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잔디라를 죽였을까?”

인권해설

브라질 일간지 에스타두 지 상파울루에 따르면, 2016년 1∼9월에 불법 낙태수술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다 사망한 여성 환자는 1,215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네 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2015년 사망 환자 수는 1, 664명이었다.

현재 브라질에서는 성폭행에 의한 임신인 경우,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신경관 결손 태아(‘무뇌아’)인 경우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이 중 신경관 결손 태아의 경우 2012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낙태가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등장하는 브라질 보수 복음주의 교회의 목사들은 의회로 진출해 성폭행에 의한 임신까지 포함하여 낙태를 전면 금지시키고자 하고 있다. “누가 잔디라를 죽였을까?”라는 질문에 그들은 “그녀 자신”이라고 답한다. 그들이 말하는 1,215명의 잔디라들은 “무책임하고 방탕하게 섹스를 하고 경솔하게 임신을 했으며, 결국 불법 낙태 시술로 위험을 자초한 여자들”이다.

한편,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범죄를 모니터링하는 에 의하면 2016년 한 해 동안 확인된 수치로만 144명의 트랜스젠더가 살해되었다. 이 사이트의 운영이 시작되었던 2008년 당시 57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보면 8년 만에 거의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2013년부터 동성결혼이 전면적으로 법적 인정을 받게 되었으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폭력과 살해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룰라 대통령 퇴임 이후 지우마 호세프 정권을 흔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나선 우파 정치의 득세, 경제적 혼란과 같은 맥락을 떼어놓고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잔디라의 끔찍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한 이 영화는 잔디라를 죽인 브라질 사회의 위선을 꼼꼼히 찾아 고발한다. 신의 이름과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워 낙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보수 복음주의 목사들은 성적 타락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해 막대한 돈을 모으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다. 낙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들 논리의 핵심에는 결국 남성, 가부장 중심의 이성애 가족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의 성을 통제하고 단속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하여 이는 자연스럽게 여성, 트랜스젠더, 동성애자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혐오로 이어진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감독은 이에 머물지 않고 브라질 사회에 미친 식민주의의 영향을 짚는다. 브라질 선주민들과 흑인 노예를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자연, 짐승과 같은 존재로 다루었던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기독교를 문명으로, 선주민의 문화를 사탄의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정복을 정당화했다. 신체를 구속하고, 노동력의 생산을 통제하며, 인식과 문화까지 뒤바꿀 수 있는 성적 통제와 처벌은 효율적인 식민 통치를 위한 핵심고리였다.

그래서 ‘섹스’와 ‘설교’는 결국 ‘정치’다. 역사와 생명을 좌우하는. 식민 통치를 위해,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선주민과 흑인들의 생명을 잔인하게 빼앗았던 정복자들의 논리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여성들과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들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정치 논리와 연결된다.

때문에 이 질문은 너무나 중요하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누가 잔디라를 죽였을까?”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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