지는 절규와 연대호소에 우리도 BDS 운동으로 응답하는 것은 어떨까.
새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스라엘은 유럽의 시온주의자들, 다른 말로 유대민족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의 선주민 아랍인을 추방하면서 세운 정착민 식민주의 국가다. 1948년 국가 수립 선포 이후, 총 네 차례의 이스라엘아랍 전쟁(중동 전쟁)을 치르면서 줄곧 영토를 확장해 왔을 뿐 아니라,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일대의 군사적 맹주로 군림하며 국제 정세를 좌지우지한 지도 오래다.
이스라엘은 유대민족국가를 정체성의 골자로 하며 건국 단계에서만 칠십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 수많은 난민을 만들었다. 전 세계 모든 유대인에게는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부여하면서, 자기가 살던 집과 일구던 밭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팔레스타인인에게는 그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이 남기고 떠나야만 했던 집과 땅은 부재자 소유물로 정부 관리부동산이 되어 궁극적으로 유대인 정착민에게 분배된다. 법률, 정책, 제도 대부분이 유대인 시민권자를 중심으로 마련되므로, 2할이 넘는 비유대인 시민권자는 2등 시민으로 살아가며 이스라엘의 모든 일상에서 체계적으로 차별받는다.
애초에 이스라엘은 타민족에 대한 수탈과 폭력과 차별로 구성된 국가이다. 이스라엘 국경 안에서만 차별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가자지구와서안지구의 사정 역시 엄혹하다. 가자지구는 하다못해 구호 작업이 불가할 지경까지 봉쇄됐다. 서안지구 주민은 녹색선이라 불리는 공식 경계를 침범하여 건설되는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으로 인해 이동권, 교육권, 건강권, 재산권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이는 모두 현재진행형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을 보장하도록 하는 1948년 유엔총회 결의안 194를 칠십 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무시해 왔다. 분리 장벽 건설을 국제법 위반이라 규정하며 기존 장벽 철거, 새로운 장벽 건설 중단, 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인에게 발생한 피해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상을 권고한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 권고에도 꿈쩍 안 한다. 권고 후 1년이 지나도록 사정이 달라지지 않자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단체가 모여 국제사회에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구매 혹은 이용 거부), 투자철회, 제재(BDS: Boycott, Divestment, Sanction) 운동 참여를 촉구한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스라엘은 국제 사회에서의 국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선전 사업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본격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 이름은 ‘브랜드 이스라엘.’ 널리 각인된 점령국으로서의 군사적 이미지나 유대교 중심의 실질적 정교일치 국가라는 이른바 전근대적 이미지를 탈피해, 세속민주주의 인권 국가로 자신을 포장해 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취한 주요 전략 가운데 하나가, 자국을 중동지역 통틀어 성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곳으로 자랑하며 텔아비브 같은 도시를 게이의 휴양 낙원으로 꼽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주변 아랍국이 하나같이 성소수자를 끔찍하게 박해하는 데 비해 이스라엘은 다양한 성소수자가 자유롭게 즐기며 살아가는 근사한 사회라는 게 홍보의 요지다.
우리 사회는 완전히 퀴어 친화적이에요. (가끔 극우 초정통파 유대민족주의자가 성소수자를 린치하기도 하는데, 그건 특수한 경우니까요.) 우리는 비유대인 성소수자 인권에도 관심 가져요. (물론 이스라엘이 구원자로 나서서 아랍국가보다 우월한 사회임을 증명하는 데 써먹을 수 있을 때만 선택적으로 그렇게 해요.) 이스라엘에는 호모포비아하고 트랜스포비아가 존재하지 않아요. (팔레스타인하고 다른 아랍국가는 호모포비아하고 트랜스포비아가 심해서 참 딱하지 뭐예요. 우리를 모범 삼아야 할 텐데요.) 우리는 중동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달돼 있어요. (분리 장벽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건 당연히 제외하고 하는 얘기예요.) 우리는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해요. (팔레스타인인하고 타종교인만 빼고요.)
위 문단에서 괄호에 담긴 내용을 삭제하고 괄호 바깥의 내용만으로 스스로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바로 ‘핑크워싱(pinkwashing)’이다. 성소수자 인권을 상징하는 분홍색 ‘핑크(pink)’와 연막 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의 조합어다. 이는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스라엘 사회 내 인종 차별을 종식할 근본적인 노력 없이 단순히 자국의 이미지만을 세탁하기 위해 성소수자의 존재를 이용하는 위선적인 기획이다. 자국의 팔레스타인 점령이 초래하는 막대한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호모포비아나 트랜스포비아로 인한 성소수자 인권 침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점령 문제의 심각함을 축소한다. 점령 체제 자체가 팔레스타인 사회를 살아가는 성소수자나 이스라엘의 2등 시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에게 가할 인권 침해를 지워버리고 말이다.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성소수자 인권 보장과 엮고 주변 아랍국가와 이슬람교를 성소수자 박해와 엮는, 소위 문명 대 비문명의 이분법 자체가 정형화된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한 부당 대립이다.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이 진행됨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 국가 성소수자 단체들은 저마다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선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며 국제 사회 성소수자 운동 진영에도 관심과 도움을 요청한다. 팔레스타인 성소수자와 연대하고자 한다면 BDS 운동에 성소수자 개인 혹은 단체로서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당부한 것이다. 이에 호응하여 ‘콰이아: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퀴어들(QuAIA: Queers Against Israeli Apartheid)’이란 이름의 모임이 여러 도시에 생겨난다.
딘 스페이드의 <핑크워싱>은 2012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을 비춘다.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자기 도시를 습격한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과 어떻게 싸웠고 이겼고 다시 좌절했고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았는지를 기록한다. 이스라엘 성소수자 대표단의 핑크워싱 투어 행사를 잡아버린 시애틀 시정부 엘지비티위원회를 찾아가 실상을 알리고, 시애틀 퀴어영화제에 핑크워싱 작품이 걸리자 상영장 안팎에서 감독 및 관람객을 상대로 직접 행동을 벌이며, 다른 지역의 성소수자 BDS활동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얻은 영감으로 콰이아 시애틀지부를 결성하기까지를 아우르는 치열한 투쟁기다. 활동가들은 지역 정치와 국제 연대를 긴밀히 연결해 사유하며 비타협적으로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즉 점령과 인종차별을 비판한다. 성소수자 국제연대와 지구적 BDS 운동은 결코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돼서도 안 됨을 힘주어 말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서울인권영화제는 21회 영화제를 준비하며 ‘핑크워싱’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Third Person>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이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Third Person>의 상영 계획을 2016년 3월 31일 취소했다.
상영 취소를 결정한 <Third Person>은 성소수자 다큐멘터리로, 인터섹스(intersex)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제는 상영작을 선정하고 있던 당시 <Third Person>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성소수자 인권 영화는 늘어나고 있지만, 인터섹스에 대한 영화는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침 이 영화는 인터섹스가 처한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구성도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로 자기 경험을 풀어내는 식이라, 영화제의 모든 활동가들이 이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상영 결정 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의 미팅 중 ‘BDS운동(보이콧, 투자철회, 제재·Bocycott, Divestments, and Sanctions)’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간단히 말해, BDS운동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과 차별에 저항하는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그런데 <Third Person>이 BDS운동의 대상에 부합하며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핑크워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DS운동이라고 하면 특정 제품이나 활동에 대한 ‘보이콧’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운동에는 문화 생산물도 포함된다. 물론 영화도 속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제작된 모든 작품을 보이콧하지는 않는다. BDS운동의 학술·문화 부문을 아우르는 ‘PACBI 가이드라인’에 따라 BDS운동의 대상이 정해진다. 이 가이드라인은 “큰 틀에서 PACBI는 전 세계 문화 노동자(예술가·작가·영화제작자 등)와 노동조합이나협회를 비롯한 문화 조직에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 로비 단체나 문화 기관이 연루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전세계 문화 영역에서 이스라엘의 정상 국가화를 조장하고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및 팔레스타인인 권리 침해를 은폐하며 BDS 가이드라인을 위배하는 행사·활동·협정·프로젝트를 보이콧하거나 취소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Third Person>은 PACBI 가이드라인에 부합했다. 뒤늦게 알았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가이드라인을 검토했고, 앞으로 BDS운동에 연대할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Third Person> 측에 상영취소 결정을 통보하자 이 영화의 배급사와 제작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BDS 운동에 대한 비난·폄훼를 쏟아 부었다. 제작자·배급사는 BDS운동이 이스라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메일에 언급하기도 했다. 또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메일로,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왔다. 갈수록 이스라엘의 ‘창대한’ 반격을 받게 된 것이다. 그중 압권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대응이었다. 대사관은 BDS운동을 비난하며 계속해서 상영재고 및 공관차석과의 미팅을 요구했다.
제작자·배급사는 상영 취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영화’라는 이유로 대사관까지 나서 영화제를 압박한다면, 의도를 생각해볼 만하지 않은가. 대사관의 적극적인 접촉은 결국 이 영화가 단지 개인의 창작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Third Person>은 이스라엘의 성소수자 친화적인 이미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핑크빛’ 국가 이미지 ‘세탁’, 즉 ‘핑크워싱’에 속한다.
영화에도 잘 드러나 있지만 ‘핑크워싱’은 이스라엘의 이미지 쇄신 작업이다. “이스라엘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중동의 유일한 나라”라고 국가 이미지를 꾸미는 것이다. ‘핑크워싱’의 대표적인 예는 “게이들의 천국 텔 아비브”라는 광고 영상이다. 이 광고에서 이스라엘의 도시 텔 아비브는 게이들의 에덴동산으로 그려지지만, 실상은 팔레스타인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만든 정원에 가깝다. 이처럼 이 ‘핑크워싱’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흐리게 만든다.
서울인권영화제는 21회 영화제에서 <Third Person>의 상영을 취소하고, <핑크워싱>이라는 작품을 상영한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진 맥락과 상영하는 행위 자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 영화 이면에 가려진 폭력과 차별에 대해 환기하고, 이를 놓칠 뻔 했던 것을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끝으로 서울인권영화제가 늘 중요하게 가지고 가는 가치가 ‘표현의 자유’라는 지점에서도, 서울인권영화제가 BDS운동에 연대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 왜냐하면 반-BDS운동은 BDS운동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를 설득하거나 협박하지 못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국가가 그리고 기업이, 어떤 권력이 사람들의 ‘삶’의 외침을 가리지 않도록 지켜온 ‘표현의 자유’를 폄하하기엔 그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그 근거가 온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표현의 자유를 끌어다 쓰는 맥락은 단지 팔레스타인을 밟고 선 핏빛의 땅이, 핏빛이 아니라 선의의 핑크빛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가지고 온 허울 좋은 가림막이기에.
우리가 불을 붙이려 하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 BDS 운동에 대한 응답, 이스라엘 점령에 대한 문제제기는 우리의 것만으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울인권영화제는 한국과 해외의 영화제들에게도 BDS운동을 환기하고 동참할 것을 요청하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문화예술계에 이스라엘의 폭력과 인종차별에 힘을 실어줄 계기들이 자라나는 것을 함께 막아내길 바라면서.
다희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