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은 가자지구 집단학살이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의 사람과 가옥, 나무와 동물, 모든 마을과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절멸을 집요하게 꾀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5일에는 지금의 학살을, 76년째 이어지는 불법점령을 당장 멈춰야 하기에, 애도와 분노의 마음을 모은 이스라엘 규탄 전국집중행동이 있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소하, 요다가 함께 다녀왔습니다.
화창한 오후, 집회 장소인 보신각 일대에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가득 모였습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시민사회 긴급행동의 부스와 집회 무대가 차려졌습니다.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학살된 아기 710명의 이름을 리본에 적어 대형 현수막에 엮어 함께 추모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집회 후 이어진 행진에서는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습니다.
오늘도 팔레스타인에서는 점령과 학살 아래의 하루가 간신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또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과 모든 형태의 점령에 단호히 반대하며, 학살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 정부 역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점령 종식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에 기권을 행사했음을 부끄러이 여겨야 합니다. 이스라엘 무기 공급을 당장 중단하고, 점령 종식을 촉구할 것을 요구합니다. HD현대 또한 팔레스타인 인종청소에 연루된 책임을 인정하고 중장비 공급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모든 이들의 평등과 자유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팔레스타인의 해방에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사진. 팔레스타인 연대 전국집중행동 집회 전경. 보신각 광장. 무대에 발언자들이 서 있고 참가자들이 빽빽하게 광장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다양한 단위의 깃발.사진.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소하와 요다가 집회에 참가하여 피켓과 BDS 관련 유인물을 들고 찍은 셀피.
사진. 토론회 참가자들이 경청하고 있는 모습. 벽에는 토론회 제목이 인쇄되어 붙어있다.사진. 발표 중인 가브리엘 활동가. 뒤 스크린에 발표 ppt와 문자통역이 띄워져있다.사진. 토론자 종걸, 웅, 나영, 고운과 사회자 한희가 나란히 앉아 있다. 발표 중인 남웅 활동가.
지난 9월 24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함께 준비한 토론회 “초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 무엇이 문제일까?”가 노란들판 대강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핑크워싱을 둘러싼 HIV/AIDS운동, 성소수자운동의 고민과 접점을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며 찬찬히 준비해온 토론회였습니다.
소리(HIV/AIDS인권행동 알), 윤가브리엘(HIV/AIDS인권연대나누리+) 활동가가 각각 ‘초국적 제약회사의 의약품접근권 침해와 대항 행동’과 ‘특허독점으로 인한 성소수자의 건강권 위협’에 대해 자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며 토론회를 시작했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는 아주 다양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며, 그 과정에서 의약품이 필요한 이들의 건강권은 너무나 쉽게 휘둘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성소수자 인권에 친화적인 것처럼 여러 홍보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 역시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함이라는 것까지 쉽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지정토론에서는 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남웅(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고운(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가 각자의 활동과 연결된 고민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초국적 제약회사를 비롯한 기업의 후원을 고민하는 논의가 ‘받는다’와 ‘안 받는다’로 끝나지 않고 더 다양한 고민과 실천을 끌어내야 한다는 이야기, 의약품 접근성과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의 연결고리에 대한 고민들과 이 고민들을 어디로 끌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 등 핑크워싱을 둘러싼 논의의 ‘물꼬’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직접 경험했던 입장에서, 주체가 이스라엘이든 초국적 제약회사이든 왜 핑크워싱에 반대하는지, 그 반대가 무엇을 연결하고 있는지, 예스/노로만 구분되지 않는 다양한 실천이 있을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갈 만큼 모두가 모두의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그만큼 이런 자리에 대한 갈증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던 토론회였습니다. 이 토론회를 첫 발판 삼아 앞으로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고민을 나눌 수 있길 바랍니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퀴어 커뮤니티에 후원하는 것을 왜 에이즈 운동에서는 핑크워싱이라 부를까요? 이는 흑과 백으로 나눠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는 HIV 감염인, 성소수자의 건강권과 의약품접근권 침해의 관점에서 초국적 제약회사를 바라보고, HIV/AIDS 운동에서 왜 초국적 제약회사를 경계하고 있는지, 이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은 무엇이 있었는지 공유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성소수자 운동과 HIV/AIDS 운동이 함께 초국적 제약회사에 대항 하기위해서는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지난 9월 7일, 예년보다 이른 기후정의행진이 있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에 가입, 집행위원으로도 결합하여 행진을 준비하고 당일에도 바삐 움직였습니다. 올해의 슬로건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기후위기를 가져오는 모든 부정의와 불평등을 바꿔내는 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기후정의이지 않을까요?
사진. 서울인권영화제 부스 전경. “쓰레기 없는 손피켓 만들기”, “모두를 위한 기후정의” 등 손글씨가 적힌 종이들이 부스 천막에 걸려있다. 참가자가 부스 구경을 하거나 손글씨 팻말을 만드는 중이다.
푸른 하늘과 포근한 날씨를 만끽해야 하는 9월임에도 30도를 훌쩍 웃도는 무더위에 온몸으로 기후위기를 절감하며, 부스를 차리고 집회와 행진을 준비했습니다. 서인영 부스에서는 손부채/손피켓 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영화제를 치르고 나면 브로셔와 포스터가 잔뜩 남곤 합니다. 올해는 종이 인쇄물을 최소한 줄여보자고 했지만 역시 딱 맞추진 못했지요…… 다음에는 더더 줄여보자고 다짐하며, 쓰레기가 될 위기에 처한 26회 영화제 인쇄물을 한아름 챙겨갔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부스를 찾아 다양한 목소리를 피켓에 담아주셨습니다. 부스를 지킨 소하 활동가는 바삐 부채를 접어야 했답니다. 소하의 이야기를 잠깐 청해보겠습니다.
“9월 7일. 절기상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같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부채를 준비했습니다. 26회 영화제에 미처 다 사용하지 못한 리플렛을 활용하여 부채 만들기를 진행했습니다. 부채를 나눠주는 곳이 있었음에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부채를 만들어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부채의 면적이 커서 더 시원했거든요. (그리고 부스에 오셔서 후원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사진. 부스 안쪽에서 소하 활동가가 참가자 안내 중이다. 밀짚 모자를 쓴 참가자와 분홍색 배낭을 맨 어린이가 손피켓을 쓸 펜 색을 고르는 중이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은 처음으로, 강남 일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기후위기의 책임을 자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각종 대기업과 성형외과가 마천루에 빼곡히 들어찬 강남에 기후정의를 외치는 시민 3만 명이 모였습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집회에서는 기후재난의 폭력과 우리의 존엄, 기후위기와 기후부정의에 맞선 투쟁의 현장, 기후정의를 향한 우리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힘찬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건설노동자와 농민, 기후소송 원고부터 학살과 점령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기후위기의 피해자만이 아니라 기후정의의 주체로서 각자의 이야기를 연결했습니다. 한편 합창단 기후행동과 이랑의 공연 또한 있었는데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요다는 이랑 공연의 퍼포먼스팀으로도 참여하여 힘찬 공연을 함께했습니다.
사진. 거점 선동 모습. 사다리 위에 올라 앉은 활동가. 그 뒤로 “기후재난/불평등에 맞서자!”라고 적힌 커다란 만장과 요구사항들을 담은 만장을 자원활동가들이 들고 서 있다.
행진은 강남역을 출발해, 역삼역, 선릉역, 포스코 사거리를 지나 삼성역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모습이 참가자들이 기후정의를 향한 다양한 구호를 외치며 강남대로를 꽉 채웠습니다. 907 기후정의행진에서는 세 개의 거점을 정해 우리의 요구를 더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첫 번째 거점은 역삼역 앞 구글코리아로, 생태파괴와 난개발에 맞선 우리의 요구를 드러냈습니다. 두 번째 거점은 선릉역 앞 쿠팡 로켓연구소였습니다. 죽음의 로켓을 연일 이어가고 있는 쿠팡을 향해 기후재난과 불평등에 맞서 모두의 존엄을 향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마지막 거점은 포스코사거리의 포스코 센터로, 이윤만을 위한 에너지체제와 윤석열 정부의 핵진흥 정책에 맞서 정의로운 에너지 체제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사진. 쿠팡 로켓연구소 앞 거점 선동 중인 활동가가 사다리 위에 앉아 마이크를 들고 외치고 있다. 참가자들이 쿠팡 로켓 연구소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 포스코 앞 조형물에 풀칠액션으로 “기후악당 노동악당 포스코 OUT”이라고 적힌 인쇄물이 붙어있다.
뜨거운 날씨, 길어진 집회와 행진, 경찰의 어수선한 차량 통제와 마찰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의 강력한 열기가 강남 일대를 뒤흔든 하루였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다가오는 10월 23일 월간 서인영에서 노르웨이 기후 소송을 다룬 영화 <이것은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를 상영하고, 기후정의행동의 한재각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조만간 또 만나요!
[낙산해수욕장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활동가 단체사진. ‘서울인권영화제’수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유후~! 8월 말 간신히 더위가 가시던 무렵에 2024년 엠티를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활동가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6월 영화제 이후 각자 자기 삶으로 나아가느라 한두 명씩 자리에 없었거든요…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나 휴게소 구경도 하고 바다에서 짜장면도 먹고 레크레이션도 하면서 놀았더니 너무 즐거웠어요. 1박 2일 동안 온종일 웃기만 한 거 같아요. 여러분께 전해드릴 에피소드가 몇 개 있는데요. 하나씩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기, 마주, 두부 이렇게 셋이서 엠티준비위원회(이하 엠준위)를 맡아 했었는데요! 엠티에 가서도 워크숍을 하자는 의견에 쿨하게 바다에 가는 일정을 빼버렸다가 모두의 원성을 샀지요. 이 자리에서 변명을 해보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바다에서 놀고 워크숍을 하면 사람들이 집중을 못 할 거 같은 거예요. 그런데 워크숍을 하고 바다에 가자니 시간이 너무 늦고… 그래서 해수욕장 근처 카페에서 워크숍을 하고 바다에 들어가자고 하려고 한 거였는데, 그냥 바다에서 먼저 놀았어용.
그 와중에 출발 당일 활동가 안모씨께서 전체 텔방에 “가서 워크숍하면 전 집에 갈 거예요.”라고 선언해서 다들 웃었답니다! 우리는 워크숍을 했을까요, 못했을까요?
정답은 했습니다! 물론 당초 3시간으로 계획했던 건 당연히 실패했고요. 대폭 줄여 1시간만 했습니다. 어찌 되었건 했잖아요? 저는 거기에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바다에서 놀고 있는 소하, 안나, 고운, 요다, 두부]
양양과 속초 중간에 있는 낙산해수욕장에서 놀았습니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요다 님이랑 안나 님이 바다로 뛰쳐들어가는데 속으로 ‘준비운동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다 큰 어른이니 알아서 하겠거니 했어요. 파도가 높은 시기가 아닌 건지 수면도 낮고 잔잔했어요. 재밌게 놀았습니다.
저녁에는 채식 굽굽 파티를 했습니다! 송이버섯을 통째로 구워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마라탕도 왕창 끓여 먹었습니다. 마라탕에 비건 스팸을 넣었더니 정말 맛있더라고요. 술을 거진 20만 원어치 사 갔는데 저녁이 너무 배불러서 술이 안 들어갔어요. 결국 술은 고스란히 서인영 사무실로 돌아왔답니다.
[노래를 열창하는 고운]
숙소에서 뮤지컬 메들리를 들었어요. 그, 가수가 부른 게 아니라 고운 님이 부르는 뮤지컬 메들리였어요. 시카고랑…레베카랑…또 뭐 불렀지. 기억이 안 나요. 저는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레베카를 들으며 잠깐 잠들었습니다. 숙소 침대가 포근하더라고요.
잠에 깨서는 ‘스피드 퀴즈’랑 ‘몸으로 말해요’를 하면서 놀았어요. 그리고 숙소 넷플릭스로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봤는데요! 고민시가 아름답고 고민시가 미적이며 고민시가 또라이입니다. 그런데 고민시 캐릭터가 뭐 엄청 신선하지는? 않았고 작가가 예쁜 사이코패스를 그려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전체 내용은 다들 각자 보시고 판단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는 너무 졸려서 3회까지만 보고 잠들었습니다. 제가 허리 디스크가 심해서 낯선 곳에서 잘 때 잠을 설칠 때가 많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바다수영 + 워크숍(1시간 따리였지만)+레크레이션으로 체력을 제대로 방전한 결과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잘 잤답니당.
그리고 다음 날 숙소에서 제공하는 전복죽을 아침으로 먹고 서울로 돌아왔어요!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많이 잤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3시간을 또 잤습니다.(웃음)
사람이 사람과 있는 게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어떻게 오는 걸까요? 이 사람들이랑 있으면 온종일 웃겨서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우당탕탕이지만 전진하는 우리가 너무 소중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즐거운 사람과 즐거운 시간이 찾아들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럼 서인영은 다음에 또 재밌는 소식으로 찾아올게요! 안녀엉!
<삶의 공간> 섹션에서는 자본과 권력이 앗아가려는 공간을 지키고, 기록하고, 이야기하는 영화들을 다뤘습니다.
<헤제이투>의 이야기 손님 빈곤사회연대 윤영님은 영화에서 기업의 이익에 따라 ‘자력구제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마을을 보며 한국에서도 특정한 소비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삶의 자리를 철거당하는 현실들을 공유하셨습니다.
<오류시장>의 감독 최종호님은 구청의 외면과 민간업자의 수익 활동이 만나 ‘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몇 십년동안 자리를 지키던 시장 상인들이 소외되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셨습니다.
<백미러로 본 전쟁>의 이야기 손님인 피스모모의 뭉치님은 영화에서 피난을 가던 노인이 어린이들과 작별 인사로 “부디 잘 살아라”라고 말하는 장면을 되짚으며 최근 한국에서 “한국의 방산주가 자녀들한테 물려줘야 할 주식이다.”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이질적이었다는 생각을 전달해주셨습니다.
사진.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 <오류시장>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진행자, 수어 통역사, 이야기손님이 앉아있다. 스크린으로 문자통역이 나오고 있다그렇게 이번 <삶의 공간> 지금의 시스템이야말로 허황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투쟁의 파동>에서는 츠치야 도카치 감독님의 <여기서부터 : 간사이 레미콘 사건과 우리들>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투쟁의 파동> 은 투쟁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며,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섹션으로, 영화에서는 연대노조조합원인 마츠오 세이코님의 삶을 통해 노동조합과 노동자 개인이 어떻게 힘을 주고받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사진. 마로니에 공원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활동가와 이야기 손님들, 그리고 수어통역사
고야노 님의 말씀처럼, ‘한국과 일본의 노조 탄압은 진짜 복사한 것’ 똑같아 영화 속 노동 탄압 사태에 더욱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 세이코 님은 노조 탄압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게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도, 관계를 중요시하는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계속 함께 싸울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여성 노동자인 세이코 님이 남성중심적인 노동 문화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전격적으로 반격을 해줬다고 말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요. 세이코님이 “그래서 결국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주고 함께했다는 것 때문에 지금 이 노동조합을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서로를 지키는 관계망이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정말 필수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보인권-표현의 자유] 섹션에서는 <팬텀 패럿>을 상영하고 정보인권연구소 장여경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팬텀 패럿>은 영국의 대테러방지법 7조를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안보를 핑계로 불심검문과 전자기기 압수, 체포 등을 마다 않는 국가 권력의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정보인권과 디지털 권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표현의 자유와 연결되는지, 왜 ‘인권’의 문제인지 90년대 한국의 상황에서 등장했던 정보인권의 개념부터 시작하여 조목조목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을 지나며 우리의 정보인권이 얼마나 취약한 상황인지, 어떤 식으로 이용되며 낙인이 될 수 있는지 절감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가가 우리의 정보를 더 쉽게 수집/압수할수록 집회시위의 자유도 취약해짐을 이야기했습니다. 누구나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있으며 나의 디지털 정보가 이곳저곳에 산재하는 요즘, 정보인권에 대해 항상 중요하게 확인하고 감시해야 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진.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장 무대에 고운(진행), 혜진(수어통역), 여경(이야기손님)이 앉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뒤로는 스크린에 문자통역이 송출 중이다. 여경이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있다
대화의 마지막, 장여경 활동가의 당부를 인용하며 스케치를 마칩니다
“내가 원치 않는 나의 건강 정보, 성적인 지향, 나의 국적, 나의 사상적인 신념 이런 것들도 영구히 저장이 되면서 학습을 한 인공지능이 점점 사회에 널리 쓰일 때 그런 부분에 우리는 더더욱 취약해지겠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실은 정보인권이 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 계신 분들도 그런 문제의식과 감수성을 가져주신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출구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이키의 노동자 착취를 취재하던 방송사가 보도를 포기하고 기자들에게 나이키 로고가 선명한 점퍼를 입혀 방송에 내보낸다. CIA가 니카라과 반군을 지원하며 반군의 코카인 밀수에도 개입한 사실을 지역 언론 기자가 특종 보도하지만 유력 언론들은 근거 없다고 몰아붙이며 사실상 CIA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 TWA 800 여객기 추락 참사가 미군 미사일 오발 때문인지 규명해 줄 중요한 증거를 입수한 언론사가 검증을 포기하고 FBI에 증거를 반납한 채 정부 발표를 충실히 보도한다.’ <언론의 자유를 팝니다>에 등장하는 미국 언론의 맨얼굴이다. 영화에서 미국의 언론자유는 지평선 너머로 곧 사라져 버릴 그림자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비유된다. 영화는 언론의 기업화에서 미국 언론의 비극을 찾아낸다. 언론의 기업화는 기업이 권력자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후원하고 권력자들은 그 대가로 기업이 언론을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미국의 언론자유는 독립과 노예제 폐지를 이뤄 낸 동력이었고 미국이 건국 과정에서 획득한 자유의 근간이었다. 이 때문에 건국 초기 미국 정부는 막대한 언론 지원 정책으로 언론자유를 꽃피우기도 하였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미국 언론의 현실을 비춘다. 특히 1980년대 레이건 집권기와 2000년대 부시 집권기의 사례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때에 이르러 언론을 매개로 한 돈과 권력의 결탁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으로 강조하는 편집이다. 이 영화의 소재는 비록 미국의 언론 현실이지만 90분 내내 전혀 낯설지 않았다. 나이키를 삼성으로 바꾸고, CIA의 코카인 밀수 개입을 국정원의 대선 개입으로 바꾸고, TWA 800 여객기 추락 참사를 천안함 사건으로 바꾸면 영락없이 우리 얘기가 된다. 이라크 전쟁의 조작된 명분에 동조하고 부도덕한 전쟁의 참상에 눈감은 미국 언론은 그 자체로 한국 언론이었다. 영화는 또한 미국을 미디어 기업의 나라로 규정하며 이러한 미국의 현실이 우리의 머지않은 미래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짓 선전으로 족벌언론에 종편 특혜를 안기고 재벌에까지 방송의 길을 열어 주지 않았던가. 거대한 미디어 재벌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미디어 제국, ‘대한미(Media)국’은 이미 건설 중이다. 막아야 한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 YTN에서 기자로, 돌발영상PD로, 앵커로 일하다 2008년 해직되었다. 이후 트위터 1인 미디어 ‘용가리통뼈뉴스’를 운영하고, ‘뉴스타파’ 제작에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