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메이드 인 인디아: 옷, 인도,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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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수출가공지대의 절반 이상은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의 섬유·전자·완구 산업 노동자의 80% 이상은 여성이다. 이들이 극단적인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고통 받는 대가로, 다국적기업과 국가경제는 살찌워진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고속경제성장 역시 수출지향 정책 아래 여성노동자들의 희생을 딛고 이루어졌다. 아시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가장 고통 받아온 이들,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은 바로 가난한 여성들이다.

이 영화는 인도 뱅갈로르 의류제조업 현장의 노동 착취와 그에 맞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보여준다. 영화 속 여성들의 증언은 다른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노조 결성, 단체 협상 등의 당연한 권리도 박탈당한 채 일한다. 과도한 목표량과 휴식 없는 중노동 속에서 병들어간다. 여성은 고분고분해야 하며 남자가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가부장적 의식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남성-관리자의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가져온다.

그러나 영화 속 여성들은 그 와중에도 눈을 빛내며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다. 경제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립지원단체를 만들고 노조 결성을 위해 노력하며, 인간적 대우를 얻기 위해 함께 싸운다. “우리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누가 우릴 도와주겠어요? 우리 문제는 우리 손으로 해결해야 해요.”

다국적기업이 경제적 합리성만을 고려할 때 노동자들의 인권은 간단히 무시된다. “생산단가가 높은 곳은 축출됩니다. 인도의 단가가 높으면 방글라데시나 베트남 등으로 옮겨가죠.”, “자본은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지만 여성인력은 언제든 또 채워 넣으면 되니까요. ”

그러므로 이 문제는 인도 여성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 홀로 해결할 일도 아니다. 하루아침에 공장폐쇄를 통보한 다국적기업 아세아스와니에 항의한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스와니>는 이번 인권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된다) 이러한 자본의 일방성에 맞서는 싸움이었다. 이러한 싸움은 지금도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합리성이 유일한 합리성인 양 하는 세상에 우리는 다른 이성, 인간의 얼굴을 내민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이서(한국여성민우회)

51인권해설

인권해설: 오래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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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밭에서 다섯 명이 백지화 계를 넣고 있어. 한 달에 2만원씩. 지금 백만 원이 됐어. 그거를 갖고 우리는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모르겠고, 우리는 떠날 거야.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는 계획이 다 짜졌어. 우리 도와준 사람들 와서 공짜로 자고 가도록 문을 열어놓고 갈 거야.”

2012년 가을,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어느 날, 평밭의 한옥순 할매는 카메라 앞에서 발그레한 소녀 같은 얼굴로 ‘오래된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할매는 20개월 뒤, 움막을 철거하기 위해 칼과 커터기를 들고 달려드는 수천 명의 경찰 병력 앞에서 맨몸으로 싸워야 했고, 끝내 혼절하고, 끌려나와야 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그들의 ‘오래된 희망’은 유예되고 있다.

영화는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공사현장에서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결한 2012년 1월 이후부터 밀양에 들어온 미디어 활동가들이 3년간 촬영해 놓은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있다. 그 사이 세 번의 공사 재개가 있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충돌의 스펙터클이 펼쳐졌다. 쓰러지고, 실려 나가고, 버둥거리고, 혼절한다. 제 몸에 쇠사슬을 묶는 할매의 얼굴은 말할 수 없이 결연하다. 중장비에 밧줄을 묶고 줄줄 눈물을 흘리는 할매의 얼굴은 바라보기가 괴롭다. 경찰 저지선을 향해, 한전 직원과 인부들과 중장비들이 쳐 놓은 겹겹의 스크럼을 향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백발의 노인들. 도대체 저들은 왜 저렇게 싸우는 것일까?

<오래된 희망>은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단히 차분하고 이성적인 답변을 시도한다. 카메라는 그 충돌의 스펙터클을 기술적으로 요리하여 특정한 종류의 정서적 반응으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이충돌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조목조목 해부하는 길을 택한다. 거기에는 지난 몇 년간 방송 뉴스에 등장한 방대한 에너지 관련 뉴스 자료들과 전문가들의 분석, 진단이 동원된다. 그리하여 <오래된 희망>이 찾아 낸 최종의 해답은 ‘국민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고 극소수 핵산업계 대자본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대용량 핵발전 및 장거리송전 체계, 원가 이하의 산업용 전기를 대자본에게 공급하기 위해 시골 노인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미래 세대에게 어마어마한 위험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구조화된 오늘날 대한민국의 에너지 시스템이다. <오래된 희망>이 시도한 차분하고 논리적인 접근은 끝내 밀양 주민들의 주장이 모두 옳았음을 하나하나 증명해 낸다. 영화 시사회를 마친 뒤 밀양 주민들은 모두 희열에 들떴다. 시사회장에서 밀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들은 “이 영화를 세상 모두에게 알리고, 후손들에게 남겨야 한다”며 들뜬 얼굴로 기염을 토했다. 밀양은 옳았으나, 현실 속에서 패배했다. ‘오래된 희망’은 지금도 유예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영화가 종료되고 나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깨달음 앞에 마주서게 된다. 가닿을 수 없어서 불가능한 희망인 듯하였으나, 돌이켜 보니 그 ‘오래된 희망’은 바로 지금 여기, 당신들의 삶과 투쟁을 통해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2012년 가을, 카메라 앞에서 읊었던 한옥순 할매의 ‘오래된 희망’의 남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 형제같이 이렇게 살고 싶어. 우리같이 어려운 데, 강정도 가고 싶고, 용산 참사도 갈 거야. 그렇게 참여하고 살다가 죽을 거야. (그런 시간이) 쪼끔만 더 빨리 왔으면, 쫌만 더 젊었으면 좋았겠지. 그래도 늦다 한 게 빠른 거다. 그렇게 사는 보람을, 넘(남)을 도와가면서, 너거가 와서 우리 도와주듯이, 우리도 그렇고 살고 싶어.” 밀양은 패배하지 않았다. ‘오래된 희망’은 밀양 투쟁이 시작된 지 10년을 맞는 지금, 여전히,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이계삼(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49인권해설

인권해설: 후타바에서 멀리 떨어져서 2 : 핵의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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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벌써 4주기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해 피난민이 되어야 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피난민으로서의 삶을 ‘지겹게’ 지속하고 있는 후타바 사람들을 담고 있다.

폐교로 피난하여 단체 생활을 하고 있는 후타바의 주민들. 영상 속에는 유달리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의 식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먹는, 그들 말대로 ‘Feeding’ (먹이 공급)처럼 느껴진다. 정부의 무책임한 탁상행정을 뉴스 화면을 통해 보며 ‘밥이 잘 안 넘어간다’ 속상해 할지라도 그들은 먹는다. 정말 인간이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권리마저 제한되는 피난소의 생활이다. 영화의 시선은 이윽고 단체 피난소에서 긴급주거지로 옮겨 가는데, 긴급주거지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피난소의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보상금과 제공되는 식사의 차이를 운운하며, 차별받고 있음을 토로한다. 이미 처참해질 대로 처참해진 모두이건만, 슬픔 속의 편 가르기는 계속 된다. 참 잔인하다.

후타바 주민들에게 선택지란 없다. 선택지가 없는 곳에서 인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해야 하니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들은 힘없이 ‘분해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이제는…’ 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핵발전의 폭력, 그리고 국가의 폭력에 그들은 ‘분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묵묵히 삶을 지속해 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며 ‘사람으로’ 살아갔던 후타바는 이제 텅 비어 버렸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 그 자체로 존엄했던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제거당한 채 비참한 마음으로 삶을 지속해가고 있다. 함께 기억해주지 않는 후쿠시마의 사고. 그 사고의 아픈 기억과 현재는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 되어 그들을 더 아프게 찌른다.

핵발전으로 인한 인권유린의 현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고리원전부지로부터 고작 700m 떨어진 곳에 살며 국가가 인정해 주지 않는 각종 암과 질병을 앓고 있는 부산 기장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40여 년 동안 집단이주권을 주장했으나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 자신들의 앞마당에 당장 송전탑이 들어오게 되는 밀양 할매들은 어떠한가. 정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그들에게 국가는 ‘목숨’을 빼앗을 기세로 달려든다. 청도에서, 당진에서, 삼척에서, 영덕에서, 아니 서울을 제외한 모든 곳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핵발전이 주는 폭력은 광범위하고 또 강하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이 아닌 자들의 인권을 너무나 쉽게 짓밟는다. 이 모든 것들이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쓰리마일의 미래는 체르노빌만이 아니었으며, 체르노빌의 미래는 후쿠시마만이 아니다. 다 같이 기억하고 기억으로부터 행동해야 한다. 기억, 하자.

신지선(녹색연합)

48인권해설

인권해설: 밀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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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1일, 새벽을 틈타 마지막으로 남은 밀양송전탑 반대 움막 4개가 철거됐다. 동원된 경찰병력만도 2천5백여 명. 매일 밤낮없이 움막을 지켰던 주민들이 잔혹하게 진압당한 채 끌려나왔다. 10년간의 반대 투쟁은 이제 끝났다고 비웃는 한전과 경찰 앞에
서 주민들이 잔치를 열었다. 고기를 삶고, 지짐도 부치고, 육개장도 끓이고…. 오느라 고생했다고, 울 필요 없다고, 여기가 끝은 아니라고, 며칠 사이 부쩍 주름이 깊어진 어르신들이 외려 등을 토닥여준다. 서로 고생했다, 갈 길 멀다 인사 속에,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 밀양의 밤이 깊어갔다. 6월 11일로부터 불과 3일이 지난 6월 14일,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제150차 촛불집회’ 풍경이었다.

일제의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 일고여덟의 나이에 시집을 가야했던 이가, 보도연맹으로 남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아들을 평생 뒷바라지해야 했던 이가, 대형마트에 밀려난 이가, 1997년 금융위기 때 직장을 잃고 귀농을 해야 했던 이가 모두 밀양을 살아내고 있는 주민들이다. 그리하여 너나 할 것 없이모두, 한국 근현대사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야 했던 이들이다. 국가는 이들의 삶을 지켜주기는커녕 무참히 짓밟았다. 무거운 짐바구니를 하도 이고 다녀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고, 평생 놓지 못한 호미자루에 손가락이 휘고, 농사일에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면서도 이들은 매년 땅 한 마지기, 한 마지기씩 늘려왔다. 그렇게 소중한 땅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한 푼이라도더 받아내려는 욕심이라며 모욕했다. 비록 소박하지만 선산 있고, 공기 좋고, 작은 터전도 있으니, 나이 먹어가는 자손들이 나 가고 나면 여와서 살면 좋겠다며 꾸던 꿈을, 순리 대로 이치 대로 욕보며 정직하게 걸어온 인생을, 건강을 되찾게 해준 자연을 국가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싹둑싹둑 베어냈다.

울력과 정으로 살아내던 마을에 증오와 미움의 씨앗을 뿌리고 송전탑을 세웠다. 한평생 살아온 땅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송전탑 투쟁. 10년의 시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손을 털고 떠나갔고, 누군가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밤낮없이, 도대체 무엇이 일상인지조차 모르게 싸웠던 시간들이 벅차지만 “포기했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돈도 필요 없다”며 “우리가 끝은 아닐 것”이라 말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 희망이 있나 없나 오락가락하지만,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주길 앉아서 기다리기보단 스스로 희망이 된다. 자신의 힘 대로 욕보며, 잊지 않고 밀양을 찾아주는 이들의 손을 꼭 잡으면서,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 길은 길고 길지만, 가야만 할 길이다. 지난 10년간의 파행에 대한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송전탑 피해를 실사하는 기구를 구성하고, 송전탑이 불필요할 경우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길이다. 또한 무려 2천 900km에 걸친 전국의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을 누비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길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스타케미컬 노동자의 굴뚝 농성에 보낸 함성과 만나 가닿을 수 없는 마음들을 토닥이고 저항과 연대를 다짐하는 길이기도 하다. 밀양 주민들이 아픔을 삼키며 생을 걸고 밀어 올리는 시간들에 우리는 무엇으로 함께 할 것인가? 스스로 희망이 된 이들과 함께 우리 역시 희망이 되어 만난다면 어떨까?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지난 10년의 싸움으로 80여 명이 100건의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밀양에 필요한 법률 비용과 벌금만 2억 3천만 원에 달한다. 가난한 농부의 어깨 위에 지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눠 지어 주시길. 모금을 통해 밀양 투쟁의 정당성과 의미 역시 세상에 다시 한 번 전해질 터이다.

: 후원계좌 농협 301-0164-5386-11 (밀양송전탑법률지원 모금위원회)

유해정(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47인권해설

인권해설: 스와니: 1989 아세아스와니 원정투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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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미요시 사장을 찾아 떠났던 여성/청소년/노동자들은 2015년, 여전히 일터에 있다.

‘견습 김덕순’은 현장실습생과 ‘알바’가 되어 있다. 학교에서는 교육이라 부르지만 산업체에서는 값싼 인력으로 혹사당하는 노동자. ‘용돈’벌이로 치부당하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 나이가 어리다고 폭언은 예사고 매사에 무시당하며 괴롭힘에 시달리는 노동자. 경력이 쌓여도 만년 수습인 노동자.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최고의 일자리라 여기는 노동자가 되어 있다. 시커먼 시멘트벽으로 어두컴컴했던 공장이 온갖 화려한 조명으로 치장한 연회장으로, 드륵 드륵 미싱 소리가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로 바뀌었을 뿐이다. 노동자의 인권은 변함이 없다.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모르고 일하는 것도 비슷하다. 연회장과 돌잔치 뷔페 등에서 일을 하려면 중간업체를 통해야 한다. 중간업체가 있으니 사업주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노동자를 필요할 때만 부를 수 있으니 비용도 절감된다. 노동조합이 생길까 걱정할 이유도 없다. 중간업체는 더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청소년노동자를 선호한다. 청소년노동자가 하루 13시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6만원 남짓. 시급으로 계산하면 올해 최저임금 5580원에도 못 미친다. 학업을 병행하는 청소년이라면 주말에 일할 수 있고, 일당이 바로 지급되기에 그나마 매력적인(?) 일터다. 부당한 노동조건을 알지만 모른 척 꾹 참고 견뎌낼 때가 더 많다. 노동부에 진정을 해봤자 일하면서 당했던 모욕에 대한 사과는커녕 체불된 임금만 겨우 받을 뿐이다. 다른 노동조건은 결코 고려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인권을 오롯이 챙기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가짜 사장 뒤에 숨어 잇속만 챙기는 진짜 사장,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는 행정관청의 직무유기,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동법을 사업주 입장에서 치우쳐 해석하는 법원, 폭언·폭행하는 고객과 지위를 악용해 괴롭힘을 일삼는 관리자 등등. 26년 전 그 산을 함께 넘었던 수많은 연대와 싸움은 그들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청소년노동자에게도 연대가 절실하다. 청소년노동자, “너는 나다” 는 생각에서 시작
하는 연대 말이다.

이수정(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47인권해설

인권해설: 점령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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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비극적인 날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일방적으로 국가 수립을 선포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매년 5월 15일을 기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영토를 빼앗긴 ‘나크바(대재앙을 뜻하는 아랍어)’이고, 이스라엘인들에게는 건국기념일인 것이다.

영국과 여타 제국주의 열강의 암묵적 승인과 협조 속에 세워진 이스라엘은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식민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수법은 팔레스타인 인구를 줄이고 싶은 지역마다 ‘불법건물’이라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부수고 유대인 정착촌을 키우는 것이다. 이러한 가옥 파괴와 불법 정착촌 건설 정책은 1973년부터 동예루살렘과 서안지역에 특히 집중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흔히 이스라엘 영토로 알려진 것과 달리 오랫동안 동과 서로 나뉜 채 동예루살렘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서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해 온 곳이다. 이를 무시한 채 이스라엘은 1994년 ‘예루살렘 거대화 정책’을 공식 채택한 이후 지금까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심장부로 탈바꿈하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 동예루살렘에서는 2014년에만 590채의 팔레스타인 건물이 파괴되고 1,177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강제이주를 당했다.

가옥 파괴는 거주자의 법적 대응이 어렵도록 이른 새벽에 들이닥친 수십 명의 무장 경찰들에 의해 신속히 이뤄진다. 거주자들은 극도의 공포감 속에서 방금 전까지 자신을 품고 있던 삶의 터전을 잃고, 건물 잔해를 일정 기한 내에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통보까지 받는다. 가옥파괴를 당한 이들의 삶은 이스라엘의 관심 밖이며, 오히려 그 삶을 밀어낸 자리에는 유대인 정착촌과 함께 공원이나 고속도로가 들어선다. 당연히 이스라엘 전용 시설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지도상의 작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둘 사이의 분쟁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볼때 그 땅 위의 현실은 일방적이고 불법적으로 찢겨진 팔레스타인인의 삶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점령의 그림자>가 숫자들로만 회자되기 쉬운 그 삶들을 함께 들여다보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일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길 희망한다.

세라(팔레스타인평화연대)

47인권해설

인권해설: 거리에서 온 편지

인권해설

그/녀들은 거리에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외치며 싸운다. 왜 공장이 아니라 거리에서 싸우는가? 기륭처럼 회사가 공장기계를 팔아 치우고 야반도주했기 때문이며, 혹은 SK나 LG처럼 재벌 회사가 이들을 다단계 하도급으로 고용했기에 실제 원청업체인 본사가 있는 곳에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들의 현실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 거리이기 때문이다. 거리의 시민들이 해고된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할 때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인 852만명(45.4%)이 비정규직이다.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100:50으로 고정되어 있다. 또한 영화에서 나오듯이 통신비정규직 노동자들에
게 작업복도 지급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영화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SK브로드밴드 장연의 씨의 말처럼 답답함과 막막함은 투쟁을 하지 않아도 지속된다. 간접고용인 파견노동이 일반화된 것은 신자유주의 고용유연화를 위해 1998년 파견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유연화정책의 다른 쌍인 정리해고를 도입하면서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를 들어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할 수 있는, 해고의 자유가 회사에게 주어졌다. 그렇게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된다.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본은 2009년 회계조작으로 경
영상의 위기가 있는 척하여 노동자 2,636명을 정리해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있지도 않은 위기’로도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며 회사손을 들어줬다. 더욱이 2015년 신차가 잘 팔리고 있음에도, 회사는 복직을 이행하지 않았고 결국 28번째 해고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스타케미칼도 비슷하다. 스타케미칼이 인수하기 전 한국합섬은 2007년 파산했다. 공장부지만 2500여억 원이 넘었는데, 스타케미칼이 2011년 이를 399억 원에 인수하더니 1년 8개월 만인 2013년에 폐업을 선언하고 노동자들의 권고사직을 종용했다. 공장을 인수
비용보다 높게 분할매각해 차액을 남기려는 꼼수다. 사채업체도 아닌데 공장 가동에는 관심이 없다. 이처럼 먹튀 자본을 용인했기에 빈공장의 45M 굴뚝에서 지금도 사람이 싸우고 있다.

현재 345일을 넘긴 스타케미칼 차광호씨의 굴뚝농성을 제외하고 쌍용차(101일), SK브로드밴드와 LGU+통신비정규직 노동자들(80일)의 고공농성은 끝났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오체투지나 고공농성 같은 투쟁 때만 우리는 그/녀들을 보
았을 뿐이다. 극한 투쟁을 하지 않을지라도 그/녀들의 싸움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기에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겠다.

명숙(인권운동사랑방)

45인권해설

인권해설: 니가 필요해

인권해설

영화 속에는 미처 나오지 않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른다. 어떤 일에도 당찼던 꼬마 부부, 딸 셋을 낳고 또 아이를 낳으러 간 언니, 짠돌이였지만 때때로 고생한다고 거금을(그래봐야 지폐 몇 장의 쌈짓돈이지만) 내놓던 형님, 늘 주변을 즐겁게 해주는 성현성…. 그리고 영상에 등장하는, 끝까지 버텨낸 이들….

대공장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냄새나는 개천가 가건물에서 한여름의 폭염, 한겨울의 칼바람을 그대로 맞아가며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다. 상여금이란 건 있어봐야 1년 사이 업체가 세 번이나 바뀌는 통에 그림의 떡이었다. 세 번째 업체에서의 생활도 잠시, 우리가 일하던 공정을 공장 밖으로 빼면서 인원을 줄이고 조건은 더 열악해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업체가 세 번을 바뀌는 사이 번번이 더 아래로만 곤두박질치려는 노동조건 때문에 함께 회사에 맞섰던 DYT 언니들은 이번에도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결국에는 회사를 따라나섰다. 외주화는 DYT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스피드, 욱산, 대일 등 많은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업체의 생산성 향상(생산성 향상의 방법은 십중팔구 인원을 줄이는 것이다)이니 외주화니 하는 계획으로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렸고 그 중 실제로 많은 수가 잘려나갔다. 천여 명 가까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잘려나가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껏 판매가 부진했던 지엠대우차가 가장 잘 팔려나가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결과는 처참했다. 지회 설립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몰아친 탄압으로, 조합에 가입했던 상당수는 곧바로 탈퇴를 했고 버텨낸 이들은 해고당했다. 하청업체들은 원청의 눈치를 볼 뿐이었고,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은 누가 봐도 원청인 지엠의 감독 하에 일을 해 왔다. 그리고 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이를 증명할 방법도 회사를 상대로 싸울 방법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고작 공장 밖에서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안 해본 것 없이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천막농성은 기본이고, 교통관제탑에도 오르고, 한강물에도 뛰어들고, 단식을 하고, 또 회사 건조물에 오르고…. 그렇게 마침내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갔고 남아 있는 이들은 또 그냥 그렇게 투쟁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갈등도 있었지만 또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온 시간이었던 것 같다. 떠나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시작하던 순간에는 그들도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니까.

조혜연(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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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잠들지 못하는

인권해설

1992년 의붓아버지로부터 12여 년 동안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피해자가 그녀의 남자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성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고 1994년 제정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친족성폭력’을 명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4 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아는 사람인 경우는 81%이고, 이 중 친족을 포함한 친인척으로부터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13.9%에 달한다. 그리고 같은 해 대검찰청이 발표한 ‘친족성폭력 사범 접수 및 처리 현황’에 의하면 2003년 184건이었던 친족성폭력 피해 신고 건수는 2013년 502건으로 10년 동안 2.6배 증가했다. 피해를 경험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암수(暗數)율이 높은 성폭력 피해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실제 친족성폭력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친족성폭력은 개인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족’이 폭력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가해자는 끊임없이 ‘우리둘만의 비밀이다’, ‘너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이 사실을 다른 가족이 알면 무척 힘들어할 것이다’라며 피해자 개인에게 피해의 책임을 감당하도록 강요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메시지는 피해자에게 가족이 해체되거나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다른 비가해 가족이 겪게 될 심리적 충격을 확신하게 만들고, 피해 사실은 더욱 은폐된다. 성폭력을 낯선 사람으로부터 겪는 ‘특별한 경험’으로 호명하는 우리 사회에서 ‘더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친족성폭력 피해는 친족성폭력의 실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성폭력피해 생존자의 ‘말하기’는 우리 사회가 듣지 않으려 하는 성폭력 피해를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하지 않으면서 우리 눈에 보이도록 한다. 동시에 성폭력 피해 경험이 씻을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고 그렇기에 피해자는 위축되어 있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뜨리고, 피해를 재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survivor)로 재위치한다.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경험을 묻어두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꺼내어 들여다보는 과정은 ‘기억’함으로써 성폭력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거대한 침묵’에 맞서도록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것은 그래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란 (한국성폭력상담소)

52인권해설

인권해설: 눈물의 길: 타이베이, 여성, 집

인권해설

2014년 10월 외신을 통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중심가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단지 앞 도로를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점거해 누웠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들은 타이베이 시의 주택 가격 폭등과 정부의 주거정책에 항의하며, 가장 비싼 땅을 점거하고 누워 하룻밤을
보냈다. ‘새둥지 운동(巢運·차오윈)’이라고 불리는 연대시위는 지난 1989년 무주택자 5만 명이 거리시위에 나선 이후 25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대만도 한국만큼 도시개발의 폭력과 주택가격의 폭등 등 땅과 집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
는 사건이었다.

< 눈물의 길 : 타이베이, 여성, 집 >은 대만 정부의 도시개발과 강제철거로 ‘추방’당하는 각기 다른 마을들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그들의 마을이 파괴되는 도시개발을 ‘인간이 만든 재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인간이 만든 재해’에 대해, 정부와 건설사와 법원은 ‘사유지에 관한 분쟁’이라거나 ‘그 마을이 무허가이고 불법’이라며, 책임을 주민들에게 떠넘긴다. 대만이나 한국이나 도시개발과 강제퇴거로 인한 폭력이 법의 보호 아래 이루어지고 있고, 저항하는 우리가 불법이 되거나 혹은 용산에서처럼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모든 개발사업들에서 주민들은 ‘사적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외면’ 아래 쫓겨나거나, 반대로 ‘공적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며 쫓겨난다. 단순히 집 하나 부수고 짓는 것이 아닌 마을을 부수고 짓는 개발사업이, 때로는 ‘사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공적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즉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는 데, 그 끝은 항상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발이냐!’며 절규하며 끌려나오거나, 쫓겨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하기만 하다. 국제행사, 국격향상, 도시환경 정비, 주거환경 개선, 주택공급 확대…. 온갖 목적의 수식어들을 가져다 붙여놓아도, 결국 파괴되는 공동체와 개인의 삶이, 동일한 수준으로 재정착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진 자들만을 위한 개발에 불과하다.

시공간을 넘나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직 용산을 어제의 한 사건으로 잊을 수만은 없다. 여전히 주상복합이 들어서는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서 삶이 송두리째 빼앗긴 이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고, 계약갱신 거부나 전월세 폭등, ‘빚내서 집 사라’는 강요된 이름으로 우리의 주거권이 빼앗기고 있고, 추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저항하고 연대하는 우리가 아닌, 법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대책 없이 남발되는 강제퇴거가 ‘불법’이고, 주거권의 박탈이 주민들에 대한 ‘테러’임을 밝혀야 한다. 주거권을 명문화하는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원호(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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