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인영의 인연들: 3회 미나상&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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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인영의 인연들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을 만들어나가고 지켜보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소개하고픈 마음에 기획한 특집 인터뷰 시리즈! 서인영의 인연들을 만나보는 시간, “인영의 인연들”입니다. 세 번째 인연들 미나상과 요다입니다. 본래는 퇴사자 특집이었으나, 미나상님이 새로운 곳으로 이직하여 바쁘게 생활하고 계시는 관계로 퇴사했던자들의 특집이 되었습니다.


나기: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미나상: 미나상이라고 하고요. 서인영 25회 영화제부터 활동해서 최근에는 자주 참여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활동하고 있는 미나상입니다.

요다: 안녕하세요. 요다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입니다.

 

[사진 1. 활동가 요다와 미나상. 카페에 앉아 밝게 웃고 있다.]

 

나기: 요즘 어떤 나날을 보내고 계시나요? 미나상 님 워낙 오랜만이어서 궁금해요.

미나상: 2월 말부터 새로 일을 시작했어요. 주 5일일하고 있어요. 일하지 않을 때는 피곤해서 주로 기절해있거나 아니면 친구들 만나서 맛난 거 먹고 이 정도? 최근엔 돈을 어떻게 하면 모을 수 있을지 관심이 가기 시작했어요. 경제 이런 거 잘 모르는데, 돈을 어떻게 하면 잘 모을 수 있을까 찾아보고 있어요. 

나기: 아주 아름다운 삶을 살고 계시네요. 요다 님은요?

요다: 저는 일을 그만두고 자체 안식년을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삶의 질은 많이 좋아졌어요. 출퇴근을 안 하니까요. 그리고 친구들이 이것저것 재밌는 일 많이 해서 일일 알바처럼 도와주러 다니고 있고. 시간이 많이 남아서 자원봉사도 해요.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걸 많이 하고 있습니다.

나기: 요다 님이 독립하셨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요다: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만족스럽고. 본가에 있는 강아지 이름이 달래인데 달래를 많이 볼 수 없는 게 아쉬워요. 그래도  빨래해서 말리는 것조차 즐거워요.

나기: 원래 처음 이 인터뷰 기획이 퇴사자 인터뷰였는데(웃음) 미나상 님이 그 사이 취업에 성공하셨어요. 직장 생활은 좀 어떠신가요?

미나상: 전반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계속 일을 하긴 했지만 거의 첫 직장이고 직무적 능력이 별로 없음에도 잘 적응해서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체 활동 분야랑 제 관심 분야랑 잘 맞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내가 관심 잇는 분야에 대해 직장을 통해 얘기할 수 있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인권 문제들에 대해. 글 쓰는 기회에 저도 더 공부하고.

나기: 잘 적응하셔서 돈도 많이 벌고…

미나상 : 돈 벌려면 이미 다른 분야에 갔어야 돼요.

고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너무 많이 세지 않고..

나기: 두 분은 처음 어떻게 서인영을 알고 들어오게 되셨나요? 자원활동을 여러 해 하고 있는 원동력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미나상: 서인영은 페북 같은 데서 인권 관련(단체)라 ‘좋아요’를  눌러놓고 팔로우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활동을 하게 된 건 2년 전부터인가. 이맘때쯤이었던 거 같아요. “올해도 하나?” 하고  찾아봤는데 마침 자원활동가 새로 뽑고 있을 때였어요. 모집 기간을 처음엔 놓쳤어요. 그래도 너무 해보고 싶어서 늦었지만 조인할 수 있겠냐 디엠으로 여쭤봐서 함께할 수 있었어요. 

이런 자원활동이라고 하면 현장에서만 돕는다거나 활동하는 범위가 좁은데 서인영은 많은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았고 무엇보다 영화제만이 아니라 인권활동에도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서 그게 되게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을 하든 재미가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같이 활동하는 분들이랑 즐겁게 잘 지낼 수 있는지도요. 어떤 일하더라도 그 두 가지가 충족이 되면 더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서인영은 그게 있어서 더 오래 활동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21회 ‘나는 오류입니까’ 그때였나? 멋지다고 생각하는 존경하는 친구들이 서인영 자원활동가를 했었어요. 그게 18년인가 17년인가… 마로니에에서 인권 영화도 상영하고 문자통역도 실시간으로 나오고 수어통역도 있는데, 이런 걸 처음 본 거예요. “이거 자원활동가 되게 멋있는 일이다.” 이렇게 끝났는데. 그 다음 해 모집을 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 마감기한 상관없잖아요. 한 달 늦어도 받아줄 수 있잖아요. 근데 그땐 몰랐으니까. 그때 본 서인영의 포스가 엄청났어요. 면접 봐서 뽑는 건 줄 알고 우동 먹다 말고 미친 듯이 지원서를 막 썼어요.. 자기가 잘하는 거 쓰면 맞춰서 할 수 있는 거 찾아주는 거 있잖아요. 거기에 바느질도 할 수 있고. 어필을 막 했어요. 근데 알고 보니까 탈락을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사람같이 하는 분위기더라고요. 그게 또 좋은 거예요. 누구나 원하면 할 수 있다는 게. 그래서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나기: 지금까지 하게 된 데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요다: 진지하게 여러 번 생각을 해봤어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별생각이 없어요. 하면 하는 거고. 그런데 처음에는 재밌었던 거 같아요. 같이 영화 보고 상영작 선정하고. 그러다가 코로나가 와서 온라인 상영회를 하게 됐어요. 그때는 온라인 상영회도 재밌었어요. 관객과의 대화 진행하는데 유튜브 실시간 송출하니까 부모님한테 ‘나 유튜브 나온다’하고 링크 보내고요. 

그런데 사실 영화제 사무실에서 밤새우고 첫차 타고 집 가고, 접근권 작업하고 이런 일이 많잖아요. 그럴 때는 집에 돌아가면서 “내가 이걸 왜 하는 거지?”(웃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너무 이상한 게, 어디 가면 항상 사람 때문에 힘들거든요. 여기서는 사람 때문에 힘든 게 한 번도 없었어요. 그게 너무 신기해요.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은 상임활동가 두 명인데. 저는 들어올 때부터 고운 님이 있었고, (중간에) 고운 님 혼자 계실 때도 있었고… 고운 님의 힘이지 않을까. 의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고운 님의 엄청난 리더십이 나를 여기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서인영이 되게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개미지옥처럼 계속 오게 만들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오면서 다른 분들 인터뷰 한 걸 읽어봤어요. 고운 님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어요. 너무 무심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고운 님이 그렇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제도 계속 있는 것이고, 그래서 나도 자원활동을 오래 한 것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나상: 요다님 말씀에 공감이 되네요. 안전하고 편안한 커뮤니티, 공동체를 조성하는 건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진 않겠지만, 고운 님 역할이 큰 거 같아요. 느슨하지만 꾸준히 영화제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인상 깊었던 기억은 생각해 보자면 첫 번째는 25회 영화제에서 현장에서 중간중간 밥 먹었던 거예요. 1층에서 밥해 주시는 거 그거 진짜 맛있었어요.* 그때 여름이라 모기도 엄청 많았는데 정수 쌤이 모기채로 모기 몇 개 잡았는지 말씀해 주셨었어요. 그런 소소한 일상들 재미있었어요. 영화제 시즌이 아닐 때는 신년 맞이로 어떻게 활동할지 워크숍도 하고, 바닥에 난방 떼서 앉아가지고 옆에 칠판에다가 어떻게 할지 적고.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25회 서울인권영화제 때 마포구에 있는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그때 마을극장 1층에 있는 도시락집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주 맛집이었답니다. 

 

[사진2. 25회 서울인권영화제 당시 미나상. 영화 포스터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있다.]

 

나기: 일상 하나하나가 쌓여서 좋은 관계를 만들었던 것이군요!

미나상: 서인영의 조직과 구조가 완벽하진 않잖아요. 개인의 희생으로 굴러가는 부분도 많고. 지속 가능한 단체인가 생각하면 저도 잘 대답을 못하겠지만, 배울 점이 많은 건강한 조직문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밖에서 일을 할 땐 안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왜 서인영에서는 됐는데 여기서는 안 되지?” 하고 생각나는 게 많았어요. 작은 예시를 들자면 매번 활동가 모집하고 나서 규칙 만들잖아요. 그럼 다들 진중한 분위기에서 규칙을 만들어 존중하는 문화가 있는데. 직장에서도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닌 거죠. “뭐 그런 걸 해?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는 것 같다”, “유치하다” 이렇게 보는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서인영만의 문화 같은 게 다른 곳에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그리울 때가 있었어요.

나기: 저도 미나상님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미나상: 너무 좋네요! 자막 해설, 수어 통역 이런 게 다 당연했는데, 다른 데서 하다 보면 “그래서 얼마나 오시겠냐.”라고 해요. 직장에서는 근거가 있어야지만 할 수 있으니까요.

요다: 작년에 송년회 파티하면서 26회 사람들이랑 선물 뽑고 술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랬는데, 그날 제가 일찍 갔어요. 근데 텔방에 내가 간 뒤에 찍은 사진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게 너무 재밌어 보이는 거예요. 처음으로 질투라는 걸 느꼈어요. 이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고, 술도 많이 마시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회식하고 싶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25회 영화제 때는 돌발 상황 같은 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게 기억에 남아요. 그때 인력이나 시간이 말이 안 됐는데요. 내일 상영인데 수어 추가 촬영을 해야 해서, 요가 매트를 붙여서 크로마키 촬영하고, 고운 님이 가서 상영본 편집하고 다음날 상영하고.

미나상: 그때 상영 사고도 너무 많고.

요다: 25회는 진짜 준비하고, 개막하고, 현장 진행하고, 그런 모든 과정이 진짜 기적 같았어요. 너무 재밌었고, 이 사람들 너무 멋있고, 문제가 생겨도 일당백으로 해결이 됐어요. 그런데 2층에 상영 콘솔 가면 미나상 님 막 기절해있고, 너무 다들 고생하셨던 것 같아요.

나기: 두 분도 다 일당백을 하는 분들인데. 서인영 활동 중에 “이게 나랑 잘 맞는 활동.”이다, “이 활동을 할 때 가장 즐거웠다.” 싶은 게 있으실까요?

미나상: 잘 맞는 거랑 잘할 수 있는 거랑 다른 것 같아요. 잘할 수 있는 건 자막 넣기예요. 아무 생각 없이 빨리빨리. 제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제일 즐거웠던 건 역시 현장에서. 정신없고 힘들어도 피곤함이 주는 즐거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 와닿지 않는데 현장에서는 관객분들 얼마나 오시는지 보는 것도 즐거운 것 같아요. 영화제 하는 사람들 말고도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있구나. 보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좋은 것 같아요.

요다: 저는 자막 작업할 때마다 물어보면서 하는데 왜냐면 1년마다 단축키를 까먹어요. 그래도 자막 할 때마다 안정감이 있어요. 제일 재밌는 건 현장에서 사람들 만나는 거예요. 개막식, 관객과의 대화 진행하는 게 너무 재밌어요. 영화제 아니더라도 제가 연대 활동을 나가서 서장인영(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이나 서퀴(서울퀴어퍼레이드.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에서 사람들 만나고 하는 것도 좋아요. 사람 만나서 “아, BDS가요~” 이런 거요.

 

[사진3. 25회 서울인권영화제 당시 요다. 스크린 앞에 앉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중이다.]

 

나기: 미나상 님이 후원 홍보팀(이하 후홍팀) 팀장님이시잖아요. 작년에도 후홍팀에 있으셨고. 25회 내내 서인영 SNS를 담당하기도 하셨죠.

미나상: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나기: 그런 의미에서 26회에 바라는 점, 이번에 해내고 싶다 하는 점이 있다면?

미나상: 지난 서인영보다 안정적인 운영이 됐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도 그렇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큰 사고 없이 스무스하게 굴러가면 좋지 않을까요. 당일에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하면 다들 당황하고 피곤하고 그러니 올해는 좀 더 안정적으로 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재정적인 안정도 중요하겠죠. 너무 신경을 못 썼는데. 한 달 남은 지금부터라도 기여할 수 있는바에 기여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나기: 재정적인 안정을 위해 구성해놓은 사업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미나상: 이번 영화제에도 재정 마련이 필요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후원 단체 운영 필요하잖아요. 텀블벅으로 모으고 끝내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도록 후원자를 모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후홍팀이랑 잘 이야기를 해보아야겠죠.

나기: 다음 달에 드디어 26회 하는데 요다 님도 미나상 님도 모두가 처음으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영화제를 하는데 이 광장 상영에서 특히 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요다: 저는 지나가다가 오셔서 영화 보시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온라인 영화제도 그렇고 성미산에서 한 것도 그렇고, 오시려고 하신 분들만 오실 수 있는 구조였는데 이번엔 오다가다 많이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미나상: 저도 그런 부분이 제일 기대가 되고. 그래서 서인영을 기존에 몰랐던 분들도 더 많이 알게 되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64소식

[활동펼치기] 아니 벌써?

소식

D-30… D-29… D-28…D-13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님의 일상은 어떤 속도로 흘러가나요. 저는 요즘 달력을 보면 “아니 벌써?”라는 말이 튀어나오곤 합니다.

나무는 푸르르고, 5월은 지나가고, 영화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회의록 맨 위, 핑크색 글씨로 적힌 디데이를 보면 이제 정말 마감의 압박을 느낍니다. 그만큼 전체회의의 공기도 사뭇 달라졌는데요. (그래도 웃음과 유머는 잃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서울인권영화제는 본격 개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담는 섹션의 이름과 성격에 대해 고민하고, 각 작품을 다시 살피며 서울인권영화제만의 줄거리를 쓰고, 이 영화를 어떻게 인권영화로 해석해낼 것인지 영화 안팎의 이야기를 담아 프로그램 노트를 쓰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바쁘지만! 이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사회와 어떻게 맞닿고 있는지, 서울인권영화제는 이 영화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찬찬히 세심히 나아가보고 싶습니다.

이외에도… 인권해설을 써주실 활동가 분들을 찾고, 개폐막을 기획하고, 트레일러를 만들고, 다가올 퀴어문화축제 부스 준비하는 등등의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데요..!

아직 할 일이 산더미지만! 위기의 순간일수록, 힘을 합쳐! 어떻게든 영화제 개막 선언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또 마감이라는 마법이 있으니깐요…!) 적은 인원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부담도 되지만 설렘을 잃지 않고, 서로를 다독이며 나아가보겠습니다. 

(물론… 서인영의 후원활동가로 함께해 주신다면 개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작년 서인영 활동가들이 처음 모여 정했던 ‘26회 서울인권영화제의 약속’을 다시 들여다 보았습니다. 우리는 ‘바쁠수록 심호흡’ 하자고 약속했더라고요. 6월을 앞두고, 저처럼 “아니 벌써?”를 외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잠시 함께 심호흡을 해보아요.

후하후하. 그럼 우리 곧, 안녕히 만나요!

 

 

사진 1) 다섯 명의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이 사무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곳곳에 노트북이 놓여져 있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54소식

프로그램 노트: 홈그라운드

프로그램 노트

퀴어로 숨을 쉬기 위해선 틈을 만들어내는 저항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바 ‘레스보스’는 숨 쉴 틈을 내어주는 균열이 되어왔다.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만나야 하고, 가끔은 함께 밥과 술을 나누고, 웃고 울어야 한다. 그렇기에 공간이 필요하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 나의 자리가 있는 공간.

이태원의 ‘레스보스’는 그저 관념적인 공간은 아니다. 그 안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람들을 반기는 ‘섬지기’ 명우형이 있다. 그는 매일 가게문을 열고 음식을 준비하고 테이블을 닦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춤을 추고 가게를 치우고 홀로 집에 들어간다. 공간엔 매일 같이 노동과 시간, 돈이 들어가지만 퀴어로서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은 다행히도 ‘레스보스’의 전과 후로 이어지고 있다. 명동의 샤넬다방부터 퀴어 페미니스트 댄스 공간 루땐까지.

명우형은 ‘레스보스’와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이 들어간다. 버티고 버틴 발바닥은 아파오고, 가끔은 다 놓고 쉬고 싶어도 ‘레스보스’에 오는 얼굴들을 생각하면 다시 돌아와 있다고 한다.

명우형의 친구가 묻는다. 

“너 아직도 그 생활하니?”

명우형이 답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나의 공간을 지키는 일은 그리고 살아가는 것은 때로 외롭고 지난하기에, 우리는 저항의 공간에서 웃고 떠들어야 한다. 그곳이 우리의 ‘홈그라운드’가 될 수 있도록.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52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 노트: 곁 프로젝트 – with you 1029

프로그램 노트

작은 포스트잇에 꾹꾹 눌러 담은 기억들이 목소리를 만나 울려 퍼진다. 그렇게 기록된 진심은 우리의 곁이 되고 다시 이태원을 향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기억은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우리는 치열하게 기록하고, 보존하며, 이야기하고, 새로이 만들어낸다. 그래서 기억과 애도는 행동하는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는 기억을 공유하고 애도하는 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여진 포스트잇을 낭독하고, 그 낭독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드랙아티스트 모어, 생존자 이주현, 감독 김일란, 유가족 김혜인, 그리고 배우 우현은 이태원에 대한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만난 목소리와 문장들은 우리 안의 다양한 서사와 마주하고 이태원 참사가 남긴 질문들을 의미화한다. 진정한 애도를 위해, 서로 힘이 되어주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기억을 행동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두부

49프로그램 노트

26회 서울인권영화제 토크 프로그램

소식

인권영화 상영 후 토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각 작품 상영 후 인권활동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광장에서 말하다
섹션이 엮는 인권에 대해 인권활동가와 관객이 더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 세월호 10주기 특별 섹션: 애도와 기억의 날
세월호 이후 10년을 돌아보고, 기억하고 기록하며 서로의 곁이 되어온 힘을 이야기합니다.
– 6/15, 18:10 <기억의 공간들> 상영에 이어, 야외무대
– 이야기손님: 마주(기억의공간들 감독) 권은비(작가/10.29 이태원참사 기억과안전의길 예술감독) 정부자(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호성어머니) 주현숙, 한영희, 오지수(세 가지 안부 감독) 혜원(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팔레스타인 연대 특별 섹션: 연대로, 해방으로
퀴어와 팔레스타인 연대에 대해 고민하며 모두의 해방을 이야기합니다.
– 이야기손님: 산리(접촉면) 새라(팔레스타인평화연대) 타리(퀴어활동가) 화(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89소식

26회 서울인권영화제 개/폐막식

소식

개막식

6월 13일 (목) 저녁 6시 30분,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

● 사회 |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인천인권영화제 활동가 – 인권영화제 동료들과 함께 힘차게 개막합니다. 사회자는 곧 공개됩니다. 기대해주세요!

● 공연 | 소수자연대풍물패 장풍

● 여는영화 | 파랑 너머

 

폐막식

6월 16일 (일) 저녁 5시 30분,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

● 사회 | 나기, 마주, 안나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트리오가 지난 1년 여의 시간을 돌아보며, 26회를 정리합니다.

● 공연 | 416 합창단

● 잇는영화 | 세 가지 안부: 세월호 10주기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110소식

프로그램노트: 여기서부터

프로그램 노트

쓰오 세이코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마쓰오 세이코는 이혼 후 세 아이를 키우기위해 일을 찾던 중 지인의 소개로 레미콘 운전기사 일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건설업 노동 현장은, 몇 없는 여성 노동자에게 특히 열악했다. 세이코는 전일본건설운수노동조합(이하 연대노조)에 가입해 여성 화장실을 만들고 생리 휴가를 쟁취했다. 뿐만 아니라 연대 노조의 동료들과 평등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위해 건설사와 싸우며 투쟁의 힘을 깨닫고 노동자이자 노조의 조합원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이제 세이코는 아이가 아플때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고, 4대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었고, 합리적인 임금을  받게 되었다. 노조는 마쓰오 세이코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자긍심이 되어주었다. 

그러던 차에, 일본의 전대미문 노동조합 탄압 사건인 ‘간사이 레미콘 사건’이 터진다. 간사이 레미콘 사건은 노조를 분쇄하기 위해 사측에서 먼저 노사 협정을 파기하고 단체 교섭을 거부하며 시작되었다. 경찰도 사측의 편을 들어주었다. 저항하는 이들에게 폭력을 서슴치 않았고, 벌금을 부과했으며, 조합원을 부당하게 체포, 기소했다. 이에 많은 노조원들이 떠나갔지만 마쓰오 세이코는 떠나지 않았다. 

간사이 레미콘 지부를 보면서 한국의 노조가 겹쳐보인다. 정부, 언론, 사측에 의한 민주노총 때려잡기는 유규한 역사를 가진다. 정부에서는 무리한 기소, 압수수색, 체포를 일삼는다. 언론에서는 노조를 비아냥 거리거나 범죄자처럼 몰고 간다. 사측에서는 노조에 대한 협박과 탈퇴 회유를 서슴치 않는다. 이로인해 노조원들이 고립된다. 그럼에도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건 바로 연대의 힘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끝까지 투쟁할 수 있게 혼자두지 않는 것이다.

마쓰오 세이코와 동지들도 탄압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럴수 있었던 이유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투쟁의 파동을 이어나간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소하

 

49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노트: 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

프로그램 노트

이스라엘의 역사는 팔레스타인 민중을 내쫓고 그 땅을 빼앗으며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불법유대정착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의 산증거이다. 팔레스타인 가옥은 일방적으로 불법이라고 통보되고 강제로 철거 당한다. 이렇게 빼앗은 땅에 이스라엘의 건축물이 올라간다. 이것은 ‘인종 청소’이고 ‘학살’이다.

한편 팔레스타인 가옥을 부수는 중장비에 적힌 로고는 꽤나 익숙하다. HD현대의 중장비가 불법정착촌 건설을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HD현대가 판매하는 것은 단순한 중장비라고 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의 땅과 삶, 관계와 미래를 빼앗는 무기이다. 마사페르 야타의 주민 베다위는 말한다. “이스라엘에 장비를 파는 건 점령을 지지하는 거예요.”

한편 BDS(‘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는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및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한 저항으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령정책과 연결되어 이득을 보는 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책임을 묻고 연결고리를 끊도록 하는 것이 그 전략이다. 영화에서 말하듯 BDS운동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수 있는 가까운 방법이며 우리의 책무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76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불법 군사 점령으로 존엄을 빼앗기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 침공은 공식적으로만 4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는 중이다. 지금도 HD현대, JCB, 케터필러의 장비는 팔레스타인 민중을 몰아내고 있다. “도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범죄에 대한 법적 책무를 지세요.” 오마르의 말대로, 지금은 고민이 아닌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소하

54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노트: 퀸의 뜨개질

프로그램 노트

한나는 ‘춘자’에게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해 15년간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나에게 뜨개질은 삶의 일부다. 뜨개질로 위로 받고 뜨개질로 세상을 만나며 어른이 되었다. 거기에 ‘여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건만 세상은 뜨개질을 하는 한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알고 보니 되게 여성스럽다?” 

처음 춘자가 뜨개질을 알려준 이유가 ‘신부수업’의 일종이기는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여자 한 줄, 남자 한 줄 서라고 할 때마다 위화감을 느끼던 어린 시절의 한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되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한나는, 코바늘계 끝판왕인 ‘만다라 매드니스’를 뜨겠다 다짐하는 어른이 된 한나는 할머니가 가르쳐 준 뜨개질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창조적인 힘을 탄생시켰다.

한나는 춘자가 선물해준 ‘뜨개질’이라는 자산을 소중히 여기되 여자와 남자의 경계의 둘레를 넘나들며 방 한가득 뜨개 세상을 창조한다. 과거의 기억이 실에 엮어 되살아 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도, 전복하는 마음도, 소심한 마음도, 젠더를 교란하며 다시금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도 되살아 난다. 뜨개질을 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처럼 한나의 세상도 순탄치만은 않고, 뜨개질에 형형색색의 여러 실이 필요한 것처럼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병립한다. 그러나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혼란스러운 나의 정체성을, 교차하고 겹쳐지는 수많은 ‘나’를 우리는 긍정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48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노트: 귀귀퀴퀴

프로그램 노트

우리는 퀴어다. 그게 너와 내가 같다는 뜻일까? <귀귀퀴퀴>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시작부터 별별 말이 흘러 나온다. 헤테로는 무엇인가. 팬로맨틱, 팬섹슈얼은 무엇인가. 전애인이 트랜스젠더였다는 사람과 그게 무엇이냐 묻는 질문들. “저렇게 살아야 퀴어인거야?” 우리의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 

퀴어는 간결하지 않다. 동일하지 않다. 너와 나는 다르다. 단일한 “퀴어로움”이란 없다. 내가 욕망하는 섹슈얼리티와 네가 욕망하는 섹슈얼리티는 다르고 내가 살아온 퀴어의 방식과 네가 살아온 퀴어의 방식은 다르다. 여기저기 “판”에서 떠도는 “용어”에 무지한 퀴어도 있고 정형화된 이미지에 반박하는 퀴어도 있다. 동성애자만 퀴어인 줄 아는 퀴어와 퀴어 내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게 되는 퀴어, 거리에 나가 투쟁하는 퀴어가 있다면 인권에 관심이 없는 퀴어도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퀴어’로 통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퀴어’는 끝없이 역동하고 움직이는 관계이자 정치의 동사이기도 하다. 각자 맺어온 관계의 방식과 커뮤니티가 다르고 욕망하는 것이 다르고 되고 싶은 것과 삶의 주요 이슈가 다르다. 우리가 퀴어로 묶여 힘을 모을 수 있으려면 각자의 고유성을 지키며 갈라질 수도 있어야 한다. ‘퀴어’는 하나로 정의되기 위한 단어가 아니라 끝없이 확장하고 관계맺기를 위한 장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질문한다. “그래서, 퀴어는?”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49프로그램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