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7일,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주최로 프라이드 수다회가 열렸습니다. 자긍심의 달을 맞아 성소수자 활동가를 초청하여 활동이야기와 지난 윤석열 탄핵 집회 광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였는데요. 여기에 제(소하)가 패널로 참여하여 트랜스젠더로서 느꼈던 것들과 서울인권영화제 활동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외에도 소연(한국레즈비언상담소), 타리(소수자난민네트워크)가 패널로 참여하였고,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진행 하에 질문을 하고 패널이 답변을 하는식으로 수다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소하가 프라이드 수다회 패널 자리에 앉아있다. 마이크를 잡고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다.
광장식 인사로 시작하여, 성소수자로서 윤석열 탄핵 집회부터 지금까지의 소감과 정세이야기,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이야기,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야기,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이야기까지. 2시간 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들 하고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2시간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여러분과 다 공유하고 싶지만,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살짝 공유해보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상영활동을 하는데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보람과 고민이 있나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했던 활동들을 돌아보며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부분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소감을 나눠줬을 때, 그리고 오랫동안 열혈히 서울인권영화제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이었습니다. 활동하면서 드는 고민은 서울인권영화제가 새로운 관객들과 접촉면을 늘려서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활동을 더 자주 알리고 다양한 소통채널을 발굴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서울인권영화제의 활약상에 귀기울여 주세요!
한국 성소수자 – 팔레스타인 연대 성명 홍보 이미지. 프라이드 깃발과 팔레스타인 국기가 겹쳐 휘날리는 그림.
올해 퀴어팔레스타인연대(이하 QK48)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은 6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을 맞이하여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IDAHOBIT부터 6월 20일 난민의 날까지를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로 정하고, 무지개행동과 함께 한국 성소수자 – 팔레스타인 연대 선언문 서명 캠페인을 진행해 왔습니다. 6월 19일까지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총 3,168명의 시민이 선언문에 연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일 난민의 날 오전 11시, 주한이스라엘대사관 앞에서 한국 성소수자 팔레스타인 연대 성명 ‘집단학살에 침묵, 공모하는 프라이드는 없다 – 팔레스타인의 반식민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루되자!’를 발표했습니다.
이스라엘대사관 앞 작은 도로는 이미 경찰 버스가 줄을 서 가림막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살의 범죄를 가리려는 얄팍한 수들은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고 분노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비 예보가 있어 걱정이 많았는데, 그래도 하늘은 우리의 편인지 빗줄기가 약해졌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참가자들은 우산과 피켓, 팔레스타인 국기와 무지개 깃발 등을 들고 기자회견을 시작했습니다.
연명 제안 단위인 QK48의 남웅 활동가(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긴급행동의 세윤 활동가(플랫폼C), 무지개행동의 순부 활동가의 발언에 이어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공동행동 아일린 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활동가, 노동당의 사루 활동가의 연대 발언을 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넋을 기리고 연대의 마음을 보내는 연 날리기 퍼포먼스는 날씨로 인해 진행하지 못했지만, 3천여 명의 이름이 담긴 선언문을 낭독하며 기자회견을 꽉 채워 마무리했습니다.
회견을 마친 후 QK48, 긴급행동, 무지개행동을 대표하는 3인이 한국 성소수자-팔레스타인 연대 성명문과 3,168명의 연서명을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달하였습니다. 또한, 주한영국대사관과 주한독일대사관에 성명문과 선언문, 연서명을 접수하였습니다.
3천 명이 넘는 퀴어와 동료 시민이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지만 학살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서명을 전달하고 지금까지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또 다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이 식량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고, 미국은 휴전을 빌미로 자신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름과 외침이 차곡차곡 쌓이며 빛을 밝히고 있음을 굳게 믿어 봅니다. 퀴어 해방, 팔레스타인 해방, 모두의 해방을 위해 서로의 존재를 잊지 맙시다.
자연스럽게 날씨 이야기로 활동펼치기를 시작하게 되네요. 지치는 날씨 속에 있다가 시원한 바람이 한 번 휭 하고 스쳐갈 때의 기분을 모두 느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제 소식이 여러분에게 그런 기분 좋고 시원한 바람이길 바라며, 날씨가 유난히 좋았던 지난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 시네마(QCP,Queer Cinema Palestine) 소식을 전해요.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시네마는 올해로 3년째를 맞이하는 행사입니다. 이번 QCP의 제목은 “학살에 자긍심은 없다(No Pride in Genocide)”였는데요,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점령과 집단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퀴어 정체성을 이용하는 핑크워싱을 하고 있고, 전세계의 영화인들은 이에 저항하기 위해 연대하고 있어요. 이스라엘 정부가 후원하는 텔아비브 국제 퀴어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QCP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영화인들을 위한 대안적 공간으로서 상영회 및 영화제를 시작했다고 해요.
30개국 이상이 함께 조직한 이번 영화제를 한국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와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해방을꿈꾸는씨네클럽,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이 함께 주최했습니다. 연대하는 단위가 많았는데도 마치 늘 만나던 사람들 같고, 같은 마음으로 상영회를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관객분들도 상영 시작 시간보다 일찍 오셔서 같이 대화도 나누시고, 각 단체에 후원도 해주셨어요. 여러 단편들과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던 감독과의 Q&A의 녹화본을 함께 상영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고운과 상영을 맡은 소하는 상영관 안에 있었고 안나와 저는 밖에서 관객분들 안내를 맡았는데요, 상영이 시작된 후에도 몇몇 관객분들께서 오셔서 늦었는데 들어가도 되는지 물으셨어요. 지금 들어가셔도 된다고 살짝 문을 열어드리며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우리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관객분들과 함께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번역을 하면서 상영작을 보았는데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뿐만 아니라 레바논 등 세계 각지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도 심각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어요. 또 거시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 해방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밖에서 살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개인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런 고민들을 영화 작업으로 풀어내는 과정도 알 수 있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관객분들께 QCP 상영작이 닿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QCP 관객들 모두가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객석에 앉아있다. 글의 내용은 ‘서울에서 팔레스타인까지 학살에 자긍심은 없다, 핑크워싱 반대,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 시네마’ 검은색, 초록색, 빨간색 종이가 섞여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는 어렵게 느끼고 있을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개인도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시면 첫번째 게시물에 BDS 운동이 최우선으로 보이콧하는 기업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요. 주변에 알리기, 투자 철회 촉구하기, 캠페인 참여하기, 최신 정보 확인하기도 BDS(보이콧, 투자철회, 제재) 에 추가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을 검색해보셔도 좋아요. 서울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평일에 진행하는 1인시위를 신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격주 토요일에 이루어지는 긴급행동에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어려운 일이라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운동이 있어요. 저는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나눠주신 문구를 늘 가방에 달고 다니고 있어요.
사진. 요다의 가방. 지퍼 밑에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적힌 천 조각이 옷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라도 적어도 저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어제도 우연히 누군가의 가방에 달린 팔레스타인 수박 뱃지를 봤어요.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어디에선가, 혹은 길이나 대중교통, 일상의 공간에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지지하는 여러분을 만나길 바라며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물 많이 드시고 더워도 틈틈이 운동하시며 (exercise & movement) 여름 나셔유 여러분!!
사진. 서울퀴어퍼레이드 부스에서 마주, 안나 고운이 포즈를 취하고 서 있다. 부스에는 각종 후원상품들이 진열되어있다.
지난 6월 14일, 퀴어 대명절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서울인권영화제도 부스를 차리고 행진도 하면서 함께했습니다!
행사 당일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많이 걱정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쨍쨍한 해와 전년과는 다르게 아주 덥지 않은 날씨가 축제를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저희 부스에서도 많은 분들이 즐기다 가실 수 있도록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을 준비했었습니다. 6월21일에 예정되어 있었던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시네마(QCP) 영화 소개부터 다시보고싶은 퀴어영화 앙케이트, 퀴어영화 가챠 이벤트까지! 게다가 올해에만 특별히 준비한 수제 모루인형과 비즈팔찌 퀴퍼 에디션! 활동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땀한땀 열심히 만든 굿즈도 함께 선보였어요. 또, 저희 활동가 나기는 소수자연대풍물패 ‘장풍‘으로서 퍼레이드 공연에도 참가했어요.
저는 항상 퀴퍼 부스를 준비할때면 사람들이 많이 와주실까,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해주실까, 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편이에요. 올해는 모루인형과 비즈팔찌라는 새로운 굿즈까지 가져가는 만큼 더 많이 긴장하고 있었던 듯 해요. 실은 이 두가지를 준비하기까지 여러가지 우여곡절들이 많았거든요. 저는 부스짐을 꾸리는 퀴퍼 전날밤 12시까지 사무실에서 열심히 비즈팔찌들을 생산해내고, 모루인형 눈알을 붙이고 있을정도로 많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답니다.
그런 활동가들의 간절한 마음이 닿은 덕인지 행사당일 정말로 많은 분들이 저희 부스에 들러주셨어요. 퀴어영화 앙케이트에 참여해주시고 받은 영화 명장면 카드를 좋아해주시거나, QCP 영화 소개를 읽고 관심을 보이시고, 비즈팔찌와 모루인형들이 너무 귀엽다고 칭찬해주실 땐 무더운 날씨에 지쳤다는 사실도 잊고 신나게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부스를 방문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 관련 내용 추가 제안)그리고 올해 축제는 특히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을 지나면서 함께했습니다. 근처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43차 긴급행동이 진행되었고, 서울인권영화제 부스에서는 QCP 영화 소개뿐만 아니라 ‘한국 성소수자-팔레스타인 연대 성명’을 홍보하고 팔레스타인 연대 스티커를 배포하는 활동이 진행되었어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멈추지 않는 지금, 참담한 마음에 기운이 빠질 때가 많지만, 이렇게 무지갯빛 물결 아래 연대의 기운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한여름 밤의 꿈같던 퀴퍼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저는 자주 여러분과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우리 모두 내년 퀴퍼 때까지 각자의 일상을 잘 살아내다 또 만나요! 안녕!
Ps. 저희 부스에 들러 울림을 구독해주신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 우리, …. 오래 봐요😆
팔레스타인을 위한 퀴어시네마 QCP(Queer Cinema for Palestine)는 전 세계 예술가들과 예술 단체들이 함께 모여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에 맞서고, 영화제라는 공간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는 실천입니다. 2021년, 300명이 넘는 퀴어 영화인들이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요청에 응답하여 핑크워싱을 일삼는 텔아비브국제LGBT영화제를 보이콧 하기로 선언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2021년, 2023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QCP를 개최합니다.
여덟 편의 단편영화 모음과 감독 질의응답을 상영합니다. (*상영작 정보는 추후 업데이트 예정입니다.)
🇵🇸 Jeon Tae-il Memorial Hall 2nd floor (Seoul, Jongro-gu, Cheonggyecheon-ro 105)
Through film festivals, Queer Cinema for Palestine (QCP) brings together artists and art groups from all over the world to fight Israel’s occupation and genocide, and to stand in solidarity with the Palestinian people. QCP started in 2021 with more than 300 queer filmmakers announcing that they would boycott the pinkwashing Tel Aviv International LGBT Film Festival, following requests from the Palestinian queer community.
사진.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주범 미국 규탄 한국 사회 성소수자 기자회견 모습. 주한미국대사관 앞, 참가자들이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 진행 중이다. 팔레스타인 국기와 프라이드 플래그가 나부낀다.
‘퀴어 팔레스타인 연대의 달’을 맞아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주범 미국 규탄 한국 사회 성소수자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오늘(12일) 오전 11시 주한미국대사관 맞은편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과 팔레스타인과함께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 등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 일원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6월의 때이른 불볕이 따가웠지만, 서울인권영화제도 함께하며 미국의 학살지원 중단과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쳤습니다.
미국은 가자지구를 ‘소유’할 그 어떤 권리도 자격도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에서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추방’해야 한다는 황당무계하고 위험한 주장도 결코 실행될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을 쫓아내고 유대민족만을 위한 국가를 정착시킬 권리가 이스라엘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큼, 미국에도 가자지구를 ‘소유’하고 ‘개발’할 그 어떤 권리나 자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지구에서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고 위험천만한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결단코 용납하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는 들어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를 한시라도 빨리 해제하고 영구 휴전하도록 최고 수위의 외교 수단을 동원하여 이 시오니스트 국가를 압박하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과 식민 지배를 종식하도록 모든 가용 채널을 가동하여 이 시오니스트 국가를 제재하라. 팔레스타인 해방을 열망하는 그 누구의 말도 검열하지 말라. 가자지구 주민과의 연대를 표하는 그 누구의 몸도 가두거나 단속하지 말라. 국제 사회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해야 하는 모든 책임을 다하라.” (기자회견문 중)
지난 주말(5/24~25), 17회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한빛미디어에서 이틀 간 열렸습니다. 첫날 메인 세션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지키는 민주주의로!’에는 서울인권영화제 고운 활동가가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의 활동을 정리하는 발표를, 둘째날 ‘트랜스-프렌들리 에티켓(트티켓)으로 시작하는 트랜스젠더 친화적 환경 만들기’에서는 소하 활동가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인권팀으로 사회를 보았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바지런한 자원활동가 나기가 이번 인권포럼에 다녀 온 후기를 공유합니다.
사진. 책상 위에 놓여진 성소수자 인권 포럼 자료집. 자료집 표지에는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라고 적혀있다.
원래 3월로 예정되어 있던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탄핵 정국과 맞물리며 다음을 기약한 지 두달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우리에게는 더 많은 광장의 경험이 생겼고 남태령, 한강진, 경복궁 앞에서 일어난 수많은 연대와 환대의 메시지를 켜켜이 쌓으며 광장의 힘을 키워나갔습니다. 평등수칙을 만들고 더 많은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며 퀴어가 살아있음을, 이전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당신의 곁에서 당신과 함께 당신의 같은 존재로서 여기에 있음을 알렸습니다.
광장과 거리에 투쟁의 빛이 켜진지 4개월이 지나, 4월 4일,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습니다. 동시에 대선 정국이 펼쳐지고 우리는 다시 광장에 남았습니다. 차별금지법을 가지고, 동성혼 법제화와 농민법 제정을 주장하며,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 권리를 말하며, 고공에 서있는 해고 노동자의 이름을 부르며 말이지요. 이 기운을 이어 지난 주말(5.24-25) 한빛미디어에서 성소수자 인권포럼이 열렸습니다. 총 8개의 섹션을 통해 윤석열 파면 이후 한국 사회가 만들어 가야하는 변혁적 시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혐오와 선동을 일삼는 극우 정치를 바라보고, 내면화된 폭력을 되돌아 보며,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할 부딪힘과 마주침에 대한 고민할 수 있었지요.
저는 8개의 섹션 중 3개의 섹션에 참여했습니다. 25일에 있었던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지키는 민주주의로!’, ‘의료화와 탈의료화를 넘어 – 의료인 당사자, 활동가가 함께만들어 나가는 건강담론’과 26일에 있었던 ‘에이즈 & 혐오의 역사 40년 : ‘양보갈’부터 ‘카일리’까지’를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인권 포럼의 주제를 ‘감염병과 건강 담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세 섹션을 들으며 ‘감염’에 대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HIV/AIDS는 동성애-퀴어와 성노동-윤락여성에 대한 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는 제가 일부 SNS와 광장에서 목격했던 ‘오염된’ 존재에 대한 혐오와도 일맥상통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안의 혐오와도 마주하였습니다. 문득 내가 감염병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u=u라고 하니 그냥 그렇구나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HIV/AIDS는 현대에 와서 통제 가능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꾸준한 치료와 방지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으면 바이러스는 전파되지 않습니다.(u=u) 처음 에이즈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1980년대와 비교하면 좋은 예방약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자신의 수명만큼 잘 살 수 있고(2000년대 전까지 감염은 곧 죽음이었기 때문에 에이즈가 ‘20세기 흑사병’이라고 불렸을 정도라고 합니다.)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HIV/AIDS에 대한 공포는 여전할까요? 머리로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누군가가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멈칫하게 되는 걸까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에서 지속되는 낙인, ‘오염된’ 존재에 대한 공포,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적극적인 오인과 괴담. 이 모든 것이 찰흙마냥 뭉쳐져 당사자를 고립시키고 멍들게 하는 폭력이 되는데 왜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끊어낼 수 없는 걸까요?
감염자에 대한 낙인은 이주민, 동성애 남성, 성노동 여성, 지하화된 퀴어 커뮤니티 등 다양한 존재와 얽히며 약자,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집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를 가장 쉽게 통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존재에게 떠넘기고 구속과 퇴출, 징벌을 통해 사회의 공포를 무마하려는 것이지요. 1980년대 에이즈는 동성애자 남성의 질병이었고 2000년대에는 ‘윤락여성’의 질병이었으며 현재는 어떤 성적 실천을 하는 (퀴어)집단의 질병이 되었습니다. 특정 정체성, 또는 집단을 바이러스의 보이지 않는 장막으로 만들어 그 집단 내부만의 문제로 치환하고 거기에 속하지 않는 ‘정상적인 몸’과 삶의 궤도는 마치 무균지대인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병균, 바이러스, 감염병은 모든 삶에 우연히 마주치고 안착하는 것이지 특정한 존재가 퍼트리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애시당초 깨끗하고 무해했던 적이 없으며 어떤 궤적도 무균실이 될 수 없습니다.
정상성과 무균상태에 대한 상상된 안정감은 나와 다른 존재를 나와 반대의 자리에 올려놓고 불결한 존재로 타자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오염된’ 상태에서 삶을 시작했으며 감염인의 삶도 사회의 일환이라는 걸 이해했으면 합니다. ‘안전한’ 사회란 모든 병/균이 삭제된 세상이 아니라 불온함 몸으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입니다. 감염된 몸으로 생계를 꾸리고 친구를 만들며 사람과 관계맺고 나의 질병과 통증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 건강권과 질병권에 대한 폭 넓은 대화가 오가는 사회야 말로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입니다.
사진. 광화문 앞 집회에서 수많은 깃발들이 나부끼고있다.
저는 지난 4개월간, ‘어떤 몸이든 전부 환대하고 말리라.’라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갔습니다. 여성이든, 퀴어든, 장애인이든, 성노동자든, 이주민이든, 당신이 누가 됐든 이 광장에 혼자 쓸쓸하게 세워두지 않으리라는 다짐이었습니다. 제가 부당한 세상에 느끼는 분노는 자주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고립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광장이 그 누구도 버려두지 않기를, 훌쩍 떠나버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에이즈의 40년 역사를 톺아보며 나왔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퀴어가 과장에 나와 환호받았는데, 과연 감연인 역시 이곳에서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는가?”
앞으로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하는 갈등과 긴밀하게 스며들어야 할 서로의 삶이 제게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만, 의외로 별 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유의미한 일일 수 있고요. ‘만남’ 말입니다.
실은 말입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나와 너의 구분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주민의 이야기에 왜 그렇게 네가 우울해하고 분노하느냐 물으면 저는 그다지 논리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사회적 재난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느냐는 질문에 ‘언젠가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라는 대답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내가 겪는 부당함과 구분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계속 만나고 이야기 듣고 동료가 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 태어나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면, 어떤 불온한 몸으로도 이 생을 끝까지 살아냈으면 좋겠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안전한 사회는 여성에게도 안전합니다.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아이와 노인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감염인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공포와 혐오를 넘어 더 충만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