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갈채입니다. 지난 8월 12일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는데요, 바로 연분홍 치마에서 제작한 커밍아웃 3부작을 보기 위해 활동가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화를 본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야 활동 펼치기를 올리게 되었는데, 이 글이 늦게 올라가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적으로 제 게으름… 이게 가장 큰 이유이지요… 그리고 하나는 본 영화들에 대해 글로 써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의미 있는 영화를 보면 아무것도 건들고 싶지 않아져요. 그 영화를 보았을 때 스쳐 지나간 생각들, 웃었고 슬펐고 분노했던 것들을 그대로 제 몸에 두고 싶어집니다. 제가 영화를 간직하는 방식이랄까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활동 펼치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커밍아웃 3부작은 영화 세 편의 작품으로 ⟨3XFTM⟩, ⟨레즈비언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을 일컫습니다. 활동가들은 이 세 편의 영화를 하루에 몰아서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루에 세 편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 편을 몰아서 보는 것이 영화 간 연결성을 더 잘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각각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커밍아웃’이라는 공통점 아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대대적으로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공표하며 정치인에 도전하기도 하고(⟨레즈비언정치도전기⟩), 어떤 이들은 친구와 가족 단위 내에서 트랜스 남성으로 살아감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외 타자에게는 남성으로 패싱되기를 원합니다(⟨3XFTM⟩). 종로구에 살아가는 게이 4명은 영화 감독, 열혈 인권 운동가, 요리사, 사무직 노동자로 살아가며 유쾌, 발랄, 서글픈 삶의 모습을 보여줍니다.(⟨종로의 기적⟩).
![[사진] 먹음직스러운 김밥과 볶음라면.](https://hrflix.org/wp-content/uploads/2026/10/스크린샷-2026-10-19-오후-2.50.10.png)
안나, 현토, 효민, 성원, 갈채, 미나상은 이날 영화제 사무실에 하루 종일 있을 생각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모였습니다. 영화제 준비를 할 때 주야장천 모이던 사무실이었지만 이 날은 무언가 소풍을 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분에는 안나(정확히는 안나의 어머님)와 효민, 성원이 싸온 김밥이 한 몫했습니다(굉장히 감칠맛 나는 김밥이었습니다. 하트.).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커피와 라면을 사왔지요. 인심 좋은 영화제입니다.
![[사진]. 영화제 사무실 스크린 속 ⟨레즈비언정치도전기⟩의 한 장면. 선거 운동하는 사람 네 명이 손 모양의 팻말을 들고 있다. 팻말에는 “민중 욕구불만해방!”, “소수자 정치의 급진화를 위해 진보신당과 함께 앞장 서겠습니다!”, “민중과 짝짓기를”, “대한민국이여!! 커밍아웃하라!!” 가 적혀있다.](https://hrflix.org/wp-content/uploads/2026/10/image-4-1024x576.jpeg)
이 장면은 ⟨레즈비언정치도전기⟩에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 최현숙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동료들과 팻말을 들고 외치는 모습인데요, 저희 활동가들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웃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아마 팻말에 적힌 문구 때문이었을 겁니다. “민중과 함께 짝짓기를!” “민중욕구불만 해방!” 이 문구들은 무언가 파격적으로 들리면서도 이보다 더 정답인 말이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줍니다. 정상성을 강요 받는 사회에서 어떤 정체성은 발화하는 것조차 어렵고, 행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런 지점을 욕구불만으로 유쾌하게 표현했을뿐더러 사적인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던 욕구불만이라는 단어가 해방, 투쟁이라는 공적인 정치 언어와 결합했을 때 욕구불만이라는 결핍이 정말 개인의 문제인 것인지 물을 수 있습니다.
이건 ⟨3XFTM⟩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3XFTM⟩ 인물 중 한 명인 김씨는 호적상 성별을 남성으로 바꾼 후 징병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성별 변경 관련 증거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요구에 신체 검사에서 바지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 외에도 이력서에 여자 고등학교라고 적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측에서 고소를 당하기도 합니다.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해지는 폭력적인 검열은 이들이 자신답게 살겠다는 선언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과 불화할 때 경험하는 폭력은, 그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일상의 순간조차도 정체성과 얽혀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데서 옵니다.
우리가 커밍아웃 삼부작을 보면서 체화해야 할 태도는 남태령 고개에서 들었던 “그렇구나, 알아두겠다!”의 태도인 것 같습니다. 윤석열 탄핵 집회로 향하던 농민들과 함께한 남태령 고개 시위에서 한 청년이 어르신에게 자신은 딸이 아니라 논바이너리(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성별정체성)라고 설명합니다. 그때 어르신은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내가 타인보다 먼저 타인을 규정지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그가 자기 존재에 대해 발화할 때 그 발화를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유연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종로의 기적⟩의 이혁상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길 원했고 이들이 활동해온 배경을 손상시키지 않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주인공의 삶을 온전히 느끼도록 연출한 데에도 앞서 말한 유연함을 관객에게 원했던 것은 아닐지 짐작해 봅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4명의 게이를 보고 나서 ‘이것이 게이의 전부구나’라고 해석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 정체성을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에겐 이 영화에서 보여지지 않은 삶의 부분을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커밍아웃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고 그들의 삶에는 합창을 하러 가는 모습, 회식에서 신나게 떠드는 모습,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 자는 모습, 일을 하는 모습도 있으니까요. 이 영화는 그런 모습을 더 많이 조명하면서 우리가 서로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스크린과 관객이 있다면 규모가 어떻든 그 공간은 영화관이 됩니다. 이날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은 작은 극장이 되었습니다. 극장에서 타인과 같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 아직까지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데에는 우리가 어떤 장면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같은 감정을 느낄 때, 그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을 때 느끼는 연결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날 활동가 동료들과 함께 웃고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어서 충만했습니다. 민중욕구불만해방투쟁! 대한민국이여, 커밍아웃하라!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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