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워크숍1️⃣ 만나다: 서울인권영화제와 나

소식

안녕하세요 2022년 4월부터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게 된 선우입니다. 서인영 자원활동가 선우라니, 아직은 어색한 소개말이네요. 신입 워크숍을 한달 동안 네 차례나 한다는 모집글을 읽곤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는 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고 지원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오늘은 그렇게 시작된 대망의 워크숍 첫날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우리의 첫만남은 서인영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온라인 마로니에공원 (게더타운)에서 이뤄졌습니다. 사랑의 후원금을 던지고 행운을 받아가는 (트레비 뺨치는) 분수부터, 회의가 진행된 이야기나눔방 영화를 상연하는 마로니에 무대, 역대 영화제 포스터가 전시된 길, 극사실주의 흡연실까지! 온라인으로 만나는 아쉬움을 느낄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분명 서인영 같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오프라인에서 다른 활동가 분들을 만나게 될 그 날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답니다.

1주차 워크숍 주제는 만나다 : 서울인권영화제와 나 였습니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 만큼이나 어색하지는 않을까? 내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머뭇거림까지 배려해주는 프로그램 진행에 어느새 설렘과 공감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를 발견하며 충만한 감정에 휩싸였답니다.

사진.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 일부 스크린샷. 녹색 카페트 위에 각양각색의 아바타를 한 활동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진.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 일부 스크린샷. 녹색 카페트 위에 각양각색의 아바타를 한 활동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 시작은 자기소개였습니다. 살면서 수없이 했지만 매번 난감함을 감출 수 없는 자기소개 시간인데요, 서인영 워크샵의 자기소개는 뭔가 달라도 달랐습니다. 빈칸이 있는 큐시트를 사람마다 다르게 준비해주셔서, 유쾌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저를 소개 할 수 있었습니다. 서인영을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계기로 자원활동가에 지원했는지와 함께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서인영과 인권에 대한 소개까지 할 수 있는 스크립트는 배려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들의 소개가 끝난 후엔, 서울인권영화제 25년간 지나온 길, 그 한걸음마다의 생각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역사와 같이 해온 그 길에서 만들어진 서인영의 다짐들에서는, 단단함과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단단함을 실천하고 지켜나가는 서인영 활동가인 우리는 서로간의 약속을 통해 다시 한번 서로를 존중하고, 인권과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거 같았습니다. 네번의 워크숍을 모두 마치면, 25회 버전의 우리의 약속을 직접 만들게 될 텐데, 앞으로의 활동에서 우리들의 정체성이자 멋진 규칙이 될 거 같아 기대됩니다.

이렇게 오전시간을 보내고 나서 잠시 각자 점심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에는 두 편의 인권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솔직한 감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활동가분들과 함께 서로 위로와 공감을 나누며 영화를 본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경험인지 처음 겪어보았습니다. 그간 혼자 영화제를 즐겼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경험에 역시 자원활동가를 지원하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줬답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워크숍 1일차, 그 중심에는 서울인권영화제는 어떤 곳이고, 인권영화란 무엇일지에 대한 공감이 있었습니다. 워크숍의 알찼던 내용들처럼, 자원활동가 선우로의 삶을 시작하는 저도 앞으로의 나날이 알차고 의미 있을 것이 기대됩니다.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이팅!

선우(25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56소식

인권해설:<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인권해설

봄에서 가을까지는, 연탄 난방을 하는 숙소에 화장실이 없어서, 매일 새벽 주위의 눈을 피해 휴지와 삽을 챙겨 들고, 자신의 일터인 비닐하우스 뒤편 우묵한 땅을 찾아가 대변을 후다닥 누고 삽으로 재빨리 그 자리를 흙으로 덮어야 하는, 한 달에 28.3일을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져 더 이상 야외에서 용변 보는 게 불가능해진 노동자는 비자 박탈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농장을 탈출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5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시대의 농업 여성 이주노동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분들의 숙소는 주로 야채 재배 시설 하우스에 인접한 ‘농막’으로, 고용주가 가설한 가설물들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각종 농약과 비료, 농약 희석시설, 각종 농기구와 자재들이 그들의 숙소에 함께 있습니다.

 

이 농막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무상이 아닙니다. 경기도 ‘이천/여주/양평/포천/남양주/광주/용인/인천’ 등 농지가 있는 모든 곳에서 약 1만5천여 명의 농업 이주노동자가 이같은 ’주택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이곳의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숙소에 거주하는 대가로 1인당 약 2시간분의 무상노동을 그들의 고용주들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2013년경부터 이주노동자들과 이주인권단체들은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며 캠페인을 벌이고, 농업 이주노동자의 독점적 중매 알선책임자인 한국노동부에, 근로계약의 책임 중매자로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책임 있는 주거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론의 비난에 몰린 노동부가 취한 조치는, ‘이주노동자들이 사람으로서 거주할 수 있는 집다운 집’을 찾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노동부는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고용주들이 이와 같은 불법 가설물을 농경지 근처에 임의로 설치하고 이주노동자에게 임대하여 임금에서 빼먹는 일을 아예 합법화시켰습니다. 2017년에 노동부에서 만든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업무지침’이 그것인데, 이 지침은 고용주들이 이주노동자들 전체 숙소의 80%에 해당하는 ‘그 밖의 임시주거시설’(이라 읽지만 불법가설물인 곳)을 임의로 운영하고,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월 통상임금의 13%를 징수하는 것을 공인해 준 것입니다.

 

모두 같이 “노동자는 짐승이 아니다. 그리고 비닐하우스는 사람의 집이 아니다!”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김이찬(지구인의정류장)

59인권해설

인권해설: 2047년에도 홍콩은 홍콩일 수 있을까?

인권해설

“光復香港時代革命광복홍콩시대혁명”. 홍콩 민주화운동에서 외치는 구호는 일본제국의 식민지배에 맞섰던 독립운동을 상기시킨다. 이 구호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유 홍콩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홍콩 땅의 상업지구 개발과 중국 본토에서의 관광객 증가로 인해 홍콩인들이 겪었던 박탈감에서 등장했고, 2019년 송환법 반대투쟁에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저항의 구호로 채택되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 지배에 놓였다가 1997년 중국 반환을 경험한 홍콩인들이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정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의 독재 체제와 획일화된 국민교육, 관광업을 통한 경제적 종속에 반대하고 민주적 참정권을 요청하지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재 많은 홍콩인들에게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 그 정체성을 훼손당하지 않는 것은 매우 절박한 사안이다.

 

국가폭력과 통제가 강해질수록 ‘홍콩 지역주의’ 또는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국가적 탄압은 보다 강화되고 있다. 올해 7월 홍콩보안법 발효 후 ‘광복홍콩’이라는 손피켓을 든 시위군중들이 ‘국가 분열’을 주장한다는 명목으로 체포되기도 한다.

 

영화 속 홍콩의 젊은 운동가들은 ‘지역주의(로컬리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 사는 땅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것, 노점상들의 생존권을 위해 연대하면서 지역 사람들의 생계, 자치권, 이익, 공적 자원에 대한 권리를 말하는 것.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들의 주장은 ‘반중’, ‘분열주의’, ‘독립분자’라고 규정되는 순간 불법적인 존재가 된다. 그렇게 그들은 정치적인 권리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히거나 정치적 망명을 떠나게 된다.

 

‘인권’에 대한 국제규범은 이들의 고난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내리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인종차별, 대량학살, 착취와 야만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양차대전이 종식된 후 다시는 이러한 참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 기본적 인권 보장 원칙을 확인한다. 이는 ‘인간이 폭정과 탄압에 맞서 최후의 수단으로써 폭력적 저항에 의존해야 할 지경에까지 몰리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유엔 회원국 인민들과 회원국의 법적 관할 하에 있는 영토의 인민들에게 적용된다. 1971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던 미국과 공산권 국가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대만을 축출하고 유엔에 가입 승인이 되어 중국대표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중국 역시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 1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그리고 제 18조부터 21조는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평화적 집회와 결사의 자유, 그리고 참정권, 공무담임권, 인민주권의 원칙을 말하며, 28조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와 있는 권리와 자유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 및 국제체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명시한다.

 

이 선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를 요청하는 홍콩시민들의 투쟁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 행사이나, 홍콩과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폭도’ 규정으로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마스크금지법,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탄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홍콩의 시민들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경찰 폭력, 백색테러와 함께 체제에 비판적인 구성원의 정치적인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적 폭력, 그리고 벌금형을 선고하고 자금을 동결시키는 등의 경제적 압박에 내몰려 있으며, 홍콩에서는 경찰폭력에 대한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영화 속 ‘홍콩민족당’이 불법화되는 장면을 보며 나는 2014년 12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헌정사상 최초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사건이 떠올랐다. 이는 조작과 거래로 얼룩진 정치적 탄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권력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관련 인물들의 인권은 구제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 속에서 ‘빨갱이’ 딱지가 사람들을 어떻게 낙인찍고 배제해왔는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가 지금까지도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로부터 ‘적’으로 규정된 이들의 삶은 감시, 통제, 배제 속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제주 4.3사건,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폭력 희생자들과 사회적 트라우마는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말한다. ‘홍콩의 오늘은 세계의 미래다’.

 

중국정부는 ‘내정간섭’이라는 논리로 전 세계로부터의 연대를 묵살하고 위축시키고자 하며, 중국발 자본은 발언권을 통제한다.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는 연예인들의 발언은 이들이 놓인 정치적 맥락과 함께, 저항하는 군중에 대한 국가폭력이 질서와 통합이라는 논리로 어떻게 정당화되는지 보여준다. 국제 패권 경쟁의 논리와 국가의 적이라는 규정, ‘질서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배제 속에서 혼란스러운 우리가 꿋꿋이 가야 할 길을 확인시켜주는 것은 ‘인권’이라는 지침일 것이다. 정권 퇴진시위에 나간 시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사망해도 이 살상무기를 완전히 사용금지하지 않고, 도리어 해외에 시위진압 용도로 수출 허가를 내주는 한국에 사는 시민으로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제 윤리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를 요구하고 함께 행동하는 것, 이것은 세계의 미래를 좀 더 낫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로컬리즘은 우리의 삶이 거대한 힘으로 인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뿌리 뽑히지 않도록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로컬의 목소리가 기억되고 계속되도록 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함께 살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현(한홍 민주동행)

57인권해설

인권해설: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월성>

인권해설

“‘엄마 나 어떡해?’라고 묻는 딸아이한테 물 많이 마시면 괜찮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경주 월성 나아리에 사는 신용화 사무국장이 눈물을 훔친다. 아이의 몸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후쿠시마 오염수가 해양에 버려지면 수산물을 먹지 못한다며 걱정하는 나는 행복한 걸까.

나아리는 월성핵발전소 반경 1km 인근에 있는 마을이다.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바라보면서 30년 넘게 살아가고 있다. 월성 1호기가 준공식을 하던 당시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몰랐다. 오히려 가끔 버섯구름이 나올 때 멋지다고 생각했다는 나아리 주민들. 이들은 월요일 아침마다 모여 상여를 끈다. 핵발전소 옆에서 삼중수소를 마시며 살아갈 수 없으니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낸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이곳에 정부는 또다시 핵쓰레기 저장을 위해 맥스터(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 시설)를 건설하려고 한다. 암과 싸우며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보다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다는 엉터리 공론화의 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처절한 삶이 무시되는 것이 2020년을 사는 나아리 주민들의 현실이다.

10월 말, 부산에서 출발한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캠페인단이 모형 핵폐기물 드럼통을 끌고 청와대를 찾았다. 전국의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핵폐기물 ‘모형’ 앞에 견고한 경찰 벽을 쌓았다. 모형이지만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캠페인단은 “부산, 울산, 경주, 영광, 울진 등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 주민들은 벌써 수십 년째 핵폐기물을 끼고 사는데, 청와대는 모형 하나가 무서워 경찰 벽을 세우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청와대가 문제고 서울과 수도권이 문제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물었다. 태양광 발전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으니 문제 아니냐고. 서울에 사는 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태양광 발전의 폐기물은 걱정하면서 10만 년 동안 책임져야 할 핵폐기물은 걱정하지 않는다. 태양광 발전에서 나오는 빛 반사는 걱정하지만,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걱정하지 않는다. 아니, 있는 줄도 모른다. 저 송전탑 너머의 문제일 뿐이니.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문제일 뿐이니.

“우리 가족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다시 힘을 내려고 해요.” 나아리 주민들은 얼마나 더 힘을 내야 하는 것일까. 나아리 농성장 앞에 새로 달린 현수막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이유는 거기 적힌 말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국민은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영경(에너지정의행동)

47인권해설

인권해설: 여기 우리가 살고 싶어요

인권해설

2017년 8월 15일 홍콩 고등법원은 3년 전 동북부 개발 계획에 반대하다 체포된 13명의 피고에 대해 8~13개월의 즉각적 구속형을 선고했다. 이는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센트럴 점령(Occupy Central)으로 비슷한 시기에 선고를 받은 피고들에 비해서도 높은 형량이었다. 동북부 신 지구 개발은 홍콩에서 가장 큰 개발 계획으로 명목은 토지 공급 증대, 인구 증가에 따른 스트레스 완화, 산업과 상업의 확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개발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확보하도록 한 후 공유지를 사유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몫 없는 시민들을 위한 거주권은 개발자들의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

 

수감된 홍콩의 활동가 대신 대만의 강제퇴거반대 활동가들이 그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교류행사에서 이 사건을 전하며 연대 서명을 모았다. 아시아 각지에서 온 운동가들과 경의선 공유지 활동가들은 서명지를 들고 중국대사관 앞에서 홍콩 활동가들의 석방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연대의 장이 된 ‘경의선 공유지’ 또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공유지를 이랜드월드에 넘기면서 상업지구로 개발 중이고, 다른 지역에서 쫓겨나 공유지에 ‘26번째 자치구’를 일군 상인, 문화예술인, 철거민들은 또다시 내쫓겨 이리저리 흩어졌다.

 

한국과 홍콩이 겪는 문제는 많이 닮았다. 고도의 경쟁 사회이며 일자리도 부족한 두 나라에서 시민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비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주기적으로 옮겨 다닐 걱정이 없는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서는 20년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입주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조건을 갖추고 한참의 대기시간을 보낸다. 이성결혼과 출산이라는 ‘정상가족’의 삶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주거권은 더욱 멀고 멀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홍콩의 빈곤층 비율은 20%에 달하며 이들 중 많은 수는 ‘닭장 아파트’ 내지는 ‘쪽방’이라 불리는 극히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한다. 이와 같은 빈곤층 증가는 부동산 가격과 관광객 유입에 의존하는 홍콩의 경제 구조 속 빈부격차와 사회적 안전망 부재에 기인한다. 시위를 통해 터져 나온 홍콩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정체성 인정과 정치적 권리 요구로 주로 가시화되지만, 경제적 요소도 크다. 주거권, 일자리, 최저임금 등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정부가 수립되어야 하고, 이들의 참정권 요구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홍콩시민들은 자신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경제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민주화시위를 상징하는 ‘노란색’에서 따와 ‘황색경제권 운동’이라 한다. 홍콩시위를 반대하거나 중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상점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방식으로 저항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각계 파업이라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가기도 하는데, 시위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지기도 했다.

 

시위에는 다수의 이주노동자도 참여했다. 필리핀 등 인근 국가에서 이주해온 입주 가사노동자들은 주말이면 고용주 가족이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집을 나와 길거리, 육교에 박스를 깔고 앉아 피크닉을 여는데, 육교와 거리 전체가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들과 시위 군중이 뒤섞인 모습이나 이주노동조합 주최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을 내걸고 집회를 여는 풍경도 홍콩 시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사회적 격차와 차별 등 첨예한 쟁점들이 낳는 온도 차와 긴장감 속에서 시위는 거리에 몰아치고 있었다. 홍콩 시위가 반중국이나 정체성 투쟁만으로 좁혀질 수 없는 이유이다.

 

영화의 말미에, 홍콩 대도시에서 섬과 섬처럼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함께 싸우며 자유와 평등함을 느낀다. 나는 그들에게서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중국에 반대해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홍콩에서의 삶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고 그 땅을 어떻게 일구어나갈지 공동의 문제의식을 나누며 연대하는, 공동체적인 것으로 정립되어가는 풍부한 가능성을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 속에 지치고 힘들더라도 부디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공유지 위에 선 미래의 집에서, 우리는 덜 슬프고 외로울 수 있을 것이다.

 

상현(한-홍 민주동행)

59인권해설

인권해설: 떨어지는 홍콩의 손을 잡아줘

인권해설

작년 11월 9일, 서울 홍대입구 윗잔다리공원 인근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시위에 나섰다. 홍콩경찰에 쫓겨 의문사한 22세 청년 차우츠록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기 위해, 부는 바람을 막으려 촛불을 둘러싸고 동그랗게 웅크린 채 불을 붙이고 또 붙였다. 무대에서 연설을 하던 홍콩 민간인권전선 얀호라이 부의장은 사람들이 추모의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말을 멈추고 무대에서 내려와 한동안 잠자코 바라보다가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다. 참가자들은 종교와 국경을 넘어, 기독교도였던 고인을 추모하고자 <세인트 할렐루야>를 함께 불렀다. 이 모습은 1948년 제주 4.3사건에서 탄압을 피해 함께 지슬(감자)을 먹던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집회 종료 후 참가자들은 걷고싶은거리로 행진해 ‘레넌월’을 세웠다. 도로 건너편에서는 홍콩경찰을 지지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고, 아마 이 집회에 참가했을 이들은 레넌월을 만드는 사람들 앞에서 휴대폰에 ‘오성홍기’와 ‘One China’ 글씨를 띄우고 중국 국가를 목청높여 불렀다. 일부는 격앙되어서 항의와 욕설을 뱉기도 했다. 각자의 ‘동지’가 곁에 있었다.

 

작년 10월 5일 홍콩에서 마스크 금지법이 발효된 이후 시위 진압의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졌지만, 한편 한국에서는 연대의 열기가 아주 뜨거웠으며 11월에 정점을 이루어 언론보도도 많이 되었다. 비록 심층보도보다는 표면적인 마찰과 충돌상황에 초점을 맞춘 기사가 많았지만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고, 장기간 싸우고 있는 홍콩의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데 그 의의가 컸다.

 

많은 언론보도가 홍콩투쟁을 ‘중국 대 홍콩’으로 다루었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본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건너갔고, 홍콩인들은 중국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며 중국인들의 인권을 위해 매년 6월 4일에 촛불을 든다.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중국에서 국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탄압당하는 노동운동가들에게 홍콩의 운동가들이 연대하고, 홍콩의 여성 단체는 중국의 성폭력 사건 문제 해결을 지원한다. 홍콩과 맞붙은 중국의 경제엔진 광둥성 일대는 홍콩시위와 나란히 노동쟁의가 불붙었다. 적대와 배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연결점들이 이 운동 속에 있다.

 

홍콩의 운동가들은 2005년 홍콩에서 열린 WTO 반대 시위에서 용감하게 싸운 한국의 농민들을 기억한다.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민중의 삶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 했던 연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교류의 기억과 함께 각국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다시금 호출하여 현재화하기도 한다. 나는 이들이 말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들으며 ‘박제된 민주화운동’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한국인들도 좀처럼 생생히 기억하지 않는 일을 홍콩인들의 운동이 다시금 꺼내어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홍콩 시위 청년과 광주 518 진압군 출신 목사가 만난 BBC 인터뷰에서 홍콩 청년은 말한다. “2014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많이 후회돼요.”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들이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홍콩보안법 반대 시위에서 홍콩인들은 “오늘 시위에 나오지 않으면, 내일은 나올 수 없다”고 외쳤다. 극심한 탄압 속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하는 것이 두려워 ‘자살하지 않겠다’는 유서를 쓰고 시위에 나가는 청년들이 있었고, 시위대에 대한 성폭력이 고발되었고, 무방비 상태의 시민이 실탄에 맞았고, 대학캠퍼스가 경찰에 포위되어 온통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무수한 폭력 속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홍콩보안법과 코로나19 감염 위기로 대규모 야외 집회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홍콩인들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온라인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정치적 망명을 떠나다 체포되어 중국에 수감된 12명의 홍콩 젊은이들의 석방을 요청하는 공동행동이 전세계 32개 도시에서 열렸고, 이 기록을 홍콩의 온라인 집회에서 상영했다.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 기억투쟁이 절찬리 진행 중이다.

 

홍콩인과 한국인이 함께 개최한 작년 11월 공동행동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연결로 홍콩에 민주주의를”.

 

끊임이 없다. 세계에 동지가 있다.

그리고 세월호도, 한국도, 아직이다.

 

상현(한-홍 민주동행)

58인권해설

인권해설: 홍콩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인권해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된 2020년, TV에서는 해외여행이 자유롭던 시절의 여행 프로그램이 재방송되고 있다. 홍콩은 TV 여행 프로그램의 인기 도시였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먹거리에 가까운 위치와 편리한 교통 등, 홍콩은 한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여행지였다. 반복적으로 홍콩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다시 홍콩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홍콩은 더 이상 TV 속에 있는 자유롭고 활기찬 도시가 아니다.

 

2019년부터 홍콩은 관광과 무역의 도시에서 억압과 저항의 도시로 바뀌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익숙했던 거리는 최루탄 연기로 가득 찼다. 그 최루탄 연기마저도 2020년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홍콩 정부 그리고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했다면 홍콩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무차별 적용되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라도, 홍콩 시위에 연대했던 이들은 더 이상 홍콩을 방문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시위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념과 세대를 뛰어넘는 지지였다. 소위 586세대들은 민주화운동 경험을 떠올렸고, X세대는 10대 시절에 좋아했던 홍콩 영화들과 1996년 연대 항쟁(혹은 사태)을 떠올렸다. 밀레니얼 세대는 촛불혁명을 투영했다. 심지어 노인세대는 중국의 억압에 반대하는 홍콩시위를 보며 반공의 추억을 소환했다. 조금이라도 홍콩시위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이라면 각자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홍콩시위를 바라보고 지지했다. 실제로 한국 시민들은 대학가와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연대 활동은 다 전개했다. 그러나 그 뜨거웠던 연대의 열기는 국회와 정부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홍콩의 저항은 중국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한국에게 매우 특별한 국가이다. 한반도 분단체제의 한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삶 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은 중국 유학생들이 없으면 운영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많은 한국기업들은 중국 수출로 코로나 19 상황에서 버텨내고 있다. 홍콩의 저항이 한국인들의 추억과 양심을 자극하더라도 현실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결국 홍콩은 중국으로의 주권반환을 앞두고 암울했던 상황을 그린 영화 <중경삼림>의 시절로 돌아갔다. 아니 이미 예정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주권이 주어지지 않은 한 도시의 운명은 700만 거주시민의 1/3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와도, 2019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이 민주세력에게 보낸 압도적인 지지에도 바뀔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홍콩을 응시해야 한다. 이 영화들이 보여주는 홍콩의 풍경은 결국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하고 연대할지는 계속해서 한국사회에 큰 물음을 던질 것이고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쉽게 찾을 수 없는 답을 계속 고민하면서 친숙했던 도시에 가해지는 억압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고민하는 한국인들이 짊어져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나현필(국제민주연대)

58인권해설

[활동펼치기] 추모문화제 : 우리에게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합니다

소식

사진. 추모문화제가 진행 중이다. "숫자가 아닌 당신의 삶을 기억합니다"라고 적힌 손글씨 피켓과 전자초를 든 손. 그 앞으로는 계단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 그 앞으로 현수막 앞에서 발언 중인 이가 있다.
사진. 추모문화제가 진행 중이다. “숫자가 아닌 당신의 삶을 기억합니다”라고 적힌 손글씨 피켓과 전자초를 든 손. 그 앞으로는 계단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 그 앞으로 현수막 앞에서 발언 중인 이가 있다.

마스크 착용 이외 거의 모든 방역 지침이 해제되었습니다. 잠시나마 자유로워진 기분에 마음이 들뜨다가도, 지난 2년 동안 온전한 추모와 애도의 기회 없이 떠나보낸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코로나19로 먼저 떠나가야만 했던 이들은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를 삐앗겼습니다. 유족은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할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지난 4월 8일 저녁,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는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애도의 마음을 나누는 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쌀쌀한 봄날 저녁 많은 분들이 찾아와 재난이 드러낸 우리 사회의 아픔을 마주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53소식

‘솔직한 정치’ 이제 그만!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

소식

지난 3월 23일, 국민의 힘 당사 앞에서 <비호감 대선에 대한 반성은 차별금지법 제정으로부터>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의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

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심지입니다.

좀 철지난 발언입니다만, ‘솔직한 정치를 하겠다’는 선언만큼 작금의 정치 세태를 잘 보여주는 발언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이기도 했던 최재형 의원은 “정부는 국민의 모든 삶을 책임질 수 없다”며 ‘솔직한 정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많은 ‘아저씨’ 정치인들의 솔직함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솔직함은 어떤 면에서 기득권의 태도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언어가 솔직함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야흐로 고학력-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들에 의한, ‘솔직한 정치’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당신들은 어떤 국민의 어떤 삶을 책임지시겠습니까? 그 ‘솔직한 정치’가 바라보는 대상에 여성이, 홈리스가, 외국인 노동자가,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있습니까?

네,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늘 국민의힘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길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수많은 현안들을 제쳐두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놓은 당선인 앞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면서 여성의 날 여성가족부 폐지를 당당하게 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선인 앞에서,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어설픈 핑계만 대던 당선인 앞에서, 과연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망설여졌습니다. 

어쩔 수 없죠. 저도 기자회견이라는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말해볼 수밖에 없겠습니다. 이 땅의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성소수자로서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인에 호소합니다. ‘솔직한 정치’, 매력 없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혐오에 편승하는 구태 정치, 매력 없습니다. 차별금지법 막아서는 정부 여당, 사실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도 모양 빠지지 않습니까? ‘아저씨 정치인’들께 당부드립니다. ‘솔직한 정치’ 이제 그만 넣어두시고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십시오. 국민들의 눈치를 보십시오. 이준석식 갈라치기가 실패하였음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신들이 그렇게나 떠들어대는 ‘통합의 정치’,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보이십시오.

이제는 구태 정치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편승하십시오. 국민의 절대 다수가 공감하는 차별금지법, 막아서지 마십시오.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해야 할 것은, ‘차별금지법 하냐 마냐’가 아니라, ‘차별금지법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지금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차일피일 차별금지법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저곳에서 확인된 ‘민심’을 받아안아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심지 

58소식

활동가 편지: 나의 서인영 잔류기

소식

안녕하세요. 자원활동가 요다입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사실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모집에 대한 홍보입니다. 이를 위해 울림에서 ‘자원활동가 수기’를 부탁받았을 때 ‘이걸 내가 써도 되나…’ 했습니다. 왜냐하면 2019년도에 서인영 자원활동가가 된 이후로 못해도 3개월에 한 번은 “그래! 결심했어! 그만두겠어!”라고 생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런 제가 어느새 영화제를 시작한지 2년이 넘었습니다. 저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한 편으로는 제가 서울인권영화제의 어떤 강력한 힘을 증명하는 산 증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쓸수록 자원활동가 모집을 촉진해야 하는 글이 이래도 되나 싶지만 제가 3개월에 한 번씩 도망을 결심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집에서 영화제 사무실까지 왕복 3시간이 좀 넘게 걸립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회의가 많긴 하지만 사무실에 가려면 마음먹는 데만 이틀 정도 소요됩니다. 두 번째, 저는 MBTI I 중에 제일가는 I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기가 쭉 빨립니다. 영화제를 하는 2년 5개월 동안 3인~10인이 넘는 사람들과 적게는 2주에 한 번, 많게는 1주일에 두 번 이상 회의를 했고 이는 저에게 꽤나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1주일에 두 번 이상 만나는 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세 번째, 화가 많아집니다. 서울인권영화제를 만나기 전에도 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었는데요, 맙소사 영화제에 와서 세상에 분노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사무실에서 인권영화를 보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와서 자주 담배를 피웠습니다.

여전히 사무실에 가려면 3시간이 걸리고 저는 더 극심한 I가 되었고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세상에 화 낼 일은 점점 많아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영화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이유가 여러분에게도 자원활동가에 도전할 이유가 되길 바라봅니다.

희망이나 믿음 같은 단어는 너무 뻔한 단어지만 이 세상의 어떤 정수 같은, 갖기 힘든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죠.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면서 세상의 불편한 진실들과 차마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마주했습니다. 이를 마주하고 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위험을 무릅쓰거나 자기 삶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이를 ‘영화’로 만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서인영은 마주하고 아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 영화로 담은 소중한 이야기를 인권의 언어로 풀어냄으로써 확성기의 역할을 합니다. 영화를 틀고 “관람하러 오세요”가 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많은 단체, 사람들과 연대하고 활동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하는 이런 일들이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 거라고 믿기 때문에 계속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 작더라도 보탬이 되면서 함께 하고 싶고요.

여러분 혹시 대선 결과나 나와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인권 탄압 때문에 그리고 먼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 전쟁, 폭력 때문에 가끔 머리가 아프시고 잠을 잘 못 이루기도 하고 답답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그러시나요? 여기 그런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처음 영화제를 시작했을 때, 이 공간에 이런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이 저에게는 희망으로 느껴졌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많다는 희망, 인권과 평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 하면 세상이 변하겠다는 희망이요. 다 같이 머리를 싸매고 선정한 영화를 누군가가 관람하고 힘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실 때 이 희망은 배가 됩니다. 팍팍한 세상에 이 희망마저 없으면 쫄보인 저는 삶이 두려워질 것 같아서 자원활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집이 사무실에서 멀어도, 내향인이셔도, 화가 많으셔도 자원활동가가 되실 수 있습니다. 화가 많으시면 오히려 훌륭한 자원활동가가 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사실 생각해보니 영화제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들은 좀 극복한 것 같아요. 다른 이유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것도 서인영의 힘 중 하나인데요, 사람이 뭔가를 극복하게 합니다. 요즘 신입활동가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는데(대박 재밌을 예정입니다.) 각자 극복하고 싶은 것을 나눠 봐도 좋겠네요. 지금 고민 중이신 분들 고민고민하지 마~(죄송합니다.) 제가 홍보를 잘 한 건지 모르겠으니까 밑에 영화제 하면 좋은 점을 좀 첨부하겠습니다. 꼭 함께 하고 싶어요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해요!

 

-만날 날을 기다리며, 자원활동가 요다

 

 

*서울인권영화제 하면 좋은 점*

-업그레이드 됨

(많은 기술들을 무료로 터득할 수 있고 실제로 이를 취업에 활용하신 분도 있음)

-많은 영화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음.

(선정작이 아니더라도 선정 과정에서 좋은 인권영화, 재미있는 영화들을 정말 많이 감상할 수 있음)

-눈물이 많아짐

(안구건조증에 Good)

-집회에서 외롭게 혼자 될 일 거의 없음

(혼자 가도 영화제 사람 거의 무조건 만나게 됨)

-인권감수성이 높아짐

(좋은 점 중 기본옵션)

-소울메이트 만남 가능

-다양한 분야의 정보 얻을 수 있음

(영화제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분야로부터 꿀팁 많이 얻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감수성 없는 말 들을 걱정 없이 맘 편~한 대화시간 보장

-이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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