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1971

인권해설

1971년 3월 9일 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델라웨어 카운티 미디어 가에 위치한 FBI 지국 사무실에 있던 비밀문서가 도난당했다. 그리고 며칠 뒤 언론사들은 FBI의 비밀 사찰과 관련한 내부 문건들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반전운동, 흑인인권운동 등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FBI사무실을 침탈했다는 것 자체로도 놀랍지만 이들이 공개한 문서를 통해서 FBI의 비밀사찰과 공작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 문서로 시작해서 이후 밝혀진 일명 ‘대첩보작전(코인텔프로Cointelpro)’은 미연방수사국이 미국 내부의 저항 정치 조직을 조사하여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그중 하나인 ‘샴록(Shamrock)’ 작전은 1950년대, 60년대 웨스턴 유니온과 전기방송회사, 또는 국제 통신전화회사로 전달되는 전보를 중간에 가로채는 것이었고, ‘미너렛(Minaret)’ 작전은 외국인 6,000명과 2,000여 개 단체 및 미국인들을 도청했으며, ‘카오스(Chaos)’ 작전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교란시키기 위해 시행되었다.

의심스러웠던 FBI의 감시와 사찰, 공작이 사실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런 일들이 20년이나 가능했던 것은 국가안전보장이라는 목적으로 CIA와 같은 정보기관이 만들어지고 ‘스미스법’과 같은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비밀첩보활동은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안전’을 위해서 ‘전복세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적에 대한 첩보활동’은 ‘국가기밀활동’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나 시민들의 감시조차 예외가 되고 심지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런 비밀스런 활동이 용인되는 이유는 ‘안전사회’를 추구하게 하는 불안과 의심 때문이다. 8명의 ‘도둑’들에 의해 FBI의 비밀 첩보활동이 밝혀졌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감시는 더욱 체계적이고,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감시를 의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CIA와 NSA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서 알 수 있듯이 PRISM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의 일반인들의 통화기록과 인터넷 사용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이 역시 9.11 사건 이후 미국 사회에 급증한 테러에 대한 공포를 기반으로 감시가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시사회’는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몇 년 새 급증한 집회 현장에서의 채증카메라와 곳곳에 설치된 CCTV를 비롯해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와 휴대전화 압수수색, 인터넷과 트위터 게시글에 대한 검열 등 경찰, 국정원 같은 공안기구는 우리의 일상을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런 감시의 기술은 점점 진화하고 있어 DNA와 같은 생체정보를 수집 및 분석하고 안면인식, 차량추적 등의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공안기구는 본래 권력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감시와 통제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이유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들이 해온 역할은 권력을 유지하고 비판을 잠재우며 사회를 통제하는 일이었다. 비판자에 대한 당장의 처벌도 문제이지만 ‘위축효과’를 통해 미래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감시와 통제가 우리에게 안전한 삶을 안겨주지 않는다. 안전은 우리가 자유롭게 발언하면서 민주적 참여가 이루어질 때, 사회적 관계와 신뢰가 단단할 때, 경제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로 삶이 위축되지 않을 때 가능하다.

 

랑희(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인권운동공간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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