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서울인권영화제 :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
포스터
23회 서울인권영화제는 총 25편의 인권영화를 상영합니다. 그리고 이 상영작들로 열한 개의 섹션, [투쟁의 파동], [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정보인권-표현의 자유], [자본의 톱니], [시민을 묻다], [혐오에 저항하다], [존재의 방식], [삶의 공간], [기억과 만나는 기록], [제주 4.3 70주년 특별전]을 구성하였습니다. 또한, [투쟁의 파동], [제주 4.3 70주년 특별전] 두 섹션은 “광장에서 말하다”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적막한 세상 속에서도 소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적막을 부수는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삶과 만나 광장을 채울 파동이 됩니다. 투쟁의 파동은 적막에 가려진 기억을 끌어내어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냅니다. 세상을 울리는 시끄러운 존재로,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으로.
투쟁의 파동
하나의 중심에서 시작한 투쟁은 어느덧 여러 갈래로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하나였던 우리도 이제 수많은 ‘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였던 투쟁의 중심을, 하나였던 ‘우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투쟁이 만들어낸 파동은 언젠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 물결이 될 것입니다. 다시 흉터로 남을 관계가 되더라도, 새로운 ‘우리’로 만날 날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이 된 일상을 이어갑니다.
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어느 날, 대의를 위한 일이라며 나의 터전이 사라졌습니다. 이 땅의 축제를 누리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에서 나는 제외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나에게 통보된 ‘대의’를 당연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내 삶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에 맞서고, 모두에게 이 부당한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 것입니다. 투쟁이 된 나의 일상은 크고 작은 진폭으로 달라지지만,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국가경제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이 있습니다. 국가에 의해 여론이 조작되고 경제가 기울어지고 개인의 삶이 조각나도, 국가는 ‘국가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감추어버립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싸한 이름 아래 가려진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적막의 정체를 알고 진실을 밝힐 내가 있는 한, 국가는 나를 덮을 수 없습니다.
정보인권-표현의 자유
기술은 편리한 생활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누군가 나를 편리하게 감시할 수 있게 합니다. 감시자의 잣대에 어긋나는 행동은 제약으로 이어집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나의 정보가 수집되는 세상에서, 나의 표현과 행동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점점 더 교묘해지는 정보기술과 감시 속에서, 나는 이 두터운 감시의 막을 부수려 합니다.
자본의 톱니
이 세상에는 노동자와 소비자, 그리고 기업이 촘촘히 맞물린 자본의 톱니가 있습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나는 자본에 의해 밀려난 삶의 주인입니다. 반도체 노동자인 나는 직업병에 걸리고, 제약회사 소비자인 나는 원인도 모른 채 죽음으로 내몰렸습니다. 기업은 나를 외면하고 책임을 피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자본의 톱니 속 모순을 증언하려 합니다. 수많은 ‘나’의 외침은 마침내 견고하게만 보였던 자본의 고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시민을 묻다
제가 이 나라의 시민이 되어도 되겠습니까? 세상은 나에게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군사교육을 받고, 고용허가제를 통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군인이 아닌 나도, 미등록인 나도 이 나라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허락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꿋꿋하게, 더 소란하게 요동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묻겠습니다. “시민은 무엇입니까?”
혐오에 저항하다
나는 여성이고, 장애인이고, 트랜스젠더입니다. 나의 정체성만으로도 나는 혐오의 대상이 됩니다. 그 정체성을 갖고 혐오에 맞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의 저항입니다. 나는 적막에 덮이지 않는 소란한 존재로 ‘우리’가 되려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연대하고 더 크게 요동치며 혐오의 세상을 뒤집을 파동이 될 것입니다.
존재의 방식
자수를 엮고, 안전한 공간을 찾고, 손으로 말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나는 팔레스타인 민족, 퀴어, 농인입니다. 나를 지워내는 세상에서 내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투쟁이 됩니다. 나는 세상과 부딪치며 세상을 바꾸고, 그렇게 나의 존재를 완성해나갑니다. 나는 내가 택한 방식으로 나를 증명해나갑니다. 이것이 적막 속에서 소란한 내가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삶의 공간
내가 사는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나의 공간은 내가 살던 건물과 마을이고, 나와 맺은 사람들과의 관계이고, 또 내가 만든 추억이기도 합니다. 여기 내 삶이 깃든 공간이 있습니다. 나는 자본이 계산한 이 땅 위의 숫자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공간을 기억합니다. 사라진 공간에서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내 삶을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과 만나는 기록
그 날의 현장은 공동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의 모습과 삶의 변화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증언은 왜곡되었던 기록을 지우고, 마침내 진실로 엮은 역사를 만들 것입니다. 기억과 만난 기록은 역사가 되어 변화의 파동으로 번져갑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야단거리로 치부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세상의 소란이 되어 역사로 번져나갈 것입니다.
제주 4.3 70주년 특별전
제주 4.3 70주년. 지금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록되지 않은 기억을 이어갑니다. 정치적 탄압으로 왜곡되고 억눌린 이야기, 문서 속 글자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이야기, 드러나지 않은 기록 안에서 더욱 담기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 겹겹이 쌓여 간직되어온 제주의 기억을 이어나갑니다. 다시는 잊히지 않도록,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려 합니다. 세상이 외면했던 소란한 이야기는 이제 다시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