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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펼치기] 장애인문화예술 검열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

소식

장애인문화예술 검열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

불온한 몸으로, 연약한 몸짓으로, 거대한 폭풍을

 

사진1. “문화예술 검열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청 앞에서 참여자들은 서울시 장애인인권영화제 예산 미집행과 서울시 문화예술 블랙리스트를 규탄하는 피켓을 각각 들고 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김영희 조직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1. “문화예술 검열하는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청 앞에서 참여자들은 서울시 장애인인권영화제 예산 미집행과 서울시 문화예술 블랙리스트를 규탄하는 피켓을 각각 들고 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김영희 조직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서울시가 4년간 지원해 오던 ‘장애인인권영화제’ 예산을 미집행하며 올해 ‘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2003년부터 장애인권과 장애운동을 스크린과 객석에 펼쳐 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가로막겠다는 알량한 검열입니다. 이에 맞서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최 의지를 다지고, 이를 위해 연대의 힘을 모으는 기자회견이 지난 3월 5일 11시 서울시청 앞에서 있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동료 인권영화제로서 분노의 마음으로 함께했습니다. 고운 활동가의 발언과 함께 소식을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입니다.

사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와 서울인권영화제를 간혹 헷갈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난 상영작 중에 어떤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 하시는데 저희 상영작이 아니어서 “혹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찾으시나요?”라고 여쭤보면 거의 그렇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이름도 비슷하고, 저희도 코로나 이전에는 마로니에공원에서 영화제를 진행했고… 무엇보다 서울인권영화제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나 ‘인권영화제’입니다. 인권영화제 활동가로서, 함께 분노하는 마음으로 달려왔습니다.

인권영화제는 영화제를 개최하는 조직이면서 동시에 인권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영화제로써 인권운동을 하기 위해 여러 활동가들이 모여 밤낮으로 고민하고 토론하고 준비합니다. 상영작들 역시 그러합니다.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인권영화들은 CGV나 롯데시네마에서 보기 어려운 작품들입니다. 자본이나 권력의 편이 아닌 인간의 편에서, 삶의 서사와 투쟁의 현장을 담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영화를 모아 상영하고, 관련 활동가들과 당사자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고,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인권영화제는 만남의 광장이자 연대의 공간입니다. 때로는 서로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고, 때로는 승리를 기념하거나 기원하며 투쟁의 의지를 다집니다. 한편 그러한 광장에서 누군가 차별 받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평등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씁니다. 한땀한땀 자막해설을 제작하고, 한국수어 통역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경로와 화장실을 찾습니다. 인권영화는 누구나 차별 없이 만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2003년 이후로 매년 장애인권과 장애운동의 현장을 담은 영화를 소개해왔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장애인권과 운동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치열하게 연대의 광장을 열어왔습니다. 차별과 배제 없는 상영 환경 조성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배리어프리제작학교를 진행하며 이러한 시도가 영화제 바깥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귀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이러한 활동에, 서울시의 응답은 고작 ’선정 단체 없음’입니까?

지난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슬로건은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였습니다. 우리는 이 열차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10년을 갇혀있고 누군가는 지하철 10분 지연에 분통을 터뜨립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개찰구를 ‘시위 가는 거 아니냐’며 역무원이 막아섭니다.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을, 피켓을 든 장애인을 ‘불법’이라고 연행해갑니다. 우리가 원하는 열차는 그 누구도 막지 않는 열차, 누구나 평등하게 탑승할 수 있는 열차, 장애인이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열차입니다. 그 열차는 그냥 칙칙폭폭 달리지 않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 마주하고 울림을 만드는 사회, 차별과 배제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 있는 그대로의 나와 너를 보는 사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혁명의 시작을 만드는 선언이자 약속으로 열차는 달립니다. 열차는 달리며 불평등한 세상을, 혐오와 차별이 당연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비문명’이라고 말도 안 되는 혐오발언을 일삼는 정치를 뒤로 하고, 명백한 블랙리스트로 검열하는 서울시를 딛고, 어떻게든 장애운동을 지우고 부수려는 ‘어둠’을 헤치고 열차는 달립니다.

사진2. 기자회견이 계속 진행 중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고운이 연대발언문을 읽고 있다.
사진2. 기자회견이 계속 진행 중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고운이 연대발언문을 읽고 있다.

사진2. 기자회견이 계속 진행 중이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고운이 연대발언문을 읽고 있다.

한편 지난해 인천시는 인천여성영화제 “환란의 시대: 무너뜨리고 연결하기”에 대해 공모사업 지원을 핑계로 “퀴어 영화는 인천 시민 모두가 동의하지 않고 갈등이 생길  향을 끼친”다며 성소수자 관련 영화 상영 취소를 요구했습니다. 얼마 전 종로구청은 고 백기완 선생 3주기 추모제에 대하여 ‘공원 조성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로니에공원 사용을 불허했습니다. 참 다양한 방법으로 심의와 검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대한 서울시의 장애인인권영화제 사업 미선정 사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둠을 헤치고 달리는 평등의 열차가 무서웠던 걸까요?

서울인권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해 96년도부터 사전 심의를 거부한 채 영화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전 심의 없이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이라 하여 거리로 나와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더 넓은 하늘을 향해 존엄과 자유를, 평등을 외쳤습니다. 때로 우리에게는 이 작은 앰프가, 몇 인치 안 되는 스크린이,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유일한 길입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로서 배제되어 온 경험이 많은 이들일수록 이 연대의 광장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때문에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지키는 것, 그 목적이 빤한 서울시에 함께 맞서는 것이, 지금 이 골때리는 검열의 현장을 함께 헤치고 달리는 것은 서울인권영화제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서울시는 속이 빤히 보이는 장애운동 죽이기를 이제 그만 멈추길 바랍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미선정, 취소의 이름으로 심의와 검열을 계속하더라도 투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21년 동안 뚜벅뚜벅 영화제 개최를 이어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서울시가 무슨 수로 상대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일인지, 이걸 해내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이들인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불온한 몸으로, 연약한 몸짓으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어둠을 헤치고 끝내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가져올 이 열차를 더 이상 막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과 나의 해방에, 인권영화제의 한 식구로서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투쟁!”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12소식

[활동펼치기]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방한 항의행동: Stop Funding Genocide!

소식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민주주의 없다!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 간 서울에서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반권위주의, 부패 척결, 인권증진”을 위해 “약 110개국 정부와 시민사회, 민간 분야의 관계자들이 참석”한다는 이 회의의 대주제는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그리고 이곳에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지원, 방조, 묵인하는 이들이 모입니다. 심지어 이스라엘도 초청국 중 하나입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봉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국가입니다. 미국은 가자지구의 즉각적 휴전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 이미 세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비공식적으로 100여 차례 무기를 수출하였고, 심지어 자국의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무기 공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진1.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모습. 참여자들은 검은 옷에 쿠피예를 두르고 붉은 칠을 한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현수막에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학살 중단하라”, “Blinken! Stop Funding Genocide!”라고 적혀있다.
사진1. 기자회견과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모습. 참여자들은 검은 옷에 쿠피예를 두르고 붉은 칠을 한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현수막에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학살 중단하라”, “Blinken! Stop Funding Genocide!”라고 적혀있다.

그 책임을 가장 무겁게 통감해야 할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이 민주주의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하였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희생자 30% 이상이 어린이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선박을 통해 긴급 식량 지원을 하고 가자지구에 임시항구를 건설하겠다고 미국은 말하지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도 폭격에 금방 으스러지고 마는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미국이 해야 할 일은 항구를 짓는 것보다 이스라엘의 학살 지원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이에 167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앞서 3월 18일 오전 9시, 서울 신라호텔  인근(동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긴급 항의행동<미국은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지원 중단하라 : Stop Funding Genocide>를 진행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전쟁범죄 공모자인 미국 정부를 규탄하고, 집단학살 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붉은 칠을 한 참여자들의 손바닥은 팔레스타인에서 스러져가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사진2. 피케팅을 하는 참여자 아래로, 길가에 경찰 버스가 일렬로 늘어서있다. 그 앞에 형광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단체와 피케팅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을 마주보고 서있다.
사진2. 피케팅을 하는 참여자 아래로, 길가에 경찰 버스가 일렬로 늘어서있다. 그 앞에 형광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시민단체와 피케팅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을 마주보고 서있다.

한편 피케팅 시작과 함께 경찰 버스가 대오 앞을 막아섰습니다. 일렬로 죽 늘어선 버스는 피켓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가렸고, 경찰들은 참여자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인도를 막아섰습니다. 결국 인근 빌딩 입구로 올라가 피케팅을 진행해야 했지만 경찰은 이마저도 방해하며 버텼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겠다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반민주주의 현장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 앞에서 어떤 세대를 위한 어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겠다는 걸까요? 결국 30분 진행 예정이던 피케팅은 경찰 버스가 빠질 때까지 한 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호화로운 자찬이 이루어지는 호텔 안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모든 폭력과 배제에 저항하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연대하는 이들에게 있다는 사실이 분명히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외친 구호가 입가에 계속 맴돕니다. 전쟁이 멈추고 점령이 끝날 때까지, 함께 외치면 좋겠습니다.

Stop, Stop, Genocide!

Stop funding genocide!

Stop supporting genocide!

FROM THE RIVER TO THE SEA,

FREE FREE PALESTINE!

사진3. 인도 위 빌딩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참여자들. 8명이 각각 든 피켓을 이으면 “인종청소 중단하라”가 있다.
사진3. 인도 위 빌딩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참여자들. 8명이 각각 든 피켓을 이으면 “인종청소 중단하라”가 있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5소식

2024년 2월 재정 보고

소식

2024년 2월 재정 보고

4소식

[활동펼치기] 어두울수록 빛나는 연대의 행진

소식

“너 페미야?”

페미니즘이 사상검증의 주요한 수단이 되는 이상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암울한 시기에도 연대하고 투쟁하며 전진하는 우리. 차가운 바람이 3월을 무색하게 만들었던 지난 8일, 청계광장에서 2024년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9회 한국여성대회가 있었습니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은 1908년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대대적인 시위 이후로 세상을 바꿔온 여성운동을 기념하고 지금도 숨겨지거나 배제된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날입니다. 비장애 성인 남성을 표준으로 한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그 외’로 뭉뚱그려진 이들이 세상을 바꿔 온 역사를 생각합니다.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 어두울수록 빛나는 연대의 행진”

하수상한 시절이지만, 이번 여성대회의 슬로건은 지금의 상황을 보여주며 힘을 모아 어둠을 헤치고 나아고자 하는 의지와 긍지를 드러냈습니다. 광장과 거리를 채운 동료들의 얼굴을 마주하니 슬로건의 외침이 몸으로 와닿았습니다. 찬 공기를 뜨겁게 달구는 우리의 열기를 느끼며, 서울인권영화제도 함께 행진했습니다.

사진1. 여성대회 행진 모습. 참가자들이 종로대로를 지나고 있다. 여러 단체의 깃발들 사이로 서울인권영화제 깃발이 나부낀다.
사진1. 여성대회 행진 모습. 참가자들이 종로대로를 지나고 있다. 여러 단체의 깃발들 사이로 서울인권영화제 깃발이 나부낀다.

“모이자, 광장으로!

바꾸자, 여성주권자의 힘으로!

가자, 성평등 민주주의로!”

서울의 복판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퇴행을 멈추라 외치고, 이성애 중심 가부장 사회를 넘어 모두의 평등으로 나아가자 외치고, 그러다보니 행진은 금세 끝났습니다. 광장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구호를 외치고 춤까지 추며 마무리를 했는데요, 아쉬운 마음은 크게 들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긴장과 함께 앞으로의 싸움을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컸나 봅니다.

특히 다가오는 4월, 총선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반페미니즘을 등에 업고 혐오선동에 가까운 발언을 하거나 퇴행적인 공약을 내놓는 이들이 한가득입니다.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는 앞으로 여성주권자의 힘으로, 남성 기득권 정치를 허물고, 성평등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바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미약하나마 ‘어퍼’에 참여단체로 있는데요, ‘어퍼’ 캠페인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활동을 계속 보실 수 있으니 많이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 ‘어퍼’ 캠페인 페이지 바로 가기>> https://2024upper.campaignus.me/ 

사진2. 청계광장에서 서울인권영화제 깃발을 든 고운, 소하가 투쟁!을 외치며 웃고 있다.
사진2. 청계광장에서 서울인권영화제 깃발을 든 고운, 소하가 투쟁!을 외치며 웃고 있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9소식

인권해설: 바다에서 온 편지 2

인권해설

세월호가 침몰했다. 국가는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고, 304명이 희생되었으며 9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길 위에있다. ‘왜’로 시작되는 수많은 질문들 중 한 가지도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세월호처럼 낡은 배를 운항하도록 허가하고, 더 이상 실을 수 없을 만큼 가득 물건들을 싣고서,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몸에 배어 있지 않은 선원들에게 키를 맡긴 자들은 누구인가? 또, 목숨 앞에 ‘돈’을 흔들어대며 이 사람들을 모욕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토록 천박한 국가의 맨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진실을 덮으려는 권력에 맞선 사람들의 시간. 차곡차곡 흐르는 시간들 사이로 잊는 것이 두려운 기억들이 쌓여간다. 가령, 그 기억들은 이런 것들이다. 삶을 장담할 수 없었던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내가 살겠다고’ 다른 사람들을 밀치진 않았을지 죄책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고통스런 기억 속으로 소환되는 생존자. 자기 자식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던 것이 아픈 기억으로 남은 엄마. 10센티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물속에서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 가며 사람들을 건져 올렸던 민간잠수사들. 그들은 22년 전 서해 훼리호에서도 똑같은 일을 했었다.

이 영상에 담겨져 있고, 또 담겨야 하는 사람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본다. 세월호가 ‘집’이었던, 그래서 지나온 삶의 흔적을 모두 잃어버린 어떤 사람, 세월호에서 2박 3일 일하고 15만 원을 받던 아르바이트생, 삶터에 자리를 내주고 따뜻한 물을 건넸던 인근 섬 주민들…. 그리고 지난 여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명한 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은 어떠한가. 세월호 참사의 결말은 훼손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들의 경험은 이 참사를 잊지 않고 행동하려는 기억들과 합해져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질 것이다. ‘4.16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인권선언’을 만드는 힘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4.16인권선언은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에 탄 사람들, 그리고 그날 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은정(천주교인권위원회)

2인권해설

인권해설: 나는 오류입니까: 칠드런404

인권해설

2013년 6월 11일 러시아에서는 ‘비전통적 성적 관계의 선전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른바 ‘LGBT 선전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표면적으로 아동의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며 성소수자를 명시해 두고 있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성소수자를 탄압하기 위한 법률이다. 이 법안의 통과는 애초에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러시아 국민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만장일치로 이루어졌으며 그 영향으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혐오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러시아의 한 혐오범죄 집단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유인한 뒤 끔찍한 고문을 가하고 심지어 이러한 장면을 녹화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인권적인 범죄를 저지른 조직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많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이 기소되고 처벌받고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Elena Klimova 역시 청소년 성소수자를 응원하는 프로젝트인 ‘Children 404’를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러시아 LGBT 네트워크’가 2013년 러시아 내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최소 1회 이상 신체적인 폭력을 당한 비율은 15.4%에 달했으며, 2회 이상 신체적인 폭력을 당한 사람은 3.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인 폭력을 포
함하면 50%가 넘는다. 러시아 내 성소수자들에 대한 호모포비아들의 혐오 표현과 위협은 영화 속에서도 여러 번 등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Children 404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45명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실제 목소리를 담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오류 메시지를 차용한 프로젝트의 이름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는 오류가 아니라고.

이인섭(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3인권해설

인권해설: 승리의 날

인권해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10월 31일, 법무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이라며 강하게 추진하려던 차별금지법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등 7가지 항목을 원안에서 삭제하고 국무회의에 제출한 것입니다. 이유는 보수 기독교 단체들, 경총을 비롯한 재계, 보수 언론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이 2001년에 통과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포함된 차별금지사유임에도 말입니다. 그 이후 인권기본법이자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 세력은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 주장하며 이 법안이 동성애 조장 법안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했습니다. 이후 국회를 통해 입법 발의된 제정안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직접적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재계는 멀찌감치 팔짱을 끼고 이 상황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2011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군형법 제 92조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조항은 남성 동성애자들의 행위를 ‘계간’이라는 혐오적인 언어로 차별하고, 형벌로 처벌하는 조항입니다. 심지어 성폭력이라 할 수 없는, 개인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성적 접촉’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당시 보수 기독교 세력은 이 법안이 없으면 군대에 동성애가 합법화된다는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여 기독교인들을 호도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하자, 국가인권위원회를 마치 동성애를 조장하는 기관인 양 매도하며 건물 앞까지 가서 항의했습니다. 이들은 이후에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운동,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 조항 폐지 운동에 반대 목소리를 냈습니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지향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2014년 11월부터 법 개정을 촉구하는 백만인 서명운동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 11월과 올해 3월에는 탈동성애인권포럼의 행사를 국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버젓이 진행했습니다. 이 단체는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로 복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동성애 전환치료를 위한 단체입니다. 이들은 동성애자도 사랑하지만, 동성애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죄이기 때문에 법으로도 이를 막아야 한다는 지극히 기독교 편향적 시각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보편적 인권의 가치가 아닌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의 시선을 드러냅니다. 이는 사실 보수기독교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난 3월 교육부는 성교육표준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교육지침을 각 교육청에 하달하면서 성교육 중에 ‘동성애’ 및 다양한 가족형태 및 관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도록 지시했습니다. 보수 기독교계만의 입장이 아닌 정부 안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간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들을 버젓이 벌이고 있습니다.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입니다.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하면서, 전 세계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폭력을 없애고 이를 위해 국제적으로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 날입니다. 보수 기독계와 정부는 스스로 혐오가 아니라고 하지만,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드러내지 못하도록 막는 움직임은 결국 혐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혐오들은 즉각 멈춰야 합니다. 사람의 삶 전반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기독교와 정부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죄로서 바라보며 혐오하는 것은, 차별하자, 낙인을 찍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인권 선진국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동성애를 비범죄화하는 것은 이것이 단지 성소수자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1] 군형법 92조는 현재 군형법 92조 6으로 ‘제1조제1항부터 제3항까지에 규정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2013.4.5.]’로 남아있다.

이종걸(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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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레즈보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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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분리 및 차별 체제였던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적으로 종료시킨 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를 헌법에 명시했다. 여러 사회 영역에서의 차별 금지를 다룬 각종 법률의 제정, 동성 간 혼인의 성문화, 성별 정정의 제도화와 같은 노력은 다른 국가나 지역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전향적인 축에 든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다양한 문화가 분쟁없이 공존하는 시공간을 꿈꾼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의 별칭으로 ‘무지개 국가’라는 표현을 고안했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 또한 이를 즐겨 사용했다. 이때 무지개는 평화와 희망으로 가득한 국가를 건설하여 빛나는 미래를 이룩하자는 염원을 담은 상징이다. 그런데 무지개란 주지하다시피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쓰인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은 성소수자 권리에 대한 남아공의 법적 보장 장치와 더불어 이 국가를 쉽사리 성소수자 친화적인 사회로 상상하게 한다.

<레즈보포비아>는 그 이면의 실상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성, 성별,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과 법률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남아공 사회의 레즈비언들은 끊임없이 협박받고 폭행당한다. ‘교정’ 강간의 피해자가 된다. 무참하게 살해된다. 인터뷰에 응한 레즈비언 활동가들은 남아공 사회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를 레즈비언에 대한 공격과 범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다.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나마 의미있는 존재로 보는 자들이 그걸 거부하는 레즈비언들을 가차없이 단죄하고자 한다.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를 고치거나 없애려는 남성들의 필사적인 의지가 레즈비언을 겨냥한 폭력으로 나타난다. 보수적인 흑인 부족 공동체 내에서는 동성애를 서구 문화와 백인이 전파시킨 악으로 보는 시각과 여성 억압적 통념이 결합하여 레즈보포비아가 강화되고는 한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또한 레즈비언을 지역 및 종교 공동체로부터 내모는 데 크게 기여하는 세력이다.

마지막 장면. 한 무리의 레즈비언들과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춤을 추며 경찰서를 향해 행진해 간다. 레즈비언을 강간하고 도주 중인 가해자를 체포하는 데 소극적인 경찰에 대해 책임을 묻는 시위이다. 참가자들은 피해자가 더 이상 공포 속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경찰이 나서라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이들의 요구는 갈급하다. 같은 사람에 의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 역시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새기고 슬픔을 삼킨 몸으로 뚜벅뚜벅 걷고 뛴다. 그녀들은 그렇게 살아 있다. 있는 그대로 살게 해 달라고 외치고 있다.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행위가 곧 스스로를 폭력과 살해의 표적으로 만드는 현실 속에서도 이들은 우리를 살도록 하라고 주장하기 위해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표정은 종잡을 수 없다. 일그러진 얼굴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당당하게 시위하는 이들에 대한 충격과 경악의 표현인가. 왜 저래야만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불편함의 표출인가.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찌푸림인가. 단지 덥고 눈부실 따름인가. 우리가 이러면 불편하겠지만 그렇게 불편해 봐야 한다. 우리야말로 저들 때문에 매일매일이 불편하다. 단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칼을 맞고 강간을 당해야만 했던 한 레즈비언 활동가가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아직 할 일이 많다. 화면 속 용감한 얼굴들이 때 이른 부고란에 실려 우리에게 전해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무지개 국가’라는 말이 차별과 폭력의 쓰라린 현실을 덮는 포장지가 아니라 남아공 사회를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원리로 자리 잡기를 빈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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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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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가슴이 뻐근했다. 슬픔이라 표현해야 할까? 어떤 단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복잡한 감정과 다시 마주한다.

난 루아나와 같은 딸을 가진 엄마다. 여자가 되고 싶어 했던 내 아이는 지금은 여자가 되어 살고 있다. 영화 속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되기도 했고,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을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 까닭이다.

루아나는 여자 옷을 좋아하고, 인형을 가지고 놀고, 남자 아이보다는 여자 속에서 끼어 노는 것을 편안해 한다. 내 아이도 그랬다. 여동생과 함께 인형놀이를 했고, 단 한 번도 칼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동생의 옷을 보면 막연하게 입고 싶었고, 너무 부러웠지만 남자이니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내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자신의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음을 말했다. 사춘기에 부는 바람일 것이라는 나의 소망과 달리 그것은 긴 터널의 시작이었다.

루아나 엄마는 어떤 문제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고추를 가진 특별한 소녀니까 고추도 아껴줘야죠. 나중에 커서 완전한 여성이 되고 싶다면 지금의 몸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 -루아나 엄마의 말-

엄마의 이런 태도는 루아나가 자신의 내면을 건강하게 바라볼 가치관을 심어줬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치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루아나 엄마는 피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시켜 갔다. 난 친한 지인들과 가족들에게만 나의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었다. 사람 속에서 평범한 한 여성으로 살기를 소망하는 아이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언제쯤, 어떻게, 어느 만큼의 커밍아웃을 할 것인지… 많은 숙제를 내 아이와 가족에게 남겨 놓고 있다. 아직도 내 아이는 척추뼈를 세우고 곧게 설 힘이 부족하다.

루아나가 말을 하기 전부터 자신의 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기가 불편을 느꼈다는 것은 사회적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 선천적 욕구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보편적으로 트랜스젠더를 선택의 문제로 본다. 인터넷을 통해 배운 학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그것을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루아나의 이야기는 트랜스젠더 문제가 후천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선천적 본능의 욕구였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아이의 성정체성을 놓고 갈등하고 있을 많은 부모들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항상 다니던 길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혼란스러웠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처음에는 길이 없는 듯이 보였다. 나에게 “성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라는 아이의 그 말로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이제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우린 길을 만들며 여기까지 왔다. 그 과정에서 아이도 더러는 상처를 입었고, 나도 지쳐 ‘이제 그만 하자고!’ 하며 외치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요즈음 우리 가족은 지난 십여 년 시간을 되돌아보기를 한다. 아이는 육체적으로는 완전한 여성이 될 수는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완전한 여성으로 살기 위해 내면에 상처받은 자신을 찾아 안아주고 위로해 준다. 루아나가 고추가 달린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듯 우리 아이도 어릴 적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힘들지만 다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부드러워지고 강해지는 아이를 느낀다.

“세상이 아이를 인정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세상에 맞설 만큼 아이가 강해지길 바랄 뿐이죠.” – 루아나 엄마의 말 –

루아나 엄마의 말처럼 그 세상을 당당한 한 여성으로 루아나도, 내 아이도 살아내길 소망한다. 세상에 많은 트랜스젠더와 그 가족에게 희망을 전한 현명한 루아나의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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