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문 밖에서 잇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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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이 존재하는 이유는 시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 시설에 거주인의 수만큼 세금이 투여되고, 후원금이 도착하고, 자원봉사자가 파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시설 정책은 시설 밖으로 나오고 싶은 거주인에게 훈련과 자립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설에 가도록 만드는 인프라를 제거함으로써 탈시설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시설사회 – 시설화된 장소, 저항하는 몸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시설화가 근대 국가의 출현과 함께했으며, 국가의 경계를 세우고 누가 국민인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허락 없이 국경을 넘은 사람, 국가가 허용하는 것을 넘어선 사상을 가지고 다른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실천한 사람, 다른 인종과 섞인 ‘혼혈’의 사람, 가정에서 내쫓기거나 부양받지 못하는 사람 등을 시설에 수용해왔다는 점을 밝혀내었다.

하지만 시설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이 탈출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타인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이들이 함께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면서 시설수용이 운명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선택이었다는 점을 방증했다. 그 의지와 선택을 어떻게 다르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는 무엇이 기본적인 권리인지, 누가 지금 그 권리에서 제한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지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설이 없다는 전제하에서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을 권리로 만드는 것,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시설에 가도록 만드는 것이 강제라고 말하는 것에 용기를 내야 한다. 제주에 예멘에서 온 난민이 도착했을 때 “너네 집에 들일 것이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많았다. 시설 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을 때 내 생활을 포기해야 할까 두려워서 침묵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돌봄 책임을 개인에게 독박 씌우고, 가족 내 여성에게 노동을 전가하며, 돌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을 고정시키고, 서로를 적대하게 하며 모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8년 4월 20일 다음을 선언했다. ‘2028년 4월 20일까지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은 폐쇄한다. 모든 장애인의 권리는 지역사회에서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에서 나온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1조-

어떻게 하면 시설폐쇄가 가능해질까? 시설을 유지함으로써 구체적인 이득을 얻는 세력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시설에 있기에 안심하고, 두려워서 같이 살기를 포기하는 ‘우리’ 모두가 시설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모두가 용기를 내어야 하지만, 그 용기의 출처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달라질 수 있을 때 정말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일 것이다. 그래서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 세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시설사회에 대한 자각과 그것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될까? 가장 강력한 것은 바로 지금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문밖에서 잇는 날들>에서, 정신장애인 시설에서 의사로 일하던 이가 “거주인이 이곳을 감옥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간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을 인정하고, 더이상 간수로 살지 않기 위해서 감금된 사람과 함께 해방의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에 내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너와 새로운 관계를 맺겠다는 용기, 그것이 시설사회를 바꾸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타리(장애여성공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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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혜나, 라힐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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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이라는 말로 국가가 공적 지원을 시작한 것이 2008년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와 그 자녀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당사자들에게 차별이 되었다. 한국인과 다름을 나타내기 위한 구별이 될 때 그것은 인종화된 언어가 되어 ‘다문화’라는 범주 속 사람들을 향한 폭력이 되었다. 이름 대신 다문화로 불리고, 다문화는 뭔가 부족하고, 왕따 당하고, 피부색이 거무스름하고, 한국어가 서툴다거나, 불쌍한 존재로서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타자화된 것이다. 그러한 타자화는 때로는 통계수치로 왜곡되고, 방송 프로그램 속에서 잘못 그려지고, 영화에서 다시 범죄자로 그려지곤 한다. 거기에 언론 보도는 다문화학생, 다문화청소년, 다문화여성, 다문화군인, 다문화은행원 등 끊임없이 개인보다 집단의 정체성을 부여하며, 한국인과 다른 존재로서 칭찬하거나 비난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과 개인적 맥락 속에서 혜나는 성장했고 라힐이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남편이 이주노동자 출신의 영화감독 로빈 쉬엑이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또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한국에서 나고 자란, 소위 다문화가족의 자녀인 자신에게 수없이 상처를 입힌 보통의 한국인들이 미처 인식해 내지 못한 차별이 있다. 여전히 순혈주의에 사로잡힌 민족주의 의식이 뿌리 깊게 한국인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 시대’라는 말은 선포되었지만, 다문화라는 언어적 의미와 이데올로기로서의 다문화주의 그리고 정책과 제도로서의 다문화 정책은 아직도 혼선과 혼돈에 놓여있다. 그사이에 자라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견디기가 힘들다.

나를 나로 보아주는 일, 나의 이름이 온전히 불리고, 내가 가진 정체성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리고 교차성을 읽어내는 일이 당연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성이 여성이기만 하지 않듯이, 남성이 남성이기만 하지 않고, 우리의 정체성은 성별, 피부색, 외모, 성적지향, 장애, 연령, 학력, 사회적 신분, 출신국가, 출신민족 등 중의 한 가지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듯 보여도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삶의 맥락에 따라 어느 한 정체성이 도드라지거나 숨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피부색이나 생김새로 구분했을 때, 수많은 이주민들 중 50%이상이 중국이나 일본, 몽골 등으로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로 패싱(passing)되는 존재들이다. 이때 패싱은 또 다른 침묵을 불러온다. 말하지 않으면 이주민임을 숨길 수 있기에, 차별받지 않기 위해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나 존재 자체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사회여야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오늘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다. 나를 뭉뚱그리며 어느 한 범주에 넣으려고 애쓰지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호기심의 대상에게 쉽게 다가와 말을 걸며 사적인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이 차별임을 인지해 달라는 것이다. 

 

정혜실(이주민방송MW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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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보이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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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위해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에 대한 자료부터 ‘탈북청소년’에 관한 정보까지, 가능한 한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다. 탈북민이나 이주민에 대한 전문가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검색할수록 막막해졌다. 수집 가능한 탈북민에 대한 정보는 ‘정부 정책’ 정도였기 때문이다. 탈북청소년의 경우는 더했다. ‘탈북청소년 교육 지원센터’에서 발간하는 통계 자료 외에 그들의 현실을 담은 자료는 거의 없었다.  영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제목은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삭막한 정보의 바다를 뒤지다가 ‘셋넷학교’ 기획자이자 대표인 박상영 선생님의 글을 발견했다(https://brunch.co.kr/@eveningnamoo/14). 마침내, 탈북청소년의 언어로 표현된 그들의 한국 살이를 만날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글을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박상영의 글에 따르면 2007년도 이후부터 사회생활을 하다가 한국을 떠나는 셋넷학교 졸업생의 수가 점점 늘었다고 한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난 학생들이 섭섭하면서도 걱정된 그는 무작정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서양으로 떠난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자리를 잡은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북한에 대한 질문을 받을 걱정 없이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북한 사투리를 쓰고 북한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하다고,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학력이 없으면 능력이 소용없는 한국에서 너무 힘들었다고, 경쟁을 견뎌야 하는 게 괴로웠다고. 여기선 내 학벌이나 출신을 물어보지 않아서 좋다고. 그래서 떠나오길 후회하지 않는다고. ‘탈남脫南’한 청년들이 한결 가벼운 얼굴로 말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나온 인터뷰부터 ‘셋넷학교’ 대표가 전하는 이야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일부 탈북민의 경험으로 한정될 수 없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주민의 경험을 닮기도 했고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어떤 청년들의 경험을 담고 있기도 하다. 안전한 집단과 안정된 거처를 쉽게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소수’로서의 삶은 이주민의 경험을 닮아 있다. 이렇게 각자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은 서로 교차하여 만날 수 있다. 

세상은 ‘소수’에게 안전한 거처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 이들을 향한 위협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타자를 없애고 자신의 깃발을 세우는 대신 세상을 흘러 다니며 온갖 존재를 만나는 사람들. 벽을 넘고 경계를 가로질러 자신에게 적절한 장소를 찾아 움직이는 자들의 역동성. 이것이 소수의 힘이며 거처 없는 자들의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에게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디아스포라는 땅 없이 떠도는 무리가 아니라 쉬지 않고 세상을 발견하는 존재다. 단단하게 굳은 땅을 휘젓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 가능성이다. 망설임 없이 ‘나’를 넘어서 낯선 것과 연대할 힘이다. 보이지 않을지라도 사라진 적 없었던 ‘소수’의 역사는 그렇게 계속되어 왔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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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혼란 속에서 마지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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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부터 40년 넘게 철권으로 시리아를 다스려 온 알아사드 독재 정권의 교체를 요구하고 자유·평등·사회 정의·민주주의를 외치던 시리아 혁명은 2011년에 시작됐다. 알아사드 독재 정권은 무수한 시민들을 가차 없이 잡아들여 참혹하게 고문하고 학살했다. 정부의 잔인한 대응으로 인해 평화로웠던 시위는 점점 무장 대결로 바뀌었다. 게다가 외국 세력들의 개입이 시리아 갈등의 복잡성을 악화시키고 시리아는 격렬한 지옥으로 변모했다.

   시리아 상황은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졌으며, 국민들은 안전한 피난처를 찾기 위해 고통의 여정을 시작했다. 2천3백만 명 시리아 인구 중, 7백만 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안전한 피난처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8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옥 같은 시리아 안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다. 국경을 넘는 사람들을 ‘난민’이라고 하고, 국내에서 피난처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실향민’이라고 부른다. 그 명칭에 따라 그들의 법적 지위는 달라진다. 사실 그들에 대한 더 정확한 명칭은 ‘지옥의 생존자’일 것이다.

  난민 수용국의 국내외 난민 정책의 빈번한 변화, 국가 간 난민에 관한 법률 및 정책의 불균형, 난민 문제의 정치적 악용, 난민 반대 운동,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으로 난민들의 고통은 증가한다. 그리고 실향민들은 눈앞에서 나라가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작은 텐트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한다. 하루하루 꿈이 사라지고, 희망이 멀어지고, 용기와 의지는 허공에 뿌려진 종이처럼 흩어진다.

   지옥의 생존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의지와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되찾고 싶은 욕망으로 암울한 현실을 견디고 있다. 모든 것을 잃은 그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행복한 과거의 추억뿐이다.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더 아름다운 추억을 새롭게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생존자들은 매우 단순한 것들을 자랑하듯 SNS에 공유하거나, 작은 행복을 과장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때때로 이런 행위들로 인해 난민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난민들을 판단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왜곡된 고정관념에 젖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난민이란 가난하고, 더럽고, 슬프고,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사는 존재인데, 평소 자신이 생각하던 난민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도움이 아니라, 편견과 선입관 없이 ‘평범한 이웃들’로 인정받는 것이다.

  2016년, 터키에 거주하는 10대~30대 시리아 난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 중 하나는 “단 2시간 동안만 시리아를 방문할 수 있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물건을 가져오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대부분은 “가족 집을 방문하고, 고향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사진을 찍고,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 방문하고, 가족사진이나 일기장을 가져온다”는 답을 하였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다. 아니,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일 것이다. 먼저 난민에 대한 잘못된 정보나 왜곡된 편견을 바로잡고, 종교·민족·국적 등에서 오는 차별 없이 난민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고국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날까지 난민들을 우리 사회에 잠시 머무는 손님이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한국 국민들이 이 손님들을 따뜻하게 대우하여 전 세계의 모범이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들이 ‘마지드’를 외쳤던 것처럼, ‘시리아의 평화와 자유’가 현실이 될 때까지 함께 외쳐주기를 소망한다.

  

압둘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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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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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시대를 산다. 전 세계가 마주한 코로나19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여름마다 폭우와 폭염을 겪으며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날마다 일터에서 들려오는 노동자의 사망 소식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노동 세계를 절감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인 한반도를 뼈아프게 떠올리도록 한다. ‘위험 사회’라는 말은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재난은 결국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누군가는 영문도 모른 채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다. 이 지점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재난이 불운한 사고나 불행한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각각 존재하는 위험 요소들이나 우연이 재난이 되기까지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위험 요소를 재난으로 만드는 요인은 기존에 존재했던 사회적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모든 재난은 사회적 사건이다. 재난에서 인권 침해를 이야기하면 대부분 재난 이후의 과정을 떠올리지만, 사회적 문제가 재난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재난참사의 발생 자체가 거대하고 구조적인 인권 침해이기도 하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질문해서 가장 늦게까지 질문을 거두지 않는다. 영문도 모를 죽음의 ‘영문’을 알기 위한 재난 피해자들의 질문은,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회복도 기억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섣불리 질문을 종결하거나 기억을 규정하는 일은 기억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기억되지 않는 진실은 제대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질문이 사회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더 안전해져 왔다.

반면 죽음을 배제하고 타자화하며 망각할 때 모두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다르게 대하는 경계는 뚜렷하고도 명확하지만, 한편 고정불변이거나 절대적이지 않다. 그 경계는 생사의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람을 기억하려는 사람 또한 존중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듯, 죽은 자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회의 현재를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재난에 대한 기억과 추모는 곧 재난을 대하는 사회의 역량이기도 하다. 재난을 제대로 알고 기억할 때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재난이 남긴 상처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없이 사회는 결코 ‘회복’할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진실을 알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인식할 때, 비로소 다시는 그러지 않는 사회를 그려나갈 수 있다. 진실을 밝혀내 사회의 정의와 안전을 세우고 그를 제대로 기록해 기억하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만 취사선택할 수 없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이다.

왜 죽음을 기록하고, 왜 재난을 기억하는가. 기억은 곧 행동이다. 기록된 기억은 사회에 공유되고, 공유된 기억은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기억은 곧 노동이다. 재난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발굴하고 드러내며 변주하는 과정은 역동과 반목을 동반한다. “망각은 곧 범죄”라는 난민 활동가의 말처럼, 기억은 곧 의무이다. 반면 재난을 개인화하면서 사회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을 때, 재난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변화하지 않게 된다. 사적인 기억에서 사회적 기록까지, 변화가 그 곳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기억은 곧 투쟁이다.

 

어쓰(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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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해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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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2018년 미투 운동을 통해 소위 ‘문인’들이 저질러온 성폭력이 공론화됐다. 수많은 피해자가 문예 창작을 배우는 학교 또는 학원, 평소 좋아했던 작가가 참여하는 문학 관련 프로그램, 문인 모임, 출판사, SNS 등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가해자들은 스승과 제자, 저자와 애독자, 등단 작가와 작가 지망생, 유명 작가와 출판노동자라는 권력 관계를 남용했다. 성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문학을 하려면 탈선해야 한다”, “광인이 위대한 문학을 만든다”라는 궤변으로 피해자들을 세뇌하기도 했다.

<해미를 찾아서>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소설 속 등장인물 ‘해미’로 불리며 대상화됐던 피해자가 자신의 힘으로 글을 쓰며 권력을 깨부수는 ‘해미’로 주체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동시에 성폭력이 공론화된 ‘이후’에 지속되는 싸움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해미’가 피해 사실을 증언했지만, 가해자의 권력은 여전하다. 법원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고, 대학은 솜방망이 징계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 교수들은 동료인 가해자를 감싸면서 성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여긴다. 학생회는 중립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준다. 대중의 관심은 점점 줄어든다. 미투 운동 이후 반성폭력 운동 현장에서 수없이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이다.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피해자와 연대해온 민주는 두 가지 시선을 받는다. 첫 번째는 “선배도 해미예요?”다. 피해 당사자라서 열심히 싸우는 거냐는 시선이다. 두 번째는 “너 나중에 정치해도 될 것 같아.”다. 정치적 목적으로 운동하는 거냐는 시선이다. 마치 피해 당사자가 아니면 진심으로 성폭력 문제해결을 바라거나 피해자와 연대할 수 없다고 의심하는 것 같다. 민주처럼 되묻고 싶다. “네가 보기엔 어떤데?”

‘해미’든 아니든 우리는 연대할 수 있다. ‘아홉 번째 해미’가 용기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어온 해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곁에서 ‘해미’를 믿고 힘을 실어주는 연대자들이 있고, 가해자를 규탄하는 탄원서에 서명한 수백 또는 수천의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미’에게 시간이 필요할 때 기다려주고 ‘해미’가 돌아올 수 있도록 현장을 지키는 등대가 될 수 있다. 권력이 ‘해미’들을 지우지 못하도록 함께 기억하는 우리가 되어달라.

 

앎(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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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기억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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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힘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 제주 4·3.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가량인 3만여 명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 그리고 약 20년 후, 20만여 명의 한국군이 파견된 베트남에서는 제주에서 일어난 일들과 똑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학살, 불타는 집, 울부짖는 소리, 그리고 강요된 침묵. 

영화에 나오는 1968년 베트남의 모습은 언어만 다를 뿐, 1948년 말 제주의 모습과 닮아있다. 제주 4·3을 겪으며 어떻게든 ‘빨갱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했던 제주도민들은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베트남전에도 다수 참전했다. 보훈처에 등록된 베트남 전쟁 참전 유공자는 19만 1,436명. 그중 2,297명이 제주도민이다. 

그렇기에 4·3의 기억은 70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제주 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부터 시작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때까지라고 되어 있지만, 제주에서의 4·3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그리고 독재정권 시기 전반에 걸친 간첩조작사건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국가폭력의 굴레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왜 이렇게 폭력은 반복되는 것일까. 폭력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사 청산’이라는 단어를 국제인권기준에서는 진실, 정의, 배상, 재발방지, 기억으로 나눠서 소개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순차적으로 이뤄질 필요는 없지만, 각각의 요소들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사가 청산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주 4·3은, 베트남 전쟁은 어디쯤 와 있을까. 진실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그 누구도 처벌되지 않았으며 생존자들에 대한 어떠한 배상도 이뤄지지 않은 역사는 당연히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같은 폭력의 재발을 방지하지도 못한다.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제주 4·3과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는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져 국경을 넘나드는 고통을 양산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는 기억을, 예고 없는 통증으로 떠오르는 상처를, 함께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생존자의 곁에 서서 함께 고통을 기억하고 끔찍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연대의 몸짓만이 이 폭력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국가폭력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백가윤(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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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보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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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일간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우리가 옳다

– 그/녀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파문이 되어

2019년 한국 사회를 기억할 때 빠지지 않는 사건은 한국도로공사(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일 것이다. 비록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그/녀들의 투쟁은 우리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도로공사의 타협과 협박에 굴하지 않는 치열한 싸움이었으며, ‘혼자 먼저’가 아니라 ‘함께’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재판에서 승소를 한 사람이건 아니건, 입사 시기가 언제이건 모두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기에 울림은 크다. 영화<보라보라>를 보면 노동자들이 숱하게 부대꼈을 갈등과 질문은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자회사라는 간접고용을 거부하다

영화는 2019년 7월 1일부로 해고된 1,500명의 노동자가 서울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했던 고공농성에서 시작한다. 그/녀들의 투쟁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한 불법파견에 대한 법정 소송부터 본격화된다. 정규직이었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선진화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전원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요금소 수납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 사장은 대부분 도로공사의 명예퇴직자들로, 말이 위탁이지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도로공사의 지휘와 명령을 받고 업무를 했다. 그러므로 법원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어 자회사 정규직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대법원 판단 전에 불법파견 여지를 없애 법원의 결정을 무력화하려는 꼼수였다. 그/녀들은 1~2년 단위로 맺는 고용계약 때문에 영업소장들의 개인 업무도 해야 했던 억울함, 성희롱, 성추행을 감내해야 했던 모욕과 폭력을 이미 경험한 바 있기에, 자회사도 도로공사가 위탁계약을 끝내면 하루살이 목숨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자회사 입사도 고용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간접고용이다. 1,500명의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거부하자, 도로공사는 6월 30일 집단 해고를 진행한다. 다수의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법원 소송과 자회사 조치를 전후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회사에 맞서 싸운다. 어쩌면 노조활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기존의 노조운동이 관성적으로 반복한 각본에 얽매이지 않은 원칙과 동료애를 붙들고 싸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고공농성에서 오체투지까지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은 몇 번의 변곡점을 그린다. 해고 후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캐노피 고공농성과 청와대 앞 집단농성을 동시에 진행한다. 도로공사는 공공기관이고 대통령이 이강래를 사장으로 임명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공공기관 자회사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소송인 719명)이라는 판결을 받고도 도로공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노동자들은 9월 9일부터 김천 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 싸움을 한다. 이것이 두 번째 변곡점이다. 자진 해산한 2020년 1월 30일까지 145일간을 농성 투쟁을 이어갔다. 싸움이 장기화되자 투쟁 거점을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어가는 것이 세 번째 변곡점이다. 11월, 본사에 있는 조합원의 일부는 도로공사 관리감독주체인 김현미 국토부장관 사무실 및 더불어민주당의 여러 의원실을 점거하며 싸움을 전개한다. 동시에 정부종합청사에 거점농성장을 만들고 오체투지와 단식투쟁도 이어간다. 투쟁이 길어질수록 조합원 숫자는 조금씩 줄어간다. 그러나 그/녀들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이 옳기에,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자는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러던 중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총선 출마를 위해 집단 해고에 대한 문제 해결 없이 사장직을 사퇴한다. 노동자들은 한 번 더 거점을 옮겨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 공천 반대운동과 낙선운동도 전개한다. 

많은 싸움이 그렇듯 사측과 정부는 투쟁하는 사람들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처음에는 대법원 판결자만을, 나중에는 2015년 입사자들을 분리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녀들은 ‘함께 가야한다’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2월, 뒤늦게 소송한 노동자 3,869명에 대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의 판결로 모두 불법파견임이 분명해졌음에도 도로공사는 끝까지 노조와 합의하지 않았다. 법원 판결을 반영하겠다던 도로공사는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되 현장지원직이란 새 직군을 신설해 기본급의 15%를 삭감했고, 고소고발도 취하하지 않았다. 1심 계류 중인 2015년 이후 입사자에 대해선 추후 판결을 보고 직접 고용하겠다며 해결을 미뤘다. 결국 노동자들은 사측의 제대로 된 합의 없이 긴 싸움을 마무리하고 복직해야 했다.
현재 그/녀들은 도로공사에 직접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겪었던 모욕과 설움, 불안함이 현재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그녀들의 현재가 궁금하다. 그/녀들이 투쟁 과정에서 얻은 세상의 크기, 정의의 무게가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도… 투쟁을 정리하던 날, 몇몇의 여성노동자들이 톨게이트농성장 옆에 있던 마사회 기수 고 문중원열사의 추모농성장에 들려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며 유족의 손을 잡아주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이 던진 질문은 아직도

그/녀들은 정규직으로 현장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한국사회 노동구조는 비정규직 중심이다. 1998년 파견법이 제정된 후, 간접고용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부분이 여성과 장애인인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의 고용형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노동의 밑바닥인 비정규직은 ‘개인의 노력(능력)’ 여부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으로 인해 생겨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기관의 정규직 선발은 ‘공채시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 ‘경쟁신화’와 ‘각자도생’이 만연한 현재를 어떻게 딛고 가야할 것인가. 우리에게 설렘과 분노를 동시에 주었던 2019년의 외침, ‘우리가 옳다’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는 이유기도 하다.   

 

명숙(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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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일하는 여자들

인권해설

지난 11월 12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상암동에서 여러 단체와 함께 전태일 50주기 방송노동자 작은 문화제 <무늬만 프리랜서 이제 그만,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를 진행했다. 스물두 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친 지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방송현장에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방송사 제작사들은 노동자들에게 프리랜서 계약, 용역 계약을 강요하며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의 불안정성은 ‘프리랜서’라는 말의 자유로움으로 미화되고 왜곡된다. 일부 유명인의 ‘프리랜서 선언’과 함께 고액 출연료가 기사화되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프리랜서’들은 적은 수입과, 불안정한 고용관계에서 오는 해고에 대한 불안을 겪고, 비대칭적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매우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초장시간 노동, 저임금, 무계약, 구두계약, 일방적인 해고 통보, 임금체불, 성폭력‧성희롱, 폭언 욕설 고성이 난무하는 현장 분위기….

위계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방송 현장에서 대다수가 여성인 방송작가들은 더욱더 차별적인 환경에 놓이며, 인맥으로 연결된 환경에 있어서 정당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 현장에서의 일상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출산 휴가‧육아휴직은 꿈도 못 꾸며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해고되어도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나 장치가 없다.

방송작가유니온 2018년 모성보호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방송작가들은 일상적으로 임신 출산과 관련된 폭언을 들으며 일하고 있다. “애 생기면 못 하겠네, 그럼 다른 사람 구해야지” “임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 주든가, 혹시 불임이면 합격이다”…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말들이 난무하지만 “내일부터 나오지 마” 한마디면 일자리를 잃게 되는 방송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최근 방송현장에도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방송현장에서 열악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조합을 만들고 부당한 문제들에 대해 발언하며 행동하고 있다. 2017년 11월 출범한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작가들의 일상 속 벗이 되고, 힘들 때 손을 잡아 주며, 용기 내 목소리 내는 이들과 함께 싸우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

전태일 50주기 작은 문화제에서 영화<일하는 여자들>의 감독인 방송작가유니온 김한별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MBC는 내일 전태일 열사 50주기 관련 방송을 틀림없이 내보낼 겁니다. 하지만 MBC가 전태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 ‘노동’ 관련 취재를 하고 방송을 내보낼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최근 MBC 보도국 뉴스투데이에서 수년간 일했던 방송작가들이 부당해고 되었고, 방송작가유니온은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방송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 냈던 방송사들이, 사회의 온갖 부조리에 목소리 내는 시사교양국 피디 기자들이, 정작 방송사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인권을 무시하는 행태를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지만, 조금씩 균열을 내며 저항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전재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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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을지네이티브, 청계천 아틀라스

인권해설

오래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유 없는 구석이 없을 때가 있다. 노포의 메뉴 구성이나 작은 마찌꼬바 안 뒤엉킨 재료의 배열들이 그렇다. 골목이나 세계도 그렇다. 의도한 바 없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에는 각각의 이유가 자라있다. 지난 9월 철거된 서울 청계천 인근 인계동 시계골목이나 을지로 골목들이 그렇다. 조선의 골목 지도와 청계천 을지로의 오래된 골목을 겹쳐놓으면 무척 비슷하고 그 쓰임도 닮았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골목이어도 길목 역할을 하는 골목의 존재는 그곳이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곳을 나고 든 사람들이 만든 문화와 시간을 담고 있다고 알려준다.

골목을 나고 드는 사람들. 그들을 제외하고 공간을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서울의 지도는 다시 뉴타운 재개발 광풍이 부는 것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용산참사의 폭력의 이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위험성이 큰 금융기법과 높은 기대 이윤이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상승하는 서울의 아파트값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 이를 방증하듯 하루하루 재개발과 퇴거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다시 2008년이 된 것 같다’던 한 철거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11월 첫 주부터 청계천 을지로의 개발구역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6구역의 철거가 시작됐다. 상인들과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 활동가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상인들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보존연대 활동가들은 사라지는 골목과 가게를 아쉬워하며, 마지막 모습을 함께 보는 3-6구역 투어를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3-6구역 인근 상인들은 청계천 을지로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안내했다.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나사를 깎는 가게, 구멍을 뚫는 가게, 용접과 매끄럽게 광택을 내는 가게, 칠하는 가게 등 수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서로 기댐으로써 만들어진 생태계의 조건은 다양성이다. 비슷해 보여도 똑같은 일은 하나도 없다. 청계천 을지로의 골목을 오가며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만들던 사람들에게는 개발이 시작된 후로 더이상 만들 수 없는 물건이 생겼다. 골목을 도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한 구역 한 구역이 철거될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진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인위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복잡한 기댐,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특유의 공간이 아파트 건설로 사라진다.

“용산참사 잊었느냐” 청계천 가게들 앞에는 이런 구호가 쓰여 있었다. 

얼마 전, 용산 한남 뉴타운 개발로 시세차익을 거둔 성장현 용산구청장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한 설혜영 구의원의 제기를 구의회 의장이 묵살했다. 설혜영 의원은 용산구청 앞에서 농성 중이다. 용산참사 당시 용산구 국회의원이었던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한강로에만 지난 3월 기준 6개의 상가 및 아파트, 그리고 분양권을 가지고 있었다. 용산참사 현장에 새롭게 건설된 ‘센트럴파크 헤링턴 스퀘어’ 아파트의 분양권도 포함되어 있다. 용산의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핏줄 같은 골목을 지운 자리에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청계천 을지로의 가게들을 돌아다니다가 금형 주물을 찍어내는 ‘프레스’에 방문했다. 사장님은 기념 삼아 하나씩 가지라며 다양한 버튼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국가대표 축구팀 마크부터 로터리클럽까지, 다양한 버튼이 모여있는 와중에 ‘의회’라고 쓰여있는 버튼이 눈에 띄었다. 시의원 버튼이었다.

의원님들 버튼을 만들어주던 소상공인, 노동자들이 대책 없이 쫓겨나고 있다. 용산참사를 잊은 것이 아니라 용산참사의 의미가 달랐으리라. 쫓겨난 사람들의 상처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손상은 회복이 가능하지 않지만, 의원님들의 집값은 올랐고, 참사의 주범 김석기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1만 점포, 4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던 공간을 밀어버리고, 역사와 산업을 깨부수더라도 아파트값만 오르면 그만이란 말인가.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가.

 

윤영(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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