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후타바에서 멀리 떨어져서 2 : 핵의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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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벌써 4주기가 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인해 피난민이 되어야 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피난민으로서의 삶을 ‘지겹게’ 지속하고 있는 후타바 사람들을 담고 있다.

폐교로 피난하여 단체 생활을 하고 있는 후타바의 주민들. 영상 속에는 유달리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의 식사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먹는, 그들 말대로 ‘Feeding’ (먹이 공급)처럼 느껴진다. 정부의 무책임한 탁상행정을 뉴스 화면을 통해 보며 ‘밥이 잘 안 넘어간다’ 속상해 할지라도 그들은 먹는다. 정말 인간이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권리마저 제한되는 피난소의 생활이다. 영화의 시선은 이윽고 단체 피난소에서 긴급주거지로 옮겨 가는데, 긴급주거지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피난소의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보상금과 제공되는 식사의 차이를 운운하며, 차별받고 있음을 토로한다. 이미 처참해질 대로 처참해진 모두이건만, 슬픔 속의 편 가르기는 계속 된다. 참 잔인하다.

후타바 주민들에게 선택지란 없다. 선택지가 없는 곳에서 인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해야 하니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들은 힘없이 ‘분해도 어쩔 수 없지 않나 이제는…’ 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핵발전의 폭력, 그리고 국가의 폭력에 그들은 ‘분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묵묵히 삶을 지속해 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며 ‘사람으로’ 살아갔던 후타바는 이제 텅 비어 버렸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 그 자체로 존엄했던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제거당한 채 비참한 마음으로 삶을 지속해가고 있다. 함께 기억해주지 않는 후쿠시마의 사고. 그 사고의 아픈 기억과 현재는 오롯이 그들만의 것이 되어 그들을 더 아프게 찌른다.

핵발전으로 인한 인권유린의 현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고리원전부지로부터 고작 700m 떨어진 곳에 살며 국가가 인정해 주지 않는 각종 암과 질병을 앓고 있는 부산 기장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40여 년 동안 집단이주권을 주장했으나 번번이 묵살되고 있다. 자신들의 앞마당에 당장 송전탑이 들어오게 되는 밀양 할매들은 어떠한가. 정말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그들에게 국가는 ‘목숨’을 빼앗을 기세로 달려든다. 청도에서, 당진에서, 삼척에서, 영덕에서, 아니 서울을 제외한 모든 곳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핵발전이 주는 폭력은 광범위하고 또 강하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이 아닌 자들의 인권을 너무나 쉽게 짓밟는다. 이 모든 것들이 핵발전소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쓰리마일의 미래는 체르노빌만이 아니었으며, 체르노빌의 미래는 후쿠시마만이 아니다. 다 같이 기억하고 기억으로부터 행동해야 한다. 기억, 하자.

신지선(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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