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2010년대 초 필리핀의 노동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쿠바오는 필리핀 수도권인 ‘메트로 마닐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케손시티(Quezon City)의 한 지역이다. 메트로 마닐라는 16개 도시와 1개의 자치구역으로 구성돼 있는데, 필리핀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라 할 수 있다. 면적은 전체 국토의 0.2%에 불과하지만, 무려 1,400만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고, 필리핀 GDP의 30~40%를 생산한다. 그만큼 신자유주의화된 필리핀의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와도 밀접하게 연결된 노동집약적 제조공장 및 서비스업 기지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쿠바오는 메트로 마닐라의 외곽과 중심부,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 오가는 가장 밀도 높은 거대 상업지구다.
영화 속에는 BIEN 소속의 여러 활동가와 노동자들이 나온다. BIEN은 ‘BPO산업 직원네트워크(BPO Industry Employees Network)’의 약자로, 노조 결성 자체가 매우 어려운 필리핀의 BPO산업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조직된 독립적인 노동자 네트워크다. BPO 노동자 조직화가 어려운 이유는 이 분야 기업들이 경제특구(PEZA)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무노조 경영 전략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업체를 폐쇄하거나, 주동자를 해고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등 온갖 교묘한 수단을 동원한다.
이 영화는 필리핀의 사회운동가이자 저항 시인 에릭슨 아코스타(Ericson Acosta)가 쓴 “Walang kalabaw sa Cubao(쿠바오에는 물소가 없다)”라는 시에서 많은 것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필리핀 민중의 역사와 오늘날 필리핀 사회에서 ‘물소’가 은유하는 바를 떠올릴 때, 그것은 다층적 의미를 가리킨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보기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콘크리트로 도배된 쿠바오에는 진짜 노동자도, 진짜 물소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가짜 회전목마와 가전 매장, 호객꾼, ‘타마라우 FX’란 이름의 승합차 등이 “방목된 가축처럼 늘어서 있을 뿐”이다. 대규모 콜센터 노동으로 이뤄진 BPO산업은 영미권의 대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에 외주화한 엄청난 감정노동을 기반으로 한다. 세련되게 포장된 콜센터 노동의 그늘에는 저임금과 고용 불안, 열악한 노동조건과 착취라는 현실이 있다.
이 영화는 BIEN 소속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의 증언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에서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조직하고 저항하며 자신들의 공간을 만드는지 노래한다. 영화는 필리핀 민중의 영원한 친구로 살고자 했던 한 시인의 시를 통해, 그리고 이곳 노동자들의 춤과 구호를 통해 답답한 현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 에너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연결된 필리핀과 한국의 글로벌 착취를 떠올려보자.
– 홍명교(플랫폼c 동아시아 사회운동 뉴스레터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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