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셋째날] <섬이없는지도>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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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삶의 공간] 섹션 두 번째 상영작 <섬이없는지도>의 상영이 이어졌는데요, <오시카무라에 부는 바람>이 주로 오시카무라의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섬이없는지도>에서는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제주도를 둘러싼 개발 이슈 뿐 아니라 예멘 난민과 관련된 상황과 홍콩 민주화 운동까지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상영 이후에는 김성은 감독님과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활동가 타리님을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지금 해외에 계신데도 줌으로 참석해주셔서 소중한 시간 함께해주셨습니다.

사진1. <섬이없는지도> 관객과의 대화 진행 현장. 무대 왼편에 자원활동가 미나상, 가운데에 성지윤 수어통역사, 오른편에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타리가 앉아 있다. 이야기 손님 뒤에 있는스크린에 김성은 감독이 줌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감독님께서는  “제주에 살고있는 원주민과 그곳에 오는 이주민. 그리고 개발에 반대하고 찬성하는 사람. 나눠서 생각하는 것보다 이분법 자체를 지양하는 방향성으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영화를 제작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들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활동가 타리님께서는 평소에 하고 계셨던 고민과 연결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내가 이 땅에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감각이 대체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사실 그건 내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땅에 대한 지배나 수탈이 제주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피해 경험으로 남아있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어떤 자격이 있는 순서가 왔을 때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무리해서라도 내가 당사자고 당사자 외에는 자격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야만 내가 생존할 수 있다는 감각도 되게 크지 않을까”라며 영화의 핵심인 땅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짚어주셨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며 타리님께서 “갑자기 제가 사는 곳에 도로가 뚫릴 수도 있고 누구도 이 문제에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는데요. 이분법에 저항하는 몸들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존재에 대한 사유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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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기다림>

인권해설

방글라데시를 떠나온 섹 알 마문 감독의 영화 <기다림 Why not>(2020)은 50여 년 전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시기 전시강간 피해여성들의 증언으로 시작된다. ‘시작된다’고 했지만, 그 시작은 카메라가 포착한 주저함, 망설임, 불안한 몸짓을 통해 가까스로 열린 말문이었다.  감독은 한국에 이주한 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기간 동안 자국의 여성들이 겪었던 강간피해와 그 이후의 삶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비랑고나(Birangona)와 일본군 ‘위안부’의 중첩된 증언을 통해서 강간 피해 이후 고향이나 고국으로 돌아와도 온전히 돌아올 수 없었던 시간들을 비춘다. 이들의 증언은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는 외교문제의 틀을 벗어나, ‘사회의 무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1971년 12월 22일자 <뉴욕 포스트>에는 ‘영웅으로 불리는 강간당한 뱅골여성들(Raped Bengalis Called Heroes)’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1971년 방글라데시 해방전쟁 기간 동안 수십만 명의 여성이 파키스탄 군대에 의해 강간을 당했고, 이러한 대규모 강간사태에 대해 방글라데시 정부는 피해여성에게 ‘비랑고나’라는 칭호를 부여했는데, 이는 벵골어로 ‘용감한 여성’을 뜻한다. 그러나 이 칭호는 점차 방글라데시에서 ‘불명예스러운’ 또는 ‘침해당한 여성’을 의미하거나, 강간, 임신중지, 자살을 상기하는 표현이 되어 갔다.

여성이 외부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가는 전통적인 벵골 촌락 사회에서 강간 피해생존자는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이에 당국은 ‘영웅 선언’을 통하여 그녀들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재통합’을 꾀했지만, 무슬림 아버지들과 남편들은 자신의 딸을, 아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귀환한 일본군 ‘위안부’들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들은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떠나온 마을로 돌아와 살 수 없었고, 가족에게도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혹은 말하지 않았다). 피해 생존자들의 삶은 귀환 후에도 ‘미귀환’의 시간 속에 놓이게 된다.   

9개월의 분쟁 기간 동안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수많은 피해생존자들이 당시 무엇보다 원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임신중지’였다. 경제력 있는 집안의 여성들은 캘커타의 병원으로 보내져 수술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은 출산을 위해 인도로 이주하거나, 자살하거나, 영아살해를 시도했다. 임신중지 시술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출산을 했고, 포화처럼 쏟아지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 아이를 길러야 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여 벵골 출신 여성 전문가들은 ‘사회 복귀’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임신중지 시술과 직업훈련에 조력하며 연대했고, 런던, 뉴욕, 로스엔젤레스, 스톡홀롬 등지에서 페미니스트 단체가 이 문제에 대응할 기구를 만들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전시성폭력에 초점을 맞춘 국제원조가 조직된 것이다. 

대규모 전시성폭력은 1971년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방글라데시의 사례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시성폭력과 대규모 강간이 그 복합적인 후유증까지 포함해 진지하게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971년, 미국에서는 강간위기센터가 문을 열었고, 토론의 장(場)에서도 강간은 ‘성행위’가 아니라 ‘성범죄’로 새롭게 정의되는 등 성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가까스로 생겨났다. 무엇보다 당시의 페미니즘 운동이 강간을 정치적인 문제로 보는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하고, 원치 않는 임신의 해결책으로서 임신중지를 실용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덕분에 대규모 강간 사태에 주목하는 국제 공조라는 결정적인 진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아정(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s31)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 InternationalWaters31은 회성외국인보호소에서 이른바 ‘새우꺾기’ 고문을 당한 M과 연대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보호소는 체류기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비(非)국민들이 ‘보호’라는 명분하에 철창 속에 ‘구금’되어 그 삶을 유예당하는 곳입니다. International Waters는 ‘공해(公海)’, 즉 국경이 없는 모두의 바다라는 뜻이고, ‘31’은 한 달을 채우는 하루‘들’의 합산을 의미합니다. 31명이 모여서 M의 하루들을 번갈아 채워나가며 구금 트라우마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려는 바람을 담았어요. 지금은 탈시설운동으로 문제의식을 확장하여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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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인권해설

인권해설: <오시카무라에 부는 바람>

인권해설

장소를 지키는 일은 용감하고 동시에 슬픈일이다. 청계천 기술자들과 유통 상가가 밀집된 입정동의 철거가 2018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에 을지로는 공사장이 되었다. 수천명의 기술장인들과 상인들이 비자발적 이주를 하거나 폐업했다. 을지면옥이 강제 철거 당했고, 맛집으로 소문난 갯마을 횟집이 사라지고, 안성집도 사라졌다. 40년 넘는 생산의 공간이 불시에 아파트와 오피스텔로 바뀌고 있다. 리슨투더시티 작업실이 있는 을지로 수표동도 지난주부터 본격적 철거가 시작되었다. 만선 호프가 을지 OB베어를 내쫓은 바로 그 동네이다. 타일 가게들과 공구가게가 밀집된 이 지역도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아는 을지로는 반절도 채 남지 않았다.

국가와 서울시는 일자리가 줄어든다 우려하면서 한쪽으로는 수천 명의 일자리를 당당하게 빼앗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도시의 생산 기능을 담당하는 을지로, 동대문, 문래, 영등포를 축소시키고, 아파트 더 짓겠다고 발표했다. 부동산 광풍에 서울 아파트 가격은 몇 년 사이 무려 25%가 올랐고, 무리해서 빚을 얻어 집을 산 사람들의 다수가 치솟는 금리로 감당 어려운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영끌로 집을 산 사람들은 빚이라는 폭탄을 안고 상당수가 파산의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국가와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부동산 규제를 풀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건전한 일자리는 없애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은, 아니 한국은 점점 위험한 부동산 사회가 되고 있다. 

일본 나가노현 오시카무라 마을의 풍경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산과, 마을을 소환했다. 천성산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765KW 송전탑을 막기 위해 애를 썼던 밀양의 사람들,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 그 외에도 마을과 골목과 산과 강을 지키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함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한국 정부는 서울과 부산을 잇는 KTX를 건설하기 위해 무려 86개의 터널을 뚫었다. 그중 울산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금정터널은 무려 20.3km, 국내에서 가장 긴 터널 중 하나이다. 터널을 뚫는 게 대수냐 생각하겠지만 산에 터널을 뚫으면 산의 지하수가 빠져나가면서 계곡이 마르게 되고, 지반이 침하된다. 고속철도가 터널을 지날 때 소음 및 땅이 울려서 겨울잠을 자는 양서류, 포유류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일부 학계는 천성산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도롱뇽 따위나 지키겠다고 국책사업 손실을 만드는 환경운동이라 프레임을 씌웠다. 산을 뚫지 않고 옆으로 철로를 내는 방법도 있었으나 국가는 결국 산을 뚫었다. 슬픈 일은 자연도 파괴되었지만 개발을 둘러싸고 작은 보상비라도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들과 돈보다는 자신의 땅을 지키겠다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으로 공동체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이먼 피코트 씨와 그의 가족들이 사는 이 산골 마을도 고도의 부동산 우리가 겪는 슬픔을 겪고 있다. 영화 등장하는 한 고등학생은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라고 묻는다. 그에 대해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양복을 입고 백지 같은 표정을 짓는 공무원들은 서로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다. 기가 막힌 일은 터널이 뚫리고 공동체가 파괴된다 하더라도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치를 상실한 개발은 결국 사람들의 삶과 자연을 앗아갈 뿐이다. 그것이 개발주의와 관료주의가 뒤범벅된 사회의 얼굴이다. 개발이 지속된다면 사람들의 삶과 추억과 숱한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공간은 천천히 그 찬란함을 잃어갈 것이다. 마을의 빛과 공기가 생기를 잃어가는 과정을 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속에서 공간을 지키려는 용기는 부서져 가는 사회를 붙잡는 단단한 힘이 된다. 공간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연대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은선(리슨투더시티)


리슨투더시티 www.listentothecity.org

리슨투더시티는 2009년에 시작했으며, 미술, 디자인, 도시계획, 영화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소규모 그룹이다. 리슨투더시티는 한국 환경적, 사회적 무책임, 부동산 만능주의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의문점을 가지고 시작했다. 우리는 지속가능하고 회복력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스트적 관점으로 도시를 사고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34인권해설

[25회 둘째날] <로힝야를 거닐다>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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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로힝야를 거닐다 관객과의 대화 모습.
사진. 로힝야를 거닐다 관객과의 대화 모습. 서울인권영화제 요다 활동가, 명혜진 수어통역사, 사단법인 아디의 김기남 활동가가 나란히 앉아있다.

오늘의 마지막 상영은 <로힝야를 거닐다>였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단법인 아디의 김기남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로힝야와 관련한 미디어나 작품을 많이 접하기 어려운 와중에 참 반가운 작품이었는데요, 특히 로힝야 난민 법률 대리, 난민촌 지원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아디의 기남님을 모시고 현장의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로힝야를 거닐다>에는 로힝야 난민 캠프의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난민들의 트라우마와 환영까지가 정말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서인영의 활동가들도 이 영화를 통해 로힝야의 이야기를 접한 이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귀를 쫑긋 세우고 함께 참여하기도 했답니다.

“한국이 왜 로힝야에 관심을 가져야 해?”라는 질문에 무어라고 답하면 좋을지 고민을 나눠준 관객도 계셨습니다. 기남님은 그 이유를 잘 설명 못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왜냐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요. 그럼에도 점점 잊히고 있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30개 마을 집단학살 기사가 1면에 나갔음에도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하네요.

진행을 맡은 서울인권영화제 요다 활동가는 어쩌면 “그냥 당연하니까”가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을 이어 받았습니다.

기남님은 마지막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32소식

[25회 둘째날] <빠마>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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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서울인권영화제 둘째날의 세 번째 인권영화는 <빠마>였습니다. [존재의 방식] 섹션의 첫 번째 상영작 <빠마>는 한국인 남성 병식과 결혼한 방글라데시 여성 니샤가  맞닥뜨리는 일들을 담아낸 극영화인데요. 우리 존재가 어떻게 차별에 저항하는 힘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존재의 방식] 섹션에 정말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상영 이후애는 섹 알 마문 감독님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요, 영화 비하인드, 한국에서의 이주민에 대한 인식, 특히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이주민에 대한 인식 등에 대해서 풍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사진 1. 무대에성 <빠마>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엔 섹 알 마문 감독, 중앙엔 수어통역활동가 명혜진, 좌측엔 자원활동가 미나상이 앉아있다.

“다문화라는 말이 차별의 상징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똑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가족들인데 백인들과 결혼하면 국제결혼이 되고, 아시아 그중에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랑 결혼하면 다문화가정이 되고 그런 부분들이 결혼이주여성 중에 싫어 하는 여성이 많아요. 우리는 국제결혼 커플이지, 왜 국제가 백인들만 되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세요). 저도 마찬가지로 방송에서 그런 걸 보면 이 이야기를 한번 더 던져봐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 빠마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많이 상영되어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섹 알 마문, 감독)

이번 영화제에서는 카카오톡 오픈카톡방을 통해서도 관객분들의 질문과 소감을 받고 있는데요. 관객분들의 격한 공감이 느껴지는 소감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카카오톡 채팅방 캡쳐. 관객들의 질문이 떠있다.

“병식이 보통 미디어에 나오는 남성과 조금은 다르게 느껴쪘는데 병식에게 신경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같이 본 사람들 모두 니샤와 사랑에 빠졌어요!”

“병식과 니샤의 관계를 만들 때 어떤 점을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대사들이 하이퍼리얼리즘이라 답답하고 공감이 갔던 것 같아요.”

<빠마>는 여러모로 이번 25회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사이에도 ‘핫’했던 상영작이었는데요, 관객분들도 적극적으로 남겨주셔서 더더욱 작품에 애착이 갔던 것 같습니다. 한편 섹 알 마문 감독님은 이번에 <기다림>이라는 다큐멘터리로도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 하십니다. 이번주 토요일 오전 11시 상영 이후 관객과의 대화에도 또 오시니까요, 관심있으신 독자분들은 참석해주시면 유익한 시간 되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날 마지막 상영작 <로힝야를 거닐다>의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그리고 서울인권영화제의 다른 상영작이 궁금하시다면, 영화제 기간동안 끝까지 관심 부탁드려요~!

 

 

 

 

 

48소식

[25회 둘째날] <2차 송환> 관객과의 대화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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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서울인권영화제 둘째날의 두 번째 인권영화는 <2차 송환>이었습니다. [집을 그리다] 섹션에 <파디아의 나무>와 함께 있는 영화입니다.

평일 낮 시간에도 영화제를 찾아주신 관객 분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피스모모의 활동가 영철님이 이야기손님으로 함께했습니다. 한국수어 통역에는 명혜진 수어통역사님, 문자통역에는 에이유디 사회적협동조합의 장정수 문자통역사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2차 송환>이 있는 섹션 [집을 그리다]의  “그리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그리워하다, 2) 상상하다. ‘집’이란 무엇일지를 질문하며 집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묻고자 하는 섹션입니다.

앞 상영작 <파디아의 나무>에서 파디아는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팔레스타인 마을 싸아싸아를 고향으로 그립니다. <2차 송환>에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볼 수 있는데요, 2차 송환을 기다리는 비전향 장기수들입니다. 과연 이들이 집으로 왜 돌아가지 못하는지, 이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지, 더 나아가 집으로 가는 길을 막지 않는 것이 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지를 고민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1. 2차 송환 관객과의 대화 모습. 진행자 고운, 수어통역 명혜진, 이야기손님 영철(피스모모)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특히 마지막에 나눈 ‘통일’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에 고개를 많이 끄덕이게 되었는데요,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살포시 공유해 봅니다.

“저는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 안 돼도 상관없고요. 그렇지만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이 두 가지가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분단 폭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한 세 가지 정도 렌즈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쉽게는 적과 우리, 위와 아래, 선과 악처럼 이분화하는 여러 가지 관념들이고, 두 번째는 적으로부터 위협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안전, 우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오로지 군사력만이 상상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런 적과 우리를 나누는 이분법이 우리 내부에서도 적용된다는 거예요. 영화에서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이 전향을 강제로 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형식상으로 어쨌든 전향한 것에 대해서는 떳떳하지 못하다, 이렇게 밝히시는 순간이 마음 아팠습니다. 이렇게 적과 나를 나누는 검열이 스스로에게 작용한다는 것까지 세 가지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래서 저는 통일을 평화의 관점에서 본다는 건 나라와 나라의 통합, 어떤 상태나 결과로써 인식되는 통일을 폭력들을 줄여가는 과정으로써 해석하고 의미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5분의 시간이 너무 금방 지나가 버려서 아쉬웠는데요, 그래도 분단폭력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된 기회였어요.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세 번째 영화, <빠마>의 현장도 기대해주세요!

39소식

인권해설: <바스티안>

인권해설

트랜스젠더는 바로 당신이 답하길 바라/보고 있다

 전 흔히들 트랜스젠더 인권에 관하여 논할 때 나타나는 어떤 상상적인 ‘구도’에 관하여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트랜스젠더(또는 그 옆에 서 있는 트랜스젠더 인권 옹호자들)가 답하길 바라/보고 서 있는 구도. 이해하기엔 낯설고 불쾌하고 두려운 모습-말하자면 두껍고 어색한 화장 따위-으로 서 있는, 어쩌다 마주친 트랜스젠더를 응시하는 구도 말입니다. 그 구도 속에서 트랜스젠더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대체 왜 그런 삶을 선택했을지, 자신을 남성이나 여성으로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지,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는 알고 저러는지 관해 답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럴 때 왠지 우물쭈물 하는 트랜스젠더. 답이라고 해봐야 모순에 불과한 답답한 소리만 내놓는 트랜스젠더. 그런 주제 자신이 남성/여성이라고 ‘주장’하며 화를 내고 찡찡대는 억지스러운 트랜스젠더들. 그러니 그들이 ‘주장’하는 권리라고 할 것들이 과연 ‘예상될 수 있는 문제’(예컨대 화장실 안전 문제 따위)를 떠안아야 할 만큼 보장 돼 마땅할 것일지… 트랜스젠더는 허상이 아닐지.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가 아니고서야 트랜스젠더가 현실에서 이런 구도 속에서 다른 이들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그렇게 흔하진 않습니다. 앞선 구도가 불쾌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 구도가 성립되기 위해선 하나의 ‘마주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로서, 다른 이들과 사회적 관계에서 부대낄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전제해야 합니다. 저런 상상적인 구도를 전제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러저러한 혐오적인 밈 따위를 내놓는 사람들에게 제가 어처구니없음을 느끼는 지점은 바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저런 대화를 나누려면 우선 트랜스젠더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트랜스젠더가 학교에, 일터에, 길거리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여유와 함께 충분히 존재하는지, 존재할 수 있는지? 저는 그래서인지 “우리 곁에 트랜스젠더가 있(을 수도)다”는 말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말 그대로(인구 비율이 0.25퍼센트라는 점을 보더라도) 우연적인 확률로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불특정 장소에 있을 수는 있지만, 그가 ‘트랜스젠더’로, 다른 사람과 충분한 소통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곁에’ 있을 가능성… 트랜스젠더로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는 장소를 놓쳐야 했던, 말하기를 멈춰야 했던-이를테면 학업, 경력, 진로, 가족과의 관계를 놓아버려야만 했던 저, 그리고 수많은 트랜스젠더의 역사-사람들을 떠올릴 때 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트랜스젠더들이 말하기를, 어떤 장소에 있기를 단념하고만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과 ‘트랜스젠더’로서 마주치려는 계기를 만들고자 치열하게 말하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그 몸짓과 말을 너무나 쉽게 흘려보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즉 저는 앞에서 말한 경우처럼 트랜스젠더만이 질문 받는 것이 아닌, 트랜스젠더도 어떤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로선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A, 그렇게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청소년기부터 “너무 (어려서) 헷갈리는 것이다”라는 부모나 사회의 애쓴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과 성별과 미래와 욕망과 삶을 말하고 새기려는 트랜스젠더들… 부모에게, 의사에게, 주변인에게 정체성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 맞춰 자신의 삶을 조직하기 위해, 이를 위한 단 한 번의 분명한 마주침을 위해,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청소년)들이 그 긴 고립의 시간동안 말과 욕망을 벼려내야 하는지… 남에 의해 규정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창출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의 부모를, 주변인을, 자신을 책임져야 마땅할 그 모든 사람들을 그들이 보지 않더라도(또는 애써 무시하더라도) 얼마나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지, 당신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제게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법적인 이러저러한 제도, 인식 등등 그런 흔한 답변을 내놓곤 했지만 왠지 불충분한 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스티안>에서 주인공이 20살이 되는 장면을 보고, 제 20살 때를 곱씹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불현 듯 20살을 맞아 처음으로 가졌던 기자회견문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트랜스젠더들은 (…) 누구보다 뜨거운 의지와 열망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학교를 비롯한 오늘날 교육현장에서 증명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의 짝사랑이었던 당신들이, 그래서 많은 트랜스젠더들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줬던 당신들이, 교육청이 우리 트랜스젠더들만 당신들에게 우리를 증명하고 갈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응답할 때입니다. (…) 우리가 불쌍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이 없으면 실패할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 당신이 마땅히 우리의 존재와 열망에 응답해야 했음에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서지 말고 응답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이제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구도를 바꾸는 것. 당신들만이 우리를 응시하고, 답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당신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도 당신들에게 답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 그 사실을 새기는 것. 

한성(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튤립연대

튤립연대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 모임입니다. 트랜스젠더 청소년간의 친목도모, 인권향상을 위한 정치적 행동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의는 youthtranskor@gmail.

33인권해설

인권해설: <섬이없는지도>

인권해설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닐까.(리베카 솔닛)
한 곳에서 여러 땅을 밟고 사는 느낌, 내가 밟고 있는 땅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느낌.(에밀리)
애초에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은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다.(그레이스 김)

<섬이 없는 지도>는 2018년 여름의 뜨거웠던 제주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서울에서도 9월과 10월에 난민 반대 집회와 환영 집회가 동시에 열렸고, ‘국민이 먼저다’라는 구호가 광화문을 메우는 것을 매일 지켜보아야 했다. 한국 사회에 난민이 정치적으로 등장하면서 인권과 인도주의의 간극을 몸으로 체험해야 했던, 인권활동가로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야스민이 난민인정이 불허되고 인도적 체류 지위를 받게 된 이후 제주를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 가지는 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로부터 과소인간이기를 명령받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제주에서 함께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기억하고 서울에서 난민인권운동을 하면서 제주에서의 관계를 미래의 약속으로 만들어낸다. 이걸 이렇게 함께 해낸 이들은 누구일까.

섬은 손쉽게 고립으로 은유된다. 하지만 섬을 다루는 지배의 방식을 보면 뭍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섬을 고립된 채로 남겨둘 필요를 느낀다. 쉬러 가는 곳, 보급 기지화하는 곳, 먼저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곳, 별도의 질서를 통해서 자본을 유입하도록 하는 곳.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그려지는 예멘 난민 환대 활동,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 제2공항 건설 반대운동은 단지 제주 이슈로서 이해될 수 없다고 하면서, 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섬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하도록 요청한다. 이를 통해서 누군가의 삶이 뿌리뽑히고 있는지, 어떤 관계들을 갈라놓고 있는지, 반대로 누가 환대하는지, 누가 새롭게 정착하는지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운동이 하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장소와 몸이 만나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통해서 약속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있을까. 여성, 퀴어, 정주민, 이주민으로서의 몸들이 시간차를 두고 어떤 장소에서 먼저 도착하고,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서로의 정체성과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평면적인 지도에서는 도저히 표시할 수 없는 이 움직임들이 섬을 살고 있다. 주민운동이라고 부르기엔 충분치 않은, 어떤 장소에 살아가는 것으로서 운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긴장을 만들어내지만 배제되어왔던 존재들의 해방을 위해서 오랫동안 중요한 전략이 되어왔다. 특히나 여성과 퀴어들이 일구고 있는 평화와 환대, 국경을 넘는 연대, 반개발주의, 반폭력의 현장의 삶은 너무나 고대해왔던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타리(나영정)
┃퀴어활동가로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성소수자, HIV 감염인 난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서 함께 공부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이다.


*본 인권해설은 26회 인천인권영화제 “시간의 겹, 당신의 겹: 돌아보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인천인권영화제 www.inhuriff.org

34인권해설

인권해설: <세월>

인권해설

자녀를 앞세운 비극적 사건의 유가족이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상, 새로운 삶의 세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 집, 대화가 사라진 가족, 소원해진 친인척, 의미 없는 명절과 기념일,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는 하루, 삶과 일의 의미를 상실한 삶, 살아있음에 대한 구차스러움, 끊임없이 상상되어지는 자녀의 마지막…. 하지만 또한 살아있기에 일상은 또한 계속된다. 먹고 사는 일, 챙겨야 할 자녀, 돌봐야 할 부모,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죽음, 매해 돌아오는 자녀의 생일, 문득 스미는 웃음과 행복에 침투하는 죄책감 등….

진상규명을 위한 정치적 애도 수행 여부와 무관하게 자녀의 죽음 이후 유가족들이 마주해온 시간은 그동안 살아왔으며, 축적해왔던 경험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누군가 새로운 삶의 모델을 제시해주지도 않는다. 자녀를 낳고 기르며 일상과 삶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듯, 자녀를 잃고 장사지내며 ‘사회적 상(喪)’을 치르는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일상의 파괴와 일상의 유지, 재건을 동시에 경험해야 하는 중첩적 상황 속에서 비일상적이며 비동시대적인 세계를 살아간다.

1964년부터 2013년까지 50년간 10명 이상이 사망한 재난이 276건에 달한다. 반세기 동안 두 달에 한 번꼴로 대형참사가 발생하고, 유가족이 양산되어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재난참사 유가족의 삶은 제대로 조망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은 사건 직후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로서 회자되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거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일라치면 보상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 상종 못 할 인간이란 사회적 오명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이들의 애도와 추모는 ‘빨갱이’로 매도되기도 했으며, 자녀의 죽음으로 생기를 잃은 삶은 무수한 ‘눈초리들의 감옥’을 경험하며 공동체와 사회로부터도 소외됐다. 상처받은 수많은 유가족이 침묵하고 자취를 감췄다.

재난과 상(喪)의 과정은 사회적이나 삶의 회복은 개인의 영역이라 치부하는 사회는 부정의하다. 자녀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과거로의 복귀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회복이란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닌 앞으로의 삶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회복과 제도개선을 통한 사회적 상(喪)의 완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희생에 대한 오랜 추모와 애도는 안전한 사회건설에 대한 공헌의 표현이자 재발방지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또한 유가족의 정체성으로만, 유가족다움으로만 유가족의 삶이 구성된다고 믿는 사회는 빈곤한 사회다. 수없이 무너짐을 반복하며 길을 내고 있을 유가족들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다양한 삶의 형태로, 다양한 욕구로 상실을 애도하고 상실 이후를 살아낼 수 있을 때야 사회가 존재한다 할 수 있다. 삶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저변의 인식변화가 필수적이다. 유가족의 삶을 옆에 두려는 부단한 노력, 교육과 접촉을 통한 만남, 유가족다움이 야기하는 폐해에 대한 지식의 향상은 유가족들의 삶을 위해서, 사회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의식적인 가해자 혹은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시도될 때, 우리는 사회의 재건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사회적 참사에 대한 사회적 치유가 시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해정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경상국립대 학술연구 교수
┃416세월호작가기록단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재난참사 유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인권기록활동을 통해 인권문제를 벼리며, 재난참사, 국가폭력, 소수자에 대한 기록과 연구를 해오고 있다.


*본 인권해설은 26회 인천인권영화제 “시간의 겹, 당신의 겹: 돌아보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공존을 위한 영상, 자유를 향한 연대 인천인권영화제 www.inhuriff.org

34인권해설

인권해설: <당신과 나를 잇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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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온에어옴니버스다큐멘터리프로젝트’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팀은 여러 의미로 ‘진행중’인 프로젝트 팀이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2030퀴어페미니스트들의 평등에 대한 관심과 감각이 관점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미디어활동가들의 역량강화 프로젝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2021차별금지법연내제정쟁취 농성장’을 세우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 미디어팀은 농성기록단을 구성해 운영했다. 다양한 현장 연대 경험이 많은 활동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신진 미디어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기록이 되었다. ‘미디어활동이라고 불리우는 활동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활동가, 자신을 활동가라고 불러야할지 아직 모르겠다고 너털 웃음 지으며 말했던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기록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밝혔으며, 모두 ‘이 현장에서 무엇인가 하고자’ 달려나온 마음들이었다. 연대체인 차제연의 담당자인 나는 그 속에서 연분홍치마에서 해왔던 현장미디어 활동의 연장이자, 함께 고민해왔던 ‘현장’의 의미의 확장을 실험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차별’에 대한 다른 감각과 언어를 가진 2030퀴어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겨울 농성을 기록하며 주 1회 짧은 영상으로 함께 만든 시간의 기억을 다지는 작업을 기획했던 미디어팀은, 농성장을 접고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이 출발하자 다른 방식으로 고민을 이어갔다. 차별금지법에 관심있는 2030퀴어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자 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모두’를 포괄하는 이야기가 가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언어화되지 않는, 뾰족하게 정답이 내려지지 않는 차별에 대한 ‘감각’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이것이 옴니버스라는 형태로 엮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제작팀은 수개월을 주 1회 혹은 그보다 더 자주, 혹은 조금 덜 빈번하게 만나며 서로의 지지대가 되어왔다. 

그리고 이 작업과정은 연분홍치마라는 인권운동단체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이 가지고 있던 새로운 활동비전에 포문을 여는 기획이 (결과적으로)되었다. 그간 연분홍치마는 신진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의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많지 않지만 연분홍치마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라는 자원을 나누고, 서로의 가능성을 함께 키우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던 차에, 알게모르게 지원하던 이 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제작하게 되면서 이런 활동들을 함께 만들어나갈 틀을 짜게 된 것이다. 앞으로 ‘놀이터 프로젝트’는 차별과 평등에 대한 이야기 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가진 이야기들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 프로젝트의 ‘완성’의 의미는 관객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게 될 것이다. ‘차별’이라는 거대한 단어 앞에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이 옴니버스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자신의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4편의 단편과 한편의 에필로그가, 수천의 자기 이야기로 덧붙여 완성되는 이야기가 되어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방법이 되기도, 우리를 평등하게 만드는 기본법이 제정되는데에도 기여하기를 바란다. 

넝쿨(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저항의 현장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고 여성주의적 삶을 실천하며 연대하는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30인권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