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이슬이 온다

인권해설

“누군가의 목숨이 닳고 없어져야 하나씩 생겨나는 거야.”

흔히 인권을 천부적 인권이라 말하지만, 노동의 현장에서 인권은 누군가의 처절한 투쟁과 희생을 담보로 겨우 한 발짝씩 전진해 온 ‘쟁취의 기록’이다. 광산의 막장에서, 건설 현장의 고공에서, 조선소 도크와 제철소 용광로에서 ‘목숨을 담보로 전쟁하듯’이 사회를 지탱해 온 이들의 인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소외되고, 마지막에야 호명된다. 노동자를 존엄한 인간이 아닌, 소모되고 버려지는 ‘소모품’으로 취급해 온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투쟁,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

35년 전,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스스로 불꽃이 되었던 탄광 노동자 성완희 열사의 투쟁은 박제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광산쟁이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던 그의 절규는, 오늘날 정권의 탄압에 맞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던 양회동 열사의 유언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자본과 권력이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지워버릴 때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세상에 질문을 던져왔다. ‘막장 인생’이라는 비하 섞인 시선 속에서도 그들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거창한 권력이 아니었다. 오직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켜 달라”는 절박한 생존의 요구였다. 그 목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에서 혹은 위태로운 고공 크레인 위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쉰 목소리와 하나로 맞닿아 있다. 이처럼 우리가 목도하는 현장의 고통은 결코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가치를 끊임없이 폄훼하고 위태롭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 낳은 결과물이다.

폐광이 남긴 공허, 우리가 채워야 할 인권의 언어

석탄의 시대가 저물고 광산이 문을 닫듯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그러나 노동이 떠나간 자리에 우리가 외면했던 ‘산업전사’들의 굽은 등과 가쁜 숨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광부들이 들이마신 탄가루가 ‘이슬’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으로 불리며 서서히 폐를 굳게 했듯,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가 매일 ‘생존 자체가 과제가 된’ 위태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일터에서 흘린 노동자의 땀방울이, 억울함을 머금고 고공에서 맺힌 눈물이, 그리고 새벽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낸 이들의 처절한 사투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여전하고 고단하다.

소외된 노동으로 인해 인권이 멈춰버린 그 빈자리를 ‘인권의 언어’로 다시 채워야 한다. 이슬이 마르기 전에, 그 소중한 흔적들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전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던 그들의 절박한 외침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기록되지 않으면 지워지고,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노동자들의 가쁜 숨소리가 소음으로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인권이 온전히 지켜지는 깊은 공명으로 이어지길 소원한다.

– 이미숙(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프로그램 협력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불안정 노동 철폐’를 자기 과제로 하는 활동가, 노동자, 법률가, 연구자 등이 모여 2002년 설립되었습니다. 누구나 건강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권리가 있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권리를 빼앗고 노동과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맞서 싸우며,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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