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우리는 오늘도

프로그램 노트

서울시 소속 가로정비팀은 아현동 포장마차와 곱창 가게를 부수기 위해 용역 100여 명을 국가 예산으로 고용한다. 집행과정에서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데 집행관은 구제 절차를 밟으라는 말뿐이다. 법에 따라 행해지는 강제철거에는 복잡한 법적 분쟁들이 얽혀있다. 사람들은 누가 진짜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 따지기 위해 법으로 옳고 그름을 가른다. 분쟁 과정에서 생존의 절박함 밖에 없는 할머니들과 곱창집 주인은, 나름 법에 의거해 판단했다는 방관자들의 논의 속에서 열외 되고 ‘을질’하는 떼쟁이들이라 여겨지고 공격받는다.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다른 사회적 권리를 압도하는 가치로 여기는 법은 고단한 삶의 절박한 목소리를 틀어막기 위해 잘 설계된 최첨단 장치 같다. 그래서 할머니들과 곱창집 주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선 법을 가로질러야만 한다. 그것이 일상 곳곳에서 추방을 경험해 온 우리가 이곳에서 추방을 겪고 있는 이들을 향해 우정을 실천하는 고유한 연대 의식이다. 이 불온한 연대가 우리 사회에 더 널리 퍼져 이 땅의 추방당한 모두가 함께 생각하고 참여하고 창조하고 말하고 사랑하고 추측하고 열정적으로 끌어안고 삶을 긍정하기를.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24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우리는 오늘도

인권해설

사람들이 쫓겨납니다.

일터에서, 집에서, 가게에서, 거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쫓아내는 사람들은 항상 “법대로”라고 얘기합니다. 다 뺏고, 두드려 패기도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해도 “법대로”랍니다. 세입자를 내보내는 건물주도, 개발이나 미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철거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장사만 했던 상인들이 가게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약탈’, ‘파괴’,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법대로”는 아주 쉽게 사람들의 삶을 빼앗고 파괴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웃과 함께 사는 세상을 얘기하고, 모두가 삶의 가치는 소중하다고들 하는데, 이런 일들은 왜 이렇게 당연한 듯 일어날까요? 돈 때문이고, 돈을 더 벌기 위해 다른 이들의 가치를 망가뜨리거나 무시하는 사람들 때문이고, 또 이들의 편에 서는 잘못된 법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서 빼앗는, ‘이상하게 여겨야 할 일’들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파트 값을 올리기 위해서 인근의 노점은 사라져야 하고, 건물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거기서 열심히 장사해온 상인은 나가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빼앗기는 자들의 ‘권리’는 돈을 더 버는 데에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상식’을 말합니다. 그저 계속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살아왔던 대로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 싶을 뿐이고, 아무것도 없이 내쫓기거나 차별당하지 않고,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당연하고 유일한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 스승의 날에 반가운 뉴스 한 자락을 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기간제 교사들에 대한 순직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뉴스였지요. 반가운 마음과 함께, 이렇게 당연하고, 할 수 있었던 것을 그동안 왜 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세상의 가치든 법이든,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면 바꾸면 될 일입니다. 이렇듯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든 분들과 서울인권영화제를 있는 힘껏 응원합니다.

우리 이웃의 ‘당연한 일상’이 바로 ‘상식’입니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25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프로그램 노트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은 직접 피켓을 들었다. 세월호 특별법과 특조위를 만들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인 유가족들에게, 몇몇 이들은 특별법이 유가족을 위한 특혜 법안 아니냐고 반문했다. 광장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천막이 둘러쳐졌을 때 혹자는 왜 여전히 세월호냐고 물었다. 추모는 이만하면 됐다며 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은 민간 잠수부들이 도맡았다. 민간 잠수부들은 임금을 일절 받지 않고 하루에도 수차례 잠수를 했다. 무리한 잠수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잠수부가 생겼지만, 해경은 실종자 수색이 지연되는 이유를 민간 잠수부 탓으로 돌렸다.
세월호 유가족은 왜 피켓을 들고 직접 거리에 나가야 했을까. 민간 잠수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은 무엇일까. 세월호 생존자는 왜 자신이 생존자라는 사실을 밝히기 어려웠을까. 왜 여전히 세월호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앞선 질문들을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광장에 모인 이야기들이 여러 방식으로 기록되어야 하고 기억되어야 하는 까닭은 “대한민국이라는 착각”이 모든 이에게 알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착각을 깨고 정말로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자 내일을 바꿔나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므로.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25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망각과 기억2: 돌아 봄

인권해설

한국사회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 일은 ‘4·16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죽은 이들의 희생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어야 하는지 명백히 밝혀지기 전까지 4·16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은 노란 리본을 다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란 리본에는 죽은 이들을 애도할 수 없는 산 자들의 고통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또 다시 잊고 살 수도 있다는 망각에의 두려움이 산 자들로 하여금 노란 리본을 상장(喪章)처럼 달고 다니게 하는 것일 테다. 노란 리본은 죽은 이들과 산 자들을 연결하는 끈이다.

하지만, 죽은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산 자에게는 물론 죽은 이에게도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죽은 이들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의존은 산 자들과 죽은 이들 모두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들이 와해되지 않고, 죽은 이들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관계 맺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죽은 이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움으로써만 ‘함께 살기’를 모색할 수 있다고 조언한 바 있다. 죽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번역하여 전달하려는 노력이 애도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4·16을 잊지 않겠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을 기억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잘못으로 삶을 빼앗겼는지 말할 수 없게 된 희생자들에게 ‘말’을 되돌려주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희생자들의 말이 우리 사회에 들리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망각과 기억2: 돌아봄>은 4·16을 기억하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끊임없이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이 결코 평화롭지만은 않다는 것은 산 자들의 고통에 찬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산 자들을 살아가게도 만들지만,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도 한다. 자신의 삶이 무너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이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 결국 산 자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산 자들의 세계를 지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일에는 반드시 사회적 비용이 뒤따른다. <기억의 손길> 편은 “416안전공원”의 건립을 둘러싼 안산 지역의 사회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재산권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기억의 공간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경우는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건립 주체의 분명한 철학과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4·16을 기억하는 공간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 전체, 피해지역 공동체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것이다. 사회적 고통은 사회를 바꾸는 긍정적 힘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고려되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다. 4·16을 기억한다는 것은 죽은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만 하는 지난한 협상의 과정이다.

사람들의 슬픔과 원한은 그대로 방치하면 재앙을 가져오지만, 그 힘을 다스리면 산 자를 보호하는 힘으로 바뀐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할 때 사자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다른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사자와 산 자의 마음을 함께 위로하면서 사자를 항구적으로 모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_이소마에 준이치, 『죽은 자들의 웅성임』 중에서

정원옥 (문화연구자)

23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씨씨에게 자유를!

프로그램 노트

세상은 수많은 존재를 불온하다 규정한다. 씨씨는 유색인종 트랜스여성이다. 존재를 쉬이 단어들로 나열하는 세상에서, 그녀의 많은 부분들은 혐오의 대상이다. “예쁜 흑인”이라 불리며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뒤따르는 발걸음이 주는 공포. ‘여성’인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온몸을 휘젓는 느낌. 씨씨는 다른 불온한 존재들처럼 혐오범죄에 맞닥뜨린다. 그에 맞서 살아남은 씨씨를 세상은 살인자라고, ‘흑인 남성’이라고 부른다. 혐오의 시선은 그녀가 증언하는 ‘그녀’를 끊임없이 부정한다. 남성 전용 교도소에 갇힌 씨씨의 몸은 비정상이고 위험한, 격리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와 만나고, 그녀를 기록하고, 그녀에 대해 말하고, 그녀의 삶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씨씨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가 만났기에, 혹은 그저 씨씨와 함께 하기 위해. 혐오에 대한 저항이 이들에게는 삶을 만드는 축제 같다. 지지하는 말이 이어지며 50년 전의 ‘씨씨’, 오늘날의 ‘씨씨’, 세계 어딘가에 있는 ‘씨씨’가 만난다. 혐오에 저항해온 우리의 불온한 연대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씨씨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31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씨씨에게 자유를!

인권해설

한국에서 씨씨처럼 트랜스여성 수용자가 감옥에 간다면? 이제는 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입소 전에 법원으로부터 성별 정정 결정을 받지 않는 한 ‘법적 성별’에 따라 남성 수용동에 수감된다. 맨 먼저 마주치는 문제는 신체검사. 속옷까지 벗고 가운을 입는다. 맨발로 전자영상 검사기에 올라가 다리를 벌리고 용변을 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검사기에 장착된 카메라에 항문 부위를 보이게 하면, 교도관은 검사기에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항문 영상을 육안으로 관찰한다. 여성 수용자는 여성 교도관이 검사하나 트랜스여성은 교도관에게 남성일 뿐이다. 그 외에도 집단생활이라는 교정시설의 특성상 식사와 목욕(샤워), 실외 운동, 작업과 접견도 남성 수용자와 함께해야 한다. 교도관과 다른 수용자들의 편견과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지만 도망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른바 ‘사고’를 막기 위한 가장 쉬운 길은 트랜스여성을 다른 수용자로부터 격리시키는 독거수용이다.

교정시설 수용자의 처우를 규정하고 있는 형집행법은 장애, 나이 등과 함께 성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면서 노인, 장애인, 외국인, 소년에 대해서는 별도 처우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수용자에 대한 규정은 없다. 다만, 2003년 법무부의 공문 <성전환 수용자 수용처우에 관한 지시>에 따라 “외형상 성정이 뚜렷한 성에 따라 독거수용”하고, “신체적 특성 등으로 성희롱, 인권침해 등의 논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수용사동이 결정된 후에도 독거수용, 칸막이 설치, 계호보강 등 수용관리에 철저를 기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작업과 운동, 샤워 등 다른 수용자와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처우에서 배제된다.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없다.

대부분의 수용자가 독거수용을 원한다. 과밀수용 문제가 심각하고 공동생활 과정에서 갖은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자가 원하는 독거수용은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독거수용과는 다르다. 형집행법령은 “주간에는 교육·작업 등의 처우를 위하여 일과(日課)에 따른 공동생활을 하게 하고 휴업일과 야간에만 독거수용하는 것”(처우상 독거수용)을 수용의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지만, 예산을 이유로 지켜지지 않는다. 트랜스젠더 수용자의 독거수용은 징벌방에 갇히는 것과 다름없다. 이마저도 트랜스젠더로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다. 법무부는 입소 전에는 외부 병원, 입소 후에는 의무관의 진단을 받았거나, 판결문에 트랜스젠더로 기재되어 있어야 트랜스젠더로 인정한다.

2005년 안양교도소에 갇힌 트랜스여성 A는 트랜스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A는 남성 4~15명이 수용되는 수용실에 8개월간 갇힌 후에야 독거실로 옮길 수 있었다. 게다가 A가 입소시 들여온 여성용 속옷이 낡아 속옷 구입 신청을 하자 교도관은 앞에 성경책을 펴놓고 “마귀가 붙었다”, “미친 과부년 같다”고 조롱했다고 한다. A는 호르몬 투여도 원했으나 거절당했다. 또 교도관이 상담 내용을 다른 수용자에게 누설해, A는 다른 수용자들에게 폭언을 듣고 놀림을 받아야 했다고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수용실 도배를 하겠다며 교도관으로부터 가위를 빌린 후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 A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300만 원의 위자료 판결을 받자, 항소심에서 안양교도소 측은 A의 치료비로 569만 원이 들었다며 상계를 주장했다. 2012년 편의점에서 현금 50만 원을 훔쳐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트랜스여성 B는, 2014년 광주교도소 교도관의 이발 지시를 거부했다(지시 불이행)는 이유로 21일간 징벌방에 감금됐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의 감옥에 수감된 트랜스젠더는 몇 명이나 될까? 2007년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수용자 4만6천여 명 가운데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성전환 수술을 받은 1명을 포함해 3명이었다. 과연 정말 그게 다일까? 국가에게 트랜스젠더 수용자는 없는 존재, 없어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A 씨가 남장여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이에 격분해 우발적으로 이 사건을 저지른 것.

_대구지방법원 2010고합281

 

소수자의 정체성은 개인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조절하는 데에 취사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위의 사건처럼 누군가는 애인을 살해하고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를 붙여 자신의 살해를 정당화하고자 하였고, 씨씨의 정당한 방어행위는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지우고 유색인종이라는 정체성만 채택하여 ‘한 흑인 남성의 잔혹한 살해’로 변모시켰지요.

<씨씨에게 자유를!>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각각 따로 놓고 보면 소수자 입장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온 차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다수에게 피해를 입는 소수자, 충돌 후 시스젠더 내국인(백인) 집단에 의해 사건의 경위가 왜곡되어 제대로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트랜스젠더 외국인(유색인종), 성별정체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칭호인 “그”, 보호라는 미명 하에 사회로부터 씨씨를 격리하는 교도소, 저항을 하기에는 그에 따르는 대가가 너무나 크기에 결국 협상과 포기로 타협하는 개인의 모습, 분노하기도 하며 체념하기도 해온 일상의 집합입니다.

그러나 작중 씨씨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차별은 그녀가 혐오와 차별행위의 위협을 적극적으로 막은 것을 계기로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다수에 대한 저항에 벌을 내리는 듯이 말이지요. 씨씨를 석방하기 위한 운동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인권의 기본 중의 기본인 생명을 지키는 행위조차 보장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분노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가위를 들고 상대를 찌르세요!” 이 외침은 더 이상 무력하게 다수에 의한 혐오범죄에 희생 당하지 말고 인간 주체로서 살아남자는 다짐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은 그 인종 구성상 관객들이 인종을 근거로 한 폭력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모병제 체계 속에서 트랜스여성이 군대에서 느끼는 고통은 씨씨가 교도소에서 느낀 고통과 질적으로 다를 바 없습니다. 또, 살인행위를 비롯한 혐오범죄를 트랜스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언론에 의해 여과 없이 공개되지요. 그 언론에 동조하는 다수 속에서 한국의 트랜스여성이 겪는 고통은, 결코 씨씨가 겪은 차별과 다르거나 그보다 덜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에 혐오범죄에 희생된 유색인종 트랜스젠더를 위로하는 제단이 나옵니다. 제단에 올라가 있는 몇 장의 사진은 보는 순간 절로 가슴이 미어지지요. 그러나 제단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가야 하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오늘은 몇 명의 희생자가 침묵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몇 명의 씨씨가 “그”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을까요?

 

희정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2011년 6월 5일 미니애폴리스의 밤, 백인 남녀 무리가 전원 흑인이었던 씨씨 일행에게 시비를 건다. 인종차별, 여성혐오, 트랜스젠더 비하가 뒤섞인 혐오 발언과 물리적 공격이 이어졌다. 씨씨는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속수무책 쓰러지지 않았다. 맞서 싸웠다. 스스로를 지켰다. 목숨을 건졌다.

몸싸움 가운데 씨씨가 꺼내든 가위에 상대측 남성 한 명이 찔렸다. 죽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사건의 발단과 경과를 파악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얼굴이 찢기는 부상을 입으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씨씨의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씨씨는 현행범으로 긴급체포되었다. 이후 2급 살인으로 기소된 씨씨는 2급 과실치사로 형량을 조정하는 데 동의하고 41개월 형을 선고받는다. 남성 전용 수감시설에 갇힌다. 독방에 고립되거나 다른 남성 수감자들과 공동생활을 하는 것 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씨씨는 애초에 단지 길을 가고 있었을 뿐인데 공격받았고, 정당방위로 살아남았을 뿐인데 처벌당했고,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지정성별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수감자보다 잠재적으로 훨씬 위험한 환경에서 형을 살았다. 거리, 법정, 감옥, 그 어디에서도 씨씨의 안전과 생명은 마땅히 존중받지 못했다.

이런 배경에는 이성애주의 가부장제의 이원적 성별 규범과 인종주의가 교차하는 질곡의 미국 사회가 있다. 트랜스여성을 희화화하고 흑인을 범죄화하는 해묵은 배제와 폭력의 구조가 있다. 특정 존재 자체를 무질서 요소나 범법 주체로 보고 단속과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 치안 국가와 감옥 산업체의 결탁이 있다. 유색인종 트랜스여성 살해가 만연하고, 공권력의 비무장 흑인 과잉진압과 살해가 끊이지 않으며, 높은 흑인 수감율이 이어지는 비통한 죽음정치의 흐름이 씨씨 사건에서 합류한 것이다(2016년 센텐싱 프로젝트The Sentencing Project 발간 자료 기준 주립교도소 수감자 중 흑인 대 백인 비율 약 5:1). 구조적 인종주의와 트랜스여성혐오가 빚어낸 폭력의 생존자가 도리어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현실은 “흑인의 생명은/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고 목놓아 외치도록 하는 처절한 조건을 증명한다.

그래서 씨씨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더 귀하다. 거리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씨씨는 사실상 형사사법 부정의(criminal injustice) 현장이나 다름없는 형사사법 정의(criminal justice) 체계도 버텨냈다. 무사히 출소한 뒤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흑인 트랜스여성의 존엄과 빈곤층 유색인종 성소수자의 사회적 권리와 감옥 폐지를 위해 뜨겁게 활동해나간다. 희생된 자매들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흘리되 무너지지 않고 결의를 다진다. 비극적인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하겠다고 다짐한다. 씨씨의 생존과 증언과 활동은 그 자체로 죽음정치에 균열을 낸다.

씨씨는 2012년 5월 11일자 옥중 서한에서 지지자들에게 당부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단지 그래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때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란 너는 틀렸다고 주입하는 세상에 맞서는 싸움이다. 너는 욕먹고 맞아도 되는 하찮은 존재라는 메시지에 저항하는 노력이다. 나는 지킬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작업이다. 쉽지 않을지라도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씨씨는 여러 서한에서 투쟁은 사랑이어야 하고 사랑은 투쟁일 수밖에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서로를 비춰주며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씨씨의 옥중 서한은 다음 주소로 접속하면 열람할 수 있다: https://supportcece.wordpress.com/category/ceces-blog/)

씨씨의 호소는 다큐멘터리에서 <유색인종트랜스여성연합TransWomen of Color Collective> 활동가들이 모여 외치는 구호와 공명한다. 다 같이 복창하는 이 구호는 흑인 여성 혁명가 아사타 샤쿠어Assata Shakur가 1973년 발표한 글의 마지막 대목을 살짝 변형한 것이다.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X2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X2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지켜줘야 한다X2

우리는 사슬밖에 잃을 게 없다X2

 

살고자 사랑하는 씨씨의 혁명을 응원한다. 씨씨의 소식을 오래오래 듣고 싶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26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기다림

프로그램 노트

그 어느 곳에서도 ‘집’을 갖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로 도망쳐 온 록사르의 가족에게 고향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악몽의 땅’이고,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삶을 꾸려온 곳은 언제든지 그들을 다시 추방할 수 있는 ‘이국 땅’이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려야 하는 삶은, 언제든지 이 곳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이 지배하는 삶이다. 망명 허가를 내리지 않는 당국은 그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그 자격이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정규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덴마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풋볼선수로 활약하면서 덴마크 사회에 자연스레 섞여들었으며, 아동권리협약에 의해 특별히 보호받는 록사르조차도 단단한 벽 앞에 무력하기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내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나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환영받고 존중받는다는 확신이 없을 때 ‘나의 삶’을 온전히 꾸려나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29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기다림

인권해설

난민협약상의 이유로 고국을 떠났다면 그 자체로 난민이지만,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에 정착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난민들은 자신이 난민인지 아닌지를 해당 국가로부터 확인받아야만 한다. 아프간에서, 시리아에서, 예멘에서 혹은 콩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 세계가 다 안다 하더라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뿌리 뽑혀 나온 사람들에게 당국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다 한들, 불안으로 그 뿌리를 말려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없을지 또는 뿌리를 내려도 될지 안 될지,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내일을 꿈꾸지 못한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왜 자신이 그런 일을 겪고 떠나야 했는지를 물을 사이도 없이, 돌아가지도 머물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기다림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다.

한 해 1,600만 명이 난민이 되는 세상(유엔난민기구, Mid-year Trends 2016).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해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한국에도 작년 한 해 7,542명의 난민신청자가 있었다. 이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98명뿐이다. 1.5%라는 인정률은 ‘난민’이라는 삶이 99%의 절망과 눈물, 그리고 불안으로 이루어짐을 숫자로 보여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가? OECD국가들의 평균 난민 인정률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이 숫자는 희망이 아닌 ‘가망 없음’의 또 다른 말이다.

첫 번째 불인정, 이의신청에 대한 불인정, 법원에서의 패소, 패소, 또 패소. 가망이 없다는 걸 이토록 여러 번 확인받아도 갈 곳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월남 난민의 자녀인) 그는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렸고, 그의 조국은 사라졌다. 그의 부모님은 미국이라 불리는 새 조국에서 발음도 똑바로 못하는 바보였다. 그는 바깥세상에 홀로 직면해야 했다.

_후마타카 마츠오카, <침묵으로부터>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일들의 기억과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다는 불안 사이의 삶,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태어난다. 한국에서 태어난 난민들의 자녀들은 한국국적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자란다. 부모들은 아이가 여기에서 한국어를 잘 배우고 다른 한국국적의 아이들처럼 평화 속에 자라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쫓겨나야 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 속에 산다. 학교에 다니며 부모보다 먼저 한국어를 배운 아이들은 금방 어른이 되고,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불안과 거절, 서류와 도장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 중 99%가 언젠가 가 본 적도 없는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통지를 받을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한두 시간 동안만이라도 이들의 숨막히는 절박함 속에 놓여 볼 수 있다면, 늘 숫자로만 보던 난민이 실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볼 수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무언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슬 (난민인권센터)

21인권해설

프로그램 노트: 피난

프로그램 노트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어떤 공간에 머문다.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그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자말에게 한국은 그런 곳이 되었다. 어떤 이유로 한국에서 노동자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은 이제, 자말이 어쩔 수 없이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다. 익숙한 친구도, 일상도 없는 낯선 공간. 하지만 새로운 공간에서도 삶은 계속되기에, 자말은 어쩔 수 없어도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존재를 우리는 환영하고 있지 않다. 출입국 관리소에서 돌아오는 자말의 발걸음은 환대받지 못한 이의 발걸음이다. 그런 자말을 환대할 줄 아는 건, 그 당신도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공간을 살아야 했던 순영이다.
환대받지 못하지만 살아야 하므로 머물지만, 여전히 잘 살아가고 싶은 이들의 불온한 연대, 그들은 그렇게 새로운 공간에서의 삶을 만들어간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22프로그램 노트

인권해설: 피난

인권해설

<피난>은 6.25 전쟁을 겪은 피난민인 노년의 여성과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인 시리아의 난민인 한 청년이, 전쟁의 난민으로서 각각의 삶의 현장을 떠나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고향을 떠나 가족과 분리된 채 재결합의 날을 기다리는 이들의 소망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시리아 전쟁 발발 후 한국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은, 2015년 12월까지의 통계로 1,052명입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난민 신청을 했지만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단지 3명뿐이었고, 나머지 난민 신청자들은 인도적 체류지위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인도적 체류지위 포함)은 전 세계로 흩어진 시리아 난민 중 0,01%에 불과합니다. 소수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중 난민 인정마저도 극히 소수에 불과한 한국사회의 난민정책은, 전쟁을 피해 재산과 삶의 근거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단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체류자격만을 임시적으로 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주거와 생활, 노동과 양육 등의 모든 책임을 온전히 그들 스스로 감당하게 하면서, 또 그렇게 적응해 살아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분단 상황에서 탈북을 감행하며 계속해서 한국으로 유입되는, 북한에서 오는 이주민들은 ‘동포’라는 민족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 국적을 부여받고 정착지원금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전쟁 직후에는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또한, 이후에 ‘탈북’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오고 있는 북한 출신의 사람들은 민족의 테두리는 차치하고, 체제가 다른 사회에서 온 이주민으로서 소수자의 위치에서 받는 고통들을 여전히 겪어야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그룹의 이주민들은, 한쪽은 난민이라고 불리는 데 비해 또 다른 쪽은 북한이탈주민 내지는 새터민으로 불리면서 서로 다른 존재로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두 이주민 그룹은 모두 국가에 재정적 부담을 안겨 줄 수 있는, 또 잠재적 테러리스트 또는 간첩일 가능성이 있는, 의심해야 할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둘은 유사한 방식으로 국가의 안보문제를 이슈화하고자 하는 정부나 보수우익집단의 희생양이 되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국정원의 유오성 간첩조작 사건과, 독신으로 왔다는 이유로 시리아 난민 28명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의혹 속에서 인천공항에서 억울한 감금생활을 해야만 했던 사건입니다. 둘 다 지금은 해결된 문제이긴 하지만, 반공이나 국경의 안전을 외치며 국가 안보를 날조하는 자들에게 이들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들 가운데 전쟁을 피해 온 난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단을 이유로 다른 체제하에서 살다가 견딜 수 없어서 한국으로 온 북한출신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 사회적 차별에 함께 놓여 있습니다. 이들이 피해 온 전쟁과 체제의 문제를 넘어,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이 가능하면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러한 사회적 차별이 해소될 수 있는 노력들이 요구됩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와 다문화마을의 꿈꾸는 나무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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