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각자 다른 이유로 길 위에 있는 사람들.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어도 길 위에서의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봄바람 순례단은 이들을 만나며 투쟁의 얼굴을 마주한다.
프로그램 노트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삶의 공간에 자본의 거대한 폭력이 들어온다. 길게는 몇십 년을 일한 곳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쫓겨난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지만 존재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된다.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지만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평화를 말했을 뿐인데 전쟁 같은 일상을 치러야 한다. 기업과 국가는 마을 공동체를 깨부수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봄바람 순례단이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투쟁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투쟁은 늘 즐거워야 한다고 말한다. 힘겹고 지난한 싸움은 어떻게 즐거울 수 있을까? 함께 싸우는 사람들은 서로의 위안이 된다. 누군가는 ‘연대하러 와서 오히려 힘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싸우며 나아가는 길에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울고 웃으며 어느새 함께하게 된 사람들은 투쟁을 즐겁게 이어갈 수 있게 만든다. 투쟁하는 데 필요한 힘을 얻는 ‘현장’은 그렇기에 소중하다. 힘이 확장되는 공간이고 무너지면 일으켜줄 사람을 얻는 곳, 언젠간 다른 세상이 올 거라는 확신을 얻는 곳이기 때문이다.
연대하며 점점 불어나는 ‘싸우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서로를 만나며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어떠한 ‘감각’을 경험한다. ‘나’의 싸움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 이 감각을 느끼는 순간 노동자, 여성, 장애인, 퀴어, 국가폭력 피해자, 유가족, 소성리/월성/지리산의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싸우는 사람’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싸우는 사람들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너무 거대한 장벽을 넘어야 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을 멈추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장벽을 조금씩 부수고 세상을 한 걸음씩 앞으로 옮겨낸다.
‘싸우는 사람’들의 싸워 본 경험과, 싸우고 있는 현재는 자신이 속한 영역의 변화를 위한 연대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다른 세상’을 위한 거시적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미 함께 싸우고 함께 기억하고 함께 나아가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모든 싸움의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세상이 와도 ‘우리의 말을 잘 가꾸며’, 언젠가 동료가 될 사람들을 환영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다른 세상은, 기필코 온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다른 세상을 잇는 현장 미디어 프로젝트 ‘봄바람’>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활동가 21명이 공동제작에 참여했다.
▷ 연출의도
<봄바람 순례단>의 소식을 전해들은 미디어활동가들은 순례단의 여정을 계기로 각 투쟁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하고 연결하기 위해 공동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기후위기의 시대’, ‘빼앗긴 노동’, ‘있다, 잇다’, ‘기억투쟁’, ‘평화연습’이라는 주제 안에 18편의 영상으로 한국 사회의 민낯을 담았다.
인권해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여 가고 검색 몇 번이면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요즘. 텍스트와 이미지로 알고 있고 그렇게 만나는 것으로도 내 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자조할 때쯤 40일간 현장을 돌아보는 순례에 함께 하게 됐다. 문정현 신부의 이야기처럼 촛불의 내용을 채우지 못함으로써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 당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순례를 준비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설사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지금껏 싸워온 사람들은 투쟁을 멈출 수 없을 것이란 걸. 이미 몇 번의 민주 정부가 심지어 ‘촛불혁명’이라며 세워진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권력이 바뀌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란 걸 여실히 증명하지 않았나.
‘지금 당장 기후정의, 차별을 끊고 평등으로, 일하다 죽지 않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전쟁 연습 말고 평화 연습’ 이라는 네 가지의 의제를 가지고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자는 것이 순례의 출발이었다. ‘만남’ 자체가 중심에 선 운동이었다. 제주에서 출발해 전국을 돌아보며 매번 2시간 정도 시간을 들여 차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세상을 만나는’이라는 봄바람 순례단의 슬로건처럼 순례단은 우리가 다른 세상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곳곳에서 자본과 권력에 맞서 다른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절망이 아닌 희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던 깊은 자부심 때문이었다. 자신의 노동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이 살아온 지역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그들이 지키고 싶은 진실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펄럭거리는 노상 천막에서 느낄 수 있었던 싸우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고통이 있는 곳에서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존재들의 힘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투쟁은 시골의 작은 이야기로 비정규직들의 외로운 싸움으로 다른 성별,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수의 평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축소되어 있다. 하지만 결코 투쟁하는 사람들은 소수가 아니었다. 흩어져 있을 뿐 다른 세상을 말하는 사람들, 그 곁에 선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다. 불평등과 차별은 핍박받는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거대한 이익 앞에 놓인 이 땅에 사는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오늘 하루를 안전하게 깨끗하게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던 이면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순례 내내 들었던 고민이었다. 하지만 봄바람 프로젝트_여기 우리가 있다 상영회를 통해 이 고민도 서서히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21명의 감독들을 통해 재구성된 이 영화를 접하고 다시 고민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렇게나 많은 세상의 고통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시작된다면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고 익숙한 공간, 주제, 지역을 떠나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다가갈 때, 사람들이 서로 교차할 때 운동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혼자가 아니란 걸. 싸우는 우리가 혼자가 아니란 걸 느낄 때 든든한 마음으로 다른 세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우리가 있다.
딸기(평화바람, 봄바람 순례단)
평화바람 gunsanpeacemuseum.kr
군산과 제주 강정에서 군사기지에 반대하며 평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군산에서는 평화박물관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의 평화운동의 역사와 현재성을 알리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바라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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