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면서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야 했다. 대대적인 학살과 억압의 시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를 대재앙을 뜻하는 단어 ‘나크바’라고 부른다.
긴 시간이 흘러 세계 각지로 흩어진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덧 난민 4세대가 자라고 있다. 지역과 세대가 분화됨에 따라 언어, 억양, 문화 등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다.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투쟁이다. 특히나 팔레스타인의 민족성은 그 자체로 생존의 위협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된다.
<잇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민족 정체성을 여성들의 이야기로 엮었다. 남성의 언어와 남성의 상징물로 서술된 기존의 역사와 달리, 영화는 여성의 상징물인 자수와 이와 관련된 여성의 경험으로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역사를 이어나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팔레스타인 자수를 보며 고국에서의 기억, 또는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선대의 증언으로부터 상상을 통해 빌려온 기억을 마음에 새긴다. 그렇게 이들은 자수를 꿰는 동시에 시공간을 넘어 떨어져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하나로 꿰어진다. 이들에게 자수는 단순한 행동 또는 여성성의 상징이 아니다. 억압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지키는,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다.
나크바가 일어난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팔레스타인에는 여전히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점 더 물리적으로 흩어져가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언제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이들만의 방식으로 조국을 기억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이다. 자수 실을 엮어 견고한 작품을 만들 듯, 서로의 기억을 엮어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남아 저항의 삶을 지속할 것이다.
인권해설: <잇다, 팔레스타인>
인권해설
“우리가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우리의 지구 위에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꿰어낼 수 있어.”
<잇다, 팔레스타인>에 나오는 인터뷰이는 1948년 ‘대재앙’을 직접 겪은 사람부터, 팔레스타인을 조/부모 세대에게 얘기로 전해 듣기만 한 사람, 군사 점령지에 나고 자라 살아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팔레스타인 각 지역을 담은 거대한” 자수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은, 자수를 통해 점령지와 국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잇는다.
그런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이들보다 밖에서 사는 이들이 더 많을까?
우리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 세 곳을 묶은 것으로,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22%에 불과하다. 78%의 지역은 70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차지했다. 당시 유럽에서 이주해 들어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국가’를 만들겠다던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끝내고 철수한 틈을 타 이스라엘 건국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한 일 년간 주변의 신생 아랍 국가들과 전쟁하며 팔레스타인 원주민 마을 530개를 파괴하고 원주민 15,000명을 학살했으며, 인구 절반이 넘는 80만 명을 강제추방해 난민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때를 나크바, 즉 대재앙의 날들로 기억한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위임통치기에 실행했던 ‘비상강제령’을 이스라엘 법제로 편입하고 군사정부를 만들어, 78%의 땅에서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을 18년간 통치했다(같은 기간 유대인들은 민간정부가 통치했음은 물론이다). 비상강제령은 상소할 권리를 주지 않은 채 민간인을 관할하는 군사법원, 신문과 서적 발행 금지, 가옥 등 건조물 파괴, 재판 없는 무기한 행정구금, 출입봉쇄, 통행금지, 강제 이주 및 추방 등을 규정했다. 자국 내 군정을 폐지한 이듬해인 1967년에 이스라엘은 나머지 22%의 팔레스타인을 점령했고, 비상강제령을 적용하며 지금껏 군사점령 통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78%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즉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당한 난민과 후손은 무려 70년 동안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이스라엘에 철저히 금지당했다.
이처럼 군사 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이란 구분은 팔레스타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건국, 온갖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을 무력화시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들은 강제로 격리된 것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이스라엘의 왕래 허용과 여러 식민제국을 본받은 분열통치 전략의 일정한 성공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회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저항을 통해 서로에게 연결돼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고 전통을 지켜내는 것,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새로운 세대에게 지워진 과거가 되지 않게 하는 것. 존재 자체가 저항이라고 얘기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수는 그 존재와 저항의 한 방식이다.
영화에는 가자지구의 인터뷰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만 매우 제한적으로 열고 있으며 이마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자지구로의 출입과 촬영이 여의치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가 이집트에서 상영됐을 때 가자지구 출신의 한 관객은 이스라엘이 허가를 내주지 않기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서안지구를 영화를 통해 방문했다며, 언젠가 전 세계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모여 함께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 저항하는 한 그녀의 말은 현실이 될 것이다.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함께나눠요] 토부의 말
소식
지난 10월 이스라엘이 다시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규모 폭격을 진행했다. 가자 지구 남부에 하마스의 본거지가 있다는 핑계였다. 어린이 수 천 명이 살해당하고 의료진과 기자, 죄 없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10월부터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희생자 수는 2만 명에 육박한다. 병원은 무너졌고 전기는 끊겼다. 생존자 인터뷰에 나왔던 앳된 얼굴이 며칠이 지나 고인의 얼굴로 보도된다.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포클레인이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무너뜨리고 파파존스, 맥도날드, 에어비앤비 등의 회사가 이스라엘 군을 지원한다. 전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은밀하게 국제 자본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반인륜 범죄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를 인종학살의 터로 오염시킨다.

영화 <잇다, 팔레스타인>을 보자. 팔레스타인 여성 열두 명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간중간 자수를 놓는 손이 등장한다. 도트 모양으로 수 놓인 아기자기한 그림과 기하학적인 문양은 팔레스타인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인이 추억을 떠올릴 때면 오래전 팔레스타인의 거리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들의 증언에 따라 각자 거쳐온 나라가 표시된다. 화면은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러다 요르단과 프레이디스, 더 나아가 캐나다와 영국, 미국까지 빠르게 이동하며 등장인물의 종적을 훑는다.
이들은 추억을 빼앗기고 가족과 떨어지고 일상을 통제 당하며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결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레일라는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에 참여했고 말락은 팔레스타인 자수를 복구하기 위한 “12개의 창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메리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으며 아말은 팔레스타인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시마는 팔레스타인 문화를 향유하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있다. 삶의 위치도, 과정도, 방식도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씨실과 날실 삼아 생에 회복과 평화라는 그림을 그려나간다.
열두 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각기 다른 열두 개의 이야기로 누구의 이야기도 함부로 뭉뚱그려 말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침략과 인종차별 정책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 한 사건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삶을 침략하는 연속적인 폭력 사건인 까닭이다. 그런 이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물건이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가 수놓인 의복 ‘토부’다. 토부 안에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삶이 담겨 있다. 자수로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수하고 어머니가 딸에게 가르친다. 딸은 직접 치마에 낙타와 지팡이를 든 유목민을 새기며 땅의 역사를 기억한다. 손에 손을 거쳐 민족의 전통과 개인의 삶이 천 위에 촘촘히 수 놓인다. 팔레스타인이 머나먼 고국의 별이 되어 버린 뒤에도 여성은 토부를 간직하고 물려받으며 되돌아갈 날을 향해 걷는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을 침공해 인종청소를 자행했고 1967년부터 팔레스타인 전역을 군사 지배했다. 현재는 하마스를 핑계로 75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며 팔레스타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려고 한다. 영화는 살아남은 이들의 생을 읊어 실을 엮는다.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피력하고 일상을 지켜나갈수록 생존은 투쟁이 되고 삶은 혁명이 된다. 서로 다른 실이 엮이고 엮여 단단한 미래를 만든다. 토부는 정치적 맥락이자 저항의 상징이며, 고향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동료와 연결되는 매개이다.
지구에 있는 누구도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항하고 연대하자.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토부의 한 자락에 우리의 시간을 함께 꿰어내자. 영화에 등장한 사람들의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이 사태에 분노하고 토부를 입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야 했던 얼굴을 기억하자. 팔레스타인에게 자유와 평화를. 전쟁 없는 평온한 삶을.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소식
서울인권영화제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음 긴급행동 일정과 한국 무기 수출 반대 서명 및 가자지구 긴급 모금 캠페인을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은 학살을 멈춰라! 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해방을!”
🇵🇸 시민사회 긴급행동 6차 집회 및 행진 🇵🇸
일시: 2024년 1월 7일(일) 오후2시
장소: 청계천 무교동사거리 (서울 중구 무교로 32)
⛔️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무기 수출 중단하라!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이 3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만 1천명이 사망했고, 가자 지구는 참혹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스라엘의 무장을 돕고 있습니다. 2014~2022년, 한국은 이스라엘에 약 4,390만 달러(약 570억 원)의 무기(탄약, 포탄 등)를 수출해왔습니다. 한국에서 수출한 무기들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구체적인 무기 거래 내역 공개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멈춰야 합니다. 무기 거래 중단을 촉구하는 5천 명의 서명을 모아, 1/19(금) 대전 방사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전달하려고 합니다. 많은 참여와 널리 공유 부탁드립니다.
✍️ 지금 서명하기 https://bit.ly/stoparmingisrael_kr
✊ 1/19(금) 방사청 앞 집회 참여 신청하기 (서울에서 버스가 출발합니다)
🔴 가자지구 긴급 지원 모금 🔴
https://box.donus.org/box/adians/Gaza_Fund
모금기간 : 2023. 11. 17 ~ 2024. 1. 10
이스라엘 점령군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살해, 실종, 부상당한 가구들에 생계지원용 현금 지급을 위한 모금을 시작합니다.
가구당 기본 $100 씩 지급하며, 현지 사정에 따라 지원금액은 변동 가능합니다.
⭕️현지 수행단체: 팔레스타인 여성위원회 연합(UPWC) 가자지구 지부
⭕️직접 송금 : 우리은행 1005-203-821-515 / 사단법인 아디
– 기부금영수증 발급 희망 시 반드시 아래 링크에서 ‘가자모금 참여하기’ 버튼을 통해 후원해 주세요.
⭕️자세한 안내 및 후원하기: https://box.donus.org/box/adians/Gaza_Fund
⭕️문의: 사단법인 아디 이동화 활동가 02-568-7723 / dh.lee@adians.net
※ 모금 실무를 맡은 ‘사단법인 아디’는 지난 몇 년간 팔레스타인 지원 모금 캠페인을 여러 차례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에는 129개 한국 시민사회 단체가 함께 합니다. ※ 모금액은 하루 두 번 수동으로 업데이트&반영됩니다. 후원자 성함은 추후 공개됩니다.
[활동펼치기] 2023년 안녕~
소식
이번에도 한 해가 휘리릭~ 하고 지나가버렸습니다. 연도에 2023이라는 숫자를 적는 것이 익숙해질때쯤 이렇게 끝나다니요. 빠르게 흐르기만 하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가 저무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밝은 모습으로 한 해를 마무리짓기 위해서 말입니다.
연말을 맞이하여 서인영 활동가들과 간단한 송년회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가지는 술자리여서 만반에 준비를 해왔던 것이었을까요? 서로 다양한 술을 꺼내면서 송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한 날이라 가져온 술, 추천해주기 위해 가져온 술, 한 번 먹어보고 싶어서 가져온 술 등등등. 다양한 맛의 술과 배달 음식으로 갈증과 허기를 풀어냈습니다. 생활나눔을 통해 서로 근황을 공유했고, 영화 <괴물>이야기를 ‘속닥속닥’ 했습니다. 보지않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서 <괴물>을 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송년회의 클라이막스. 선물나눔이 있었습니다. 각자 가져온 선물을 교환하는 자리였는데요. 깜찍한 소품도 있었고, 감동의 편지를 준비해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서인영 활동가 여러분 덕분에 추운 겨울 날씨에도 훈훈한 자리였습니다. 술기운 때문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따스했어요. 덕분에 연말에 좋은 추억을 하나 더 쌓고 2023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6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열릴 2024년에도 다 같이 함께하자는 다짐을 다지며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해봅니다.
2023년 안녕~ 2024년에 다시 만나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소하
[활동펼치기] 영화제의 문턱을 깎아내는 법
소식
12월 21일 송년회를 하기 전,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선 장애인접근권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특정한 장소에 모여 시청각 매체인 영화를 함께 보는 형식을 취하는 영화제, 그리고 영화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이날 워크숍에선 장애인접근권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영화제에 장애인접근권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과거 관객으로 서인영에 갔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스크린 위 자막해설과 수어통역, 관객과의 대화(TA) 내내 진행되던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었는데요. 워크숍을 들으며 상영과 TA뿐 아니라 영화제 준비 과정에서부터 온라인 콘텐츠, 프로그램 노트, 화장실 등등 사람이 닿는 모든 곳엔 접근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인권영화제는 장애인접근권 보장을 위해 어떤 것들을 해오고 있을까요?
먼저, 서인영의 모든 상영작에는 한국어 자막해설과 한국수어통역이 삽입됩니다. 자막해설과
수어통역은 언어를 통해 작품 내용을 전달하는 영역이다 보니 표현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한국수어와 한국어는 별개의 언어이기에 모든 표현이 1:1로 통역되지 않습니다. 인권 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나 신조어의 경우 수어로 새롭게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성소수자 관련 수어 어휘의 경우,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도 있어 새로운 어휘를 개발하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자막해설을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로 혐오적, 차별적 표현은 없는지 확인하며 작성해야 합니다.
또한 관객과의 대화, 개폐막식 등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함께 진행되는데요. 여기서 잠깐! 왜 상영엔 자막해설과 수어가, 대화엔 문자통역과 수어가 둘 다 필요한 것일까요? 둘 중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는 저도 워크숍을 통해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는데요, 앞에도 언급했듯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다른 언어이기에 한국어가 수어를, 수어가 한국어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으며, 사람마다 익숙한 언어가 다르기에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할 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온라인 이미지엔 대체텍스트를 삽입하고, 영화제 현장에 점자 리플릿을 배치하며, 단체 소개나 영화제 안내 등의 글은 최대한 ‘읽기 쉬운 자료(이지리딩)’로 작성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접근권과 관련된 사항을 줄줄 적어보았는데요. 이 뉴스레터에 적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고, 적어놓은 것들 또한 막상 실현하기 위해선 여러 고민과 논의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워크숍 마지막엔 장애인접근권과 관련해 맞닥뜨릴 수 있는 여러 문제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가들을 고민에 빠뜨린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관한 극장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수어통역사 섭외가 보통 한 시간에 20만원이라고 하던데, 예산이 부족해요. 발화자가 많은 행사라서 통역사가 최소 2인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 시간과 예산이 한정적인데 모든 영화에 화면해설을 제작할 수가 없어요. 어떤 기준으로 화면해설을 제작할 영화를 선택하면 좋을까요?
정말 어렵죠… 특히 예산과 관련해서는 뾰족한 답을 찾기 어려웠는데요. 당장 완벽한 정답을 찾을 순 없더라도 접근권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경험을 쌓고 빈틈을 메우다 보면 좀 더 촘촘하게,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접근권을 실현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모두의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영화를 보러 올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면 영화제의 현장은 공허한 모순과 한계를 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더 많은 분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길 기대하며 2024년에도 우리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서울인권영화제 울림 310호] 차별은 끊고 별빛을 잇는 우리들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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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퀴어시네마 QCP, 12월 9일에 만나요
소식
Queer Cinema for Palestine(이하 QCP)가 12월 2일부터 9일까지 개최됩니다. QCP는 팔레스타인 퀴어 민중과 연대하는 세계 퀴어 영화인들의 영화제입니다. 올해는 12월 2일부터 9일까지 QCP 웹사이트 (https://queercinemaforpalestine.org/)에서 진행됩니다. 온라인 상영은 토론토 퀴어 영화제 웹사이트(https://torontoqueerfilmfest.com/qcp-2023/)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12월 9일 토요일 저녁 7시에는 오픈북,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서울인권영화제가 공동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 (UNHEARD: Defend Masafer Yatta)〉 상영이 있습니다. 남 헤브론 언덕 지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그리고 ‘HD현대’는 그 폭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BDS Korea 활동가들이 직접 가서 그 질문에 답합니다.
〈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 (UNHEARD: Defend Masafer Yatta)〉

1부 , 권순목, 18분, 한국(2023) / 영어, 아랍어, 한국어(영어, 한국어 자막)
2부 , 권순목, 28분, 한국(2023) / 영어, 아랍어, 한국어(영어, 한국어 자막)
[사진3. 영화 언허드 2부의 스틸컷. 폐허가 된 가옥의 터에 한 어린이가 앉아있다.]
시놉시스
전례 없는 인종 청소가 마사페르 야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 이야기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오픈북과 BDS 코리아가 현장을 방문해 현재 진행 중인 점령과 폭력, 인종청소를 포착했다.
감독 소개
권순목은 대한민국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다큐멘터리 작가이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왔으며 사회 정의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2019년에는 2019년 홍콩 시위를 기록해 화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2023년에 그는 팔레스타인, 특히 마사페르 야타를 여행하여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QCP 공동 성명 (한국어)
“우리는 LGBTQIA+ 해방에 전념하는 영화 제작자, 영화 예술가 및 제작 회사로서, 우리의 해방이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과 공동체들의 해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유, 정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에 연대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해방 투쟁에 해를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고 팔레스타인 인권을 존중할 때까지 이스라엘 정부가 후원하는 LGBT 영화제 TLVFest를 보이콧하고 해당 영화제에 영화를 제출 또는 참석하거나 이 외의 기타 이스라엘 정부가 부분적 또는 전면 후원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소식
※ 12월 6일 수요일 아침 8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민사회 행동 “우리는 함께 평등열차를 타겠다”의 일환으로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연대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원래 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관계자들과 경찰들의 극렬한 방해로 역사 바깥에서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이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함께한 연대의 발언을 공유합니다.

평등열차를 타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함께하는 세 번째 아침입니다. 아니, 세 번째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2년 전 12월 3일부터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행동을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날을 함께했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인의 이동권,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롭게 이동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함께 싸우고 서로를 지켜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사랑하는 동료를, 친구를, 가족을 잃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끝없는 싸움이 계속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하철을 타겠다는 것, 버스를 타겠다는 것입니다. 시설 바깥에서, 집밖으로 나가서, 교통카드를 찍고 대중교통을 타서 밥을 먹고 은행에 가고 극장에 가고 병원에, 공원에, 마트에 가겠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관계를 맺고 일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너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그렇다면 예산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증액하지 않는,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애인의 일상은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냥 집에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시설에서 살면 되는 것 아니냐. 왜 굳이 나오려고 하느냐. 왜 굳이 뭘 하려고 하느냐. 가만히 있어라. 우리는 이를 차별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선명한 차별입니다. 외면하려고 해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는 차별입니다.
차별에 저항하면 혐오의 낙인이 찍히곤 합니다. 무엇보다 대책 마련을 위해 힘써야 할 서울시장은 출근길 행동을 두고 ‘사회적 테러’라고 합니다. 지하철에, 버스에 오르려는 장애인을 경찰이 가로막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다고, 갈라칠 것이 없는 문제를 갈라치기 합니다. 보이지 말아라. 눈에 띄지 말아라. 우리는 이를 혐오라고 부릅니다. 아주 명백한 혐오입니다. 국가가, 지자체가 나서서 혐오를 일삼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역시 일상 속에서 차별과 혐오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는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 수리되지 않습니다. HIV/AIDS 감염인의 섹스는 전파매개죄라고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수술 없이 성별을 인정 받고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받을 수 있는 확률은 극히 희박합니다. 동성 군인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해도 추행이라고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폐지의 압박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바로 차별이라고, 혐오라고 싸우는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존중은 하지만 눈에 띄지는 말라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숨어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우리는 불평등한 세상을, 혐오와 차별이 당연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무섭습니까? 무엇이 두렵습니까?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성소수자가 광장에 나와 행진을 하고, HIV/AIDS 감염인이 섹스를 하고, 게이 군인이 군 복무를 하고, 동성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고, 퀴어 청소년이 숨지 않고 학교에 다녀도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평등은 해롭지 않습니다. 평등한 세상은, 소수자가 행복한 세상은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즐겁고 이롭습니다.
평등을 향한,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향한 역사는 우리의 평등열차를 타고 전진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남겨두지 않고, 모든 이의 해방을 꿈꾸며 끝까지 전진할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십시오. 차별은 나쁜 것, 평등은 좋은 것이라고 외우십시오. 정치는 하루 빨리 이 평등열차에 탑승하시길 바랍니다. 차별은, 이제 그만! 혐오는, 쓰레기통에! 투쟁!
※12월 8일 금요일 기자회견에서 서울도로교통공사와 경찰은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입을 막았습니다. 결국 8명이 연행되고 혜화역 바깥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평등세상 앞당기는 ‘인권궐기대회’ ✊
소식
다가오는 토요일, 세계인권선언 75주년입니다. 평등세상 앞당기는 ‘인권궐기대회’에 서울인권영화제도 함께합니다. 다행히 날이 춥지 않다고 하는데요, 한해를 마무리 하며 함께 기억과 애도의 시간을 가지고,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일시 : 2023년 12월 9일(토) 오후 2시
⛺️ 장소 : 서울 종각역 보신각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1948년 12월 10일 선포된 세계인권선언의 첫 문장을 떠올립니다. 75년이 지난 2023년.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와 자유는 여전히 박탈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과정 속에서도 구조적 차별은 부정당합니다. 하지만 동등한 인간으로서 서로의 존엄을 지키려는 이들의 연대는 멈춘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말하는 위기의 시대, 사회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신호 앞에서 평등하고 존엄한 우리가 다시 함께 세워가려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존엄·평등·자유·연대를 인권궐기대회에 모여 함께 외칩시다!
🙏 기억과 애도의 시간
🎤 인권의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 평등사회를 향한 권리를 다시 새기는 시간
🎼 9와숫자들의 9(재경) 음악공연,
🏃♀️ 퀴어댄스팀 QcanD 춤공연까지-
인권궐기대회서 만나요 🙌
공동주최│차별금지법제정연대 X 15개 지역 차별금지법 제정 네트워크 (강원·경기·부천·인천·대전·충북·충남·광주·전남·전북·대구경북·울산·부산·경남·제주)
지원│인권재단사람
🧵 인권궐기대회에 이어 오후 5시, 같은 장소에서 故김용균 5주기 추모대회가 이어집니다. 추모대회까지 함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