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밀양 아리랑

인권해설

2014년 6월 11일, 새벽을 틈타 마지막으로 남은 밀양송전탑 반대 움막 4개가 철거됐다. 동원된 경찰병력만도 2천5백여 명. 매일 밤낮없이 움막을 지켰던 주민들이 잔혹하게 진압당한 채 끌려나왔다. 10년간의 반대 투쟁은 이제 끝났다고 비웃는 한전과 경찰 앞에
서 주민들이 잔치를 열었다. 고기를 삶고, 지짐도 부치고, 육개장도 끓이고…. 오느라 고생했다고, 울 필요 없다고, 여기가 끝은 아니라고, 며칠 사이 부쩍 주름이 깊어진 어르신들이 외려 등을 토닥여준다. 서로 고생했다, 갈 길 멀다 인사 속에,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 밀양의 밤이 깊어갔다. 6월 11일로부터 불과 3일이 지난 6월 14일,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제150차 촛불집회’ 풍경이었다.

일제의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열 일고여덟의 나이에 시집을 가야했던 이가, 보도연맹으로 남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아들을 평생 뒷바라지해야 했던 이가, 대형마트에 밀려난 이가, 1997년 금융위기 때 직장을 잃고 귀농을 해야 했던 이가 모두 밀양을 살아내고 있는 주민들이다. 그리하여 너나 할 것 없이모두, 한국 근현대사의 삶을 오롯이 살아내야 했던 이들이다. 국가는 이들의 삶을 지켜주기는커녕 무참히 짓밟았다. 무거운 짐바구니를 하도 이고 다녀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빠지고, 평생 놓지 못한 호미자루에 손가락이 휘고, 농사일에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면서도 이들은 매년 땅 한 마지기, 한 마지기씩 늘려왔다. 그렇게 소중한 땅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한 푼이라도더 받아내려는 욕심이라며 모욕했다. 비록 소박하지만 선산 있고, 공기 좋고, 작은 터전도 있으니, 나이 먹어가는 자손들이 나 가고 나면 여와서 살면 좋겠다며 꾸던 꿈을, 순리 대로 이치 대로 욕보며 정직하게 걸어온 인생을, 건강을 되찾게 해준 자연을 국가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싹둑싹둑 베어냈다.

울력과 정으로 살아내던 마을에 증오와 미움의 씨앗을 뿌리고 송전탑을 세웠다. 한평생 살아온 땅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송전탑 투쟁. 10년의 시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손을 털고 떠나갔고, 누군가는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밤낮없이, 도대체 무엇이 일상인지조차 모르게 싸웠던 시간들이 벅차지만 “포기했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돈도 필요 없다”며 “우리가 끝은 아닐 것”이라 말한다. 하루에도 열두 번 희망이 있나 없나 오락가락하지만, 누군가 문제를 해결해주길 앉아서 기다리기보단 스스로 희망이 된다. 자신의 힘 대로 욕보며, 잊지 않고 밀양을 찾아주는 이들의 손을 꼭 잡으면서,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 길은 길고 길지만, 가야만 할 길이다. 지난 10년간의 파행에 대한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송전탑 피해를 실사하는 기구를 구성하고, 송전탑이 불필요할 경우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길이다. 또한 무려 2천 900km에 걸친 전국의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을 누비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길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스타케미컬 노동자의 굴뚝 농성에 보낸 함성과 만나 가닿을 수 없는 마음들을 토닥이고 저항과 연대를 다짐하는 길이기도 하다. 밀양 주민들이 아픔을 삼키며 생을 걸고 밀어 올리는 시간들에 우리는 무엇으로 함께 할 것인가? 스스로 희망이 된 이들과 함께 우리 역시 희망이 되어 만난다면 어떨까? 모두가 존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지난 10년의 싸움으로 80여 명이 100건의 사건으로 기소되었다. 밀양에 필요한 법률 비용과 벌금만 2억 3천만 원에 달한다. 가난한 농부의 어깨 위에 지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눠 지어 주시길. 모금을 통해 밀양 투쟁의 정당성과 의미 역시 세상에 다시 한 번 전해질 터이다.

: 후원계좌 농협 301-0164-5386-11 (밀양송전탑법률지원 모금위원회)

유해정(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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