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공동정범

인권해설

“이제 그만 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이래야 해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을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해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서, 지난하고 반복되는 싸움에 괴로움을 호소하며 잊고 싶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정말 잊고 살 수 있다면 말이다. 이들의 ‘잊고 싶다’는 넋두리의 한편에는 ‘잊히면 어떡하나?’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가진 공동의 아픔, 공동의 싸움, 공동의 기억은 수년, 수십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잊은 듯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는 있어도, 각인된 그 기억은 톡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올라온다.

<공동정범>은 바로 이들의 공동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9년 1월 20일 화염에 뒤덮인 불타는 용산 남일당 망루로 각인된 ‘용산참사’라는 특정한 시간과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특정 사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공동의 피해와 기억을 가진 피해자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갈등하고 혹은 치유하며 투쟁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건 말하지 못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라고 <공동정범>을 본 세월호 가족, 강정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말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알면서도 우리가 대면하려 하지 않았던 피해자 집단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가해자인 국가를 공동의 적으로 맞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함께 싸우다가도,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전혀 꿈쩍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막막함을 목도할 때, 어느 순간부터 그 책임의 손끝이 ‘나 때문인가’라며 스스로를 혹은 ‘너 때문이야’라며 가까이 있는 같은 피해자들을 향하곤 한다. 국가폭력은 그렇게 사적이고 내밀하게 작동한다.
우리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사회적 사건 그 자체로만 국가폭력을 주목할 때, 그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사적이고 관계적인 조각들에 수년 수십 년 동안 내밀하게 작동하는 국가폭력을 놓치게 된다.

우리가 국가폭력의 내밀한 작동을 목격하고 증언할 때, 국가폭력이 피해자 각각을 어떻게 해체해 놓는지 뿐만 아니라, 해체된 듯한 개인들이 왜 다시 피해자 공동체로 모이고, 그 피해를 이야기하고, 투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공동의 아픔, 공동의 싸움, 공동의 기억을 공유한 해체된 각각의 피해자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결합하는지를 통해, 역시 공동의 기억을 공유한 ‘잊지 않는’ 우리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무기를 다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20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공동정범

프로그램 노트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 출소 이후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
남일당 건물이 있던 용산은 이제 사라졌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과 감각은 여전히 망루 4층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죄책감으로, 의문으로, 공허함으로, 답답함으로…. 이들이 떠올리는 참사의 모습과 감정은 각기 다르다.
살기 위해 농성을 시작했고, 살기 위해 옥상으로 올랐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망루 4층까지 오르게 했으며, 살고자 하는 본능이 망루 밖으로 뛰어내리게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모두 “공동정범”이 되었다. 살았다는 죄책감은 질문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왜 불이 난 것일까. 왜 나는 살고 그들은 죽은 것일까. 나를 망루에 오르게 한 것은 무엇인가.
이들의 삶은 같은 기억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계속해서 얽히고 부딪친다. 삶을 뒤흔든 ‘그날’의 기억을 공유할 유일한 동지가, 남보다 못한 서운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 사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놓이지 않는 이 물음은 결국 서로를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화살이 된다. 사건의 진실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과 사건이 낳은 상실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완전히 찢어지지도 완벽히 만나지도 못한 채 갈등은 계속된다.
투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되어 하나의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투쟁의 끝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처한 현실에 따라 각자에게 다르게 경험된다. <공동정범>에 담긴 다섯 인물의 각기 다른 증언은, 투쟁과 연대라는 이름으로는 지워질 수 없는 ‘개인’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투쟁 이후 뒤흔들린 ‘하나의 삶’들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투쟁의 여파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겨누고 있는 책임의 화살은, 언제쯤 이들의 손을 떠날 수 있을까?

31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시국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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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장에는 ‘페미니즘 정치’의 요구가 있었다.

2016년 10월 29일 오후 2시, 보신각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첫 번째 검은시위가 열렸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까지 마치고 다소 고무된 마음으로 청계광장에 갔을 때,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인파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자에 대한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레와 같은 환호성. 무대에 선 이는 이재명 성남시장이었다. 그날 저녁 광장에는 ‘~년’을 “정신병원에 보내라”는 구호가 난무했다. 이후 두 번의 범국민행동이 진행되는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단지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런 놈도 있었던 것’으로만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효과였기 때문이다. 박근혜를 ‘병신년’으로, 최순실을 ‘저잣거리 아녀자’로 표현하는 광장의 언어와 정동은 광장에 모인 이들이 ‘혼내줘야 할 나쁜 권력’을 곧 ‘여성’이라는 상징으로 치환하는 정치적 의도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온라인에서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박근혜, 최순실 주변의 인물들과 새누리당을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이들을 강간하여 혼내주는 이미지가 넘쳐났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집회에 참석한 여성들이 유독 성추행을 많이 겪었다는 사실은 그저 우발적인 일이 아닌 것이다.
‘페미존’이 시작된 것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세 번째 범국민행동이 있었던 날, 사전대회로 진행된 여성대회에 참석한 이후이다. 여성대회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한 명의 남성이 난입하여 한 차례 소동을 치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다니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던 거리에서, ‘페미존’의 참가자들은 용기를 내어 “민주주의는 여성혐오와 함께 갈 수 없다!”고 외치고 다녔다. 우리와 함께하는 참가자는 어느새 두 배 이상 늘어났고, 여자들이 대다수인 행렬을 향해 누군가는 박수를, 누군가는 “기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중년 남성 무리는 “학생들이 대단하네. 그런데 학생들은 가서 공부를 해야지”하며 지나갔다. 그를 향해 우리는 외쳤다.

“공부는 아저씨나 하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그렇게 몇 차례의 집회와 ‘페미존’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집회 무대에서의 발언과 분위기에는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고, DJ DOC의 공연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여성혐오 하지 마세요!”라는 외침은 광장에서 어떤 의미로 전달되었나. 이 구호가 단지 여성을 지칭하는 욕이나 비하 발언을 하지 말라는 예민한 외침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정치적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소리로, 정치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페미니즘 정치의 요구로 환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페미존’ 이상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그해 11월 26일 진행되었던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은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페미존’에 참여한 모임, 단체, 개인들이 각기 ‘페미니즘 정치’를 의미화하고 선언하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그로부터 1년 반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페미니즘 정치는 어디쯤 와 있을까.
수십 년을 이어온 가부장적 정치권력 카르텔의 정점이었던 박근혜 국정농단의 실체가 밝혀지고 그간의 역사가 전환되는 중요한 정치적 국면에서, 우리는 그 권력을 ‘여성’으로 치환하려 했던 광장의 정치적 역동을 그저 보아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페미니즘 정치가 ‘다른 정치’의 방향으로 전면화되지는 못했던 그 겨울을 지난 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했던 대통령의 행보는 우리가 선언했던 페미니즘 정치의 방향에서 여전히 한참 후퇴해 있고, 우리는 연일 곳곳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과 싸우는 중이다. 이전까지의 정치 권력이 폭력적인 가부장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현 정부의 정치권력은 좀 더 부드러운 가부장의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 정치가 정치의 근본적인 전환을 이뤄내야 할 시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다. 국가의 가부장적 ‘보호’를 넘어 모든 이들이 정치의 주체로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낼 때, 그것이 바로 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통제로서 작동하는 혐오를 넘어서는 순간이고, 그곳이 바로 페미니즘 정치의 현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페미존’의 외침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26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시국페미

프로그램 노트

수백만의 촛불이 모였던 광장을, 그 시국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저들이 말하는 ‘우리’에 내 자리는 없었다.”
광장에 ‘시민’으로서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은 ‘시민’이 아니었다. 불편한 세상을 바꾸자는 그 속에서도 편안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의 광장에 내 자리는 없어도, 여성 혐오는 있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과 권력자를 ‘미스 박’, ‘~년’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야 했다. 그들은 광장에 나온 나를 “기특하다”고 했다. 동등한 위치의 시민이 아닌, ‘젊은 여자’로 나를 대했다. 혐오는 이렇게 나의 외침을 틀어막았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는 누구랑 싸우는 거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건 없었다. 우리에겐 이 혐오에 저항하는 것 역시 중요했다. 함께 변화를 외쳐도 늘 배제되었던 경험이 모여, 서로를 지키겠다는 바람을 일으켰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뒤로 미뤄졌던 이야기들이 여기 모여, 이 혐오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부르짖었다. 이런 외침들이 하나, 둘 모여 ‘페미존’을 만들었다. 광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광장에 설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다시 말하려 한다. 또 다른 변화가 움트던 그날의 광장에, 페미니스트로서 모인 우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로 함께 했던 순간을 기억에만 남겨둔 이들이 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배제한 여성은 없는가. 이 물음을 던지고자 여기, 그날의 광장을 다시 불러온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

29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바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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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찰은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그 중, 3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치안을 위한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1994년 4월 27일, 최초 흑인 투표가 시작되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당선된 지 20년 만의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떤 정부였는지 검색을 해보니, 당시 대통령이었던 제이콥 주마는 2018년 비선 실세 의혹과 정경유착으로 사임했다고 한다. 임기 동안 수차례 탄핵 시도가 되었다고 하니 한국의 지난 몇 년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영화 ‘바위처럼’의 시작은 광업회사 론민 CEO의 전하는 말로 시작한다.
“광업회사들은 주주, 투자자, 정부와 함께 호황기가 온다면 수익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전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호황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노동을 착취당하고, 목숨을 빼앗기고, 살아남은 마리카나 여성들의 시간을 담고 있다. 살아남은 여성, 투메카는 말한다. “공동체의 치유가 목표다” 삶의 터를 빼앗기고, 가족과 친구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살아남은 이들에게 치유는 무엇일까.

여성들은 단결하며 단체를 만든다. 단체의 이름은 ‘우리는 함께 눈물 흘린다’는 뜻을 지닌 ‘시칼라 손케’다. 여성들은 함께 모여 서로의 아픔을 듣고, 묻고, 서로를 돌본다. 노래하며 춤춘다. 단체의 리더인 프림로즈의 ‘울지 말고 강해져’라는 말은 ‘함께 흘리는 눈물’이 좌절이나 절망이 아닌, 현재를 버티고 미래를 바꿔가기 위한 힘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함께 아픔을 나누는 것이 치유다’

프림로즈는 의원이 되어 국회로 향하고 마리카나는 시칼라 손케의 리더를 맡는다. ‘울지 않고 강해지는’ 길을 택한다. 프림로즈는 정치권에서 마리카나의 상황을 알리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고, 마리카나는 공동체를 보듬으며 책임자들에게 목소리를 낸다.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두 리더는 더는 아픔을 함께 나누고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각자의 역할을 ‘울지 않고 강하게’ 해내고 있지만, 서로에게 더는 ‘함께 눈물 흘리는’ 이가 되어주지 못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싸움이 공동체의 치유다’

강하게, 강하게 버티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버티던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눈물 흘리며’ 강함의 약함을 서로 알아봐 준다. ‘함께 싸우는 이들만이 나눌 수 있는 치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투메카는 바다 앞에서 영국을 상상한다.
그 바다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론민의 사장들이 있을 것이고, 론민에서 채취한 백금을 팔고 사는 이들이 있을 테고, 그런 물건들을 수입하는 한국이 있을 것이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핸드폰 어딘가에, 자동차 어딘가에 그녀들이 채취한 백금이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폭력을 알아가는 과정이 치유다’

지난주 인터넷 기사에는 영국의 고위 관료, 베이츠 부장관의 사임 이유가 화제였다. 국회 출석을 3분 지각한 그는 “아주 중요한 질의의 첫 부분에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결례를 범하게 된 것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나는 항상 입법부의 합법적인 질의에 응할 때는 최대한의 예의범절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왔다”고 한다. 품격이 다른 영국 의회의 분위기에 많은 이들이 찬사와 부러움을 보였다. 투메카에게는 어떻게 비추어질까. ‘나의 품격이 누구를 발판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것이 치유다’

그녀들의 삶을 내 삶으로 느끼는 과정, 그녀들의 삶이 내 삶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있어야 투메카가 목표했던 ‘공동체의 치유’가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우선, 그들의 아픔에 귀를 열고, 아픔의 원인의 원인까지 함께 알아가는 과정에서 변하는 세상이 ‘공동체의 치유’가 아닐까. 그녀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는 인류가 나가야 할 방향이 있으니까.

김미성(와락치유단 치유활동가)

30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바위처럼

프로그램 노트

마리카나 학살 이후에도 그곳에서 살며 삶을 가꾸어 가는 여성들이 있다. 다림질을 하고, 배수가 안 돼 집에 차오르는 물을 퍼내는 마리카나의 여성들은, 서로의 안녕을 물으며 서로의 목소리가 된다. 각자의 눈물을 마주하고, 삶을 들으며 점점 마리카나 여성들은 론민(Lonmin)과 남아공 정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감정을 모아간다.
그 기반을 딛고 프림로즈는 EFF 정당에 들어가 의회 발언권을 얻는다. 이는 아무리 소리쳐도 세상에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던 마리카나 여성들에게 주어진 기회였다. 하지만 정치는 생각 같지 않았다. 프림로즈는 진보정당의 한 의원의 얼굴로 더 많이 비춰졌고, 프림로즈가 마리카나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의 과정을 거치며 편집되고 재구성되는 프림로즈의 목소리는 더 이상 마리카나 여성들의 목소리와 닮아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분명 닮았던, 프림로즈의 얼굴과 마리카나 여성들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달라진다.
애초부터 마리카나의 투쟁은 정돈될 수 없는 서사였다. 마리카나 학살로 남편이 죽었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론민에 취직해야 했고, 아무리 기다려도 개발되지 않는 마리카나가 너무나 지겹지만 자신의 사람과 삶, 이야기의 터전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마리카나 여성들의 목소리는 정치라는 정리된 방식으로 전해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이제 시위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숨기지 않고 자신들의 분노를 말한다. 의회가 아닌 거리에서, 세상이 편집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내비친다.
투쟁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천천히 파동을 만들며 투쟁 전후의 시간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그 면면은 결코 단일하지 않고, 수많은 이야기의 집합이다. 또한, 기존에 없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투명하게 비춰지는 감정들을 마주하자. 목소리가 없던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를 들어보자.

27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내 몸은 정치적이다

인권해설

태어나면서부터 성별이 여/남으로 정해지고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분법적인 사회 속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경험일까? 물론 각자의 맥락이 있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영화는 트랜스젠더 네 명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이러한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트랜스젠더의 삶은 다른 이들의 삶과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만나 밤늦게까지 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때로는 즐거워하고 때로는 고민하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일상적 삶 속에서 트랜스젠더이기에, 규범을 벗어난 존재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차별과 배제의 경험도 존재한다. 자신을 대표하지 못하는 이름을 가져야 하는 일, 의료서비스 이용에서의 장벽을 마주하는 일, 가족들에게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일, 교육현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일 등과 같이, 성별이분법적인 사회 속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존재하지 않는, 말할 필요 없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부정은 브라질만이 아닌 한국을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들 역시 겪고 있는 일이다.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생각한다.” 지난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나온 이 말은, 성소수자 이슈의 질문에 대한 정치인들의 의례적인 답변이 되어 버린 것 같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몇몇 후보들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와 같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게 동성애를,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반대할 수 있다는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발언을 정치인들은 앞장서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10년이 넘게 제정되지 못하고 있으며,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각 지역의 인권조례가 폐지되고 있다. 또한 여성가족부는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은 별개라는 이야기를 하였고 교육부는 성소수자를 다루지 않는 성교육 표준안을 배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는 사회적 합의의 대상, 누군가에 의해 공공연하게 부정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한편, 존재의 반대와 차별은 별개라는 주장에는, 범죄화나 해고 등과 같은 의도적이고 거대한 것만이 차별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차별의 경험과 이야기는 결코 그렇게 명시적인 결과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다. 기실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의 경험은 이성애가 당연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동성 애인을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 지정 성별에 따라 남성/여성으로 여겨지고 아들, 딸 등으로 호칭되는 문제와 같이 당연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부정은 개인의 자존감을 손상시키며, 동등한 시민으로서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심각한 차별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공기처럼 만연한 구조적 차별 앞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 흑인 여성의 말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사회가 소수자의 존재를 주변화화고 지워버릴수록,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몸을 드러내며 서로를 확인하고 연대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드러냄을 통해 소수자를 억압하고 차별을 만들어내는 규범의 모순점을 드러내고 균열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며, 끝내는 이를 전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규범에서 벗어난 몸은, 존재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박한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23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내 몸은 정치적이다

프로그램 노트

“내 이름, 내가 붙이는 이름, 내 정체성, 내 몸에 인생이 있고 역사가 있다.” 지정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들의 외침이다. 이들은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연극을 지도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학생으로 지내면서, 사진을 찍으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이 영화는 내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 내 정체성으로 살아가고 싶은, 일상이 저항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빈민가에서 자라나 살 곳이 없어도 이름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따라다닌다. 그러나 서류에 있는 이름은 나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내 이름을 갖기 위해서, 그 이름으로 불리기 위한 긴 싸움을 해야 한다. 이들을 없는 존재로 가리려는 세상과 싸우고 “왜 트랜스젠더는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없냐”고 묻는 이와 맞선다.

영화 속 한 트랜스 여성은 사진 작업을 하러 간다. 촬영의 대상인 흑인 여성은 “나는 흑인으로서, 당신은 트랜스 여성으로서, 소수자성으로 연합되는 이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연극을 지도하며 여성혐오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퀴어성을 노래한다.

이들은 각자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기반으로 교류한다. 같은 소수집단이 아니어도, 소수자로서 차별받는 지점은 중첩된다. 그렇기에 함께 싸워나가는 이 저항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든든한 지지가 된다. 이것은 영화 속 브라질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함께 연대하며 싸워나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일부 사람들은 이 연대를, 이 힘을 부정한다. 그런 건 없다며 “챙기지 않겠다” 말한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한 페미니즘을 외치는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가 그중 하나다. 이렇게 네 편과 내 편을 가르고 혐오 속에 혐오가 자라나는 와중에도 ‘나’를 존중하고 함께 싸워나가는 ‘우리’가 있다. ‘우리’를 가리려는 편협한 생각과 혐오의 적막을, ‘우리’의 삶이 일으키는 파동으로 부순다.

29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꿈,떠나다

인권해설

1990년대 말 한국사회의 부족한 노동력을 이유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면서 산업연수생이라는 신분으로 일을 할 기회가 생기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한국으로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제공했던 산업연수제도라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적게 주기 위한 인종 차별적인 제도임이 드러났다. 산업연수제는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급여를 주지 않기 위한 제도였으며, 저임금으로 강도 높은 일을 시키기 위한 제도였다. 그렇게 이주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그 제도 위에서 사업주들의 임금체불과 폭언, 폭행과 같은 인권침해가 노동현장에 난무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러한 상황은 이주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몰았다. 자신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몰랐던 이주노동자들은 일단 살기 위해 사업장을 탈출하여, 소위 출입국에 의해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세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한 탈출은 목숨을 부지해주고, 다른 사업장으로 이동할 기회를 주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와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중도장애와 독성물질에 중독되거나, 우울증에 걸렸고, 끝내 자기 목숨을 끊어 버리기도 하였다.
이런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저항으로 2003년 11월에서 2004년 12월까지 명동성당 시위는 이어졌고, 그 저항의 결과로 제도적 변화를 이루어 냈다. 그것이 고용허가제로 바뀌게 된 계기였다. 이 과정을 겪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지키기 위해 2005년 4월 설립한 것이 이주노동자조합(MTU)이다. 하지만 법외조직으로 2015년까지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유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노동조합설립은 신고제임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2015년 6월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서 승소하고 나서도 고용노동부는 신고접수를 거부하다가, 연일 이어지는 집회와 기자회견 등 이주노조와 연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압박이 이어지자 노조 설립 10년 만에 합법화를 인정하게 된다.
10년간의 싸움을 통해 합법화를 이뤄낸 이주노조는 이후 이주노동자를 위한 투쟁을 더 가열하게 하고 있다. 공항으로 처음 입국하는 각국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나서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리는 홍보캠페인을 하고 있다. 그리고 5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이주노동자 투쟁투어 버스’를 운행하며,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들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제도를 개선하고, 사업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지역을 다니며 이어왔다.
바로 이 영화 ‘꿈 떠나다’의 감독은 이주노동조합MTU의 부위원장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나 사업장 내 폭력 문제 또는 최저임금위반과 같은 사건을 직접 상담해주고 당사자와 함께 직접 해결에 나서고 있는 인권활동가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러한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영화로 알려내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 출신의 당사자로서 명동성당 시위 현장부터 오늘까지 이주노동자 권리 투쟁을 위한 현장을 지켜 온 감독이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속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의 대사 속에 녹아 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주노동조합은 투쟁 중이다. 고용허가제로 인한 문제가 누적되어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함께 싸우면서, 사업주의 입장에서 제도적 차별을 강화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해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래서 ‘노동 허가제’로의 제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적은 최저임금에서조차 숙식비를 공제하는 지침을 내린 법무부를 비판하며, 부당한 최저임금 삭감 효과를 불러오는 숙식비 공제를 철회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5월 29일 국회는 한국사회 전체 노동자의 최저임금에 숙식비 및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을 산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최저임금이 겨우 올랐을 뿐인데, 그것을 빌미로 기업들은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가격 인상을 담합해 왔다. 그런데 노동자나 국민의 권리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차별적인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회에 대해 침묵하고 공모할 때, 결국 그 무시와 차별이 어떻게 주류사회로 확산되는 지를 말이다. 이제 모든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저항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 모두가 ‘꿈을 꿀 권리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노동할 권리가 있고, 그 노동의 대가로 자신의 미래를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바꿀 희망이 있어야 하고, 그 희망이 현실이 되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코리안 드림’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으로의 이주를 우월한 위치에서 바라보았던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에 사는 코리안으로서 당신의 드림(Dream)은 이루어졌습니까?

정혜실(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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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노트: 꿈,떠나다

프로그램 노트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다양하다. 돈을 벌기 위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서 머나먼 타지까지 왔다. 한국에 오기 위해 3~4년 동안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웠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의 꿈은 깨진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무시된 채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만 인식된다. 피부색이 어둡고 한국어가 서툴다는 것, 한국보다 ‘못 사는’ 국가에서 왔다는 것은 비이주노동자와 다른 ‘2등 시민’으로 취급을 받는 이유가 된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오기 전, 각자의 나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시험을 보고, 추첨이라는 불합리한 절차를 거쳐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은 지원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비자를 받아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한국시민’과 ‘이주노동자’ 사이에는 큰 벽이 세워져 있다.

이들을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고용허가제(EPS)는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된다. 고용주의 말 한마디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구제를 위한 안전망은 전무하다. 고용주에게 시민성 박탈권을 주는 제도의 허점 때문에 온갖 횡포에 시달리게 된다. 열한 시간의 야간 노동, 임금 체불, 인격 모독, 주말 무급 노동 등 온갖 차별과 부조리에 시달린다. 사장한테 “나 힘들어요. 어떻게 일해?”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은 “야 새끼야. 난 몰라”다.
한국 사회가 원하는 시민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시민의 조건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는가? 일리야스, 라나, 슈몬, 그리고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고, 고용허가제의 부당함을 폭로한다. 그들의 목소리로 일으키는 소란이, 한국 사회가 허락한 시민성으로 짜인 적막에 균열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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