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도라스 Corydoras

작품 줄거리

시인 박동수는 30살까지 살았던 장애인 시설에서 자립해 지금은 한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그는 활동보조인 진산과 함께 밥을 해 먹고 장을 보러 가고 쇼핑도 하며 일상을 보낸다. 틈틈이 유튜브 콘텐츠도 올리고 시도 쓰려고 하는데… 시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설에서 만났던 시인 친구인 현덕이에게 전화해 ‘시’의 행방을 물어도 여전히 알 수 없다. 박동수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자신이 겪어온 공간과 관계를 찾아 나선다. 과거를 더듬으며 시상과 같았던 시간을 바라본다. 박동수의 삶은, 한 인간의 삶은 어떻게 시가 되는가.

프로그램 노트

박동수는 22년간 시설에서 지내며 50여 편의 시를 썼다. 그는 시 안에 미움도 고통도 없는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했다. 그러나 시설을 나온 후 그는 어째서인지 예전만큼 시를 자주 쓰지 않게 된다. 의아해진 박동수는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되짚으며 ‘시’의 의미를 찾아 나선다. 그의 기억을 따라 한 뇌성마비장애인의 시간과 관계들이 드러난다. 삶의 고뇌는 자신의 몫이겠지만 결코 홀로 지내지 않는 일상들이 삶 곳곳에 있다.

요즘 박동수는 매일 활동보조인 진산과 만나 바깥 외출을 한다. 종종 친구들과 다른 활동보조인도 만나고 술자리도 같이하며 서로의 인생을 함께 지낸다. 시설에 살 때는 어떠했던가. 공간 자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살 수 없다고 선을 그어놓은 곳이 아니었던가. 시설에도 장애인을 돌보는 비장애인은 있었으나 그 관계가 동료시민으로서 동등하지는 않았다. 박동수의 세상은 한 건물 안에 격리되었고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아주 불평등했고 부당했다.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닫을 때 어떤 관계는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단절되었고 세상은 단절되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박동수는 말한다. 시설에 있을 때는 희망도 없고 앞이 깜깜한 느낌이었다고. 그래서 시로 다른 세상을 만들었던 것 같다고. 시설에서 나온 지금 시는 박동수의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다. 공간이 바뀌자 관계의 방식이 바뀌었다. 그의 인생을 따라, 시의 의미가 재정립되는 과정을 따라 관계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추억과 사람이 쌓인다. 그는 마치 들판에 새처럼 둥지를 벗어나 연결의 공간으로 삶을 확장한다. 진산과 마을주민, 시장 상인과 미용사,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 그의 세상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도 박동수가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류형석

1988 년 울산 출생. 성균관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며, <그루잠>(2018)을 연출했다.

인권해설

미래를 감금당한 몸

“9살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살아가다가 30살이 되던 해에 임대주택으로 자립하여 생활하고 있다”
간결한 이 담긴 무수한 치열함을 어떻게 수 있을까 글을 시작하며 잠시 고민이 들었다.

2021년 2월 16일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던 또 다른 누군가가 시설을 뛰쳐나와 장애여성공감을 찾아왔었다. 시설은 ‘가출’이라 당사자와 지지자들은 ‘탈출’이라 말한 탈시설이었다. 그의 탈시설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퇴소 절차가 진행되기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설을 나가고 싶은 의사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정말 당신의 의지인가? 탈시설을 강제로 이끄는 운동단체가 배후에 있지 않은가? 무슨 목적으로 나가는 것인가? 시설을 나간다는 의미를 이해하는가? 라는 질문을 공무원, 시설관계자, 장애인 학대 상담 기관 관계자에게서 수없이 들었다. 그가 시설에 들어갔던 순간에는 누구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시설을 나오려는 순간 봇물 터지듯 터졌다. 마침내, 그를 옥죄었던 시설장의 ‘승인’을 받고서야 공식적으로 시설을 벗어날 수 있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던 시설을 나온 이유를 그는 단 한 줄로 설명하였다. “그곳은 집이 아니에요”

몇십 년을 머문 공간이 여전히 집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런데도 그 공간을 떠난다는 것, 떠나야 한다는 것, 떠나고 싶다는 것의 무거움은 탈시설의 근거이자 의지이다. 우리는 더 이상 시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말하고 싶지 않다. 2009년 마로니에 8인의 투쟁으로 시작되었던 그 처절함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꺼내야 하는가 어지러운 마음이 든다. 그것은 대구 희망원과 루디아의 집 등 시설 안에서 여전히 진행되는 지옥 같은 광경이다. 그런데도 박동수는 그것을 구태여 강조하지 않는다. 다른 세상을 그려내야 살아갈 수 있었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담담히 말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 또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 함께 살아가는 타인으로, 증언자로 목격하고 질문하고 기억하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오래도록 함께했을 시설의 선생님들은 끝끝내 알아듣지 못한 동수의 말을 어째서, 진산은 알아듣는가? 자신을 아버지라 칭하는 시설 원장은 어째서, 그의 아들인 박동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까? 실로암의 ‘집’은 왜 따스한 방바닥과 온기는 켜지 않은 채, ‘고깃덩어리’들이 전기장판 위에서 익어가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먹고 자고 씻고 배설하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온전히 타인의 손을 빌려야 하는 몸에게 이런 삶의 경험은 어떤 감각을 가지게 할까? 장애여성공감 활동 현장에 경험에 비추어보면 평생 길들여진(폭력과 돌봄이 때론 분리하기 어렵게 뒤엉켜 있는) 손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훨씬 더 큰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데도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의지는 시설이라는 집단거주의 형태가 바로 폭력임을 온몸으로 말한다. 나의 몸을 돌보지만 나를 바라보지 않는 곳. 그저 숨 쉬는 덩어리 중 하나로 덩그러니 시간을 살해하는 곳. 모든 가능성과 미래조차 감금된 채 이곳에서 살아가라는 명령은 시설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도 유지된다.

 

이곳 또한 지옥, 그러나 나의 전장(戰場)인 ‘나의 지옥’

화면 속 시설의 한 선생은 박동수에게 말한다. “어디 구석방에, 다락방에서 시들어 가는 줄 알았더니” 요보호자, 수용의뢰서, 전원 조치 단어들은 박동수의 몸을 여전히 다른 언어로 얽어매고 있다.

“지옥 같은 이런 곳에서 살면 내가 죽겠더라고, 내 시로 다른 세상을 만든 것 같아. (나와서는) 여기는 도망갈 데가 많으니까” 박동수의 독백은 이곳 또한 도망가야 하는 장소임을 고백한다. 어느 공간에서도 박동수의 몸은 환대받지 못한다. 욕망과 욕심, 삶의 켜켜한 의지는 채워지지 못한다. 그의 자위는 집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 비장애 동료의 청첩장을 받고 떠올리는 거절의 연애편지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를 말한다. 이기적인 하나님은 시설 밖에서도 여전히 이기적이고 사람들은 그가 어느 구석진 방에서 시들어갈 것이라 무례하게 말한다. 선별되는 몸, 부정되는 몸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박동수는 괴롭고 허무하고 외롭고 다채로운 이유로 삶이 괴로우며 동시에 충만하다. 이 시간은, 그리고 싸움은 명확하게 박동수의 것이다. 그것은 시설 안에서의 싸움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이곳에서는 맞붙어 싸울 구체적 실체가 있다. 너무나 많은 삶의 과제가 그의 실패와 승리와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박동수는 그 몫을 온전하게 자신의 몫으로 움켜쥐고 있다. 갈 수 있는 미용실, 반찬가게, 옷 가게, 맞추고 긴장해야 하는 활동 보조인 이 모든 것은 싸움이고 승리의 결과이다. 이 모든 시간이 그의 전장(戰場)에서 획득된 것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가 아님을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글로 쓰는 시가 어려워진다는 박동수의 말은, 그의 모든 시간이 시로 쓰이는 그리고 분투하는 시간임을 마주해야 한다는 말과 같이 들렸다. 그는 백지 대신 사회라는 이 확실한 공간에서 관계와 울분과 분노와 공허와 외로움과 그리고 그 모든 삶의 시간으로 시를 쓰고 있다.

아름다움을 영위하기 위해 수조에 갇힌 코리도라스를 소유하는 그의 방은, 그의 존재로는 아름다워질 수 없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또한 그가 선택한 아름다움이 그의 방에 놓일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불가능과 선택이 바로 그의 시임을 이제야 비로소 시작된 그의 싸움이지 않을까. 그 전장에서 스스로 마침내 아름답기를 연대로 대하며 응원하자. 그 싸움에 연대해야 할 이들은 오늘도 지하철 투쟁을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투쟁 열차에 함께 탑승한 시민일 것이다.

진아(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공감 https://wde.or.kr/
장애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1998년에 창립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장애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며,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125회 서울인권영화제내가 세상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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