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387번 유류품을 들여다보는 건

소식

*[함께 나눠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지난 상영작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우리의 거리를 마주하라” 중 ‘기억과 만나는 기록’ 섹션의 상영작 <#387>를 나눕니다.

#387 스틸컷1. 물에 젖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사진 조각들. “387번”이라고 적힌 종이가 옆에 놓여있다.
#387 스틸컷1. 물에 젖어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사진 조각들. “387번”이라고 적힌 종이가 옆에 놓여있다.

2015년 4월 18일, 리비아와 이탈리아 사이 지중해에서 난민선이 침몰했다. 해당 참사로 8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영화의 초반부, 사건책임연구원인 법의학 인류학자가 선박에서 수습한 것들이 담긴 자루를 조사한다. 자루를 살피던 그가 말한다. “라라, 사진 좀 찍어줘요. 사람이에요.” 유골과 섞여 있는 옷, 옷 주머니 안의 지갑, 그 안의 사진들 그리고 ‘I Love you’라고 적힌 편지. 387은 해당 유류품의 번호다.

영화 <#387>은 참사의 정황이 아닌 참사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을 쫓는다. 사건책임연구원은 유해, 유류품 등 남겨진 흔적을 통해 망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고, 난민조사연구원은 망자가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아가 망자의 삶을 묻는다. 이들은 왜 죽은 자들이 누구인지를 쫓고 그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것일까.

난민조사연구원 죠르지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건 망자의 존엄을 회복하고자 하는 절절한 노력이에요. 고인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거죠. 모르는 사람이지만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죽고 사라졌다 해도 여전히 한 사람이니까요”

참사 이후에 쉽게 간과되는 것은 ‘죽은 자’, 그러니까 ‘희생자’도 ‘사람’이라는 점 같다. ‘사람’이 죽은 것이다. 연인에게 꿈과 사랑을 담은 편지를 쓴 저 사람이 죽은 것이다. 희생자 몇 명 중 1명,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사람의 삶 속에는 무수한 이야기와 관계가 맺혀있다. 이들을 그저 뒤섞인 유해로 내버려 두지 않고 이름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고, 떠나온 나라를 찾는 것이 이들의 삶에 대한 존중이자 존엄한 마지막에 대한 산 자의 책임인 것이다.

죠르지아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저는 망자에 대한 정의와 존중을 위해 이 일을 합니다. 글쎄 왜일까요? 왜 죽은 이들의 정의를 위해 애쓰냐고요? 사실 죽은 자의 정의를 찾아주는 것, 죽은 자를 기리는 것이야말로 산 자를 섬기는 것이죠. 우리 문명은, 문명인이라는 우리의 지위는 망자를 어떻게 대하로부터 평가할 수 있으니까요”

#387 스틸컷2. 불에 끝이 탄 종이. 종이에 글씨가 흐리게 적혀있다.
#387 스틸컷2. 불에 끝이 탄 종이. 종이에 글씨가 흐리게 적혀있다.

10.29 이태원참사 직후, 그 골목길에서 상인 한 분이 밥과 국이 놓인 작은 상을 내어놓는 것을 보고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상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전까지 제사의 의미, 죽은 자를 위해 밥상을 차린다는 것의 의미를 절감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냥 떠나보낼 수 없으니까, 밥 한 끼라도 먹고 갔으면 좋겠으니까. 

그 밥상을 치우려고 하고, 분향소를 철거하려고 하고, 떠난 이를 제대로 배웅하지도 못하게 하는, 온전한 애도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존엄을 부정하는 일이다. 한 사람의 존엄한 마지막을 훼손하고, 그가 관계하고 있던 사람들의 추모와 애도를 가로막고, 참사를 목격하고 경험한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를 방해한다. 희생자의 고향 모리타니로 가 유가족을 만나고 온 난민조사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결국 소방관 같은 거예요. 언제나 뒤늦게 도착하면 불은 꺼지고, 재만 남아있죠. 거기서 뭔가 해보려 하지만 그게 사람을 되살릴 순 없습니다. 사람을 부활시킬 순 없어요.” 그럼에도 그들은 희생자들의 무덤을 찾고,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국가가 움직이도록 계속적인 요구를 한다. 희생자들을 살릴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존엄한 죽음이 될 수 있도록 흔적을 쫓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오송 참사가 벌어진 뒤 “내가 일찍 거기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충북도지사의 말을. “내가 신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냐”는 용산구청장의 말을.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 이후에도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이 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그리고 “안전사회 건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라면 너무나 마땅히 해야할 일임에도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를 위해 수없이 반복해서 투쟁해야 하고, 책임자들은 회피하고 면피하기 바쁘다. 안산 순례길 ‘기억과 약속의 길’을 다녀왔을 때, 한 청소년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다 끝마친 뒤엔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마음 놓고 울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떠난 이를 온전히 추모하고 슬퍼하기 위해선 먼저 사과와 진실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선 기억과 책임으로 흔적을 살펴야 한다.

1년 전 10월 29일 밤, 158명의 생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끝내 붙잡지 못한 삶까지 우리는 159명을 잃었다. 159명의 사람이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생일을 맞이해서, 일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도저히 왜 그래야 했는지, 왜 11건의 신고에도 국가는 무응답이었는지, 왜 시신 확인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는지, 왜 미처 시신을 보기도 전에 마약 검사를 권유 받아야 했는지, 왜 유품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는지, 아직도 우리는 알아야 할 진실이 산더미다. 왜 ‘놀러갔다’는 이유로 애도의 자격을 빼앗겨야 했는지, 왜 국가는 일방적인 겉핥기 애도를 강요했는지, 왜 분향소를 철거하려고 하고 유가족이 모일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고 생존자와 구조자의 일상 회복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지, 우리는 아직도 분노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안내물. 10월 29일 일요일 오후 5시 서울광장.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 안내물. 10월 29일 일요일 오후 5시 서울광장.

이미 불타버린 재일지라도 그 재 속에는 삶의 흔적들이 들어있다. 사건책임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시신을 잘 들여다보면 이미지들이 아주 정확히 보입니다. 주머니나 옷 같은 걸 봐도 노트나 일기장에 적어둔 하나하나까지도요. 이 사람들이 새로운 뭔가를 간절히 원하고 새 삶을 일구려 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387번 유류품, 편지를 읽은 에리트레아 난민 활동가 아브라함 테피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아요. 젊은 에티오피아 남자. 다정하고, 젠틀하고, 젊은.” “그가 쓴 문장을 보면 ‘아이 러브 유’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써요.” 편지는 말한다. “지금은 아무 얘기도 해줄 수가 없어. 사랑하는 당신. 꼭 당신을 찾아갈 거야. 너만을 기다릴게.”

387번 유류품 편지 속 이야기가 아브라함을 만나고, 우리를 만난 것처럼 죽음 이후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야기는 기억하고 애도하는, 산 자들이 망자를 만나고 더 나은 사회를 꿈꿀 때 새롭게 이어진다. 참사 이후, 이태원엔 2만점이 넘는 꽃과 10만장이 넘는 포스트잇이 놓였다. 그리고 2023년 10월,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거리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되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말한다.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기 위해 찾아오신 시민분들만이 이 골목을 기억과 애도의 공간으로 유지시켜 주셨습니다” 존엄한 삶과 존엄한 마지막을 위해,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날을 위해 계속해서 기억하고 함께 슬퍼하고, 끝까지 함께 곁이 되고자 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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