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다, 팔레스타인 Stitching Palestine

작품 줄거리

여기 열두 명의 여성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간, 삶의 궤적을 떠올리며 현재와 먼 과거를 오간다. 태어난 곳도, 살면서 거쳐 간 공간도, 세대와 문화도, 구사하는 언어의 억양까지도 전부 다른 이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가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이다. 그녀들이 꿴 자수 한 땀 한 땀에 이들의 인생, 팔레스타인 사람의 정체성과 자기 존재의 증명이 담긴다. 이들은 수 놓인 천을 보며 팔레스타인을 떠올린다. 자수를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기억을 빌려와 고국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이들에게 자수는 문화보존의 형태이자,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의 저항이다. 영화는 자수로 이어진 다양한 삶을 따라간다. 시간도 공간도, 그 누구도 지우지 못할 삶의 궤적이 자수로 꿰어진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이린

프로그램 노트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강제로 점령하면서 약 8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야 했다. 대대적인 학살과 억압의 시작,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를 대재앙을 뜻하는 단어 ‘나크바’라고 부른다.
긴 시간이 흘러 세계 각지로 흩어진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덧 난민 4세대가 자라고 있다. 지역과 세대가 분화됨에 따라 언어, 억양, 문화 등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이다.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은 그 자체로 투쟁이다. 특히나 팔레스타인의 민족성은 그 자체로 생존의 위협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는 삶이 된다.
<잇다,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의 민족 정체성을 여성들의 이야기로 엮었다. 남성의 언어와 남성의 상징물로 서술된 기존의 역사와 달리, 영화는 여성의 상징물인 자수와 이와 관련된 여성의 경험으로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역사를 이어나간다. 영화 속 인물들은 팔레스타인 자수를 보며 고국에서의 기억, 또는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선대의 증언으로부터 상상을 통해 빌려온 기억을 마음에 새긴다. 그렇게 이들은 자수를 꿰는 동시에 시공간을 넘어 떨어져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하나로 꿰어진다. 이들에게 자수는 단순한 행동 또는 여성성의 상징이 아니다. 억압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지키는,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다.
나크바가 일어난 지 올해로 70년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팔레스타인에는 여전히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점점 더 물리적으로 흩어져가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언제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팔레스타인 사람으로서 이들만의 방식으로 조국을 기억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것이다. 자수 실을 엮어 견고한 작품을 만들 듯, 서로의 기억을 엮어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남아 저항의 삶을 지속할 것이다.

감독

캐롤 만수르

캐롤 만수르는 20년 넘게 스리랑카, 레바논, 우즈베키스탄 등의 다양한 국가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녀의 작품 들은 전 세계적으로 30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캐롤은 이주노동자, 난민, 환경, 정신 건강, 전쟁과 기억, 건강권 및 아동 노동과 같은 인권과 사회 정의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인권해설

“우리가 존재하는 어디에서나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우리의 지구 위에 그 이야기 하나하나를 꿰어낼 수 있어.”

<잇다, 팔레스타인>에 나오는 인터뷰이는 1948년 ‘대재앙’을 직접 겪은 사람부터, 팔레스타인을 조/부모 세대에게 얘기로 전해 듣기만 한 사람, 군사 점령지에 나고 자라 살아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팔레스타인 각 지역을 담은 거대한” 자수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은, 자수를 통해 점령지와 국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잇는다.

그런데 어째서 팔레스타인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이들보다 밖에서 사는 이들이 더 많을까?

우리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동예루살렘·서안지구·가자지구 세 곳을 묶은 것으로, ‘역사적 팔레스타인’의 22%에 불과하다. 78%의 지역은 70년 전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차지했다. 당시 유럽에서 이주해 들어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국가’를 만들겠다던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를 끝내고 철수한 틈을 타 이스라엘 건국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건국을 전후한 일 년간 주변의 신생 아랍 국가들과 전쟁하며 팔레스타인 원주민 마을 530개를 파괴하고 원주민 15,000명을 학살했으며, 인구 절반이 넘는 80만 명을 강제추방해 난민으로 내몰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때를 나크바, 즉 대재앙의 날들로 기억한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위임통치기에 실행했던 ‘비상강제령’을 이스라엘 법제로 편입하고 군사정부를 만들어, 78%의 땅에서 남은 팔레스타인인들을 18년간 통치했다(같은 기간 유대인들은 민간정부가 통치했음은 물론이다). 비상강제령은 상소할 권리를 주지 않은 채 민간인을 관할하는 군사법원, 신문과 서적 발행 금지, 가옥 등 건조물 파괴, 재판 없는 무기한 행정구금, 출입봉쇄, 통행금지, 강제 이주 및 추방 등을 규정했다. 자국 내 군정을 폐지한 이듬해인 1967년에 이스라엘은 나머지 22%의 팔레스타인을 점령했고, 비상강제령을 적용하며 지금껏 군사점령 통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78%의 역사적 팔레스타인, 즉 이스라엘 밖으로 추방당한 난민과 후손은 무려 70년 동안 고향 땅을 밟는 것조차 이스라엘에 철저히 금지당했다.

이처럼 군사 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이란 구분은 팔레스타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건국, 온갖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을 무력화시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들은 강제로 격리된 것이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이스라엘의 왕래 허용과 여러 식민제국을 본받은 분열통치 전략의 일정한 성공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회는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저항을 통해 서로에게 연결돼 있다.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정체성을 잊지 않고 전통을 지켜내는 것, 그래서 팔레스타인이 새로운 세대에게 지워진 과거가 되지 않게 하는 것. 존재 자체가 저항이라고 얘기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수는 그 존재와 저항의 한 방식이다.

영화에는 가자지구의 인터뷰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와 이집트 사이 국경만 매우 제한적으로 열고 있으며 이마저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자지구로의 출입과 촬영이 여의치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영화가 이집트에서 상영됐을 때 가자지구 출신의 한 관객은 이스라엘이 허가를 내주지 않기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한 서안지구를 영화를 통해 방문했다며, 언젠가 전 세계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 모두가 모여 함께 돌아가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는 소감을 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계속 저항하는 한 그녀의 말은 현실이 될 것이다.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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