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인권해설

“나는 왜 남자친구가 안 생길까?”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답한다. “예뻐져야 한다”고. 넘쳐나는 성형·다이어트 광고와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양산하는 분절된 신체에 대한 세세한 기준들. 이처럼 일상적으로 외모평가가 만연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딸아 걱정 마. 이제 시집갈 수 있을 거야.”, “영화처럼 살고 싶니?”와 같은 인터넷이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성형외과 광고 문구들은 모두 “외모로 당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형·다이어트 광고에서는 실재하기 힘든 ‘이상향’의 몸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이 기준을 벗어나는 여성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부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상향’의 기준은 매우 협소하기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에 속하지 못한다. 속하더라도 언젠가 이 기준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러한 광고들은 언젠가 한 번쯤 들었던 외모에 대한 평가 발언, 타인의 외모와 비교 당했던 상황 등을 떠올리게 하며 몸에 대한 ‘수치심’을 자극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혐오를 재생산하게 한다. 연애, 결혼, 취업 등 삶의 모든 순간에 외모가 개인의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외모 꾸미기의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성형시장의 규모는 7조 5000억 원대이며, 이는 국제 성형시장 규모의 1/3 수준이다. 국내 섭식장애 환자는 2012년 기준 13,002명으로 5년 새 18.8% 증가했다. 이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약 4배 더 많을 정도로 여성들은 사회의 외모 기준에 맞추려는 실천 때문에 아픈 상황이다. 다이어트·성형 등 미용 산업은 방대해지고 외모 꾸미기는 ‘일상의 문화’가 되어 누구든 노력하면 외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보편화 되었다. 미디어에서 수없이 재현하는 마르’고 ‘예쁜’ 여성의 이미지, 그리고 외모와 연결되어 차별적으로 재현되는 ‘예쁜=착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는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어 외모는 곧 ‘인격’으로 평가되기에 이른다. 소위 ‘뚱뚱한 몸’은 ‘게으름’으로, ‘날씬하고 예쁜 몸’은 ‘부지런함과 착한’ 이미지로 연결되어 이상적인 신체조건에 자신의 몸을 맞추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몸’과 ‘내가 바라보는 몸’ 사이에서 갈등한다. 몸매 관리를 하지 않으면 ‘자기관리를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고,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타인이 보는 시선에서 과연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외모지상주의에 질문을 던지고자 했던 아름은 “못생기고 뚱뚱한 나를 찍는 것에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외모지상주의에 자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오히려 아름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모순과 맞닥뜨리게 된다. 결국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강박과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 모두 자신의 모습이며, 사회의 욕망 안에서 스스로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여기에서 다시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개인이 사회의 외모 꾸미기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개인은 이러한 문화에 자유로울 수 있는가? 타인의 시선, 사회적 기준에 갇히지 않는 외모 꾸미기란 가능한가?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과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외모지상주의에 균열내기 위한 소소한 제안을 해본다. 이를테면 타인과 자신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지 않는 ‘외모에 대해 일주일 동안 말하지 않기’와 같은 캠페인. 이러한 작은 실천 속에서 외모지상주의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쎄러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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