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경제성장이라는 욕망의 밑 빠진 독에 화석연료 에너지를 콸콸 부으며 초래되었다. 숲은 석유 시추를 위한 블록으로 구획되고, 농토와 바다는 ‘끝없는’ 에너지 수요를 위한 공급지로 재편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환은 이러한 세계를 재편하려 하는가, 단지 에너지원만 바꾸어내고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전환인가. 아무래도 후자다. 이제는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밀려났는지 질문해야 한다.
<토로보로: 식물의 이름들>은 에너지 개발 과정이 어떻게 한 세계를 지우는지 보여준다. 자본은 “1헥타르당 40달러”를 약속하며 야수니 숲의 석유 시추를 위한 지진파 탐사를 벌이고, 선주민의 ‘문명화’와 이주를 강제했다. 숲은 단지 개발되지 않은 ‘자원’으로 측량되고, 선주민은 ‘교화의 대상’으로 다뤄지며 터전에서 밀려났다. 그곳은 본디 강과 숲, 동물과 식물이 얽혀 삶과 관계를 일구는 세계였다. 아직 학명조차 붙여지지 않은 무수한 식물들의 이름이 와오라니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사라져간다.
와오라니 사람들의 삶을 밀어내며 에너지를 개발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에도 반복되고 있다. 물과 전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규모 반도체 산업단지를 향해 송전망이 삶터를 관통한다. 이윤만을 위한 재생에너지 개발은 농지를 침식하고, 주민들의 삶을 밀어내며 추진된다. 다단계 하청 구조에 놓인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은 산재 사고로 동료를 잃으며, 동시에 발전소 폐쇄로 인한 해고의 불안을 겪는다. 나무 11만 그루를 베어내며 지어질 양수발전소 건설에 반대하는 홍천 풍천리 주민들은 와오라니 사람들과 같은 말을 외친다. ‘살던 대로 살고 싶다’.
삶의 존엄, 공동체만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성장주의라는 밑 빠진 독을 깨버리는 싸움이 필요한지 모른다. 삶의 터전과 관계를 지키려는 투쟁들은 결국 더 많은 개발과 에너지 소비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세계에 맞서게 된다.
와오라니 사람들에게 숲은 삶과 관계의 이름들이 새겨진 세계였을 것이다. 사라져가는 식물들의 이름을 끝내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이 분투는, 모든 것을 개발과 성장의 수단으로만 관계 맺는 체제에 맞설 힘처럼 느껴진다. 에너지원만 바꾸는 전환으로 이 세계를 지킬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삶을 지키는 정의로운 전환은 이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 은혜(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프로그램 협력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은 기후위기와 기후부정의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의 근본적인 원인이 더욱 심화되는 국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이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성장체제에 있다고 분석합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공동체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여 체제전환을 이뤄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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