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2일 일요일 오후, ‘삶은 철거되지 않는다: 정릉골 상영회’가 혜화 이음아트홀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27회 서울인권영화제 ‘나 여기 있어요’ 섹션의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를 기억하시나요? 재개발의 소용돌이에서 하나둘 떠나가는 정릉골의 풍경을 담은 영화였는데요, 영화제 폐막 후 바로 다음주에 정릉골에 강제집행이 실시되면서 영화제 활동가들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6월 12일 금요일 저녁에는 몇몇 활동가들이 정릉골 연대 피켓 만들기를 함께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27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이었던 <나무가 흔들릴 때 바람이 찾아온다>의 이지윤 감독님이 2024 성북아카이빙프로젝트 ‘지역의 기억’ 창작자들과 함께 정릉골 연대 상영회를 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상영회를 차차 기획하던 중인 지난 6월 30일, 정릉골 재개발 주거세입자 대책위는 조합과 합의를 통해 투쟁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맞서, 폭력적인 강제집행에 맞서 함께 싸운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영회는 이제 곧 사라질 정릉골을 함께 기억하며, 앞으로 모든 주민들의 이주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지켜보기를 다짐하는 상영회가 될 수 있게 방향을 살짝 수정하여 준비했습니다.

상영회 당일은 정말 무더웠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를 뚫고 모인 ‘지역의 기억’ 창작자들과 서인영 활동가들은 상영 테스트를 하고, 객석 의자를 깔며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상영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관객분들이 한둘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 시가 되어 상영을 시작했어요. 상영작은 ‘지역의 기억’ 프로젝트의 네 작품으로, 강민서&양은서 연출작 <쌍둥이 슈퍼>, 김현원&윤병현&홍유라 연출작 <경계의 고도>, 김성원&정윤지 연출작 <동산바치>, 권나민 제작&이지윤 연출작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이었습니다. 같은 동네를 기록한 영화들인데 각기 다른 이야기와 색을 담고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 상영을 마치고 시작한 관객과의 대화는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의 제작자인 나민 님이 진행을 맡고, 정릉골 주거세입자 대책위원회의 김우권 님과 옥바라지선교센터의 이은해 님이 이야기손님으로 함께했습니다. 정릉골은 주거 약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라서 재개발도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닌 주거 환경 개선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했는데, 애초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부 다 허물고, 임대 주택 하나 없는 고급 주거 단지를 건설하는, 그러니까 ‘돈’이 되는 재개발이 추진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40~50년 동안 이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투쟁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김우권 님은 강제집행의 고통과 두려움, 죽음에 대한 마음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강제집행을 하고 50년 동안 수많은 재개발을 통해서 수백만 호가 건설되었지만 아직 집이 부족합니다. 소유자 비율도 떨어진다고 하고요. “그렇게 많이 지으면 집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재개발, 재건축은 집을 주거와 생활의 공간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제도일 수밖에요.

이어 은해 님은 2016년 5월 서대문형무소에 앞에 있는 옥바라지 골목에서 투쟁을 하면서 시작된 단체로 옥바라지선교센터를 소개하고, 정릉골에서 진행해온 예배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재개발의 현장은 대개 ‘버려진 곳, 끝난 곳, 사람이 오지 않는 곳, 죽어 있는 공간’으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예배를 드릴 땐 이곳은 ‘끝난 곳’도 ‘죽은 공간’도 아니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공간임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임을 선언하며 연대를 해왔다고 합니다.
‘집’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하고 삶을 가꾸는 곳”이라고 답한 우권 님의 답변에 이어, 나민 님은 우권 님께 정릉골 투쟁이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습니다.
“정릉골이라고 하는 게 지금은 이렇게 특별하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사는 집의 일부였어요. 정릉골로 들어와서 살았던 집, 내 삶의 일상이었던 그런 하나의 주거 공간이었죠. 그런데 그게 갑자기 없어지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본권이 있더군요, 인간의 존엄, 가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본권이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주거권도 기본권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거라는 게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배우고 자라고 가정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주거권은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본권으로서 주거의 권리를 박탈하는 한국식 재개발 사업에 대해 은해 님이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재개발은 공공의 사업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과일을 갖다 주고, 반찬을 나눠 먹고, 그러던 때가 좋았다고 하는데 사실 정릉골은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사라진 모습이 아니었던 거죠. 여전히 서로 김치를 같이 담그고, 좋은 과일이 들어오면 나눠 가지고, 추석에는 윷놀이를 하고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 곳이 남아 있는데 그런 모습을 왜 지우려고 할까요. 아파트를 짓고, 고급 빌라를 지으면서 왜 도시의 모습을 똑같이 동일하게 만들려고 하는지 질문을 던져 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정말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지.”
그리고 우권 님도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재개발을 통해 만들어지는 집들 속에서 살면서 어떤 기억이 남을까? 문득 생각이 들어요. 내가 살던 곳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집, 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온 곳이에요. 아이들에게 어떤 걸 물려줄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길을 만들 것인지 고민한 흔적과 자기의 삶과 마음과 사랑이 담긴 그런 기억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면 철거식 재개발로 이루어진 집들에선 어떤 기억을 만들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이라고 하는 건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현재도, 지금도 기억이 기억되고 있는 거니까.”
50분을 꽉 채운 대화를 지켜보며, 정릉골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 아파 계속해서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정릉골을 기억하는 행사들이 7월 한 달 간 이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기억의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해 우권님은 “그런 거(고급 주거 단지) 말고 마음의 성을, 마음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문화의 향기를 정릉골에 남기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릉골은 이제 사라집니다. 그곳에 그 어떤 화려한 고급 빌라가 들어서도, 정릉골에 알록달록 얽혀있던 이야기들을 대신할 순 없을 겁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곳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서인영 사무실도 저의 집도 재개발 예정지라서 몇 년 뒤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답니다. 아무리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치고 모기가 춤을 추며 들어오는 집이라고 해도 이 집들과 골목들과 사람들이 품고 있는 마음과 관계와 역사를 이렇게 ‘말끔’하게 밀어버려도 되는 걸까요? 아무도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늙음과 낡음이 존중받는 도시, 이윤보다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후기를 마칩니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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