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넷째날] <기억의 숨결> 아흔여섯의 삶에 깃든 프라이드

소식

기억의 숨결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원활동가 나기와 이야기손님인 김영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기와 김영옥 가운데 수어통역사 최지영이 통역 중이다.

 

벌써 25회 서울인권영화제 넷째날입니다. 오늘 두번째 영화는 이탈리아 최고령 트랜스여성의 삶이 담긴 영화 <기억의 숨결> 이었습니다. <기억의 숨결>은 주인공 루시의 일상과 그녀의 기억을 고요하게, 동시에 풍부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몸에는 여러 다층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트랜스여성의 퀴어서사가 담겨있기도 하고 아흔을 훌쩍 넘긴 노년의 여성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며 세계2차대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루시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겪은 역사를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죠. 처음에는 차를 운전해 병원에 갔다가 어느 순간에는 보행기에 의지에 길을 걷고 마지막에는 전동휠체어에 앉아 움직입니다. 그녀는 기록에 꼼짝없이 고정된 부동의 존재가 아닙니다. 숨쉬고 움직이며 역동하는, 사람과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또 누군가를 돌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영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옆에서 나기가 메모를 하며 듣고 있고 수어통역사 최지영이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의 김영옥님을 모셨습니다.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여 사람의 생애를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단체인데요, 그만큼 김영옥님께서는 페미니즘의 렌즈로 영화를 설명해주셨습니다.

 

” 사실 우리가 한 10년 전쯤에 퀴어는 어떻게 늙어갈까? 이런 식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퀴어로 사는 사람들은 빨리 죽을거야, 5년도 못 살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루시는) 오래 사셨잖아요. 너무나 건장하시고 일상을 아주 또박또박 잘 챙겨나가시는 모습이 일단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래서 몸으로 산다, 역사 속의 자아, 주체, 몸으로 사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

“…(중략) 전체적으로 보면 루시는 생존자죠. 성폭력의 역사를 살아남았고 나치의 인종학살 현장을 살아남았고 퀴어로 규범, 정상성의 세계에 맞서서 살아남은 생존자인데, 저한테는 임 ㅗ든 다면적인 혹은 선이 여러개인 인생의 행로가 이 사람이 몸으로 살아낸 인생에 그대로 새겨져있고 (중략) 마지막에 잘 다러나는 게 루시는 가족을 꾸리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대안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을 옆에 두고 ”  

– 김영옥

 

영화에서 루시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징집되었다가 독일군에 소속되기도 하고, 그곳에서 홀로코스트의 역겨움을 경험하고 탈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다시 다카우(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되고, 트랜스여성임에도 남성들과 함께 수감되는 혐오를 경험하죠. 현재의 루시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일상을 단단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특정한 가치판단을 시도한다기 보다는 루시의 삶을 루시의 힘으로, 그리고 루시 주변 사람과 관계에서 무언가를 그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영장에서 관객의 김영옥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생애사, 구술사 이런 일을 하려면 혹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까요”

– 관객질문

 

“목소리, 그 목소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 단어에도 관심이 있지만 일단 그 목소리의 물성, 목소리가 어떤 생애 족적을 담고 있는가 이렇게 중요하고 (…중략) 쉰 목소리에 거칠고 느리고. 근데 자꾸 듣다 보면 이게 리듬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나이 든 분들하고 만나려고 할 때 대화를 나눈다는 것에 너무 집중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 김영옥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영화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특히 많은 시대를 거쳐 내가 모르는 세대를 축적한 사람과 대화할 때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을 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늙어갑니다. 하지만 의외로 ‘늙음’, ‘죽음’, ‘노년’이라는 키워드는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만큼 노년의 모델이 적은건가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 서울인권영화제도 이러한 주제를 많이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내일이면 서울인권영화제도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까지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11소식

[25회 넷째날] <세월>

소식

25회 인권영화제 넷째날 저녁, 한국에서 일어난 사회적 참사를 다룬 영화 <세월>이 상영되었습니다. 영화는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이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만난 다른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장민경 감독님이 관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오지수 감독님이 관객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세월이라는 것이 단순히 어떤 무기력하고 슬픔 안에 갇혀있는 시간이었던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떠난 이와 질문을 자꾸 주고 받으면서 그 다음 자신의 삶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이전의 삶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스스로가 많이 변해왔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 장민경

” 영화의 제목이 <세월>이라는 것 자체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또는 일면 압도 당하는 부분이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오지수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 참사’에 일정 부분 마음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너무 안타까운 사건이라, 너무 무겁고 속상한 사건이라 쳐다보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요.

 

“4.16을 이야기 할 때 추모라는 말보다 기억이라는 말을 썼잖아요. 그랬을 때 이런 작업들, 영화라든가 다큐로 남기는 작업들, 그래서 저희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이 앞으로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그것을 계쏙 기억하고 상기시키는 작업들이 필요할텐데. 이렇게 힘든 작업을 해주신 분들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 관객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의 상태가 되어버리고는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정말 단순한 게 아닐까 싶어요. 잊지않는 것, 연대하는 것, 함께 싸우는 것, 변화의 외침을 외롭게 두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해야하는 “위로의 말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왼쪽에는 오지수 감독님, 오른쪽에는 장민경 감독님이 앉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두 감독님의 지향점도 들을 수 있었는데요, 장민경 감독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죽음과 질환을 앓고 사는 삶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건강과 정상이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밝히기 어렵거나 격리되어야 하는 이야기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내면의 화해나 살아갈 방향을 찾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셨어요. 사회적으로는 흔히 말하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 안에서 다른 시선으로 역사를 기록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지수 감독님은 최근에 카메라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셨다고 해요. 카메라는 도구이자 매개체지만 특히 현장을 기록한다는 의미는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듣지 않고 찍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하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 현장마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잘 듣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들을 한다고 하시네요.

 

우리는 다양한 매체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뉴스와 SNS와 유튜브 등 어딜가나 들을 수 있는 매체가 이죠. 그리고 그만큼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도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매체는 당사자의 말을 묵살하는 내용이 담기도 하고, 생존의 외침을 이기심이라고 비하하는 내용을 담기도 하죠. 결국에는 다 이어지는 이야기인거 같아요. 우리는 들어야하고, 들은 것을 알려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며, 기억을 실천으로 전환하고, 더 나은 나와 너, 우리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요.

그 과정에 서울인권영화제도 항상 함께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가 함께 해 주실거죠?

10소식

<긱 이즈 업> 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 노트

요즘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음식 배달, 택시, 대리운전, 청소, 여행, 이사, 외주 프로젝트, 어떤 일이든 몇 번의 클릭이면 끝난다. 매출도 투자도 IT 업계로 몰려 든다. 소비자가 모여든 만큼 노동자도 모였다. 국내 통계만 보아도 2021년 전체 취업자 8%에 해당하는 220만 명이 플랫폼으로 일감을 얻었다.

인공지능과 알고리듬, 정보산업 혁명의 이면에는 노동자가 있다. 최초의 긱(Gig, 일회성의 작은 일감) 플랫폼인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는 그 이름을 ‘터크’라는 18세기 체스 기계에서 따왔다. 기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자 안에 숨어 있는 사람이 체스 말을 조종한 사기극이었다. 인공 지능 데이터 처리 등을 맡기는 이용자들에게는 일감이 사람 없이 인공지능만으로 완성되는 양 보여 준다. 알고리즘의 횡포 아래, 일하는 노동자들은 지워진다.

알고리즘은 휴대폰 앱을 통해 특정 노동자가 현재 접속 중인지, 얼마나 답변을 빨리 하는지, 일감 수락을 얼마나 빠르게 많이 했는지 등을 확인한다. 그에 따라 일감과 보수를 다르게 준다. 상의 없이 노동자의 계정을 차단하거나 정지 시키기도 하는데, 한 사람의 생계를 위협하는 행위임에도 이런 알고리듬을 규제하는 법과 사회적 합의는 턱없이 모자라다. 노동자들이 내일도 출근해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노동 조건이 필요하다.

영화 제목인 “긱 이즈 업”은 여태껏 네가 부리던 수작은 들통났으며 이제 통하지 않을 거라는 이중 의미를 담고 있다. <긱 이즈 업>의 노동자들은, 중개자・관리자가 알고리즘이어도 ‘우리’는 숨을 쉬는 진짜 인간이라고 외친다. 고용주의 책임을 회피해온 플랫폼 기업들은 여전히 그 외침을 무시하려 애쓴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우리의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선언과 함께.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영화별 상영 시간표

  • 2022년 09월 25일 15:20
11프로그램 노트

[25회넷째날] <기다림>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소식

이른 아침부터 많은 분께서 성미산마을극장을 찾아주셨어요! 4일차의 첫 상영작 <기다림> 관객과의 대화는 정말 뜨거웠는데요, 섹 알 마문 감독님,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님, 최지영 수어통역활동가님,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의 장정수 속기사님, 그리고 열정적인 관객 분들께서 함께 해주셨습니다. 

 

, 섹 알 마문 감독님,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님, 최지영 수어통역활동가님, 자원활동가 요다님이 앉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섹 알 마문 감독님께서 영화를 만드신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셨는데요, 한국에서 활동하시면서 동지들로부터  ‘위안부’에 대해 듣게 되었고, 방글라데시에서 교육 받은 일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셨다고 해요. 이 생각이 방글라데시 ‘비랑가나’로 이어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이야기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영화를 만들게 되셨다고 해요. 

 

, 섹 알 마문 감독님, 독립연구활동가 심아정님, 최지영 수어통역활동가님, 자원활동가 요다님이 앉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전시성폭력을 연구하고 있으신 관객분께서 지금의 상황은 어떤지,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질문해 주셔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께서 방글라데시 안에서 ‘비랑가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고 이에 대해 활동하는 조직은 있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움직임은 없다고 답해주셨어요.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정님께서는 닮은 역사가 왜 계속 반복되는지와 관객분들과 함께 영화를 보시면서 메모하신 생각들을 공유해 주셨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가 “국가 간에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나 촘촘한 그물망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피해여성들은 말을 못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말을 안 했다는 것,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 한국의 가해 역사도 조명해야 한다는 것, 한국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이 피해 경험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의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뚫어놓은 길이 있었다는 것, 등 우리가 놓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사유해야 할 큰 흐름들과 기억의 힘을 마주하는 섬세한 자세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관객분들과 좋았던 장면을 공유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는데요, 한 관객분께서 ‘사느라고 죽을 뻔했어요’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는 말씀과 카메라에 담긴 자기 말로 직접 이야기 하는 여성들의 얼굴이 좋았다는 감상을 나눠주셨습니다. 아정님께서는 마지막에 ‘비랑가나’ 여성이 원한의 감정과 복수심을 드러내는 것이 후련하고, “그런 마음들 앞에서 사실 화해, 치유, 해결이라고 하는 말들을 꺼내기가 참 어렵고. 그리고 쉽사리 꺼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심정을 존중해주시는 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라고 나눠주셨습니다. 

 

섹 알 마문 감독님께서 “독립영화감독들은 작품을 좋아해주는 관객분들이 있으면 또 힘이 나고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많은 분들이 얘기 해주고 좋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는 말씀과 함께 서울인권영화제에 대한 관심도 부탁드려 주셨어요…(하트) 

 

영화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거시적인 흐름에 대해서도 배우고, 특별 상영회 기획까지 해볼 수 있는 깊고 진한 관객과의 대화였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5회 서울인권영화제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10소식

인권해설: <애프터 미투>

인권해설

청소년 시기에 나는 어딜 가도 청소년인 것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단순히 갈 수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미용실에 가서도 제 나이를 대강 짐작하며 대학 생활을 물어보는 미용사에게 알지도 못하는 과를 지어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교통카드를 찍으면 ‘청소년입니다’라고 울리는 기계음 역시 매번 늘 큰 것 같았다. 그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나 생각하면, 결국 사회가 이제껏 청소년을 어떻게 대해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판단력이 부족하며, 불완전한 존재라는 통념 아래 놓여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아동·청소년의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때로는 너무나 사소하고, 혹은 ‘어른이 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유예되고는 한다. 대학에 가기 위한 경쟁 위주의 모진 입시 과정은 물론이고, 생활 패턴, 개인의 욕구, 마음과 감정까지 쉽게 무시되거나 천편일률적으로 부모나 교사, 보호자에 의해 통제된다. 어린 사람의 삶은 누군가 통제하거나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는 믿음 속에서 청소년이 겪는 불평등이나 폭력이 말해지거나, 당장 해결을 요하는 사회적 문제로 호명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2018년부터 수많은 사건이 고발된 스쿨 미투는 학생들의 삶의 현주소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불평등한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스쿨 미투가 대중에게 많은 관심을 얻은 이후, 대다수의 비청소년 여성들은 자신이 학교에 다닐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며, 연대와 지지를 표했지요. 그렇다면 그 폭력은 왜 수십 년간 묵인되고 용인되다가 지금에 와서야 고발되었을까? 폭력의 역사는 앞서 폭력을 겪은 이들이 ‘말하지 않은’ 일이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만든 사회적 구조에서 기인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사람이 삶에서 겪는 문제가 사회에서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쿨 미투 운동은 폭력과 혐오로 얼룩져 있는 여학생들의 일상을 사회적 문제로써 호명했고, 그동안 무정치하고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겨졌던 여성 청소년들이 ‘말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가”로서 거리로 나섰고 용기 있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들은 실제로 학교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쿨 미투에 대한 말하기들은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디디며 이어지기도 했다. 가해 교사는 학교로 복직하고, 고발자로 나선 이들은 학교 내에서 다시 눈총과 백래시를 경험하고, 청소년을 피해자로만 호명하는 사회는 학교의 불평등이 아닌 교사 개인의 악마성에 주목했다. 특히 피해 사실을 고발한 청소년들은 고발 이후 자신의 말하기가 만들어낸 실질적 변화를 체감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피해 사실을 의심 받고 무정치와 “가만히 있으라.”는 ‘학생다움’을 요구받으며 고립되었다. 특히 스쿨 미투 운동을 이어온 당사자들을 운동가나 고발자가 아닌 피해자나 청소년으로만 보는 시각은 이들의 말하기가 이어져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에 대한 논의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사회에서는 흔히 청소년을 미래 그 자체라고 호명하거나, 청소년이 미래에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강조하고는 한다. 학내 성폭력이 유구하게 일어났던 현실과 스쿨 미투 이후 고발자들이 겪었던 한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해왔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는, 더 나은 현재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당연하고 마땅한 이야기가 “나중에”라는 연호(連呼)로 유예되는 광경처럼, 청소년의 더 나은 삶이 미래로 유예되어온 것이다. 청소년이 당장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더 나은 미래 역시 상상할 수 있다. 더불어 청소년의 말하기나 행동들이 ‘미래’를 위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 청소년이 아닌 이들 역시 10년, 20년 후의 미래보다는 당장 잘 살자고 많은 일들을 고민하고 시도해보듯, 청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청소년이 더 나은 미래 이전에 더 나은 현재에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유경(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8인권해설

인권해설: <파디아의 나무>

인권해설

팔레스타인 사람은 누구일까? 현재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하면 보통 1967년 이스라엘에 군사 점령당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군사 점령지에만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안에도 이스라엘 인구의 18%를 점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있고,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등 인근 국가에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있다. 이스라엘은 이들 난민이 원래의 고향인 현대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을 건국 이래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원주민을 인종 청소하며 ‘팔레스타인’이란 땅 위에 들어섰다. 당시 이스라엘이 파괴한 마을은 530개, 학살당한 원주민은 15,000명, 강제 추방당한 난민은 80만 명에 달한다. 아랍어로 이때를 나크바, 우리말로 대재앙이라고 부른다. 이때 쫓겨난 이들과 후손들의 숫자는 열 배가 됐지만, 재산을 보상받거나 귀환할 권리를 인정받긴커녕 지금까지 버텨온 팔레스타인 주민들마저 급속도로 쫓겨나고 있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에게 대재앙은 74년간 현재진행형이다.

전체 팔레스타인인의 절반에 달하는 난민을 빼놓고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마치 난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국제사회는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를 제외하고,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22%에 해당하는 땅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우라고 얘기한다. 이스라엘이 이 22%의 땅마저 강제 영토병합과 몰수 등으로 침식해 들어온 데다 예루살렘 전체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한다는 점을 도외시해도, ‘팔레스타인독립국가’라는 허울 좋은 해결책은, 실은 난민들에게 이스라엘이 파괴한 원래의 마을로 돌아갈 꿈도 꾸지 말라고 선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해를 거듭하며 더욱 극우화되고 있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전체 원주민을 내쫓고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전체 위에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를 세우려 하고 있다.

오래전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게 가하는 억압의 시스템이 ‘아파르트헤이트’라고 규정했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한 인종 집단에 의한 다른 인종 집단에 대한 지배, 조직적 억압’이라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정의에 부합한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일어났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민사회는 물론 국가수반 역시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라 규정했고, 지난 수년간 휴먼라이츠워치,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인권 단체는 물론 유엔의 여러 단위에서조차 같은 얘길 하기 시작했다. 인류에겐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도록 강제한 경험이 있다. 바로 억압자들에 대한 제재를 통해서다. 팔레스타인 민중은 전 세계 시민사회에 해방투쟁에의 연대를 호소하며 2005년부터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된 전방위적인 인적/물적 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캠페인(BDS 캠페인)에 동참할 수 있는 투쟁 방안을 제시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아보자.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https://twitter.com/pps_kr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1948년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와 아파르트헤이트, 군사점령 문제를 한국사회에 알리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단체입니다. 이스라엘의 체계적 억압에 공모하는 기업을 보이콧하거나 투자철회를 요청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스라엘에 군사·경제 제재를 가해 이스라엘이 식민화를 끝내도록 강제하자는 BDS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와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9인권해설

인권해설: <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권해설

노르웨이. 이름 그대로 한참 북쪽의 나라, 복지국가 선진국에 국민들도 관대하고 도시든 시골이든 깨끗해 보이는 나라다. 평소에 오로라를 볼 수 있으니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몸으로 느끼고 친환경 실천에도 열심히 나설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나라에도 두통이 있다. 기후 위기와 화석에너지라는 두통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이 누리는 부와 안정성의 상당 부분은 세계에서 손꼽는 석유와 가스 수출국인 덕분이다. 그런데 이 나라 북극 바렌츠해의 석유 시추가 심각한 반대를 만났다. 석유 개발권 면허를 내준 정부를 상대로 ‘기후 소송’이 벌어진 것이다. 법조인들뿐 아니라 청년 기후활동가, 은퇴한 전문가, 시민들이 이 시추 허용이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판단을 요구한 것이다.

노르웨이 헌법 제112조는 “모든 사람은 건강에 이로운 환경과 생산성, 다양성이 유지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태어나지 않은 모든 노르웨이인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 채굴 사업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송이다.

하지만 재판은 원고에게 쉽지 않게 흘러간다. 석유 시추가 노르웨이의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거니와, 피고 즉 정부 측의 논리는 시종일관 절차적인 부당성은 없다는 것이다. 석유 시추를 더 할 것인지 또는 기후 위기를 감내할 것인지는 정치적 판단의 문제이지 그것을 법원이 답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정치적 영역의 답을 할 수 없는 법관들의 대답은 ‘기각’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법원 바깥의 장면들까지 보아야 한다. 기후학자들과 주민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가는 노르웨이의 빙하를 기록하고 증언한다. 그러나 석유 채굴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이 나라의 많은 지자체와 노동자들은 기후뿐 아니라 생존도 현실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윤리적 당위론만으로는 이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얼마 전 독일에서 벌어진 유사한 기후소송은 기후 보호법이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침해한다며 원고가 승소했고 의회는 기후 목표를 상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몇 건의 기후소송이 시작됐다. 이기기 쉽지 않은 법률 투쟁이지만, 그 과정과 결과 모두가 기후 위기와 인권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바꾸는 의미가 있으니 최선을 다할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노르웨이 정부 측의 말처럼, 애초 법으로 해결이 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대체 어떤 법과 제도가 기후 피해와 기후 회복을 온전히 보장해 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노르웨이의 ‘두통’이라는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두통은 문득문득 찾아오고 쉬이 걷히지 않으며 하나의 처방으로 낫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소송과 싸움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두통으로, 그러나 대화와 행동을 만들어내는 두통으로 함께 앓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현우(기후위기 비상행동, 탈성장 대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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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기억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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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 30여 년 전쯤 다하우 강제수용소 기억공간에 갔을 때, 출입문 한가운데 달린 이 문구가 불러일으킨 감각이 생생하다. 들어갈 때도 기이한느낌이었지만, ‘안’을 다 둘러보고 나왔을 때 ‘바깥’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곳에서 행해진 ‘노동’은 이해할 수 없었고, 내가 속해있고 알고 있던 인간이라는 종의 세계

는 하얗게 증발해버렸다. 내게 <기억의 숨결>을 본다는 것은, 루시와 함께 이 부조리한 경험을 다시 한번 역사 속 몸으로 복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리고 루시는 96살의 늙은 트랜스젠더여성이고, 하여 이 몸의 과정은 조금 더 특수했고 그만큼 더 몸의 정치학이었다.

그가 말한다. ‘내가 이제껏 살아있다는 게 부조리하지 않은가? 나는 이미 그때 죽었는데? 내가 사는 건, 내 몸이 살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광기’의 현장을 목격한 그때, 죽은 시신을 수레에 싣고 소각로로 옮기는 노역을 한 그때, 그가 인간으로 알고 있던 정체성의 세계가 무너졌지만, 그는 인간으로 살아 남았다. 그의 몸이 이 역설을 실현해냈고, 역설은 두 종류의 역겨움 사이에서 진동했다. 다섯 살 꼬맹이었을 때 첫 성찬식을 앞두고 ‘성직자’에게 성폭력을 당한 역겨움에서 시작해 다하우의 광기에 끌려 들어간 역겨움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몸으로 새로 태어난 그를 보고 ‘역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역겨움이 있다. 루시는 이 두 역겨움의 세계를 성실하게 몸으로 살아냈다. 영화는 <기억의 숨결>이 아니라 <기억의 몸결>이다.

<기억의 숨결>은 96세 트랜스젠더 여성의 ‘살아있는 몸’의 성실한 활동을 찬찬히 조목조목 보여준다. 그가 다하우에서 강제노역을 하게 된 것과 퀴어로서의 그의 정체성은 분리할 수 없이 연관되어 있지만, 루시의 역사적 삶을 증언하는 것은 명백하게 표현된 정치적 입장도, 퀴어 활동가의 면모도 아니다. 일상을 사는 몸이다. 사야 할 물건이 적힌 종이를 손에 들고 슈퍼마켓을 돌며 채소나 바나나를 고르는 몸.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세수를 하고 손과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머리를 빗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몸. 자고 난 뒤 순서대로 침대를 정리하는 몸. 손님을 맞기 위해 요리하고 식탁보를 새로 깔고 냅킨을 정렬하는 몸. 시디나 비디오를 찾아 기기에 넣고 의자에 앉아 듣는 몸. 그의 살아있는 몸은 다하우에서의 ‘노동’ 이후 부서진 (그의, 인간 종의) 시공간을 어떻게든 다시 잇고 지탱한다. 아마도 지난 75년 동안 매번 마지막 부서짐의 절벽 앞에서 천천히 그를, 인류의 세계를 다시 조합했을 것이다. 뽀드득 소리가 들릴 정도로 컵의 물기를 다부지게 닦아내는 그의 손에서 나는 살아있는 그의 몸, 부서진 현대사를 지탱하고 있는 그의 몸을 확인한다. 아름답고 강건하다.

“이 손이 무슨 짓을 한 거지?” 고통과 역겨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는 묻는다. 그의 손은 다하우에서 죽거나 채 죽지 않은 사람을 불덩이에 밀어 넣는 일을 했고, 손님에게 성적 서비스를 팔거나 애인을 사랑하는 일을 했다. 자신과 다른 이들을 먹이며 돌보는 일을 했다. 유년기의 성폭력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섹스를 파는 일도, 인간종의 광기도 그의 ‘살아있는 몸의 힘’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는 유머와 관대함이 있는 트랜스젠더‘할머니’가 되었다. 그가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았지만, 역겨움과 비통함 사이에서 퀴어 세계의 비규범적 통쾌함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평범한 일상 내내 ‘퀴어 프라이드’가 발산하고 있었다. 그의 몸을 이동시키는 수

단은 자동차에서 보행기로, 그리고 휠체어로 바뀌었지만, 그는 몸의 이동을, 몸으로 하는 ‘트랜스, 즉 거스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하우를 다시 찾은 그는 ‘인간의 의지가 지배하는 이 땅에 계속 남는 건 별로 좋은 것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의 살아온 삶의 역사와 함께 ‘우리’는 역설의 화법으로 응대한다. 이 땅에 계속 남아 날마다 몸으로 다른 젠더의, 다른 섹슈얼리티의, 다른 노동의, 다른 자유의, 다른 해방의 역사를 살아내자고요.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김영옥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okeesalon.org
옥희살롱은 연구활동가들이 모여서 아프고 나이 들고 돌보고 돌봄받는 일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새롭게 질문하고, 여성주의 인권의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곳입니다. 다양한 연령대가 호혜적으로 연대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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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무브@8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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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 활동 안에서 문화운동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이자, 힘을 조직하는 현장이 되고 있습니다. 소수자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대중문화 장르를 통해 드러내는 시도들이 인권운동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시도되었고 역사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 운동 내에서도 중요한 활동 영역입니다. 성소수자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와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만나는 접점을 통해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운동이 만나는 계기가 되고, 당사자들이 세상에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는 현장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은 활동을 쉬고 있지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내 게이 합창단 ‘지_보이스’에 오래 활동했습니다. 노래하기를 좋아하던 게이들이 합창을 통해 모여보자는 마음에 시작된 모임이었고, 그 모집 공고를 보면서 저는 처음으로 ‘친구사이’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합창이란 음악 장르를 통해 나와 같은 사람들과 만나 매주 2시간 연습하면서 나와 서로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이어지는 만남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고, 세상에 말을 건넸습니다.

활동하면서 계속 마주하는 고민은 역시나 어떻게 세상에 우리를 드러내느냐? 입니다. 성소수자로서 나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도 존재하지만, 세상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상당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세상에 건너야 하는 이야기들은 무엇인지, 어떤 모습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지가 화두가 됩니다.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 점점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부담과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모임의 형태나 말 걸기의 방식을 조금씩 변형하면서 나름의 지속 가능성을 꾀합니다.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같이하는 내가 소진되지 않도록 말이죠.

지난 2~3년간 코로나 시국은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게 한 집중적인 시기였습니다. 매주 만나서 합을 맞추며 활동하고 고민하던 사람들이 만나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오히려 모임에 대한 운영과 미래 등을 더 고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활동의 구심점은 어떻게 찾고 있는지를 되물었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어 활동하면 좀 더 반가운 세상과 마주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차별과 배제를 맞이했던 순간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도 좀 더 힘을 내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힘은 결국 함께 고민하는 주변의 사람들 때문이었고, 변화와 희망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현장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해서이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정말 다양하게 활동하는 문화 관련 모임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 이름을 다 옮길 능력이 없어 적지는 못하지만, 그 수많은 모임은 저마다의 모임의 정체성에 따라 자신들을 드러내며 모임의 목표를 이어가며 활동합니다. 나답게 존엄하게 살고자 거리로 나와서 함께 했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현장, 각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 그리고 갖가지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 행사, 그리고 그 모임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행사들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일원들이 숨 쉴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모임들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자, 퀴어한 활동판이기도 합니다. 문화 활동 모임들이 저마다의 방식을 같이 공유하면서 좀 더 확장된 현장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자리를 상상도 해봅니다. 또 다른 일이 되겠지만 그것이 결국 우리들을 조직하는 것이고, 세상을 조직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까요.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https://equalityact.kr/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로, 2022년 9월 현재 167개 인권시민사회단체와 15개의 지역 네트워크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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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뿔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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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뿔’은 아프리카 대륙이 아라비아반도에서 인도양 쪽으로 코뿔소의 뿔처럼 솟아난 북동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지부티,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의 나라가 해당한다. 지역 내 국가 간 무역의 95% 이상이 비공식적이고 장부에도 잡히지 않는 가축을 거래하고 하니 특별히 유력한 산업은 없는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가축을 키우거나 낡은 배로 물고기를 잡으며 뿔의 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다른 선택지는 아마도 없었을 테고, 세계 많은 사람의 삶이 그렇기도 할 것이다.

느린 흑백 화면이 비추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아들과 이웃 남자와의 대화는 몇 마디 안 된다. 쇠약해진 아버지가 먹을 약이 떨어졌고 주변에는 일거리도 없어 보인다. 이웃들은 하나둘 이 고장을 떠나고 마을은 폐허처럼 정지한 것 같다.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유럽 국가들은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의 뿔 바다에 독성 폐기물을 투기했고, 2004년에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가 유독 물질을 소말리아 해안에 퍼트리면서 여러 질병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나라든 소말리아 정부든 그들에게 이런 일을 충분히 설명해 주거나 대책을 마련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장면들은 사뭇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아주 특수한 사례는 아닐 것이다. 세계 곳곳의 자원 채굴지, 핵발전소의 피폭 노동과 주민들의 발병, 삼성 반도체에서 일어났던 백혈병 비극 모두가 같은 문제의 가지들이다. 그러나 우리, 특히 선진국 대도시 사람들은 일상에서 더럽고 위험한 것을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더럽고 위험한 것은 비정상이거나 극단이라고 여긴다.

2009년 국역 된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테드 스미스, 데이빗 A 외 지음, 공유정옥 외 옮김, 메이데이)라는 책의 영어 제목은 “Challenging the Chip”, 즉 ‘반도체 신화에 저항하기’라는 의미다.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이 산업이 한국 경제를 끌어나갈 것이라는 신화와 함께 이 산업이 깨끗한 첨단 산업이라는 신화가 강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공짜로 얻어지는 깨끗하고 좋은 것은 없다. 우리가 쓰는 가전제품과 에너지의 피해자가 이 소말리아 사람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어딘가에 우리는 부담과 위험을 안기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가해와 피해의 얼굴들이 실제로 누구인지를 밝혀내고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법 제도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존재와 권리를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길어 올릴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해법과 해결이 일대일로 맞아떨어지거나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만성적인 일이라는 인정도 회피해선 안 될 것이다.

당장은 보이지 않거나 떠올리기도 어려운 존재들을 생각하는 것은 우울하고 답답한 일이다. 우울증에 오래 빠질 필요는 없지만, 이런 환경과 인권에 관한 문해력과 감수성은 더욱 권장되어야 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손쉽게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조용히 애도한다. 이 표현 방식이 아쉬울 수도 있지만 그조차 이해하거나 느껴볼 부분이다.

김현우(기후위기 비상행동, 탈성장 대안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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