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Norwegian Headache

작품 줄거리

노르웨이는 헌법은 환경에 대한 권리를 명시한다. 오늘날 노르웨이의 주요 산업은 석유 수출이다. 2017년, 북극해 석유 탐사 허가를 준 정부에 환경운동가들은 위헌 소송을 제기한다. 네이처앤유스 청소년 활동가, 그린피스의 법조인, 조부모 기후행동 활동가들은 세대간 기후 정의와 헌법적 권리를 외친다.

프로그램 노트

인간 탄소 배출량과 함께 지구의 평균 기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삶의 공간을 빼앗긴 생물 종들이 열대 바다, 북극, 도시 근교를 비롯한 모든 곳에서 속속들이 멸종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극에서는 거대한 빙하가 굉음을 내며 무너진다. 가장 먼저 타격 입은 사람들은 이미 삶의 공간을 잃었다. 인간은 지구 구석구석까지 영역을 넓혔고, 세계화된 자본은 어디든 손 뻗기를 주저 않는다. 지구가 두 개여도 모자랄 만큼 자원을 소비하고, 옮기고, 폐기한다. 석유는 이 과정을 신속하고 멈춤 없도록 하는 연료이며 재료이다. 노르웨이 정부는 23차, 24차 석유 라이선싱 라운드에서 북극해 시추를 허가했다. 석유를 뽑기 위해서라면 북극을 침범해도 좋다는 거다. 환경운동가들은 노르웨이 헌법 112조, ‘모든 사람은 건강하고 풍족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근거로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노르웨이 법정의 한 사건일 뿐임에도 지구의 상황을 요약한 상징처럼 보인다. <<뿔 위의 생>>은 더 나아가, 환경 문제는 필연적으로 환경정의와 인권의 문제임을 직접적으로 그린다.

노르웨이 청소년 활동가들은 어른들이 묻지도 않고 미래를 결정하고, 환경을 손상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정부가 법을 어겼다”고 지적한다. 노년의인 활동가는 “이 상황을 통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노르웨이 후손뿐 아니라 전 세계의 비특권 층과 섬 지역 주민들”이라며, 얻는 이와 잃는 이가 각기 다른 “지구적 부정의”를 시인한다. 중장년층 법조인 활동가들은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과 어린이의 권리를 위해 “헌법적 보호를 요청”한다. 노르웨이 정부의 결정에 발언권을 갖지 못한 채 피해당하는 집단이 노르웨이 아동청소년미성년 층뿐만이 아님은 분명하며, 반대로 단기적 이익을 얻는 집단 역시 노르웨이 기업과 정부만이 아님도 분명하다. 노르웨이가 북극해에 구멍을 뚫으면, 그 영향은 노르웨이도 한국도 아닌 곳을 먼저 방문한다. 유럽인들이 바다 건너 아프리카의 뿔에 위험과 질병을 폐기한 것처럼.

한국은 석유 소비량 세계 7위, 인구 당 소비량으로 따지면 순위는 더 올라간다. 먼 나라임에도 노르웨이의 일이 한국의 일인 이유 중 하나다. 노르웨이 기후 활동가들이 법원에서 투표권이 없는 후대의 헌법적 권리를 주장했지만, 그들이 단지 한 나라의 헌법만을 근거로 그 나라 국민만의 권리를 요청한 것은 아닐 테다. 노르웨이 국민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풍족하고 건강한 환경을 가질 권리가 동등하게 있다. 이건 헌법을 뛰어넘는, 국경 없는 정의다. 한 국가가 한 지역에 저지른 일이 온 지구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우리가 환경 안에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이 누군가의 생의 터전을 이윤으로 환산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결정하는 자, 이익을 얻는 자, 무언가를 잃는 자들이 각기 다르지 않기를 요구한다. 또, 절망하거나 외면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기후 연구자들은 두려운 미래를 체감하면서도 여전히 현장에 나간다. 젊은 활동가들은 곳곳에 모여 어른들이 저질러놓은 불공평한 현실에서 절망하지 않을 힘을 찾는다. 느린 재앙의 생존자는 모두가 떠난 마을에서 끝까지 뿔의 생을 붙잡는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행동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룬 덴스타드 랭글로

룬 덴스타드 랭글로는 1972년 4월 16일 노르웨이 트론헤임에서 태어났다. <Nord>(2009년), <Jagetter vind>(2013년), <Welcome to Norway>(2016년)로 잘 알려진 감독이자 프로듀서이다.

인권해설

노르웨이. 이름 그대로 한참 북쪽의 나라, 복지국가 선진국에 국민들도 관대하고 도시든 시골이든 깨끗해 보이는 나라다. 평소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니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느끼고 친환경 실천에도 열심히 나설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도 두통이 있다. 기후 위기와 화석에너지라는 두통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안정성의 상당 부분은 세계에서 손꼽는 석유와 가스 수출국인 덕분이다. 그런데 이 나라 북극 바렌츠해의 석유 시추가 심각한 반대를 만났다. 석유 개발권 면허를 내준 정부를 상대로 ‘기후 소송’이 벌어진 것이다. 법조인들뿐 아니라 청년 기후활동가, 은퇴한 전문가, 시민들이 이 시추 허용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노르웨이 헌법 제112조는 “모든 사람은 건강에 이로운 환경과 생산성, 다양성이 유지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태어나지 않은 모든 노르웨이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채굴 사업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송이다.

하지만 재판은 원고에게 쉽지 않게 흘러간다. 석유 시추가 노르웨이의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거니와, 피고 즉 정부 측의 논리는 시종일관 절차적인 부당성은 없다는 것이다. 석유 시추를 더 할 것인지 또는 기후 위기를 감내할 것인지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지 그것을 법원이 답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정치적 영역의 답을 할 수 없는 법관들의 대답은 ‘기각’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법원 바깥의 장면들까지 보아야 한다. 기후학자들과 주민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가는 노르웨이의 빙하를 기록하고 증언한다. 그러나 석유 채굴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 나라의 많은 지자체와 노동자들은 기후뿐 아니라 생존도 현실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윤리적 당위론만으로는 이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얼마 전 독일에서 벌어진 유사한 기후소송은 기후 보호법이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며 원고가 승소했고 의회는 기후 목표를 상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몇 건의 기후소송이 시작됐다. 이기기 쉽지 않은 법률 투쟁이지만, 그 과정과 결과 모두가 기후 위기와 인권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바꾸는 의미가 있으니 최선을 다할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노르웨이 정부 측의 말처럼, 애초 법으로 해결이 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대체 어떤 법과 제도가 기후 피해와 기후 회복을 온전히 보장해 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노르웨이의 ‘두통’이라는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두통은 문득문득 찾아오고 쉬이 걷히지 않으며 하나의 처방으로 낫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소송과 싸움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두통으로, 그러나 대화와 행동을 만들어내는 두통으로 함께 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우(기후위기 비상행동, 탈성장 대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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