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미투 #AfterMeToo

작품 줄거리

스쿨미투의 시작부터 피의자에게 실형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본다. 박정순은 ‘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아픈 이야기를 한다. ‘쌩 의지’만 가지고 용기를 내서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와 섹스, 그리고 나의 감정에 대해 풀어낸다. 네 개의 이야기지만 하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네 이야기지만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애프터 미투>는 미투 이후는 어떤 순간 이후에 온 시대가 아니라, 고뇌하고 용기 내고 말하고 만나고 잇고 싸우고 쉬고 다시 싸우며 만들어가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1. 여고괴담

서울의 용화여고에는 입학하면 선배들로부터 전해 듣게 되는 괴담이 하나 있다. ‘그 선생님에게는 못 보이지도 말고, 잘 보이지도 말고 그냥 보이지 말라’ 그리고 2018년의 어느 날 아침, 졸업생들이 모여 모교의 성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괴담 속 선생님을 고발했다.

#2.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매일, 같은 문장을 백번씩 적어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40이 다 돼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3. 이후의 시간

문화예술계 내 미투 이후 공동체의 문화를 바꾸고자 생존자들에게 함께 연대해왔던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살펴본다.

#4. 그레이 섹스

“원하긴 원해,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였어.” 귤, 달콤, 삐삐, 토기가 발화한다. 각자의 이야기에는 어떠한 ‘욕망’이 있었고, 그로 인해 주체성이 들어간 ‘행동’ 그리고 그 결과로 ‘불쾌감’이 남아있다. 이 불쾌감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프로그램 노트

미투에 ‘이후’가 있을까?

미투 이후는 한 줄의 시간선이 아니라 수많은 결들이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뒤로 돌아가기도 하고 뚝 끊겼다가 엉켰다가 팽팽해졌다가 느슨해지기도 하며 만들어진 지형이다. 세상 속에서 무너지고 지워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지층을 가진 단단하면서도 복잡다면한 지형을 만든다. ‘나를 용서한다’고 소리 내서 내게 말해주고 비슷한 서로를 직접 찾아 나서고, 끝없이 고민하고 이야기한다. 나의 평화를 찾고 누군가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 

영화에 나오는 이들과 ‘우리’는 고통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각자 다른 형태로 찾아오는 기억과 고통, 아무런 잘못이 없는 나를 돌아보았던 순간들을 담담하게 때로는 두려워하며 이야기한다. 이처럼 ‘미투’와 ‘이후’의 의미는 모두에게 다르다. 하지만 ‘피해자’라는 말 앞에서 자신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미투 이후라는 복잡한 지형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감정들은 실존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분명히 존재하는 이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말로 내뱉는 것을 막고 때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전’과 같이 자기 삶을 돌보기 위해서도,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도, 연대하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매우 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왜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껴지는 연결된 감각을 가지고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도우며 계속해서 새로운 일들을 해 나간다. 이렇게 서로의 목소리가 모여 세상에 하나씩 변화를 만들어갈 때 ‘해소되지 못한 마음의 목소리’는 역사가 된다.  

혐오와 차별을 기반으로 한 폭력적인 가부장 사회가 끝장났을 때, 세상에서 성폭력이라는 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미투’라고 말하는 일은 끝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부단히 그런 세상을 일궈 나가는 중이다. 역사라는 것이 과거에 있었던 사건 혹은 시기를 의미한다면 혐오범죄와 성폭력이 일어나는 지금의 남성중심사회, 가부장사회는 가까운 앞날의 사람들이 역겨워할 시기이기를. 역사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무형의 흐름을 의미한다면 끝나지 않는 폭력과 혐오의 굴레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타인을 치유하고 끝없이 ‘미투가 바꿀 세상’을 말하며 맞서 싸우는 사람 그 자체이기를.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박소현 PARK Sohyun, 이솜이 LEE Somyi, 강유가람 KANGYU Garam, 소람 Soram

#여고괴담: 박소현PARK Sohyun

<야근 대신 뜨개질>(2015), <구르는 돌처럼>(2018),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2019)등을 연출했다.
She directed documentaries The Knitting Club (2015), Like a Rolling Stone (2018), among others.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이솜이 LEE Somyi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전공하고 시선과 시각 사이에서 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She is directing videos between views and perspectives.

#이후의 시간: 강유가람 KANGYU Garam
다큐멘터리 <모래>(2011), <이태원>(2016), <우리는 매일매일>(2019) 등을 연출했다.
She directed documentaries Itaewon (2016), Us, Day by Day (2019), among others.

#그레이 섹스: 소람 Soram
다큐멘터리 <먹방>(2014), <통금>(2018)을 연출했다. 애매함들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싶다.
Director of documentaries Meokbang (2014) and Curfew(2018).

인권해설

청소년 시기에 나는 어딜 가도 청소년인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단순히 갈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미용실에 가서도 제 나이를 대강 짐작하며 대학 생활을 물어보는 미용사에게 알지도 못하는 과를 지어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교통카드를 찍으면 ‘청소년입니다’라고 울리는 기계음 역시 매번 늘 큰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나 생각하면, 결국 사회가 이제껏 청소년을 어떻게 대해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하며, 불완전한 존재라는 통념 아래 놓여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아동·청소년의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때로는 너무나 사소하고, 혹은 ‘어른이 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유예되고는 한다.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 위주의 모진 입시 과정은 물론이고, 생활 패턴, 개인의 욕구, 마음과 감정까지 쉽게 무시되거나 천편일률적으로 부모나 교사, 보호자에 의해 통제된다. 어린 사람의 삶은 누군가 통제하거나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믿음 속에서 청소년이 겪는 불평등이나 폭력이 말해지거나, 당장 해결을 요하는 사회적 문제로 호명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2018년부터 수많은 사건이 고발된 스쿨 미투는 학생들의 삶의 현주소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불평등한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스쿨 미투가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얻은 이후, 대다수의 비청소년 여성들은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연대와 지지를 표했지요. 그렇다면 그 폭력은 왜 수십 년간 묵인되고 용인되다가 지금에 와서야 고발되었을까? 폭력의 역사는 앞서 폭력을 겪은 이들이 ‘말하지 않은’ 일이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만든 사회적 구조에서 기인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사람이 삶에서 겪는 문제가 사회에서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쿨 미투 운동은 폭력과 혐오로 얼룩져 있는 여학생들의 일상을 사회적 문제로써 호명했고, 그동안 무정치하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겨졌던 여성 청소년들이 ‘말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가”로서 거리로 나섰고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들은 실제로 학교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쿨 미투에 대한 말하기들은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디디며 이어지기도 했다. 가해 교사는 학교로 복직하고, 고발자로 나선 이들은 학교 내에서 다시 눈총과 백래시를 경험하고, 청소년을 피해자로만 호명하는 사회는 학교의 불평등이 아닌 교사 개인의 악마성에 주목했다. 특히 피해 사실을 고발한 청소년들은 고발 이후 자신의 말하기가 만들어낸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피해 사실을 의심 받고 무정치와 “가만히 있으라.”는 ‘학생다움’을 요구받으며 고립되었다. 특히 스쿨 미투 운동을 이어온 당사자들을 운동가나 고발자가 아닌 피해자나 청소년으로만 보는 시각은 이들의 말하기가 이어져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에 대한 논의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사회에서는 흔히 청소년을 미래 그 자체라고 호명하거나, 청소년이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강조하고는 한다. 학내 성폭력이 유구하게 일어났던 현실과 스쿨 미투 이후 고발자들이 겪었던 한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해왔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는, 더 나은 현재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당연하고 마땅한 이야기가 “나중에”라는 연호(連呼)로 유예되는 광경처럼, 청소년의 더 나은 삶이 미래로 유예되어온 것이다. 청소년이 당장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더 나은 미래 역시 상상할 수 있다. 더불어 청소년의 말하기나 행동들이 ‘미래’를 위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 청소년이 아닌 이들 역시 10년, 20년 후의 미래보다는 당장 잘 살자고 많은 일들을 고민하고 시도해보듯, 청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년이 더 나은 미래 이전에 더 나은 현재에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유경(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2425회 서울인권영화제우리가 된 역사다시, 함께, 내일도!다시, 함께, 내일도!거기에선 상영하지 않습니다텔아비브국제엘지비티영화제 보이콧 선언 감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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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롬사랑해

    황정은의 <일기>가 이렇게 시작되더군요.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거기 있는 분들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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