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차별금지법 농성장에서 처음 만난 2030 퀴어페미니스트 감독들. 그들이 발 딯고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차별을 들여다 보기로 한다. 4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영화는 사적 서사에 기반하여 임신중단과 정신병에 대해 말하고, 다른 세대와 차별의 경험을 포개어 보며, 당사자와 비당사자를 가르는 경계를 되돌아본다. 5개의 이야기는 한 가지의 질문으로 향한다. 무수한 관계들 속에 놓여있는 우리가 ‘평등한 우리’ 없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프로그램 노트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외침과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믿음은 곧 경계 없는 초대장이 된다. 그래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현장은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다.
2021년 11월,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 쟁취 농성장에서 만난 카메라 너머의 사람들이 있다. 기록촬영을 도우러, 연대자로서 농성장을 찾은 이들은 어느샌가 신진작가이자 미디어활동가로서, 2030 퀴어페미니스트로서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당사자가 된다. 이들이 경험하고 감각하는 차별이란 무엇일까. 이들의 일상과 차별금지법은 어떻게 닿아 있을까.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네 개의 에피소드와 한 개의 에필로그로 구성된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청년 여성이 주목하는 차별의 지점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 그리고 ‘평등한 우리’를 위해 나아가는 길에 놓여있는 나/너/우리의 혐오와 낙인을 되짚는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감독 자신의 내밀한 경험이기도 하면서, 이 경험이 ‘차별금지법’을 경유하면서 전개되는 고민과 상상이기도 하다. <오프닝>이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는 결국 관객을 이들 각자의 농성장으로 초대한다. 관객은 이 초대를 거절하기 쉽지 않으리라.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의 기획, 제작 과정에는 서울인권영화제도 살포시 함께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엮어내는 과정을 보며,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섹션에 이 작품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다른 세상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한다.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로 향하는 길 위에 경계 없는 초대와 용기 있는 응답이 이어진다. 신진 미디어활동가들은 이를 기록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또 다른 만남의 광장을 제안하며 알록달록 아름다운 길을 열어낼 것이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차별은 ‘나’의 바깥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타나는 구별들, 그것은 내가 만든 질문일까? 그런 구별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다시 화합할 수 있는 것일까?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과 내가 함께 해방되기 위해서 나의 자리는 어디여야 할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은 하나의 문장으로 묶인다. 차별을 끝장내는 것은 우리들의 연결이라고.
차온다(차별금지법 온에어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팀)
인권해설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 앞 농성에 돌입하던 2021년 11월 8일의 기억을 소환한다. 비가 내리는 날, 국회 앞에 모인 이들은 무지개 우산을 기둥 삼고 테이프로 붙인 비닐을 지붕 삼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우리만의 비닐 농성장을 세웠다. 농성 천막 반입을 막으려는 공권력의 필사적인 방해 속에서 ‘평등의 원칙’을 요구하며 비닐지붕 아래 함께 서 있던 ‘우리’는 누구였을까, 또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2030 퀴어/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공유하는 다섯 감독들의 이야기는 ‘차별에 맞서는 우리’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과 나’의 거리는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경계일 뿐인가, 누군가의 존재와 목소리를 삭제하지 않고 ‘다룰 수 있는’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치는 나는 누구와 함께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가.
기본적으로 당사자 운동에서 정체성, 이름짓기의 정치학은 보편의 이름으로 차이를 삭제 혹은 융해시키려는 시도, 차별의 구세주 혹은 대리인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 및 지배 권력에 대항해 당사자의 경험과 관점, 주체성을 삭제하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여성’이라는 정체성 역시 성별 권력관계의 불평등에 분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여성에게 저항의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 사건 직후 남겨진 한 장의 포스트잇은 한국 사회의 젠더폭력에 맞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대표적인 강력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동일시와 정체성에 기반한 저항의 언어는 항상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너’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선언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나’로서 승인되고 대표되는가?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가 보여주듯, 여성이 ‘여성’이라는 젠더 경험으로만 환원될수록 다른 억압체계로 인한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들 내부의 차이(동일시할 수 없는 세계)는 가시화되기 어렵다. 또한 당사자 혹은 피해자로서 여성 정체성의 단일성이 강조될수록, 이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의 자리에 ‘여성/자신’만이 남게 되기 쉽다.
동일성에 대한 긴장과 대표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성별 권력관계에서의 약자로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성차별을 경험하는 대다수 여성의 피해 경험을 부정하거나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차별 운동의 역사에서 이는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문화를 부정하고, 차별의 위계와 소수자 낙인을 이용해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를 회피하며, 보호와 처벌로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에 대한 요구를 잠재우려는 지배 권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더 깊고 너르게 다루기 위함이었다. 또한 이러한 지배 권력의 폭력에 공통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부정의를 공통으로 인식하는 ‘우리’의 저항을 재구성하기 위한 출발이다. 차별과 불평등에 기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부정의를 바로잡고 할 때 우리에게는 정상성의 기준을 질문할 수 있는 힘, 이를 함께 제기할 수 있는 더 많은 동료를 필요로 한다.
몽(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https://equalityact.kr/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로, 2022년 9월 현재 167개 인권시민사회단체와 15개의 지역 네트워크가 함께 하고 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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