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권영화제 30주년 인터뷰 ①]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보고 얘기한다는 것의 의미

소식

서인영의 시작을 함께한 ‘인권연구소 창’ 류은숙 활동가를 만나다

2026년, 서울인권영화제가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맞아 그간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해 온 사람들을 찾아갔다. 과거 영화제는 어땠는지, 지금 영화제에 한 생각은 어떠한지, 앞으로 서인영은 어떤 영화제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고 떠올려보고자 하였다. 지금 서인영 활동가들은 서인영의 시작을 함께해 왔거나, 이에 대해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에 우리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처음을 함께 해온 ‘인권연구소 창’의 류은숙 활동가를 찾아갔다.

마주: 안녕하세요. 은숙 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은숙: 저는 1992년 8월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이름이 없을 때 새로운 인권 단체를 만드는 준비 모임으로 인권 운동을 시작했고, 1993년에 임시로 쓸 이름으로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임시가 그냥 굳어졌죠. 2006년 8월까지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활동했고, 그 후 독립하여 ‘인권연구소 창’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권연구소 창에서 ‘연구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즘 하고 있는 거는 인권에 대한 입문서를 다시 쓰고 있어요. 2017년도인가에 냈는데 그 사이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고, 인권에 대한 개념과 접근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런 걸 반영하여 새롭게 입문서를 쓰고 있어요. 제가 쓰고 있는 단행본의 가제는 ‘인권은 무엇을 하는가’예요.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주로 ‘인권은 뭐다’ 이런 개념 설명인데, 개념은 설명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우리 삶 속에서 인권이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우리가 힘든데도 계속 붙잡고 가야 되나?’ 그런 걸로 쓰려고 했어요.

마주: 은숙 님께 가장 궁금했던 건, 서울인권영화제의 시작에 관해서인데요. 어떻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인권영화제라는 거를 시작하게 되셨을지 궁금합니다.

은숙: 영화를 모르기 때문에 한 거죠. 알았으면 못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때도 결정한 사람들을 되게 욕했어요.

마주: 진짜요?

은숙: 저는 결정 자리에 없었거든요. 1995년 당시에 저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영국 지부에 연수를 갔었어요. 그때는 팩스가 주요 소통 수단이어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팩스로 주 5일, A4 두 장씩 인권 뉴스를 담은 <인권하루소식>을 발행하고 있었어요. 당시 <인권하루소식> 300호를 기념해서 뭔가 특별한 행사를 하자고 했고, 사람들은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제가 어떨까라고 결정을 한 거죠. 영화라는 매체가 얼마나 많은 품이 들어가고, 관객을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했고, 제가 런던 앰네스티에 있으니까 거기서 영화를 골라 오라고 시킨 거예요. 저는 그래서 너무나 화를 냈어요.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모한 결정을 할 수가 있느냐. 근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앰네스티에 비디오테이프가 꽉 차 있는 시청각 자료실이 있거든요. 전 세계에서 인권 투쟁 같은 것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한 3천여 개 있는 자료실이 있는데요. 제가 틈날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서 비디오를 보는 거죠. 정말 완성된 작품들이 거의 없어서 어떤 거는 장례식 장면, 통곡하는 것만 나오고, <절규>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진짜 테이프를 꽂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절규예요. 그런 걸 한 달 내내 봤어요. 그중 하나 건진 게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창립 25주년인가를 기념하여 유명 감독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헌정한 작품이 있어요. 앰네스티가 전 세계에 갇힌 양심수들에게 편지쓰는 활동을 하는 단체라 배우들이 나와서 편지 한 통씩 양심수한테 읽어주는 영화였죠. 그때 그 영화 <잊지 말자>가 제1회 인권영화제 개막작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인권영화제를 하게 된 거는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이 영화제라는 행사를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일을 벌인 것이고 일을 벌이니까 하게 된 것이고. 엄청난 우여곡절 끝에 영화제를 열게 된 거죠.

마주: 국내 상영작들은 어떻게 수급하셨나요?

은숙: 다큐멘터리 하는 ‘푸른영상’ 같은 곳에 감독들이 찍어놓고 유통하지 못하는 작품들 많잖아요. 그래서 인권영화제에서 소위 데뷔하는 작품들이 많았죠. 국내 작품들은 그렇게 푸른영상 중심으로 구했고, 외국 작품들은 앰네스티에서 갖고 들어온 거랑 당시에 사랑방 대표였던 서준식 선생님이 뉴욕 인권영화제 가서 골라 온 거. 그런 걸로 1회 때는 채웠어요.

전문가들이 없으니까요. 프로그래머라는 개념도 몰라서 우리가 모든 걸 다 했어요. 포스터 디자인도 우리가 했지, 작품 섭외도 우리가 했지, 번역도 알음알음 부탁하고. 번역도 그냥 영어 좀 할 줄 아는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해주고. 어떤 부분에는 자막도 없고 그랬어요. 그때 대형 사고 난 작품이 있었는데요. 영화가 1시간 정도가 남아 있는데 자막이 없는 거요. 그래서 자막실에서 긴급 수배를 했어요. 재미동포가 영어로 영화를 보면서 영어로 써주면 내가 한글로 직독직해 해서 실시간으로 자막을 넣고 그랬어요. 그게 아침 첫 작품이라 10시 상영인데 아침 9시 반엔가 자막 작업이 끝났어요. 그 비디오를 갖고 뛰어가서 딱 상영한 그런 일이 있었죠. 

고운: 무슨 영화였는지 기억나시나요?

은숙: <진실을 말하고 튀어라>. 되게 긴 영화였어요. 100살 넘게 산 기자 아저씨가 주인공인데. 언론인으로서 자기가 기업과 국가를 고발해 온 그런 이야기예요. 되게 재밌어요.

사진 1. 사무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류은숙 활동가와 마주. 은숙은 뒷모습, 마주는 앞모습이 보인다.

마주: 신기해요. 그렇게 우당탕탕 시작했는데, 30주년까지 온 게. 1회 인권영화제 현장은 어땠나요?

은숙: 인권영화제 1회 때는 안기부가 압력을 넣어서 어디서도 장소를 빌려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를 통해서 학교를 간신히 빌렸어요.  퇴거장이 학교와 안기부에서 계속 날아왔는데, 그래도 그냥 가서 했어요. 당시 영화제에 어마무시하게 관객이 몰려왔어요.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어요. 이화여대 법과대학 강당이 700석 넘을 텐데 꽉 찼어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하는 인권영화제라고, 방송 인터뷰하느라고 일을 못 할 정도로 언론에 시달렸어요. 그러니까 언론의 관심, 관객들의 관심이 있으니까 경찰이 못 건드린 것 같아요. 진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가지고 줄이 안 보일 정도였어요.

마주: 다들 어떻게 알고 왔을까요?

은숙: 그때 영화 잡지 <씨네21>이 생겼었는데, 특집을 인권영화제에 할애해 줬었고요. 하다못해 ‘출발 비디오 여행’에도 나왔어요. 오늘부터 인권영화제가 시작되니 한번 가보시라고.  방송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건데요. 우리도 그렇게 관심받을 줄 몰랐지. 

1회 인권영화제 히트작은 다큐멘터리 <하비 밀크의 시대>였어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커밍아웃한 시의원 하비 밀크의 이야기인데, 다른 백인 시의원이 하비 밀크를 총으로 쏴서 암살하잖아요. 그에 대한 추모식이 열리는 것까지를 다룬 영화였어요. 다큐멘터리인데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무대 인사에 우리가 감독을 부른 건 아니니까 올라갈 사람이 없잖아요. 근데 성소수자들이 엄청나게 그 영화를 보러 몰려왔어요. 당시에 성소수자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이제 막 시작될 때였거든요. 그때 정말 대단했던 게, 무대 인사에 그 관객들이 올라간 거예요. 성소수자 관련 인권 단체 관계자들이 무대에 올라가고 나머지 사람들도 무대에 막 올라가서 무대가 꽉 찼어요. 의상들은 또 얼마나 화려하게 입고 오셨는지 보라색, 분홍색. 관객석이 정말 울긋불긋한 거야. 그게 너무 좋았어요.

영화가 사실 재미없는데도 사람들이 안 나가고,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게 그러니까 1회 효과였던 것 같아요. 거의 매일 밤을 샜지만 참 좋은 기억이에요. 부산국제영화제도 그해에 시작됐잖아요.

마주: 맞아요. 뭔가 올해가 30주년이거나 작년이 30주년인 단체나 영화제들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고운: 행성인(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도 내년에 30주년이잖아요.

은숙: 계속 군부 독재하다가 93년도에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문민 통치라 그러잖아요. 이제 군인 출신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을 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가 불게 되고 외국에 대해서 꽉 막혀 있던 것이 세계화 분위기 속에서 풀렸던 거죠. 그래서 여러모로 검열당하거나 억눌렸던 것들이 막 터져 나오고 분출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마주: 사실 요즘엔 인권영화제를 하면 그렇게 사람들이 오지 않잖아요.

은숙: 왜냐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보는 방식도 달라졌고. 그러니까 지금은 지금의 맥락에 맞는 ‘같이 보기’를 추구해야  것 같아요. 우리 때는 그렇게 볼 게 없었고, 어쩌다 한 번 상영하는 데 가서 보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는 거예요. 그 순간에 봐야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달라진 맥락에서 달라진 관객 만나기를 시도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우리 때 그런 열광적 분위기는 오랜 검열에 시달려서 볼 것이 제한돼 있었기에 생겨났던 거죠. 맨날 전경들한테 두들겨 맞고, 상영회 하면 맨날 폭력에 시달리면서 보다가 안심하고 극장에서 영화를 같이 보고, 후일담도 당사자가 와서 같이 얘기하고, 감독과도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마주: 서울인권영화제가 이제 30주년이 됐고 앞으로도 이어 나갈 텐데요. 말씀하신 대로 정말 많은 영화제와 영상 플랫폼들이 생겨난 시점에, 인권영화제만이 갖는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은숙: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같이 보고 얘기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 시대의 맥락에 맞게끔 만들어야 될 과제가 있는 거고. 다 자기 방에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모여서, 무엇을, 보느냐’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얘기할 자리를 만드는 게 의미겠죠? 그리고 변화한다고 할지라도 역사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역사성이라는 거는 오래됐으니까 지켜야 된다 이런 의미가 아니에요. 역사성에는 그 시대에 어떤 굴레나 억압에 매이지 않고 그 맥락에서 뭔가 새로운 걸 구축하려고 싸웠던 사람들의 열망이 모였던 자리가 있는 거잖아요. ‘지금 이 시대의 인권영화제의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적, 상황적 맥락과 과제는 무엇인가’는 누가 찾아주는 게 아니잖아요. 같이 만들고, 같이 보는 사람들이 해야지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것에서 소통의 길을 찾아야 하나’ 그냥 그걸 숙제로 갖고 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무리하게 큰 행사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꾸준한 상영회와 사람들을 만나는 거.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영화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마주: 은숙 님께서 인권영화제를 만들고 또 지켜보시면서 30주년이 된 서울 인권영화제의 명장면을 꼽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은숙: 저는 사실 초기 말고는 관여를 안 했기 때문에 솔직히 초기의 기억밖에 없어요. 2회 인권영화제 때, 홍익대에서 경찰이 실제로 영화제 현장을 막았잖아요. 그래서 하루인가 이틀 하고서 그 건물에서 내쫓겨서 마당에서 발전기 돌려서 상영을 했어요. 그런데 발전기 소리가 너무 심하고, 냄새가 심해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2회 때 영화들이 좋은 게 많았거든요. 대표적인 게 <쇼아>. 9시간 30분짜리. 그거 자막 넣느라고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쿠바를 배경으로 혁명 전 세대, 혁명 세대, 현대 이렇게 세 명의 루치아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그 시대와 어떻게 싸우는가를 다룬 영화 <루치아>도 상영햇어요. 그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보고 쫓겨나서 학생회관 바닥에선가 봤거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 그 영화 너무 좋았는데.

고운: 그때 그런 영화들은 그럼 어떻게 가져오신 거예요? 

은숙: 뉴욕 인권영화제 프로그램북 같은 거 보고서 팩스 보내가지고 비디오테이프 받고 이런 식으로 수소문해서 했어요.

마주: 마지막 질문입니다. 서른 살 생일을 맞아 서인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은숙: 제가 좀 더 젊었을 때는 서른이면 죽어야 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희 세대 때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그렇고, 서른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이제 그걸 넘어서 60이 가까워지니까, 서른이 워밍업이더라고요. 서른 앞에 가기 전에 그렇게 무섭고 막 버티기도 힘들고 그러는데 넘고 나니까 준비 운동, 워밍업. 그런 생각이 든 거죠. 제1회 인권영화제 때 설문지 받았을 때 관객이 똑똑히 써놓고 갔어요. ‘살아남길 바란다’라고. 

아무튼 워밍업으로 생각하세요. 여기까지 왔다가 아니라 그걸 발판으로 새로 시작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준비 운동했으니까, 이제 본 운동하시면 되지. 개인의 역량이라면 그렇게 말 못 하는데, 이거는 시대의 역량이고 사회의 역량이잖아요. 처음 인권영화제라는 거 할 때 우리가 가졌던 역량은 진짜 보잘 것 없었거든요. 시대적, 기술적 한계 속에서 우리 역량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역량이라는 게 향상되고 넓고 깊어졌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회적 역량을 어떻게 잘 활용하면서 갈 것인가 그걸 잘 생각하면 좋겠어요.

인터뷰어: 마주, 고운

인터뷰이: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41소식

2026년 8월 재정보고

소식

수입

  • 2,627,130원의 정기후원금과 501,050원의 일시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지출

운영비

  • 운영비로 총 2,637,098원을 지출했습니다.

사업비

  • 사업비로 총 423,750원 지출했습니다.

이번 달 증감액은 67,332원입니다.

영화제가 끝나고 숨을 고르는 8월이었습니다.
고운 활동가의 안식월로 활동비 지출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재정은 간신히 흑자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서울인권영화제에 관심과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71소식

[활동펼치기] <바이센테니얼 맨>과 서울인권영화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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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소하입니다. 8월 2일에는 서울인권영화클럽 8회 정기모임이 있었습니다.

바이센테니얼맨 공식 포스터

이번에 함께 본 영화는 <바이센테니얼 맨>이었습니다. <바이센테니얼 맨>은 한 로봇이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인간형 가사도우미 로봇인 엔드류는 처음에는 단순한 로봇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지식을 습득하고 창작활동을 하면서 자아를 가지게됩니다. 그는 인간과 닮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을 인공장기로 업그레이드 하면서 사람과 기능적으로 같아집니다. 숨쉬고, 음식을 먹고, 사고를 하고,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엔드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위해 법적으로 인간임 인정받고자 합니다.처음에는 거부당했지만 늙는 것 조차 인간과 같도록 신체를 개조하면서 인간과 더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늙어 노화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인간임을 인정받게 됩니다.

사진. 서울인권영화클럽 소모임 회원들이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서 <바이센테니얼 맨>을 관람하고 있다.

로봇이 점차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간이란 경계는 어디에서 구분지어지는가. 그리고 인권이란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감상과 함께 인간이란 무엇인지 부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간이란 의사소통을 하기도, 생각을 가지기도,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점 등을 예로 들으면서 인간의 특성들에 대해서 짚어봤습니다. 이후, 인권의 확장 가능성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영화와 같이 지성과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면 인권을 확장하여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권이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 개념일지, 더 나아가 동물권과 같이 다른 생물 종에도 인권의 개념을 확대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AI와 창조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과거, 학습형 인공지능이 나오기 이전 시절에는 인공지능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바이센테니얼 맨>에서도 주인공인 로봇이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는 것에 크게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습형 인공지능이 나오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조능력 범주라고 여겼던 것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온 폐해, 사회가 가져야할 윤리 등을 말했습니다.

SF영화를 다룬 이번 모임은 철학적인 이야기와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모임이었습니다. 다음 9월 모임은 잠시 쉬어갑니다. 10월에도 재미있는 영화로 많은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71소식

2026년 7월 재정보고

소식

수입

  • 2,721,580원의 정기후원금과 868,250원의 일시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지출

운영비

  • 운영비로 총 3,580,905원을 지출했습니다.

사업비

  • 사업비로 총 6,442,770원 지출했습니다.
  • 하계 워크숍 비용으로 1,252,940원 지출했습니다.
  • 에러 티셔츠, 가방 배송으로 모금사업에 3.989.350원 지출했습니다.

이번 달 증감액은 -5,911,845원입니다.

사업비로 많은 지출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러분들이 많은 후원을 해주신 덕분에 하반기를 잘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사무실 이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사를 가기에는 지금의 예산이 넉넉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반기에는 이사 모금 사업을 새로 꾸려볼 계획입니다. 계속해서 서울인권영화제에 뜨거운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123소식

[활동펼치기] <가버나움>과 서울인권영화클럽

소식

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소하입니다. 7월 4일에는 서울인권영화클럽 7회 정기모임이 있었습니다. 

영화 포스터. <가버나움> 한국 공식 포스터. 영화의 주인공인 자인이 무언가를 내려 보고 있다.

이번에 함께 본 영화는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12살 소년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낳았으나 돌보지 않고 방치하고 노동착취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를 본 이후에는 돌봄과 사회 안전망에 중요성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자인의 부모는 단순 방치를 넘어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도록 떠밉니다. 이 상황에서 동생을 돌보는 것은 자인의 몫이었습니다. 자인에게 사회 안전망은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등록’되어야 인권을 챙겨주는 사회적 제도의 헛점 때문이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자인은 국가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인은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습니다. 

사진. 서울인권영화클럽 멤버들이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에 둘러 앉아서 <가버나움>을 보고 있다.

비슷한 영화로 <아무도 모른다>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꼽기도 했습니다. 이 두 영화도 방치된 아동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가버나움>의 배경은 레바논입니다. 모임 당시에는 레바논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아 깊게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는데, 이후 찾아보니 레바논은 18개 종파가 권력을 나눠 갖는 독특한 정치구조 때문에 국가 행정력이 통합되지 못했고, 시리아 내전 이후 인구 대비 세계 최다 수준의 난민을 받아들이며 복지 시스템에 큰 부담을 짊어져 온 나라였습니다. 영화 속 자인의 가족처럼 신분증이 없어 어떤 공공 서비스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국가가 무국적 아동의 존재 자체를 등록하고 보호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니 영화가 다르게 읽혔습니다. 결국 ‘존재를 증명할 서류가 없는 사람’이 얼마나 쉽게 국가의 보호 밖으로 밀려나는지를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가지 숙제를 떠안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진 채 7회 정기모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8회 정기모임은 8월 2일에 만날 예정입니다. 참여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bit.ly/shrfclub 으로 신청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13소식

[활동펼치기] 삶은 철거되지 않는다: 정릉골 상영회 후기

소식

사진1. 상영회 공간인 이음아트홀 입구 위 모니터에 상영회 포스터. 입구 문에 안내문을 붙이는 활동가.

지난 7월 12일 일요일 오후, ‘삶은 철거되지 않는다: 정릉골 상영회’가 혜화 이음아트홀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27회 서울인권영화제 ‘나 여기 있어요’ 섹션의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를 기억하시나요? 재개발의 소용돌이에서 하나둘 떠나가는 정릉골의 풍경을 담은 영화였는데요, 영화제 폐막 후 바로 다음주에 정릉골에 강제집행이 실시되면서 영화제 활동가들도 많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6월 12일 금요일 저녁에는 몇몇 활동가들이 정릉골 연대 피켓 만들기를 함께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27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이었던 <나무가 흔들릴 때 바람이 찾아온다>의 이지윤 감독님이 2024 성북아카이빙프로젝트 ‘지역의 기억’ 창작자들과 함께 정릉골 연대 상영회를 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상영회를 차차 기획하던 중인 지난 6월 30일, 정릉골 재개발 주거세입자 대책위는 조합과 합의를 통해 투쟁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에 맞서, 폭력적인 강제집행에 맞서 함께 싸운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영회는 이제 곧 사라질 정릉골을 함께 기억하며, 앞으로 모든 주민들의 이주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지켜보기를 다짐하는 상영회가 될 수 있게 방향을 살짝 수정하여 준비했습니다.

사진2. 정릉골에 보내는 연대 메시지 보드에 붙은 쪽지들. '아름다운 정릉골! 꼭 눈으로 또 보고 오래 기억할게요!!', '정희 할머니가 도토리 줍던 나무 그 나무를 또 보고 싶어요', '주거권을 다시 정의하자' 등.

상영회 당일은 정말 무더웠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를 뚫고 모인 ‘지역의 기억’ 창작자들과 서인영 활동가들은 상영 테스트를 하고, 객석 의자를 깔며 관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상영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관객분들이 한둘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세 시가 되어 상영을 시작했어요. 상영작은 ‘지역의 기억’ 프로젝트의 네 작품으로, 강민서&양은서 연출작 <쌍둥이 슈퍼>, 김현원&윤병현&홍유라 연출작 <경계의 고도>, 김성원&정윤지 연출작 <동산바치>, 권나민 제작&이지윤 연출작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이었습니다. 같은 동네를 기록한 영화들인데 각기 다른 이야기와 색을 담고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영화 상영을 마치고 시작한 관객과의 대화는 <나무가 흔들릴 때 마음이 찾아온다>의 제작자인 나민 님이 진행을 맡고, 정릉골 주거세입자 대책위원회의 김우권 님과 옥바라지선교센터의 이은해 님이 이야기손님으로 함께했습니다. 정릉골은 주거 약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동네라서 재개발도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닌 주거 환경 개선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야 했는데, 애초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부 다 허물고, 임대 주택 하나 없는 고급 주거 단지를 건설하는, 그러니까 ‘돈’이 되는 재개발이 추진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40~50년 동안 이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투쟁을 이어갔던 것입니다. 김우권 님은 강제집행의 고통과 두려움, 죽음에 대한 마음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게 강제집행을 하고 50년 동안 수많은 재개발을 통해서 수백만 호가 건설되었지만 아직 집이 부족합니다. 소유자 비율도 떨어진다고 하고요. “그렇게 많이 지으면 집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재개발, 재건축은 집을 주거와 생활의 공간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제도일 수밖에요.

사진3. 관객과의 대화 모습. 무대 위 왼쪽부터 은해, 우권, 나민. 객석에 앉은 관객들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어 은해 님은 2016년 5월 서대문형무소에 앞에 있는 옥바라지 골목에서 투쟁을 하면서 시작된 단체로 옥바라지선교센터를 소개하고, 정릉골에서 진행해온 예배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재개발의 현장은 대개 ‘버려진 곳, 끝난 곳, 사람이 오지 않는 곳, 죽어 있는 공간’으로 취급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예배를 드릴 땐 이곳은 ‘끝난 곳’도 ‘죽은 공간’도 아니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공간임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임을 선언하며 연대를 해왔다고 합니다.

‘집’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태어나고 자라고 성장하고 삶을 가꾸는 곳”이라고 답한 우권 님의 답변에 이어, 나민 님은 우권 님께 정릉골 투쟁이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습니다. 

“정릉골이라고 하는 게 지금은 이렇게 특별하게 되었지만 사실 내가 사는 집의 일부였어요. 정릉골로 들어와서 살았던 집, 내 삶의 일상이었던 그런 하나의 주거 공간이었죠. 그런데 그게 갑자기 없어지는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본권이 있더군요, 인간의 존엄, 가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본권이 있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주거권도 기본권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거라는 게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배우고 자라고 가정을 이루는 가장 기본 단위이기 때문에 주거권은 기본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본권으로서 주거의 권리를 박탈하는 한국식 재개발 사업에 대해 은해 님이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재개발은 공공의 사업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과일을 갖다 주고, 반찬을 나눠 먹고, 그러던 때가 좋았다고 하는데 사실 정릉골은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사라진 모습이 아니었던 거죠. 여전히 서로 김치를 같이 담그고, 좋은 과일이 들어오면 나눠 가지고, 추석에는 윷놀이를 하고 명절 음식을 나눠 먹는 곳이 남아 있는데 그런 모습을 왜 지우려고 할까요. 아파트를 짓고, 고급 빌라를 지으면서 왜 도시의 모습을 똑같이 동일하게 만들려고 하는지 질문을 던져 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정말 어떤 도시에 살고 싶은지.”

그리고 우권 님도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재개발을 통해 만들어지는 집들 속에서 살면서 어떤 기억이 남을까? 문득 생각이 들어요. 내가 살던 곳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집, 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온 곳이에요. 아이들에게 어떤 걸 물려줄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길을 만들 것인지 고민한 흔적과 자기의 삶과 마음과 사랑이 담긴 그런 기억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면 철거식 재개발로 이루어진 집들에선 어떤 기억을 만들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이라고 하는 건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현재도, 지금도 기억이 기억되고 있는 거니까.”

50분을 꽉 채운 대화를 지켜보며, 정릉골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 아파 계속해서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정릉골을 기억하는 행사들이 7월 한 달 간 이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기억의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해 우권님은 “그런 거(고급 주거 단지) 말고 마음의 성을, 마음의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문화의 향기를 정릉골에 남기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진4. 행사를 마치고 찍은 단체 사진.

정릉골은 이제 사라집니다. 그곳에 그 어떤 화려한 고급 빌라가 들어서도, 정릉골에 알록달록 얽혀있던 이야기들을 대신할 순 없을 겁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곳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서인영 사무실도 저의 집도 재개발 예정지라서 몇 년 뒤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답니다. 아무리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치고 모기가 춤을 추며 들어오는 집이라고 해도 이 집들과 골목들과 사람들이 품고 있는 마음과 관계와 역사를 이렇게 ‘말끔’하게 밀어버려도 되는 걸까요? 아무도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늙음과 낡음이 존중받는 도시, 이윤보다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후기를 마칩니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208소식

2026년 상반기 결산보고

소식

바쁘게 27회 서울인권영화제를 마치고 정리하다보니 2026 상반기가 지나있었습니다. 그래서 2026년 상반기 결산을 준비해왔습니다. 2026년 총 예산안과 비교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수입

  • 14,203,100원의 정기후원금과 42,273,000원의 일시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일시후원금중 대부분은 에러 티셔츠, 에러 백 모금이었습니다. 뜨거운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에 예산안을 초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 17,276,000원의 27회 서울인권영화제 사업 수익이 있었습니다.
    OOTD 모금, 개막단 모금, 현장 후원 등으로 많은 후원금을 모금하여 예산안 목표와 비슷하게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 올해 상영지원 요청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상영지원으로 인한 수입은 없습니다.
  • 기타 수입으로 907,000원의 수익이 있었습니다. 공동주최 상영회에서 분담금을 받은 수입 등이 기타로 분류되었습니다.

지출

운영비

  • 운영비로 총 20,220,490원을 지출했습니다.
    2026년 예산안과 비교했을 때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집행률을 달성했습니다.

사업비

  • 사업비로 총 51,162,815원 지출했습니다.
  • 27회 서울인권영화제 사업비가 2026년 예산안보다 지출이 조금 더 많았습니다. 예상보다 굿즈 제작과 발송에 많은 비용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 에러 티셔츠, 에러 백 모금사업으로 큰 규모의 지출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모금 사업 항목을 신설하여 결산표를 작성하였습니다.

상반기 증감액은 10,284,209원으로 큰 흑자입니다.

에러 티셔츠, 에러 백 모금으로 빚 없는 영화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27회 서울인권영화제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정기후원 가입을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운영비에 대한 부담도 조금 덜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한 사업으로 정기후원자를 더 늘려 운영비 적자가 없는 서울인권영화제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201소식

[활동펼치기] 무지개행동 연대의밤에서 웨딩 뷔페를 먹다

소식

무지개행동 연대의밤에서 웨딩 뷔페를 먹다

사진1. 연대의밤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포토월에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의 단체 사진. 맨 뒤에 트랜스 플래그 색상의 혼주 한복을 입은 박한희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활동가들은 '성별인정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혼인평등 법제화' 등 피켓을 들고 있다. 배경 현수막에 무지개행동 소속단체들의 로고가 인쇄되어있다.
사진1. 연대의밤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포토월에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의 단체 사진. 맨 뒤에 트랜스 플래그 색상의 혼주 한복을 입은 박한희 무지개행동 공동대표. 활동가들은 ‘성별인정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혼인평등 법제화’ 등 피켓을 들고 있다. 배경 현수막에 무지개행동 소속단체들의 로고가 인쇄되어있다.

지난 6월 25일,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은 서강대학교 곤자가컨벤션에서 열린  <2026 무지개행동 연대의밤: 성소수자 평등, 가자 앞으로!>에 함께했습니다. 각자 하루를 보내다 곤자가컨벤션에 도착하였는데, 웨딩드레스와 혼주 예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결혼식장 같은 풍경에 ‘아, 여기가 아니구나’ 하며 다른 입구를 찾았으나, 그곳이 맞았습니다. 이후에 들어보니 무지개행동이 혼인평등 실현, 차별금지법 제정, 성별인정법 제정 등의 의제를 위해 앞으로도 투쟁하고 함께하겠다는 의미에서 웨딩  콘셉트를 잡은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장으로 자주 사용되는 곤자가컨벤션을 십분 활용한 것이 재밌었습니다.

사진2. 1부 토크쇼 모습. 무대 위에 패널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손님들은 여러 개의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무대를 바라본다. 배경 현수막에 ‘성소수자 평등, 가자 앞으로!’.
사진2. 1부 토크쇼 모습. 무대 위에 패널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손님들은 여러 개의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무대를 바라본다. 배경 현수막에 ‘성소수자 평등, 가자 앞으로!

이날 연대의밤은 2008년부터 성소수자 평등을 위해 달려온 무지개행동이 숨을 고르고, 작년 첫 사무국 출범을 기념하며, 앞으로를 위해 힘을 모으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1부에선 무지개행동의 역사를 만들어 오고 함께해 온 활동가들, 일란 님, 종걸 님, 야릉 님, 서연 님, 소연 님과 무지개행동의 활동을 살펴보았습니다. 2008년 무지개행동 출범, 2011년 학생인권조례 공동행동, 2017년 혐오발언 규탄행동, 2025년 윤석열 퇴진행동까지 당시 사진이 나오면, 그에 대한 코멘트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요. 넝쿨 님의 재치 있는 진행과 활동가분들의 현장 뒷얘기(?)가 어우러져 무지개행동의 고군분투 역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이야기 중, 학생인권조례 공동행동을 하며 서울시청에서 첫 점거 농성을 했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당시 다들 점거 농성 경험이 많지 않아 여러 시도와 걱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은 엄청난 프로 활동가이신 분들에게도 처음이 있구나. 처음임에도 행동했기에 지금이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사진3. 토크쇼 무대 모습.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일란, 종걸, 야릉, 예림(수어통역), 서연, 소연, 진영(수어통역), 에디. 천장에 풍선들이 늘어졌다.
사진3. 토크쇼 무대 모습.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일란, 종걸, 야릉, 예림(수어통역), 서연, 소연, 진영(수어통역), 에디. 천장에 풍선들이 늘어졌다.

사실 저는 무지개행동이 활동을 시작한 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이날 연대의밤 행사에서 알게 되었는데요. 홈페이지 소개글을 빌리자면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2007년,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지향 등 차별금지사유 일곱 가지를 뺀 것에 맞섰던 성소수자차별저지긴급행동을 전신으로, 2008년부터 다양한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지개행동이 20여 년이 되었다는 것을 보며, 차별금지법 제정이 너무나 미뤄지고 있음을, 너무나 지난한 시간이 지나갔음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하루빨리 누구나 차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사진4. 혼주 한복 차림의 무지개행동 박한희 이호림 공동대표,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권순부 사무국장이 프라이드 플래그와 트랜스젠더 플래그가 깔린 길로 입장한다.
사진4. 혼주 한복 차림의 무지개행동 박한희 이호림 공동대표,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든 권순부 사무국장이 프라이드 플래그와 트랜스젠더 플래그가 깔린 길로 입장한다.

2부에선 신부와 혼주의 행진이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한 명의 신부(권순부 사무국장)와 두 명의 혼주(박한희・이호림 공동대표)가 프라이드 플래그와 트랜스젠더 플래그가 깔린 길을 힘차게 걸어왔습니다. 

사진5. 힘차게 입장하는 권순부, 이호림, 박한희. 원형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박수를 친다.

그리고 무지개행동의 3대 의제인 ‘혼인평등 실현, 차별금지법 제정, 성별인정법 제정’이 적힌 세 개의 초에 화촉을 점화했습니다.

사진5. 세 개의 초 중 '차별금지법 제정'이 적힌 초에 화촉을 점화 중인 이호림, 박한희 공동대표
사진5. 세 개의 초 중 ‘차별금지법 제정’이 적힌 초에 화촉을 점화 중인 이호림, 박한희 공동대표

또한 대구에서 혼인평등소송 중인 아현, 진아 님이 그날 있었던 변론에 관한 소식과 ‘최대 하객을 모집해 대구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포부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사진6. '혼인평등! 실현'이 적힌 초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중인 아현, 진아 부부
사진6. ‘혼인평등! 실현’이 적힌 초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중인 아현, 진아 부부

이날 세 개의 초에 적혀 있는 문구들이 이루어지기를,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마주

190소식

[활동펼치기] ‘집단학살 못 멈춘 좆같은 자긍심의 달’ 기자회견 후기

소식

사진1. 기자회견 현장. ‘2026 퀴어팔레스타인연대의달 성명발표 기자회견 집단학살 못 멈춘 좆같은 자긍심의 달’이 적힌 붉은 현수막 뒤로 참여자들과 참여 단체의 깃발들이 서 있다. 참여자들은 검은 옷을 입었다. 티셔츠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와 프라이드플래그가 인쇄된 스티커를 붙였다.

6월은 자긍심의 달입니다. 1969년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며 지정된 이 기간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LGBT+ 권리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세계에서 자긍심을 외치는 이 시기에도 가자지구에서는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잊지 않고자 서울인권영화제가 함께하고 있는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은 ‘집단학살 못 멈춘 좆같은 자긍심의 달’이라는 이름하에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기자회견은 연대발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QK48, 무지개행동, 장애여성공감, 검열에반대하는예술인연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그리고 노프라이드 데모 기획단 등에서 연대발언을 해주셨습니다. 연대발언을 들으며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그 누구도 집단학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2. 팔레스타인 지도 모양 패널에 퀴어를 상징하는 다양한 스티커와 메시지가 붙어 있다.

이어서 핑크워싱 발언이 적힌 현수막을 찢고, 팔레스타인 지도에 퀴어의 존재를 새기는 퍼포먼스를 참가자들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중동의 유일한 퀴어 친화 국가로 홍보하면서 동시에 팔레스타인 퀴어에게 아웃팅 위협을 무기로 사용하고,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퀴어를 해방한다는 선전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을 점령과 학살의 알리바이로 동원하는 이 전략의 이름이 바로 핑크워싱입니다. 지도 퍼포먼스는 팔레스타인 안에 언제나 존재해온 퀴어들을 가시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 전원이 성명문을 한 줄씩 돌아가며 낭독했습니다. 성명은 올해의 자긍심의 달을 퀴어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고쳐 쓸 것을 선언합니다. 퀴어는 좁은 인간의 범주에서 추방되었을 뿐 아니라 그 범주에 편입되기를 거부해온 존재라는 점에서, 비인간화에 맞서온 팔레스타인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퀴어는 저항의 실천이지 자긍심의 기념비가 아니기에 집단학살이 멈추지 않은 채 3년째 자긍심의 달을 맞이하는 것, 국제법이 팔레스타인을 예외로 삼는 것, 침묵 속에서 일상이 유지되는 것,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패턴에 분노해야 함을 지적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주장이 전개될 때면 늘 나오는 ‘반론’인, 팔레스타인이 멀다는 감각 자체가 제국주의와 자본의 이해에 복무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시온주의가 해체된 세상이 지금 여기로부터 만들어짐을 밝힙니다. 구체적으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의 산재 사망 문제, 퐁피두 한화 서울의 아트워싱, 한국석유공사의 팔레스타인 해역 자원 수탈, 매일유업의 이스라엘 교역 문제를 나란히 놓으며 한국 기업과 정부의 연루를 직접 비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학살과 착취의 구조에 연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날 기자회견은 퀴어성을 저항의 실천으로 명명하고, 집단학살이 진행 중인 세계에서 자긍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자리였습니다. 국가폭력에 맞선 투쟁으로부터 기인한 자긍심의 달이 자본과 국가에 전유되기도 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속에서 자긍심의 의미를 다시 써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진3. 기자회견에 참여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이 작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주먹을 든 포즈.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성원

165소식

늦은 폐막 인사를 올립니다

27회 서울인권영화제

사진. 27회 서울인권영화제 현수막 아래, 활동가들이 손가락으로 3을 세는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입니다.

지난 6월 4일부터 7일까지, 마로니에공원 일대에서 “27회 서울인권영화제: 혐오의 궤도를 이탈하라”를 진행했습니다. 개막작 ⟨우리는 광장에서⟩부터 폐막작 ⟨이어달리기⟩까지 27편의 인권영화를 12개의 섹션으로 엮어 상영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총 58명의 이야기손님을 모시고 지금, 여기의 인권을 이야기하며 힘을 다졌습니다. 11개의 인권단체가 연대부스로 마로니에공원을 함께 채웠습니다. 나흘 동안 약 1,500명의 관객이 연대의 광장, 해방의 스크린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항상 가려진 존재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고 스크린으로 길어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특히 제삼자로서의 연대를 넘는 강력한 연결과 의지를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혐오의 궤도를 이탈하라”라는 슬로건은 혐오의 논리 위에 세워진 궤도에 맞서 사랑과 평등을 이야기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습니다. ‘그들만의 궤도’를 이탈한 존재들의 만남과 연대로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만들어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확인하길 바랐습니다. 영화제를 찾아주신 분들께 그러한 마음이 전해졌길 소망합니다. 부족하고 아쉬웠던 부분도 못내 떠오르지만, 앞으로 더 잘해보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해 봅니다.

한편, 이번 영화제는 서울인권영화제 말고도 많은 이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7개의 후원 협력 단체와 55인의 개막단 덕분에 무사히 개막을 할 수 있었고, 29개 단체에서 프로그램 협력으로 함께해주신 덕분에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관객들과 나눌 수 있었으며, 한국농인LGBT+의 협력 덕분에 농접근권을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폐막 이후에는 굿즈를 통해 후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빚 없이 7월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운영을 위한 예산 마련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화제는커녕 단체를 지속할 수 있을지 막막한 날이 참 많았는데, 함께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는 서울인권영화제가 1996년 1회 인권영화제로 첫발을 내디딘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영화제 활동가들은 30년을 이어 온 힘이 무엇일지 생각하며 지난해부터 바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지난해 가을 처음 모여 영화와 인권을 공부하고 토론하며 겨울을 맞이했고, 우리가 스크린으로 길어 올릴 이야기를 찾아가며 봄을 맞이했습니다. 각각의 영화를 어떻게 읽을지,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회의를 하고 글을 썼습니다. 다양한 몸을 가진 관객이 각자의 감각으로 영화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접근권을 실천하고자 자막해설과 화면해설을 만들고 수어 촬영과 편집을 하는 등 매일 밤늦게 사무실을 지켰습니다. 그런 시간을 보낸 끝에 맞이한 6월이었습니다. 각자의 생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과 밤을 쪼개가며 일한 활동가들이 서울인권영화제를 통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며, 30년 이후를 이어가겠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개막식에서 힘차게 펄럭이던 깃발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서울인권영화제를 함께 만들어주신 후원활동가 여러분,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의 광장과 해방의 스크린을 만들어주신 분들, 그 광장을 채워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30일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 함께 드림

11627회 서울인권영화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