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

소식

스틸 사진. 깃발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대오.
스틸 사진. 깃발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대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우리는 스펙터클 속에 빠졌다. 믿기지 않는 말들. 국회로 가는 헬기와 장갑차. 계엄군을 막는 사람들. 담을 넘는 의원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을 말하는 국회의장의 목소리. 광장을 채운 사람들의 빛과 깃발. 남태령에서 차벽을 뚫은 트랙터와 사람들의 끈적한 연대. 서부지법을 깨부수는 사람들 등등… 강렬한 이미지들이 수없이 떠오른다. 계엄에 얽힌 시공간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었다. TV로, 트위터에 사람들이 업로드한 게시물로, 유튜브 라이브로. 지금 ‘다큐멘터리 카메라’는 어디에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무얼 찍을 수 있을까. 다들 어디 있을지 궁금했다.

2024년 12월 13일, 서울인권영화제는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 영화제(이하 퇴인영)>를 개막했다. <퇴인영> 상영작 중, 우리의 광장과 가장 닮은 작품 <봄바람 프로젝트2: 다시, 바람이 분다(이하 <봄바람 시즌2>)>를 함께 나누고 싶다. <봄바람 시즌2>는 14명의 미디어활동가/독립영화 감독이 우리 곁의 11가지 투쟁을 11편의 작품으로 담아낸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다. 영상은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 시간을 마주하며 다시 한번 현장을 잇고, 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나’고자 한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을 선정할 때, 현장을 담은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막상 카메라를 어디에서 어떻게 들어야 할지 구체적으로 다가가니 여러 생각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또 어디까지가 현장인가. 그저 투쟁현장과 인터뷰를 담는 방법론으로 괜찮은가. 이 영상이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카메라의 지속가능성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봄바람 시즌2>는 드론을 띄워 저 멀리서 엄청난 스펙터클을 지닌 ‘풍경’으로 광장을 찍는 대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펄럭이고 있는 깃발 밑으로 가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어 지도를 그리는 방식을 택한다. 11편의 작품, 11곳의 현장. 성폭력 사안 해결을 위한 지혜복 교사의 투쟁을 시작으로 유천초등학교 부당징계 철회 투쟁, 지리산에 사는 온빛의 활동,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가덕도 신공항, 제주 제2공항, 이태원참사, 뉴라이트, 탈북민, 장애 교육투쟁,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위한 투쟁까지.

유천초 교사였던 윤용숙은 인터뷰 중 “우리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다 이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그 어떤 투쟁이든 다 나의 투쟁이라는 생각이 어느 날부터 들게” 됐다고 말한다. 우리는 윤석열 퇴진을 외친 광장에서 서로의 삶이 얽혀 있음을 말 그대로 목격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윤석열 퇴진 이후의 세상에도 우리의 구체적이고 지난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곳엔 세상이 주목할 만한 스펙터클도, 명확한 승패도 없을 수 있다. 밀양에서 송전탑건설반대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활동가 남어진은 말한다. 송전탑도 건설되고 원전도 거의 완공된 시점에서 “지금의 싸움은 마음을 지지 않게 하는 싸움”이라고. 우리는 마음을 지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한다.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투쟁 현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봄바람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봄바람 시즌2>는 그러한 사람과 현장을 계속 마주치게 만든다. 영화가 영화제가 사회와 어떻게 호흡하고 투쟁해 나갈 수 있을지, 그 힘에 대한 믿음과 불신이 겹치지만 결국 결론은 뻔한 말로 돌아간다. 우리가 서로를 보고 듣고 마주칠 수 있는 광장을 만드는 것. 반대로 뭉뚱그려지는 광장 속 개개인이 지닌 개별적인 이야기를 파헤치는 것. 그것이 영화와 영화제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일 거라 믿는다. 우리가 계속 서로를 보고 듣고 마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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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펼치기] 당신의 광장과 공명하기 위해서 

소식

사진. 광화문 앞 집회에서 많은 깃발 가운데 서울인권영화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깃발 아래는 무지개 깃발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깃발이 같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 광화문 앞 집회에서 많은 깃발 가운데 서울인권영화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깃발 아래는 무지개 깃발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깃발이 같이 펄럭이고 있다.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시나요? 식사는 잘하고 계시는지요? 밤잠을 설치진 않는지 걱정됩니다. 지난달 12.3 내란 이후 많은 시민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습니다. 매일 속보가 날아들어 오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여의도 한복판에 호외가 뜨고, 국회에서는 양곡법과 김건희/내란 특검법이 가결되었다가 거부되고, 다시 상정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남태령에서는 농민과 시민이 무박 이틀 동안 투쟁해 불의한 공권력에 대항했고(2024.12.22), 혜화역과 국회의사당역에서 두 차례 ‘민주없는 민주동덕’ 연대 집회가 열렸습니다. (2024.12.27/2025.01.19) 용산에는 윤석열 퇴진에 목소리를 내는 퀴어 시민의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 집회가 열렸고(2025.01.15), 어제는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사망사고’ 24주기였습니다. (2025.01.22) 전국장애인철폐연대와 시민은 주중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에 올랐고,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방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연말과 연초, 기존의 투쟁과 새롭게 떠오르는 투쟁이 얽히며 거리와 광장은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으로 가득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도하는 ‘범시민대행진’ 이 이루어집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역시 영화로 연대하는 인권 단체로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단체로서 매주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깃발과 프라이드 플래그를 깃대에 달고 광장의 ‘무지개 존’에 서서 여러분과 함께 윤석열 퇴진을 외쳤습니다. 여의도에서부터 광화문까지, 국회의사당에서부터 헌재까지,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응원봉과 깃발을 보며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민주주의가 현실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매주 늘어나는 푸드트럭과 하루가 다르게 증식하는 깃발을 보며, 수많은 의제와 삶을 갖고 무대에 오르는 시민 발언자의 말을 들으며, 우리 서울인권영화제의 사명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인권 단체가 아닌, 영화를 ‘상영하는’ 인권 단체로서 ‘서울인권영화제’가 이 광장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평등한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 ‘대안영상발굴’을 기조로 광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당신의 광장과 공명하기 위해서가 아닐지 싶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지향하는 ‘영화제’의 모습은 ‘광장’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광장은 마치 단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삶과 관계로 이루어진 여러 광장이 상호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 ‘광장’과 가깝게 연루되어야 합니다. 우주의 수많은 별이 서로의 중력과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중력과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서울인권영화제가 상영하는 인권 영화는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시각에서, 또 당사자와 관계 맺은 긴밀한 공동체의 시각에서, 또는 투쟁의 현장에서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이야기를 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러한 이야기를 광장으로 가지고 와 영화가 일으킨 파장을 더 멀리, 넓게 퍼지도록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초대합니다. 

분명 다음 영화제에 이번 ‘시민촛불대행진’을 주제로 한 인권영화가 들어오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거기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의 이야기와, 그간 광장에 서 있었으나 조명되지 않았던 여성의 이야기와, 혐오와 낙인에 맞서는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이야기와, 사회의 관심 밖에서 농업과 연대를 이야기한 농민의 이야기와, 주변으로 밀려난 이주민과 난민, 이민 2세, 그리고 맨 앞에서 길을 연 노동자의 이야기가 있겠지요. 

진정한 평등과 해방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서울인권영화제는 역행의 시대에 맞서, 불온하게, 누구도 남겨놓지 않고, 우리의 거리를 기억하며, 끝까지 당신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투쟁!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12소식

2024년 12월 재정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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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 2,250,050원의 정기후원금과 495,000원의 일시후원금을 받았습니다.
  • 상영지원을 통한 후원금 300,000원이 모였습니다.
  • 모두의 결혼 연대활동으로 송출지원이 있었습니다. 송출지원 후원금으로 1,300,000원을 받았습니다.
  • 12월에 인권재단사람에서 인권활동119 지원기금 2,000,000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금으로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를 진행합니다.
  • 총 수입은 6,348,654원입니다. 후원해주신 여러분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출

운영비

  • 임차료는 460,000원, 상임활동비는 2인 총 2,000,000원, 사회보험비는 403,040원으로 고정 지출이 여전히 많은 상황입니다.
  • 운영비로 총 3,150,902원을 지출했습니다.

사업비

  • 12월부터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가 진행 중입니다. 상영료 지불을 위해 300,000원을 사용하였고, 영화제 홍보를 위해 208,037원을 사용하였습니다.
  • 총지출은 -3,661,021원입니다.

12월달 증감액은 2,687,633원으로 흑자입니다만, 인권활동119 지원기금 사업 예산을 제외하면 실제 증감액은 크지 않습니다.

새해에도 재정안정을 위해 힘쓰는 서울인권영화제가 되겠습니다.

11소식

[성명] 윤석열 체포! 파면까지 쭉 가자

소식

윤석열 체포! 파면까지 쭉 가자

오늘(15일) 아침 10시 33분, 드디어 윤석열 체포가 집행되었습니다. 윤석열은 끝까지 뻔뻔하게 자진 출석을 운운하며 구차한 행태를 보였습니다. 내란수괴 윤석열은 그동안 차별과 혐오의 정치에 있어서도 우두머리로 권력을 휘둘러 왔습니다. 오늘의 체포 소식은 그동안 내란수괴 윤석열과 혐오﹒차별의 정치에 맞서 싸워온 우리 모두의 승리이고 기쁨입니다. 윤석열과 그 일당의 내란 혐의에 대해서 철저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본인의 알량한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모욕한 윤석열은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파면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투쟁할 것입니다. 광장에서 모입시다. 투쟁!

2024.1.15 서울인권영화제

13소식

[활동 펼치기]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뜨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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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저녁, 명동성당 사거리 부근에서 열린 집회를 아시나요? 울림 구독자님들도 많이 오셨을 것 같아요. 바로 ‘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첫 번째 집회가 있었습니다. 윤석열 퇴진!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이하 평등세상),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함께 준비한 자리였는데요, 윤석열 퇴진뿐만 아니라 평등 세상을 외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루돌프 인형 탈을 쓴 채 양 뺨에 손을 올려 포즈를 취한다. 피켓 2종을 배에 붙여두었다.

사진. 프라이드 플래그가 덮인 테이블 위에 '성소수자 차별도 윤석열도 없는 사회로' 피켓과 '민주주의 지키는 성소수자' 피켓이 놓여있다.

주최 단위에서는 50명은 올까, 100명 오면 많이 온 거다, 하면서 준비를 했다는데 정말 정말 많은 이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옆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넘쳐나는 사람들로 나중에는 광장이 넘쳤지요. 트럭 무대에 선 발언자들은 노동 혐오는 없고 노동자의 자긍심은 넘치는 세상, HIV/AIDS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지금 시국의 두려움을 넘어 함께하는 세상, 이주민의 노동과 삶이 차별 없이 정당하게 펼쳐질 수 있는 세상, 청소년을 ‘기특’하다고 하지 않고 주체로 관계 맺는 세상, 종교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는 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언니네트워크의 합창단 아는언니들, 길 가는 밴드 장현호님의 공연으로 연말 분위기를 물씬 내며 “윤씨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줄 알았냐!”, “크리스마스에는 정의를” 등의 가사를 함께 불렀습니다. 마지막에는 평등세상에서 축복식을 진행했는데요, 쏟아지는 꽃잎이 각양각색의 무지개와 어우러져 정말 예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 집회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 깃발을 든 이들이 뒤에 늘어서 있고, 앞 쪽에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제각기 응원봉이나 피켓 등을 들고 있다.

집회를 마친 뒤엔 헌법재판소 앞까지 행진이 있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고운 활동가가 행진 사회를 맡았는데요, 트럭 위에서 보니 행렬의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 끝없는 무지개 행렬과 함께 을지로와 종로를 힘차게 행진했습니다. 행진 중에도 이어진 시민 발언들이 정말 주옥 같았습니다. 비록 헌법재판소 바로 앞까지는 가지 못하고, 안국역 부근에서 멈추어야 했지만 끝까지 힘차게 신나게 북적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은 바뀔 것이고 장애인과 성소수자와 여성과 노동자와 청소년과 이주민과 차별 받은 모두들이 바꿀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메리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 이어!🎄🏳️‍🌈🔥

사진. 을지로 골목을 지나는 행렬. 사람들이 빼곡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앞 줄 사람들이 '윤', '석', '열', '퇴', '진', '해'라고 적힌 대형 피켓을 각각 들고 있다. 6개의 피켓은 각각 프라이드 플래그의 색 하나씩 칠해져있다.

사진. 깃대를 잡은 소하가 행진 중이다.

 

26소식

[함께 나눠요] 울림팀이 추천하는 연말에 어울리는 영화!

소식

한 해를 뒤돌아 보게되는 연말입니다. 여러분은 올 해 어떤 영화를 감명깊게 보셨나요?
울림팀은 연말을 맞아 추천할만한 인권 영화를 한 가지씩 꼽아보기로 했습니다.

 

소하의 Pick <사랑하니까 가족이지> 

사랑하니까 가족이지 스틸컷. 노부부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사랑하니까 가족이지 스틸컷. 노부부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연말연시에는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할 것 같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미국 영상 문화에 많이 익숙해진 탓이겠지만요. 꼭, 원가족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가족같은 사람과 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따수울까요? 

그래서 제 추천 영화는 따스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사랑하니까 가족이지>입니다. 이 영화는 세 동성 커플을 보여주는 따듯한 영화입니다. 사랑에는 성별 구분이 없고 누구든지 가족을 꾸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영화는 대만의 동성혼이 법제화 되었던 시기에 어떠한 투쟁이 있었는지도 보여주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이 혼인평등을 외치는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이 영화를 떠올리면서 얼마 전에 다녀온 집회가 생각났답니다. 어질어질한 지금의 시국에 많은 시민들이 여러 집회에서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저는 우리나라도 온 시민이 집회에서 혼인평등을 외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주의 Pick <보라보라>

보라보라 스틸컷.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초록색, 주황색 모자 위에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 띠를 두른 상태로 경찰과 대치중이다. 발디딜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껴있는 노동자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보라보라 스틸컷.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초록색, 주황색 모자 위에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 띠를 두른 상태로 경찰과 대치중이다. 발디딜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껴있는 노동자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여느 때보다 연대와 투쟁의 힘을 실시간으로 체감했던 연말입니다. 집회가 이어질수록 서로 얽히며 넓어지는 연대를 목격하기도 했고요. 민중가요와 케이팝, 깃발과 응원봉 등 투쟁의 방식 또한 섞여갔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외칠 수 있음을 느껴 마음의 빛을 잃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지만 저는 “투쟁!”이라 외치는 것이 여전히 익숙치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외침은 힘이 있을까? 왜 끼니를 끊고, 머리를 밀고, 오체투지를 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싸울까? 라는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2024의 광장이 그러하였듯, 영화 <보라보라>는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외침과 춤과 노래가, 우리가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힘을 지녔는지를 보여줍니다. <보라보라>는 2019년 도로공사로부터 1,500명 집단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입니다. 또 ‘보라보라’는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율동패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김도준 감독 외 두 명의 조합원이 이 영화의 촬영과 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엔 고공농성 공간이나 점거 공간에서 밥을 먹는 장면, 고단함에도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며 웃는 모습, 조합원들 각자의 고민과 선택들이 등장합니다. 김미영 감독은 소개글에서 “뉴스에서나 접하던 노동자의 치열한 투쟁의 길이, 나의 길이 될 줄도 모른 채” 2017년 7월, 신림 영업소에 요금수납원으로 입사했다고 말합니다. 예상치 못하게도 우리는 삶에서 투쟁을 만나고 투쟁에서 삶을 만나며 변화되고 변화시켜 나갑니다. 연대와 투쟁을 이어나가는 우리를 위해, 2024년의 끝에 영화 <보라보라>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나기의 Pick <My First Funeral>

My first funeral의 스틸컷. 감독이 꽃다발을 들고 관 속에 누워있다.
My first funeral의 스틸컷. 감독이 꽃다발을 들고 관 속에 누워있다.

 ‘죽음’ 이후를 상상해 본 적 있나요? ‘죽음’은 언제나 상실을 가지고 오기에 우리는 고인을 추모하고 그의 가족과 동료를 위로하는 ‘장례식’을 합니다. 따라서 ‘장례식’은 관계적이고 사회적이며, 때로는 투쟁적이기도 하죠. 왜 투쟁적이냐고요? 이 사회가 ‘어떤 죽음’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애도의 자격’과 ‘애도의 방식’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퀴어’의 장례식 역시 그렇습니다. <My First Funeral>은 페미니즘-퀴어의 장례식을 주제로, 레즈비언 감독이 자신의 ‘살아있는 장례식’ 치르는 내용입니다. 감독이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기존의 장례식이 얼마나 이성애중심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상주는 반드시 남자가 맡아야 한다거나, 동성 파트너를 배우자로 인정하지 않거나, 고인의 퀴어성을 검열해 ‘없던 것’으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영화는 페미니즘 – 퀴어의 장례식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연결성을 짚고, 다양한 생과 삶을 ‘애도의 권리’위에 올려 놓습니다. <My First Funeral>과 함께 퀴어로서, 별나고 교란하는 존재로서, 다양한 애도의 방식을 상상하며, 살아 있던-살아 있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 해봅시다. 

 

고운의 Pick <기억의 공간들>

기억의 공간들 스틸컷.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들판에 서있다.
기억의 공간들 스틸컷.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들판에 서있다.

연말연시, 전기장판 위에서 귤 까먹고 종일 뒹굴고 싶은 요즘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지요. 요즘 같은 나날에는요. 지난 토요일에는 광화문 앞에서 열린 퇴진 광장에 다녀왔습니다. 형형색색의 깃발과 피켓, 응원봉은 이 광장을 채우고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패딩을 뚫고 들어오는 강추위를 함께 견디며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거리에서 아픔을 견디고 더 좋은 세상을 외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하는.

광화문 광장은 한동안 세월호의 공간이었지요. <기억의 공간들>은 세월호의 기억 공간 세 곳을 찾으며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기억’과 ‘공간’을 엮으며 그 사이의 의미들을 묻고 답합니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이전과는 분명 다른 10년을 지나왔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잊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미를 고민하며, 광장에서 함께 떨고 웃고 울고 노래하며 버텨왔기 때문에, 지금의 광장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기억의 공간들>은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나누고 싶은 영화입니다. 마침 지금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에서 상영 중이니, 꼭 한 번 찾아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8소식

[활동가 편지] 2024와 작별하며 남기고 싶은 활동가들의 한마디!

소식

짠순이(흰색 고양이)가 캣타워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짠순이(흰색 고양이)가 캣타워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소하: 진짜같은 가짜, 가짜같은 진짜가 판치는 혼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지러운 요지경 세상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고 우리의 길을 걸어갑시다. 투쟁!

나기: 여성, 퀴어, 노동자, 난민, 농민, 장애인, 예술가와 창작자, 그리고 오타쿠 여러분, 나의 동지들! 더 나은 세상은 우리의 존재로 빛날 것입니다. 2025년에도 거리와 광장에서 만납시다! 뿅!

마주 : 돌이키기에도 벅찰만큼 다사다난한 한해였네요. 26회 서울인권영화제도 열렸었고요. 얼마전 계엄령이라는 말을 듣고 탄핵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한해가 금방 지나갔다고 말하기 어려운 2024인듯합니다. 그래도 연말인만큼 빈 공간을 만들어 한해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한해에도 따스함이 깃들어 있길 바랍니다.

고운 : 빚진 게 많아 아픈 날도 많았습니다. 서로 잘 보듬으며, 우리의 세상을 앞당겨옵시다!

두부 : 연말에 갑자기 어지러운 정국이지만 그래도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뽑는다면 6월 영화제에서 여러분을 만난일이에요! 그때의 만남 덕분에 지금의 혼란을 이겨낸답니다~ 그럼 우리 그때 느낌 그대로 다시 만날 평화의 세계를 그려봐요. 내년에도 함께해요!

안나: 이런저런 일들로 우울한 한 해였지만 역시 서인영과 함께했을땐 행복한 순간들로 가득했어요!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에 혼란스러운 시국까지 지치고 힘들겠지만 우리 서로의 등이 되어 이겨내봐요. 내년에도 올해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서로의 곁에서 함께 싸워요, 투쟁! 

요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연말이지만, 26회 서울인권영화제를 했던 6월만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네요. 얼른 다음 영화제를 하고 싶은 영화제 중독자의 새해 소원은 차별금지법 제정! 왠지 될것만 같지 않나요? 두근두근. 모두 2024년도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해요

 

21소식

[소식] 연말, 소원이 꼭 이루어지길

소식

12월 12일. 정기 회의가 열리는 목요일 저녁. 서인영 활동가들은 오랜만에 언덕 위 사무실에 모여 조촐한 연말 파티를 열었습니다. 지난 TDOR 상영회에서도 12월 7일 국회 앞에서도 우리는 만났지만, 이렇게 사무실에서 오붓하게 모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 은은한 캐롤과 함께 파티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파티엔 배달 시킨 피자와 닭강정, 그리고 고운 님이 여행에서 사온 위스키, 안나 표 레몬 파운드 케이크(지난 ‘인영의 인연들’ 인터뷰에 등장한…!)가 함께 했는데요. 먼저 케이크에 초 3개를 꽂아 불을 붙였습니다. 고운, 소하, 저까지 무려 세 명의 활동가가 12월 생일을 맞이했기 때문인데요.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동시에 초를 껐습니다. 저의 주변에는 왜인지 12월자 생일이 많습니다. 사주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무튼 초를 끄며 빈 이번 생일 소원은 꼭 이루어졌음 합니다.

피자와 안나님이 만들어 온 레몬파운드 케잌. 레몬파운드 케잌에는 초가 세 개 꽂혀있다.
피자와 안나님이 만들어 온 레몬파운드 케잌. 레몬파운드 케잌에는 초가 세 개 꽂혀있다.

제가 이번 연말 파티에서 가장 두근두근 했던 코너는 바로 선물 교환식입니다. 이번엔 따로 선물을 사기보단 각자 집에 있는 것들을 골라골라 선물로 가져오기로 하였습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뽑기를 통해 각자 선물을 줄 사람을 정했는데요. 우연처럼 서로 선물을 주고받게 되었답니다. 가져온 선물을 꺼낼 때마다 알차고 귀엽고 예상치 못한 것들이라 하나씩 공개되는 선물을 기대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활동가들의 이름을 적은 크리스마스 선물 뽑기 종이
활동가들의 이름을 적은 크리스마스 선물 뽑기 종이
나기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엽서를, 요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인형과 스티커를 들고있다.
나기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엽서를, 요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인형과 스티커를 들고있다.
안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고양이버스 모형을 들고있다.
안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고양이버스 모형을 들고있다.
소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인형과 캔디를 들고있다.
소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뽑은 인형과 캔디를 들고있다.

작년 연말 파티 때는 술이 잔뜩 있어 다들 생각보다 더 거나하게 취해 돌아갔었는데요. 이번 파티는 다들 맨정신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답니다. 2025년 어떤 일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끝엔 또 따뜻한 연말 파티가 기다리고 있길 바라며! 한 해를 마무리 지어 보겠습니다!

 

자원활동가 마주

24소식

[활동 펼치기] <차별을 넘어 TRANS PFIDE 너머> TDoR 상영회 후기

소식

파랑 너머 상영 중이다. 의자에 관객들이 앉아있다.
파랑 너머 상영 중이다. 의자에 관객들이 앉아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지난달 21일, 오후 7시 30분, 스테이션 사람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상영작으로는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했던 <파랑 너머>를 선정했는데요. 트랜스 남성인 ‘닐’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였습니다. 인도 사회는 한국만큼이나 이분법적인 가부장제가 공고합니다. 지정 성별이 곧 그 사람의 젠더가 되어야 하며, 남성과 여성의 사랑만이 축복과 환영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런 사회에서 레즈비언이나 게이, 트랜스젠더와 같이 성별 이분법을 교란하는 성소수자는 쉽게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영화는 ‘닐’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닐의 가족과 동료를 비추며 이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 이해와 연대, 사랑과 긍정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가족과 트랜스젠더 당사자 간의 불협화음에 대한 질문도 많았습니다. 그럼 이번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 중이다. 무대 위에 수어통역사 진영, 이야기 손님 하루가 앉아있다. 하루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중이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 중이다. 무대 위에 수어통역사 진영, 이야기 손님 하루가 앉아있다. 하루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중이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의 하루 님을 모셨는데요. 하루 님은 “제 경험이랑 되게 비슷한 점이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었던 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닐이 지우개를 수집해요. 거기서 감독이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물었을 때 ‘지우고 싶은 순간 없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어서 너무 공감이 많이 됐어요.”라고 첫 감상평을 나눠 주셨습니다. 

영화에서 ‘닐’은 자신을 ‘트랜스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트랜지션 수술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묻고, 이분법으로 나눠진 ‘남성’과 ‘여성’(닐의 경우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삶을 횡단하지요. 험난한데다 끝도 안 나는 과정이지만 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는 사회가 지정한 ‘젠더’ 개념을 따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도 맞닿습니다. 그 이유로 ‘닐’ 역시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합니다. 하루 님은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둘(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이 바늘과 실 같아요. 성별 이분법을 뛰어넘어서 모든 성 정체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런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트랜스젠더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라며 공감을 했습니다. 

객석에서는 트랜스젠더로서 ‘닐’이 살아가는 과정에 자신의 삶을 빗댄 질문이 많았습니다. 관객 중 한 분은 “자기 힘든 것을 이겨낼 만한 그런 다른 대체할 만한 그런 기쁨들이, 소소한 기쁨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런 상황을 견뎌내기가 더 용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라고 소감을 나누어 주셨고, 자신을 논 바이너리라고 소개한 한 관객분은 “가족 간의 관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만날 때마다 ‘우리 손주 결혼하는 거 보고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가족과 관계에서 어려워지는 지점을 질문하셨습니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 중이다. 무대 위에 진행자 소하, 수어통역사 진영가 앉아있다. 소하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중이다.
관객과의 대화 진행 중이다. 무대 위에 진행자 소하, 수어통역사 진영가 앉아있다. 소하는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중이다.

요는, 커밍아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님과 소하 님은 자신의 커밍아웃 경험과 난처했던 경험, 그리고 가족과 관계에서 아직도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솔직하게 나눠주셨습니다. “‘100명의 트랜스젠더가 있다면 100가지 트랜지션이 있다.’ 이 말처럼 또 각자 가족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그 부분을 정말 명쾌하고 시원하게 어떤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같이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커뮤니티가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 같고 이런 자리가 좀 계속 지속이 돼서 우리가 같이 이런 걸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셨죠. 이는 트랜스젠더의 경험이 모일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함께 모이면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들을 계획하고 그려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서로를 다독여줄 수 있는 커뮤니티는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신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많았던 상영회였던 만큼 저 역시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로서 앞으로 성소수자 의제가 있는 곳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한 시간가량의 짧은 ‘관객과의 대화’로는 전부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이번 시간에 나온 이야기를 우리의 과제로 삼고 지속해서 함께 논의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시간은 앞으로도 많은 겁니다. 그때 더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앨라이가 모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19소식

[활동 펼치기] TDoR 집회 후기 : 트랜스젠더 여러분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요~

소식

안녕하세요. 소하입니다. TDoR을 맞아. 11월 16일에 집회와 행진을 했습니다. 날씨는 생각보다 춥지 않았습니다. 작년 집회 때에는 너무나도 추웠었거든요. 그래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집회 시작 시각인 오후 3시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은 트랜스 당사자, 비 트랜스 당사자 할 것 없이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집회가 시작되고 공연과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첫 발언자로 나서게 되었는데요. 처음 발언이라 떨렸지만 신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발언에 호응해 주셨거든요. 행진에 들어설 무렵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행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주셨어요. 이번 TDoR 집회에도 많은 사람들의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발언문을 공유합니다.

무대 위에 소하가 서서 발언문을 읽고있다.
무대 위에 소하가 서서 발언문을 읽고있다.

트랜스젠더 분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곁에 서 계신 트랜스 앨라이 여러분! 트젠으로 힘차게 인사 드리겠습니다!

트젠!

저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이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젠더퀴어인권 팀의 소하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겪은 차별을 통해,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공간에대해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반상근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부업을 해야 합니다. 부업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요? 대부분의 서비스직 아르바이트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을 요구하는 일자리들입니다. 저는 아직 성별 정정을 하지 못한 트랜스젠더라, 제가 정체화한 성별로 일하기 위해선 스스로 커밍아웃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많습니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트랜스젠더임을 이력서에 미리 밝히고는 있지만, 그래서인지 면접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트랜스젠더라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문자로 거절 통보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일을 하는 데 성별 구분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지금은 청소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편한 옷을 입고 일하다 보니 때로는 남성으로 패싱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눈치가 보이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몰래 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불편함이 이번 직장에서만 있었을까요? 이전 회사에서는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며 최대한 여성적으로 꾸미며 근무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까봐 하루하루 성별패싱 때문에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제 목소리나 체형이 남성적으로 보여 누군가 저를 남성으로 여기지 않을까, 매일 걱정하지 않은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사람을 만나는 데 왜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일터에서만 성별구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하지만 시스젠더 이성애자들이 주류인 커뮤니티에는 발을 들이기가 두렵습니다. 저의 외모를 보고 성별을 단정 지을까, 차별적인 언행이 나올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느껴지는 곳은 오직 퀴어 커뮤니티뿐입니다. 그러나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여전히 트랜스젠더에게 배타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퀴어여성 전용 공간이라고 해 놓고도 법적 여성인지 확인하는 곳도 있습니다. 성별 정정을 하지 못한 트랜스젠더에게는 또 다른 장벽입니다. 

우리에게는 트랜스젠더도 차별 없이 지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연대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별 이분법에 갇힌 세상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경험을 많이 합니다. 시스젠더 여성과 시스젠더 남성만 존재한다고 여기는 세상 속에서 트랜스젠더로서 소속감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고립감이 일상 곳곳에서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바꿔 나갑시다! 트랜스젠더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의 권리를 요구합시다. 남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치지 않도록 서로를 보살피며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저편에 보시면 행성인 가판에서 트랜스젠더 프렌들리 에티켓 포스터를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전해지길 원하는 곳에 붙여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내년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마지막으로 구호로 우리의 연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선창: 트랜스젠더도! / 시민이다! / 기본권! / 보장하라!

후창: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트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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