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깨어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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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지 않을 책임>

“우리 회사에도 연차라는 게 있었다!” 휴일도 없이 수당도 받지 못하며 십수 년 동안 일했던 생탁의 노동자들은 우연히 회사 취업규칙에서 연차수당에 관한 규정을 발견한다. 지금껏 회사에서는 연차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연차수당을 받은 적도 없다.

토.일요일 같은 휴일의 취지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있고, 더 나아가 연차휴가는 ‘노동자의 여가와 문화생활’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생탁 노동자들의 경우는 그 어느 것도 보장받지 못했다. 십 년 이상 일했다면 회사에서 정한 휴일 외에도 최소 20일의 휴일이 더 있었어야 했다.

인간 노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다. 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노동자의 평균수명은 30세 전후였다. 1886년 5월, 시카고에서는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노동자에게 경찰이 발포해 노동자 4명이 죽고 다수가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튿날 ‘헤이마켓 사건’에 동참한 일부는 ‘급진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1일 8시간의 노동은 ‘급진적 사상’이었고, 목숨을 걸고 쟁취한 노동자의 권리였다.

그렇듯 우리는,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동시간을 줄여 왔지만 생탁은 달랐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쉬었고, 명절에도 노동절에도 생탁 공장은 돌아갔다. 초록색 생탁병에는 제조날짜를 뜻하는 숫자, ‘5월 1일’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항상 누군가는 제조를 하고 운반을 했다는 얘기다. 휴일 근무를 할 때는 특근수당은커녕 밥 대신 고구마를 먹어야 했다.

1970년대 대도시 양조장 통합정책으로 생탁에는 사장이 41명이나 된다. 특히 장림공장의 사장은 25명, 노동자가 50명이다. 휴일도 없이 일한 노동자 2명의 노동을 사장 1명이 착취하는 이상한 구조다. 결국 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노조를 결성했다. 생탁 막걸리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2014년 4월 29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너무나도 열악한 현장이었기에 파업 참석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생산을 완전히 멈췄기 때문에 며칠만 더하면 사장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 즈음 회유가 들어왔다. “회사 망하고 나면 파업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하나둘씩 “미안하다”고, 또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현장으로 돌아갔다. 회사는 다수인 어용노조를 내세워서 민주노조에게는 교섭권이 없다고 통보를 했다.

이후 지난한 세월 동안 투쟁이 이어졌다. 부산시청 앞 전광판에서 고공농성도 하고, 제조과정의 비위생 상태를 내부고발하기도 하고, 식약청에 민원도 넣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불매운동도 하고, 사장 집 앞에서 집회도 하고…. 이 악덕한 기업은 아직까지도 노예가 될 것을 강요하지만, 생탁의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지금도 길 위에서 싸우고 있다.

 

최고운 (부산반빈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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