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청년들 Youth Unstoppable

작품 줄거리

<멈출 수 없는 청년들>은 교토의정서, 코펜하겐 기후회의, 칸쿤 기후회의를 거쳐 파리협약이 체결된 후 지금까지 의사결정권자들에 맞서 싸우는 청년들과 함께한다. 청년들은 홍수로 마을이 없어진 슬로베니아에서, 가뭄으로 농사를 더 이상 지을 수 없는 네팔에서, 펜실베니아주 만한 오일쓰레기가 있는 캐나다에서, 미국에서, 호주에서,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다. 오랜 연대와 운동을 지나 트럼프와 그레타 툰베리까지 이어지는 세계청년기후운동의 흐름을 따라가보자. 그러다 보면 “이건 지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는 어느 활동가의 말을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 노트

신종 감염병이 일어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앞으로 발생주기가 3년 이내로 단축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기후위기가 지목된다. 개발주의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이는 기후변화를 촉진시켰다. 아마존을 불태운 자리에 기업의 대규모 농장을 짓고, 도시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동물들의 서식지는 줄어간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해 상승하는 기온과 변화하는 대류, 해류에 따라 동물들의 서식지와 이동경로도 변화한다. 자연스럽게 인간과 동물의 접촉이 증가하고, 인수 공통 감염병의 빈도 또한 함께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감염병의 대책으로 제시되는 ‘폐쇄’와 ‘거리두기’가 가능한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집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안전한 집이 있어야 하고, 집에서도 생활유지가 가능한 정도의 자원이 있어야 한다. 재난은 자원이 없는 자에게 더 가혹하다. 재난은 평등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감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근무할 수 있는 사무직 직장인과, 온 종일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는 택배기사가 느끼는 ‘폭염’의 무게는 다를 것이다. 농경사회에 비가 오지 않는 것과, 도시에 비가 오지 않는 것 또한 그 무게는 다를 것이다. 배수시설과 관공서가 잘 정비되어 있어 비가 퍼부어도 복원이 가능한 국가의 국민과, 그렇지 않아 삶의 공간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들에게 ‘홍수’의 무게는 다를 것이다. 홍수로 마을이 모두 물에 잠기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이주해야 한다. 홍수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들이 물에 잠기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삶의 공간을 잃은 ‘기후 난민’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에서 2050년까지 기후위기 때문에 최대 10억명의 난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위기는 온 지구, 온 인류에게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코로나19가 그러했듯, ‘위기’는 자원이 많은 이들에게는 ‘견딜 만한’ 일이 될 것이고 자원이 없는 이들에게는 온몸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재앙이 될 것이다.

 

2015년에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을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합의하여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현재 산업화 이전 기준으로 약 1도가 상승하였으며,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기온상승을 2도가 아닌 1.5도로 제한해야한다는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의 순배출량을 0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으나, 기후위기는 30년 후의 일이 아닌 당장 지금 대응해야 할 문제다.

 

<멈출 수 없는 청년들> 속 활동가들은 칸쿤에서 열린 COP16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사망자의 숫자를 하나, 둘, 셋, 넷 목놓아 외치며 센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로 집을 잃고,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고 있다.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라는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자원이 없는 이들은 위기에 더더욱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식민지배국이었고 전쟁을 일으킨, 산업개발국가들에 의해 촉발되었다. 그들의 ‘자원’은 누구를 밟고 일어나 생겼는지, 이와 같은 재난과 위기에서 ‘자원 없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에 대해 질문하며 우리는 30년 후가 아닌, 이미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기를 멈출 수 있는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유영, 혜원

감독

슬레이터 쥬웰-켐커 Slater JEWELL-KEMKER

멈출 수 없는 청년들 스틸컷 4 영화 감독이 동남아시아 지역의 아이들과 셀프카메라 구도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활짝 웃고 있는 감독은 백인이며 뿔테 안경을 쓰고 캡모자를 썼으며 그 위로 헤드폰을 걸고 있다.

인권해설

김현우가 건네는 <멈출 수 없는 청년들>

2019년은 ‘기후위기’의 시간으로 기록된다. 물론 기록되는 것으로 그친다면 위기는 많은 현실주의자 또는 비관론자의 예상대로 더욱 비극적인 인류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되겠지만, 어쨌든 위기는 주류 미디어의 공간까지 올라왔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이면에는 이 영화가 추적하고 있는 ‘청년 기후정의 운동’의 부상이 있다.

코펜하겐과 칸쿤, 파리의 유엔 기후변화총회를 거치면서 슬레이터는 경험하고 고뇌하며 성장한다. 해양학자가 슬레이터에게 건네주는 성게 골격은 세대를 전승하는 바통이다. 그 기후정의의 바통은 슬레이터를 거쳐 아마도 툰베리에게도 전달된 셈이다. 그러면서 국제 기후협약은 조금씩 진전했고 운동도 커졌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온실가스 배출은 더욱 늘었고 지구온난화 1.5도를 지키기 위한 ‘탄소 예산’은 8년이 채 남지 않았다. 지구의 어디든 누구든 기후위기 속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김현우(기후위기비상행동)

10월간 서인영 9월호코로나19 인권영화제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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