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지연습>은 #OO계_내_해시태그와 #미투운동이 휩쓸었던 2016년부터 2019년, 그 후의 이야기다. 폭풍 같은 피해 말하기, 파도 같은 릴레이 해시태그는 수면 아래 잠자코 있던 이야기들을 밀어 올렸다. 말하기는 큰 힘으로 일렁였는데 사회 관습과 규범은 쉽게 박살 나지가 않았다. 피해자들이 힘써 말하는 동안 백래시는 노골적으로 세를 불렸다.
2020년 서울 합정동 댄서스라운지에 자청, 늘보, 늘, 라무, 구구, 탁이 모였다. 성폭력 생존자와 연대자인 각 분야의 예술인들. ‘상-여자의 착지술’ 이라고 이름도 지은 이들은 각자의 예술 분야를 살려 생존자를 위한 회복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공간을 내놓은 늘보는 말한다. 왜 생존자를 위한 회복 프로그램이 시스템으로 존재하지 않냐고.
사실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치유회복프로그램이 있다.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에서 나온 재원으로 현재 성평등가족부가 관할하는 예산에 편성되어 있다. 전국 성폭력상담소 같은 곳에서 치유회복프로그램 다양한 내용을 살펴보고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예산을 대폭 깎았다. 절반이 줄었다. 장소도 구할 수 없어 곳곳마다 다니며 사정하고, 간식도 쪼개가며 먹게 됐다. 치유 회복 예산은 삭감하고 ‘고위험군 범죄자 엄벌’하겠다는 정치는 위험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불평등에 맞서는 대안적인 힘은 깎아내고 자른다.
‘상-여자의 착지술’은 자생적으로 활동한다. 자발적으로 대안 공간을 만든다. 제도권에 대한 대안이 된다. 상-여자답게, 착지하는 방법이다. 상-여자의 착지술의 회복 프로그램은 어떨까? 러닝타임 내내 강렬한 것은 무엇보다 상호작용이다. 바닥을 기어서 옆 사람에게 가고, 손을 뻗고, 서로 닿고 잡고, 몸 한쪽이 연결된 상태에서 뒤집어 비틀며 같이 일어난다. 프로그램 기획자와 진행자, 팀원들은 무엇이 어떤 이에게 불편하지 않을지 생각하고 점검한다. 안내는 더 상세하고 친근해진다. 그 결과 상-여자의 회복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감정과 몸을 건드린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이는 호흡이 가빠지고, 다른 장소에서 멈추어 쉰다.
<착지연습>은 상-여자 팀 중 생존자와 연대자 사이, 생존자와 생존자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차이를 차분하게 담고 끝까지 희미한 선을 따라간다. 한 구성원이 마음과 몸을 털썩 멈춰 세우자 다른 구성원들은 충격과 고통을 같이 전달받는다. 또 다른 구성원은 팀 활동을 중단했다. 그가 회복하려는 일상의 리듬을 남은 구성원들은 알고 응원한다.
결국 여성폭력이 파괴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안전한 공간, 적정한 거리, 존중하는 말과 서로를 보는 눈, 참여하는 의사결정-과정, 역량을 발휘할 기회, 싸우고 갈등하고 들어보고 설득하고 이해할 기회. ‘상-여자의 착지술‘은 여성폭력이 해친, 해치려던 그것을 회복해 간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다섯 해. 회복은 하나의 개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당탕탕 작은 넘어짐과 일어섬을 반복하는 일상의 시간, 시간의 관계에서 온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특히 여성들이 폭력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폭력으로 인해 사람들과 가치 있는 관계를 맺게 하는 자신의 능력이 훼손당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이 슬퍼하는 것은 이와 같은 관계의 상실이며, 관계의 상실은 곧바로 생존자들의 자율적인 삶을 위태롭게 한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트라우마의 여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부의 침범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트라우마 생존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한계를 지닌 채 살아갈 수 있을지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피해입은 자신과 화해를 이루어가고, 동시에 그녀는 자신에게 드리운 외부적 한계들 중 일부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자율적 자아와 관계적 자아는 서로 도와주는 관계이며, 때로는 서로가 상대방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야기 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 수잔 브라이슨, 인향 2003)
오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이 ‘정조에 관한 죄’였던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사적인‘, ‘중요하지 않은’, ‘수치스러운’ 성문제, ‘여성들의 거짓말’, ‘여성의 정조 문제’로 치부되던 한국사회의 왜곡된 성인식과 성문화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이 성별권력관계와 남성중심적인 사회문화의 문제임을 알리고 평등과 인권을 향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9만 2천여 건(2024년 기준)의 성폭력 피해자 상담, 지원을 통해 수동적인 대상으로 성애화되는 여성, 소수자들의 억압된 경험을 성폭력으로 재정의하는 균열과 변화에 함께 해왔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분법적 성별권력관계 구조, 여성의 몸과 성을 규범화하는 통념, 차별과 혐오를 확대하는 사회문화에 맞서 평등하게 관계 맺고 나다운 모습으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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