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내가 살고 있는 이촌중산시범아파트는 한강변에 있는 낡고 낮은 아파트다. 네 번의 이사 끝에 이곳에 자리 잡은 나는, 동네 주변을 걷다가 밀려나고 발에 밟힌 존재들을 발견하게 된다. 갈 곳이 없어서 모인 사람들이 살던 동네는 이제 한강변에서 가장 이질적인 동네가 되었다. 밀려난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나는 그들과 나 사이의 닮음을 발견한다.
프로그램 노트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정말 어렵다. 누구나 깨끗하고 안전한 동네, 전망 좋은 집을 원한다. 비싸게 팔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게 집은 투기의 대상이 된다. 어떤 집은 ‘한강뷰’라는 이유로 몇 배나 비싸게 팔리고, 어떤 집은 시세차익의 수단이 된 채 비어 있다.
<한강가에 모여>의 감독 역시 ‘잘 살기’를 꿈꾸며 한강 부근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경관이 어쩐지 꺼림칙하다. 용산역 부근 재개발로 인해 바퀴벌레들은 이촌동까지 밀려났고, 지렁이, 달팽이들은 한강변 산책로에서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고 있다.
한강변은 본래 빈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하지만 불편한 것, 더러운 것, 징그러운 것, 쉽게 치워버릴 수 있는 것은 ‘도시 미감’이라는 명목하에 치워졌다. 깨끗한 산책로, 경계 삼엄한 아파트, 화려한 한강뷰 동네가 만들어지는 동안 약자들은 계속해서 밀려난다. 감독은 공감을 연대의 실마리로 삼아 노점상 투쟁 현장을 찾아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연대자들의 이야기도 듣는다.
우리는 아마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라는 고민으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함께 가져가야 하는 고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함께 살 수 있을까’가 아닐까? 영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화려한 폭죽놀이 뒤의 매캐한 연기. 누군가는 창을 닫은 채 그 화려함만 취할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서인
감독
2025년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 수업을 통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전공자이자 무소속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현재는 대전에 와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아버지의 가게에서 빵을 팔고 있다.
인권해설
1989년 이후 30년 넘게 2년으로 제한되어 있던 계약 기간이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겨우 4년이 되었지만, 서울 세입자들의 평균 거주 기간은 고작 3.7년에 불과하다. 세입자의 실제 거주 기간이 법적 보장 기간인 4년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세입자의 주거권이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큐멘터리 <한강가에 모여> 속 인물들은 주거 환경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1년에 네 번이나 이삿짐을 싸야 했다.
용산구는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자 주거권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다. 4년 전, 민달팽이유니온은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의 의견이 무시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용산구청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저층 주거지 보호, 이주 대책 마련, 세입자의 의사결정 참여를 요구했으나, “정비사업은 소유자들의 동의로 진행되기에 세입자의 의견은 수렴하기 어렵다.”라는 차가운 답변이 돌아왔다. 이 답변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 4년 전에도, 용산참사 때도, 80년대 <상계동 올림픽>의 기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이 땅에서 밀려났던 수많은 세입자와 지금 이곳에 사는 세입자들은, 모두 같은 답변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용산구는 주민의 65.9%가 세입자다. 주민 10명 중 6명이 세입자임에도 소유자가 아니면 주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동네를 가꾸었던 세입자들은 맨 먼저 쫓겨나고, 지워진다. 또한 용산은 18.7%가 주거빈곤가구이다. ‘한남 더힐’ 같은 고급 주택과 국내 최대 규모의 동자동 쪽방촌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극심한 주거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용산의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닌 자산 증식을 위한 상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촌동 옆에는 거대한 공공부지인 용산정비창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서울시는 민간에 매각해 ‘국제업무지구’를 세우려 한다. 세입자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용산정비창은 이윤을 위한 개발이 아닌 공공성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한강 위의 화려한 불꽃과 그 아래 떨어지는 화약 가루를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관상 정비’라는 이유로 노점이 철거되고, 사람들이 쫓겨나는 현실과 닮아 있다. 이러한 도시를 바꾸려면 세입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시가 모두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한강가에 모인 우리가 다음을 도모해야 한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인 거주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필요하며, 세입자의 삶이 집주인의 선의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관리를 요구해야 한다. 한강가로 밀려난 이들이 목소리를 모은다면 그 누구도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쫓겨나지 않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 최하은(민달팽이유니온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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