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에콰도르 아마존의 와오라니 사람들의 땅에서 사람과 식물의 연결을 다루는 민족식물학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연구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들이 이 땅에서 다시 만난다. <토로보로: 식물의 이름들>은 숲속으로 이들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1950년대 기독교 선교자들의 도착 이후 벌어진 집단학살적 식민지화를 회고하고, 7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석유 개발과 벌목 사업으로 현재 아마존의 숲, 사람과 문화가 처한 위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프로그램 노트
1990년대 에콰도르 아마존 지역에서 진행된 한 민속식물학 연구는 다양한 식물과 그에 대한 선주민들의 깊은 이해를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자금 부족으로 연구가 중단된 지 24년 뒤, 주요 연구진과 선주민들이 다시 만나 나무들의 성장을 기록하고 관찰한다. 평생 식물을 공부한 박사들도 와오라니의 숲에서 내딛는 한 걸음마다 새로운 식물에 대해 배우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1950년대 도착한 기독교 선교사들은 전도와 문명화를 명목으로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고, 외부인들과 함께 들어온 질병에 면역이 없던 수많은 선주민은 목숨을 잃었다. 1970년대에는 석유 회사들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땅 아래 묻힌 석유를 폭발 지진파로 탐사하고 시추하기 위해 주민들을 보상금으로 설득했고, 그렇게 돈 몇 푼과 삶의 터전을 맞바꾸었다.
와오라니 땅에는 아직 바깥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제대로 된 학명조차 없는 토착종들이 많다. 그리고 이 숲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선주민들이다. 숲과 함께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쌓이고 대대로 전해진 지혜는 이들이 없으면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온 땅에서 쫓겨났다. 도시에서 온 침입자들은 숲과 함께 이 땅에 담긴 수백, 수천 년의 지혜와 역사를 파괴하고 있다. 식물학자들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1만 종이 넘는 식물들에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한다. 이름을 붙이고 기록함으로써 와오라니의 숲이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경제적 이익과 성장으로 귀결되는 다양한 변명들로 계속되는 개발은 결국 바깥 사람들에게만 이익을 준다. 계속해서 지워지기만 하는 땅들을 기억하고 기록하자. 돈으로 사고파는 자원이 아닌 오랜 지혜와 관계, 삶과 역사를 담은 공간을 사라지게 둘 수는 없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효민
감독
마놀로 사르미엔토는 에콰도르 출신 영화감독으로, 현재 과야킬 예술대학교 영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에콰도르 가톨릭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파리 3대학 소르본 누벨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FLACSO 에콰도르에서 시각 인류학 및 인류학적 다큐멘터리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EDOC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주관하는 시네메모리아 재단의 창립 멤버이자 전 이사장이다.
인권해설
기후위기는 경제성장이라는 욕망의 밑 빠진 독에 화석연료 에너지를 콸콸 부으며 초래되었다. 숲은 석유 시추를 위한 블록으로 구획되고, 농토와 바다는 ‘끝없는’ 에너지 수요를 위한 공급지로 재편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환은 이러한 세계를 재편하려 하는가, 단지 에너지원만 바꾸어내고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전환인가. 아무래도 후자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밀려났는지 질문해야 한다.
<토로보로: 식물의 이름들>은 에너지 개발 과정이 어떻게 한 세계를 지우는지 보여준다. 자본은 “1헥타르당 40달러”를 약속하며 야수니 숲의 석유 시추를 위한 지진파 탐사를 벌이고, 선주민의 ‘문명화’와 이주를 강제했다. 숲은 단지 개발되지 않은 ‘자원’으로 측량되고, 선주민은 ‘교화의 대상’으로 다뤄지며 터전에서 밀려났다. 그곳은 본디 강과 숲, 동물과 식물이 얽혀 삶과 관계를 일구는 세계였다. 아직 학명조차 붙여지지 않은 무수한 식물들의 이름이 와오라니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사라져간다.
와오라니 사람들의 삶을 밀어내며 에너지를 개발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에도 반복되고 있다. 물과 전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를 향해 송전망이 삶터를 관통한다. 이윤만을 위한 재생에너지 개발은 농지를 침식하고, 주민들의 삶을 밀어내며 추진된다. 다단계 하청 구조에 놓인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은 산재 사고로 동료를 잃으며, 동시에 발전소 폐쇄로 인한 해고의 불안을 겪는다. 나무 11만 그루를 베어내며 지어질 양수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홍천 풍천리 주민들은 와오라니 사람들과 같은 말을 외친다. ‘살던 대로 살고 싶다’.
삶의 존엄, 공동체만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성장주의라는 밑 빠진 독을 깨버리는 싸움이 필요한지 모른다. 삶의 터전과 관계를 지키려는 투쟁들은 결국 더 많은 개발과 에너지 소비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세계에 맞서게 된다.
와오라니 사람들에게 숲은 삶과 관계의 이름들이 새겨진 세계였을 것이다. 사라져가는 식물들의 이름을 끝내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이 분투는, 모든 것을 개발과 성장의 수단으로만 관계 맺는 체제에 맞설 힘처럼 느껴진다. 에너지원만 바꾸는 전환으로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삶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 은혜(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프로그램 협력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은 기후위기와 기후부정의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의 근본적인 원인이 더욱 심화되는 국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이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성장체제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공동체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여 체제전환을 이뤄낼 것입니다.
리뷰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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