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 스레브레니차의 안개

인권해설

20세기 동안 대학살(제노사이드)을 통해 고의적으로 절멸당한 사람들이 무려 1억 6700만에서 1억 7500만 명. 채 헤아릴 수조차 없는 거대한 숫자 앞에서 인류가 얼마나 잔학한가, 그리고 잔악해질 수 있는가 새삼 소스라치게 놀란다. 공포와 충격의 역사 앞에서 격분만으론 충분치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읽는 순간에도 시리아에서, 나이지리아에서 학살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으로 이 광기 어린 야만과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을까?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삶을 위한 죽음의 연구』의 저자 허버트 허시는 기억을 통한 공감만이 제노사이드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동일한 일이 반복된다면 누가 그런 끔찍한 일에 동참하겠냐고, 나는 절대 아니라고 확신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사이코패스 같은 반사회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벌어졌다.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람들의 ‘순전히 생각 없음(sheer thoughtlessness)’이 명령에 동참하고 적극적으로 복종하며 대학살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 맞서는 방법은 온전한 기억으로부터 생각하기와 사회적 공감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은 ‘진공상태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사회적 현상’이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늘 기억에 대한 조작과 부인, 단절과 망각을 시도한다. 우리 역시 정체성과 세계관, 시공간적 차이,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수없이 기억을 편집하고 재구성한다. 온전한 기억이 존립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하여 학살의 진실이 무엇인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에 서 있을 때, 우리를 인도하는 건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학살의 그날을 온몸으로 품고 살아온 생존자들은 그들의 말과 몸, 그리고 침묵 등을 통해 진실의 등불을 밝힌다. 채 삼킬 수도, 뱉어낼 수도 없는 상흔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며 잊지 말아야 할지 용기내어 증언한다. 제대로 단죄되고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또 다른 학살로 도래할 것임을 예언한다. 더 이상의 참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생존자들의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함께 울고 통곡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공감으로, 광장의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 그 증언을 이으며 새로운 사회적 기억을 써내려가야 한다. 그랬을 때야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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